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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전기】 도마관에 떨친 위엄

앙악

【정견뉴스】

왕쌍관 《백위영웅방》——양연소. (왕쌍관 제공)

도마관(倒馬關)은 내장성(內長城)의 중요한 관문 중 하나로, 지세가 험준하여 군마가 자주 넘어진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전국시대부터 기록에 등장하며 옛날에는 홍상관(鴻上關), 상산관(常山關) 또는 청룡구관(靑龍口關)이라 불렸다. 자형관(紫荊關), 거용관(居庸關)과 더불어 송대 내삼관(內三關)이라 일컬어진다.

이곳은 예로부터 병가에서 반드시 차지하려는 요충지였으나, 북송 시기 명장 양연소(육랑)가 이곳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적을 막아내며 더욱 유명해졌다. 명조(明朝) 때 현지 백성들은 양연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관문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근처에 한백옥으로 육랑비(六郞碑)를 세웠으며, 문인 마중석(馬中錫)도 시를 지어 그의 사적을 노래했다. 현지 백성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북송 건국 초기, 대장 양연소는 아버지 양업(楊業)을 따라 출정하여 송의 잃어버린 땅을 수복했다.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하북성 당현(唐縣) 서북쪽 군성(軍城)에 이르렀을 때, 양업은 양연소에게 군성을 지키라 명했다.

당시 요나라 대장군 한창(韓昌)은 무예가 출중하여 만인적(萬人敵 혼자 만명의 적을 상대한다는 의미)이라 불렸다. 그는 사후수(獅吼獸)라는 전마를 타고 변방을 누비며 수십 년간 적수가 없었으나, 양연소가 이끄는 장수들을 만나자 예상치 못하게 패퇴를 거듭했다.

왕쌍관 《백위영웅방》——양연소. (왕쌍관 제공)

한번은 한창이 요나라 정예병 수만 명을 거느리고 남침하여, 머릿수를 믿고 군성을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양연소는 이를 알고 성을 나와 맞섰다. 그는 백마를 타고 반룡금창(蟠龍金槍)을 휘두르며 한창과 수백 합을 겨루었으나 승부가 쉽게 나지 않았다. 싸움이 계속될수록 양연소는 전신에 끝없는 신력(神力)이 솟구치는 듯 더욱 용맹해졌고, 장시간의 대결 끝에 한창은 점차 기력이 다해 물러나기 시작했다. 요나라 군사들도 서서히 산골짜기로 후퇴했다.

양연소가 군사를 몰아 추격하며 한창의 요나라 군대와 계속 싸우니, 두 사람은 밤낮으로 사흘 동안 대결을 이어갔다. 요나라 군대는 무려 30리를 후퇴했으나 많은 병력에 의지해 송군과 팽팽히 맞섰다. 전투 중에 양연소와 한창은 산봉우리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들었다. “두 영웅은 이제 그만 손을 멈추고 쉬도록 하시오!” 고개를 들어보니 산꼭대기에 백발노인이 서 있고 그 곁에 토지묘(土地廟)가 하나 있었다. 두 사람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므로 잠시 휴전을 선언했다.

이때 양연소가 타고 있던 백마는 연일 이어진 전투로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말에게 휴식을 주었다. 얼마 후 이 소식을 접한 한창은 다시 말을 타고 양연소를 습격해 왔다. 그의 전마 사후수는 타고난 기질이 남달라 잠시 쉬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양연소는 전마가 없는 상태에서 홀로 요나라 기병을 상대하기 어려워 무척 당황했다. 바로 그때, 산봉우리에서 전마 한 마리가 달려 내려오는데 자신의 말과 생김새가 거의 똑같았다. 산 위의 백발노인과 토지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양연소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코앞에 다다르자 몸을 날려 올라타고 창을 치켜들며 맞싸웠다. 놀랍게도 이 말은 달릴 때 매우 안정적이었고 영물이라 시키는 대로 잘 움직여 전투가 훨씬 수월했다. 이에 한창은 얼마 못 가 패배하며 후퇴를 거듭했다.

요나라 군대는 다시 30여 리를 쫓겨 큰 강가에 이르렀다. 양연소도 다소 피로를 느껴 말에서 내려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 했다. 그런데 이 말이 강물에 들어가자마자 마치 진흙으로 만든 것처럼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사실 산봉우리에서 소리쳤던 백발노인은 토지공(土地公)이었다. 그는 양연소의 말이 지쳐 쓰러진 것을 보고 도움을 주고자 진흙으로 말을 빚은 뒤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어 살아나게 했던 것이다.

양연소. (멍쯔/대기원)

한창은 양연소의 말이 없어진 것을 보고 다시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다급해진 양연소는 군사들을 이끌고 인근 산봉우리의 관문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한창도 군을 이끌고 산을 올랐으나, 신기하게도 그곳에 이르자 요나라의 전마들이 산을 오르다 하나둘씩 연이어 고꾸라졌다. 오직 한창이 탄 사후수만이 겨우 걸음을 뗄 수 있을 뿐이었다.

한창은 상황이 여의치 않자 병사들에게 내려서 걸어 올라가 공격하라 명했다. 그러나 산 중턱에 다다르자 산 위에서 무수한 화살과 돌덩이가 쏟아져 내렸다. 양연소가 산 위 관문에 도착하자마자 진을 치고 화살을 쏘며 돌을 던졌기 때문이다. 요나라 병사들이 오르는 길은 매우 좁아 피할 곳이 없었으므로 사상자가 속출했다.

한창은 원래 포기하려 하지 않았으나, 양연소가 직접 활을 당겨 쏘자 간신히 몸을 날려 피했다. 화살은 옆의 산벽에 박혔는데 화살촉이 바위 깊숙이 박힐 정도였다. 이 광경에 한창은 식은땀을 흘리며 감탄했다. “과연 양연소로구나! 이토록 신묘한 힘을 가졌다니!” 그는 더 이상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남은 병졸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 도망쳤다.

전투가 끝난 뒤 양연소가 살펴보니, 이 산봉우리의 관문은 비록 높지는 않으나 지세가 매우 험요하여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진을 치고 성벽과 문을 쌓아 도마관(倒馬關)이라 이름 지으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요나라 대장 한창을 벌벌 떨게 했던 그 화살은 전설에 따르면 지금도 바위벽 속에 꽂혀 있다고 전해진다.

참고사료(參考史料):
《楊家府世代忠勇通俗演義》明朝 佚名 著 秦淮墨客校閱
《楊六郎威鎮三關口》河北人民出版社1984年出版 趙福和 李巨發 等人 搜集
《楊家將外傳》河北少年兒童出版社 1986年出版 趙雲雁 搜集整理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gb/19/5/19/n11266623.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