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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해삼국 (9): 책으로 도(道)를 전해 사람의 미혹을 해소

유여(劉如)

【정견망】

천경지의(天經地義): 하늘이 이끌고 땅이 연기

옛사람이 사람 됨됨이를 논할 때 말한 ‘천경지의’는 단지 천리(天理)와 인도(人道)를 따른다는 뜻만이 아니다. 《삼국연의》는 사실 ‘천경지의’의 또 다른 깊은 함의를ㄹ 드러내고 있다. 바로조대(朝代)의 교체는 하늘이 경영(經營)하고, 땅에서는 그 의(義)를 연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천경지의는 도덕적 표준일 뿐만 아니라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우주관을 더욱 체현한다. 천상(天象)을 알고 천의(天意)에 순응하며 인도(人道)에 부합해야만 비로소 천경지의의 참뜻을 알 수 있다. 그래야 옛사람들이 왜 “사람의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따른다(盡人事 聽天命)”, “일은 사람이 꾸미나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謀事在人 成事在天)”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이 이치를 알았기에 흔들림 없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며, 활달하고 당당할 수 있었다.

‘경(經)’은 또한 경서(經書)를 뜻하기도 한다. 유가, 도가, 불가의 경서가 있는데, 유가는 사람이 사는 이 층(層)을 논하지만 신이 사람에게 전수한 의리(義理)다. 그러므로 도를 닦든 불법을 닦든, 혹은 사람으로 살든 그 도리는 모두 하늘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천경지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다.

오늘날 사회경제와 경영을 말하는데, 사실 ‘경영(經營)’이라는 두 글자 속에 진기(真機)가 숨어 있다. 신이 인간에게 전해준 도리이자 불변의 도의인 ‘경(經)’으로 기업을 지도하고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천경지의한 경영의 도이며, 그래야만 사업이 갈수록 번창하고 순탄해진다. 도의로 사회를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제 사회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하나의 기업 문화를 경영하는 것이니 그 공덕(功德)이 무량하여 반드시 하늘의 도움을 받게 된다. 돈은 당신의 눈에 더 이상 개인의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 전체와 사회에 속한 것이며 잠시 자신이 보관하고 운영하는 것일 뿐이다. 흉금이 넓고 무사(無私)할수록 안목이 높아지고 기업도 커진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그저 사람의 일을 다할 뿐, 거취와 성패에 대해 매우 활달한 관점을 갖게 된다. 이렇게 살면 몸은 바빠도 마음은 평안하다.

《삼국연의》는 ‘천경(天經)’의 각도에서 ‘지의(地義)’를 논하기에, 반드시 천상과 예언, 그리고 각종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삼국 역사의 실질적인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 단순히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고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요약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천상과 예언을 이 삼국이라는 거대한 연극의 보이지 않는 ‘감독’으로 설정한다. 동시에 사건 속 핵심 인물들의 생각을 펼쳐 보임으로써 독자가 ‘감독’의 존재를 감지하게 하고, 옛사람들이 문제를 고민하는 원칙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문제가 닥쳤을 때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진퇴와 처세를 결정했는지 보여주는 것, 이는 사서(史書)가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저자가 배경을 설명할 때, 한 말 영제(靈帝) 때 환관들이 정치를 어지럽힌 내용을 적으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불길한 천상(天象)과 재변(災變)을 서술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하늘의 경고다. 한조 군신이 덕을 잃어 곧 멸망할 것이며 삼국 시대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장각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꾀하고, 유비·관우·장비는 정부의 의병 모집 공고를 보게 되면서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도원결의의 이야기를 남긴다.

이 이야기는 사나이가 국난을 당했을 때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장비가 유비에게 던진 한마디,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힘을 쓰지 않고 어찌 한숨만 쉬느냐?”라는 말은 그들 세 사람이 국가적 난제에 직면했을 때 보여준 고대 남성들의 사고 원칙인 ‘보국(報國)’을 체현한다. 이것이 고대 남성들이 말하는 ‘의(義)’다.

공부하는 목적도 바로 이것이며, 의리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나라의 어려움에는 범부도 책임이 있다(國家有難 匹夫有責)’는 사상이 바로 우리 전통 의리의 전승이다. 옛사람들은 이 덕분에 일을 당해도 당황하지 않고 명확했으며, 생사와 취의(取義)의 선택 앞에서 조금도 모호하지 않았고 죽어도 후회하지 않았다. 난세 속에서 ‘의’를 원칙으로 삼으면 모든 것이 선명해지며, 정사(正邪)와 선악(善惡)의 대결과 선택을 결코 회피할 수 없게 된다. 악역조차 이를 피할 수 없으니, ‘의’가 이토록 적나라하고 철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삼국연의》: 책으로 도를 전해 사람의 미혹을 풀다

저자는 삼국을 씀에 있어 하늘을 감독으로 삼고 의(義)를 원칙으로 삼아, 소설이라는 방식을 통해 도를 전하고 수업하며 미혹을 풀어준다. 스승의 도(師道)를 완성한 것이다. 이는 그가 인류 문화에 바친 특별하고 찬란한 교본이자,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육서다. 오늘날 교사의 강의 내용을 ‘강의(講義)’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땅히 ‘의(義)’의 이치를 말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것이 근본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함의가 많이 사라졌다.

고대 교육은 도를 전하는 것이 근본이었다. 스승의 본분은 제자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를 전하는 것이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업을 개설했다. 이후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배운 도리를 운용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실제로 문제를 처리하며 결단과 선택을 내리는 법을 가르쳤다.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천하를 주유하며 끊임없이 질문에 답한 과정은 도를 전하는 동시에 제자들이 마주한 각기 다른 문제들에 대해 미혹을 풀어준 과정이었다. 이것이 고대의 교육이다. 《삼국연의》 역시 서로 다른 사건과 인물을 통해 인생의 온갖 난제에 실질적인 답을 제시하며 사람들의 미혹을 풀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임금에게 인의(仁義)를 논할 때, 적군이 항복해오면 즉시 받아줄 것인지 어떻게 결단해야 하는가. 동탁처럼 군사를 끼고 대신들을 핍박해 황제를 폐위하고 새로 세우려 할 때, 어떻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유비가 차마 종친의 기업(基業)을 뺏지 못할 때 군사 방통이 가르친 역취순수(逆取順守, 도리에 어긋나게 취하더라도 다스림은 도리에 따름)는 왜 나오는가. 충(忠)과 효(孝)를 다 지킬 수 없을 때 밝은 곳을 버리고 어둠으로 향하며 효도만을 챙기는 것이 옳은가. ‘몸은 조조의 진영에 있으나 마음은 한에 있다(身在曹營心在漢)’는 고사는 바로 이 문제를 해설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면 옛사람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되며, 고대에는 “어머니와 아내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결코 나올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또한 고대 여성이 아내로서 대의에 통달했기에 결코 억압받는 대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 중 많은 이가 대의에 밝아 남편을 권도(勸導)했으며, 식견이 남자를 능가해 존중받기도 했는데 이 역시 《삼국연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의리를 운용해 문제를 처리하는 사례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의롭고 당당하게, 명확하고 과단성 있게 살아가게 된다. 현대의 교육, 법률, 사회의 온갖 혼란스러운 문제들도 그 실질적인 병근(病根)을 꿰뚫어 보고 미혹 없는 견해를 얻을 수 있다. 우리의 5천 년 문화는 치세(治世)와 난세(亂世)를 반복하며 인류에게 왜 문제가 발생하는지, 발생 후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미 모든 층차의 해답을 제시해 놓았다. 만약 학생이 예부터 전해 내려온 정통 교육을 받고 전통 의리를 안다면, 자연히 국정을 어떻게 다스리고 가정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알게 된다. 오늘날의 사회 난상에 대해서도 단번에 꿰뚫어 볼 수 있어 명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삼국 이야기의 진행 과정 속에서 하나하나 보여줄 것이며, 고인(古人)의 사고방식을 펼쳐 보일 것이다.

저자가 천의에 순응해 인도(人道)를 전하려 한 목적을 알았다면, 이제 지난 내용에 이어서 더 가보자. 지난 편에서 영제가 곧 붕어하고 천하에 군웅이 나란히 일어나는, 주인이 없는 국면이 나타날 것임을 언급했다. 저자는 이 과정을 매우 상세히 다루는데, 두 가지 큰 사건이 얽혀 있다.

하나는 어린 황제가 환관들에게 납치되어 밤에 북망산으로 달아나다 전국 옥새를 잃어버려 제위가 명목상으로만 남게 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동탁이 도성에 들어와 소제(少帝)를 강제로 폐하고 헌제(獻帝)를 세우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낙양의 동요를 예언으로 삼아, 말대 황제의 “황제이나 황제가 아니요, 왕이나 왕이 아닌(帝非帝 王非王)” 필연적인 운명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하된 자가 신하의 도리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견(正見)을 보여준다. 이야기 속에서 천의와 인도는 반드시 동시에 드러날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4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