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은(敬謝恩)
【정견망】
(5) 마르크스의 계책: 입당 선서 헌신으로 마귀에게 헌신하도록 선서시켜
마르크스는 “폭력혁명 노선”의 수법을 취하여, 그 추종자들이 “공산주의”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도록 선서하게 함으로써, 원래 은밀했던 사탄교와 일루미나티의 선서 헌신 의식과 실질적으로 일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마귀의 요구를 충족하기에 충분했을까? 아직 부족하다. 왜냐하면 우주 법리의 제약 중에서 “선서”에 대해서도 요구가 있기 때문인데, 즉 쌍방이 모두 상대방에게 진실한 신분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신분이 진실한 서약만이 효력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무효다. 사탄교에서 그 선서는 명확히 사탄을 숭배 대상으로 삼기에 선서가 효력을 발생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마귀가 맡긴 임무를 완성하여 인류가 마귀에게 선서하고 헌신하게 하려면, “선서를 받는 자가 마귀이다”라고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의 법리에 따라 속여서 얻은 선서도 무효가 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것은 마귀에게 하는 선서다”라고 알려주었는가? 아니다. 만약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공산당에 가입 선서를 할 때 실질적으로 마귀에게 선서하는 것이다”라고 알려주었다면, 여전히 선서하러 가거나 공산주의에 가입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집필할 때와 전체 공산주의 운동 과정에서 한 세트의 특수한 방법을 취하여, 입당자가 “공산주의 혁명 조직”에 헌신할 때 이미 마귀에게 선서하고 헌신하는 것과 같게 만들었으며, 또한 효력이 발생하기에 충분하게 했다. 이것은 서로 배합된 연환계로, 네 가지 측면의 계책을 종합적으로 운용한 것을 포함한다.
첫째, “이름을 밝히지 않은 듯한” 계책이다. 마귀는 이미 신분을 직접 밝혔으나 단지 반어, 수사법인 척 가장했다.
《공산당 선언》의 서두에서 “하나의 유령,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고 칭했다. 이것은 사실 마르크스가 이미 마귀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 그것이 선서를 받기 전 스스로 신분을 “유령”이라고 밝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또 비유와 유사한 어조를 취하여 사람들이 이 문장이 하나의 비유, 자조, 반어, 예시라고 여기도록 오도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이 바로 마귀가 직접 신분을 밝힌 것임을 의식하지 못하게 했다.
둘째, “행적을 이미 천명한” 계책이다. 신분을 밝히지 않은 듯하나 이미 하는 일과 사상 내함을 분명히 설명했다.
《공산당 선언》은 공산당이 무엇을 하려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의 문제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표현했으며, 심지어 “공산당원은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모든 전통과 가장 철저하게 결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마귀가 스스로 신분을 밝힌 것에 대한 보충이다. 《공산당 선언》이 이미 “공산당은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가”라는 문제를 이토록 분명하게 설명했기에,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서도 공산당에 선서하고 헌신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자신의 선서에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더 이상 자신이 마귀에게 헌신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셋째, “무신론 마비” 계책이다. 신불(神佛)과 마귀 등을 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사람들이 “이것이 마귀”임을 깨닫는 것을 방지했다.
《공산당 선언》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체 공산주의 운영 과정에서 줄곧 유물주의와 무신론의 이론적 입장을 강조해 왔으며, “반드시 전통과 결별해야 한다”는 등의 가치관과 정치적 입장을 강조해 왔다. “무신론”, “유물주의”를 말하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신불과 마귀 등 화제를 토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산주의가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다각적인데, 그중 하나는 인류가 예로부터 가져온 선과 악의 분별, 천사와 마귀의 분별을 마비시켜 사람들이 “공산주의가 원래 마귀였구나”라고 갑자기 깨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네째, “큰 깃발을 내걸어 은폐하는” 계책이다. “인류의 귀숙, 가장 숭고하고 지선(至善)한 사업”을 은폐 수단으로 삼았다.
마르크스는 원시사회부터 공산주의까지의 사회 발전 단계 이론을 허구로 만들어, 이에 근거해 “공산주의는 인류의 필연적이고 가장 높은 귀착처”라고 호칭했다. 그런 다음 또 당시 자본주의 초기에 나타난 일부 비합리적인 현상과 결합하여 사람들의 분노를 충동질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공산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인류의 가장 숭고한 사업에 봉사하는 것이며 “지선(至善)”에 대한 헌신에 속한다고 오해하게 했다. 큰 깃발을 통한 은폐를 통해 사람들이 더욱 깨닫기 어렵게 만들고, “공산당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마귀에게 헌신하는 것”임을 더욱 의식하지 못하게 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상술한 네 가지 연환계를 통해 인류를 속였으며, 이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공산당에 선서”하고 “공산주의에 선서”하는 것이 곧 “마귀에게 선서”하고 “마귀에게 헌신”하는 것과 같게 했으며 또한 효력이 발생할 수 있게 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공산당 선언》이 이미 공산당이 무엇을 하려는지 명확히 설명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 《공산당 선언》은 폭력혁명, 가정 폐지, 전통과 가장 철저한 결별 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독자는 마땅히 그것의 선악을 명확히 분별하기에 충분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것이 가장 큰 선이다”라고 알려주었을지라도, 독자 역시 이성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가장 큰 선이다”라는 말을 가볍게 믿은 사람들은 가볍게 믿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가? 사실 이런 가벼운 믿음의 본질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며, 또한 예로부터 신이 사람에게 가르쳐 준 기본적인 선악관(善惡觀)을 심각하게 위배한 것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만약 누군가 “공산주의” 및 그 강령, 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헌신의 선서를 했다면 이것은 바로 마귀에 대한 선서다. 마귀가 이로 인해 이러한 선서가 반드시 효력을 발생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신 역시 사람이 마귀를 가볍게 믿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며 함부로 선서한 결과를 감당하게 하여 이를 생명 속의 교훈으로 삼게 해야 한다.
(6) 봉인(封印)을 통해 당원을 장악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에게 영혼을 팔아
마귀는 상술한 속이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속이지 않는 수법을 통해, 인류 역사상 과연 많은 사람을 미혹하여 그들로 하여금 선서하고 공산당에 가입하게 했다. 이런 속이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속이지 않는 특별한 수법으로 인해 선서가 효력을 발생할 수 있었다. 일단 선서가 효력을 발생하면 마귀는 공산당에 가입하여 선서한 모든 구성원을 그들의 서약 속에 봉인한다. 봉인은 하나의 비유적인 어휘로, 마치 계약이 효력을 발생하여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 하지만 통상적인 계약의 봉인은 계약 내용이 약속한 범위에 대해서만 효력을 발생하며, 이 범위 밖에서 당사자의 심신은 여전히 자유롭다. 마귀가 선서자에게 하는 봉인도 이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마귀가 제정한 “공산주의 가입 선서”의 내용이 매우 철저하여, “그 결의를 집행하고, 그 비밀을 지키며, 그 사업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며, 영원히 배반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런 선서는 일단 봉인을 받게 되면 그 당원은 그 당에 신체의 자유, 사상의 자유, 생명의 자유, 나아가 모든 것을 바치게 된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당원이 되는 순간 그때부터 그의 신체, 사상, 생명, 양심, 감정, 재산 등이 우선적으로 당에 속하게 된다. 그런 다음 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그 범위 내의 신체 자유, 사상 자유, 생명 보장, 나아가 양심과 감정 등을 가질 수 있다. 만약 당 조직이 허용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다. 또한 봉인의 작용으로 인해, 당원으로서 자신의 이런 “모든 심신과 일체 자유 등이 모두 우선적으로 공산당에 속한다”는 상태를 매우 정상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만약 당이 자신에게 어떤 자유를 주면 자신은 향유하고, 만약 당이 그것을 박탈해도 자신은 당연하다고 느끼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당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효과는 그 당원이 이미 부지불식간에 마귀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긴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신(神)이 만든 것으로, 신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주어 선악(善惡)과 시비(是非)를 가늠하게 한 이 부분이 영혼이다. 육체와 비교할 때 영혼은 사람 생명의 더 본질적인 부분이며 진정한 자신이다. 공산당의 선서 내용이 이토록 철저하기에, 그것은 이 사람이 이때부터 도덕적 시비의 판단을 포기했음을 의미하며 즉 당에게, 마귀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긴 것과 같다. 이는 네 가지 방면으로 나타난다.
첫째, 시비 판단 자체를 포기하고 오직 당의 의견만 따른다. 당이 “이것이 옳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동수 역시 “이것이 옳다”라고 여기고, 어느 날 당이 말을 바꾸어 “이것이 틀렸다”라고 하면 곧바로 말을 바꾸어 “이것이 틀렸다”라고 한다.
둘째, 시비 판단의 기초 위에 세워진 행동이다. 동수의 유일한 임무는 “당의 결의를 집행하는 것”일 뿐 의심할 권리가 없다. 만약 내심에 의심이 가더라도 의견을 보류하고 우선 집행해야 한다.
셋째, 그 당이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시비 판단에서 도망치는 것에 협조하는 것, 즉 비밀을 지키는 것이다. 설령 당의 결정이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잘못된 것일 수 있어도, 자신이 집행한 후에는 능동적으로 당을 위해 비밀을 지켜야 한다.
넷째, 자주적인 도덕 판단으로 회귀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 즉 선서에서 말한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3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