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사한췌진 (17): 얻기 힘든 ‘자로의 용기’와 인자(仁者)의 용기

왕사미

【정견망】

‘난능가귀(難能可貴)’란 북송 소동파의 《순경론(荀卿論)》에서 유래한 성어로, 하기 어려운 일을 해냈기에 특별히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한다면 당연히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하기 마련이다. 소동파는 이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찬탄했다.

“자로의 용기, 자공의 변론, 염유(冉有)의 지혜, 이 세 가지는 모두 천하가 하기 어려워하는 귀한 것들이다(子路之勇, 子貢之辯, 冉有之智, 此三者, 皆天下之所謂難能而可貴者也).”

이는 공자 제자 중 세 명의 걸출한 인재를 말한다. 자로는 성격이 용맹하여 행함에 거침이 없었고, 자공은 반응이 빠르고 기민해 변론에 능했으며, 염유는 다재다능하여 처세에 능숙했다. 그들이 지닌 재능은 천하에서 찾기 힘들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또한 남송의 필기 작가 오증(吳曾)의 《능개재만록(能改齋漫錄)·권14·기문(記文)》에도 “진실로 하기 어렵고, 참으로 귀하도다(允矣難能, 誠哉可貴)”라는 구절이 있어 이 성어를 나누어 사용했으나,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귀하다’는 뜻이다.

《사기·중니제자열전》에 따르면, “자로는 성격이 거칠고 힘쓰기를 좋아하며 지조가 강직했다. 수탉 모양의 관을 쓰고 멧돼지 가죽으로 장식한 칼을 찬 채 공자를 능멸하기도 했다. 공자가 예교(禮敎)를 베풀어 서서히 자로를 이끌자, 자로는 나중에 유자의 복장을 하고 예물을 갖추어 문인을 통해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공자 문하의 여러 제자 중 자로의 가장 선명한 개성은 ‘용기(勇)’다. 자로는 평생 쌀을 짐 지어 부모를 봉양한 ‘부미양친(負米養親)’이나 길을 물은 ‘자로문진(子路問津)’ 등 많은 고사를 남겼으나, 천 년 동안 논쟁이 끊이지 않는 비극적인 최후는 단연 ‘갓끈을 묶고 죽은 결영이사(結纓而死)’일 것이다.[1]

노 애공 15년(기원전 480년) 윤 12월, 즉 위(衛) 출공(出公) 12년의 일이다. 자로는 당시 위나라 대부 공회(孔悝)의 봉읍에서 장관으로 있었다. 출공의 부친이자 영공(靈公)의 태자였던 괴외(蕢聵)가 공회와 공모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공회의 집에 잠입한 뒤 무리와 함께 위 출공(괴외의 아들 첩)을 습격하려 했다. 출공은 노나라로 도망쳤고 괴외가 입궁해 즉위하니 이가 곧 위 장공(莊公)이다.

공회가 난을 일으켰을 때 자로는 마침 외지에 있었는데,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달려왔다. 마침 성문을 나오던 자고(子羔)가 자로에게 말했다.

“출공은 도망갔고 성문은 닫혔으니 돌아가세요. 헛되이 화를 당하지 마시고.”

자로가 대답했다.

“누군가의 녹봉을 먹는 사람은 그의 환난을 피하지 않는 법이다(食其食者不避其難).”

마침 성으로 들어가는 사자가 있어 성문이 열리자 자로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이때 괴외와 공회는 높은 대(臺) 위에 있었다. 자로가 대를 불태우려 하자 겁이 난 괴외가 석걸(石乞), 호염(壺黶)을 내려보내 자로를 공격하게 했고, 그들이 자로의 갓끈을 끊었다.

자로는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君子死而冠不免)”라고 말하며 갓끈을 묶고 죽었다.

《논어·공야장》에는 공자의 이런 말이 실려 있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간다면, 나를 따를 자는 아마 자로뿐이겠지?”

자로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맹무백이 “자로는 인(仁)의 경지에 도달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사기·중니제자열전》에 기록된 자로에 대한 공자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중유(仲由 자로)가 용맹함에 있어서는 나보다 나으나 취할 바가 못 된다.”

“중유 같은 사람 선종(善終)하지 못할 것이다.”

“중유의 학문은 이미 마루에는 올라왔으나 아직 방 안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용기인가?

자로가 일찍이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도 용기를 숭상합니까?”

공자가 답했다. “군자는 의로움(義)을 으뜸으로 삼는다. 군자가 용맹하기만 하고 의로움이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도적이 된다(《논어·양화》).”

남송 채절(蔡節)이 편찬한 《논어집설(論語集說)》(권9)에선 이를 이렇게 해석했다.

“앞의 두 군자는 덕망으로써 말한 것이요, 소인과 대비한 곳의 군자는 지위를 말한 것이다. 숭상함(尙)은 높이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은 용기를 숭상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로에게 왜 용기가 있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의로움을 으뜸으로 삼으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게 되니 용기는 자연히 그 안에 있다. 하지만 용기만을 숭상하면 한갓 용기를 힘쓰는 일로만 알아 혹 의로움을 저버림에 이르게 되니, 군자는 난을 일으키고 소인은 도적이 되는 것이다. 자로가 용맹을 좋아하므로 공자가 의로움으로써 일러주어 그 잘못을 구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용기에도 여러 종류와 구분이 있으니 ‘필부의 용기’와 ‘성인의 용기’은 다르다.

《장자·추수(秋水)》에는 공자가 광(匡) 땅에서 송나라 사람들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당했을 때도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았던 일화가 나온다.

공자는 위기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로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물속을 다니며 교룡을 피하지 않는 것은 어부의 용맹이요, 땅 위를 다니며 코뿔소나 호랑이를 피하지 않는 것은 사냥꾼의 용맹이며, 서슬 퍼런 칼날이 눈앞에 교차해도 죽음을 삶처럼 여기는 것은 열사의 용맹이다. 곤궁함에 운명이 있음을 알고 형통함에 때가 있음을 알아 큰 난관에 임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성인의 용맹이다.”

또한 공자는 “인자(仁者)는 반드시 용기가 있으나, 용맹한 자라고 해서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논어·헌문》)”라고도 했다.

이처럼 공자가 보기에 ‘용기(勇)’란 군자와 소인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외적인 특징일 뿐이며, 반드시 ‘의로움(義)’을 내함(內涵)이자 외연의 테두리로 삼아 규제하고 절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을 일으키거나’ ‘도적’ 된다. 즉, ‘인자의 용기’란 인애(仁愛)의 기점 위에 세워진 불성(佛性)의 표현으로 동시에 중화(中和 적절히 조화)의 특징을 갖춘다. 이는 세간의 정상적인 이치에 따르는 외적 행위 방식을 지니면서 예의에 부합하며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

의로움(義)과 용기(勇)의 관계를 논하자면, 의로움은 용기의 목표나 추진체가 아니며 용기 또한 의로움을 달성하기 위한 경로나 수단이 아니다. 용기란 사실 의로움을 굽힘 없이 지켜내는 강인한 형태이며, 의로움은 용기의 견고하고 두려움 없는 중화(中和)한 내실이다. 반면 ‘필부의 용기’는 인의(仁義)의 내함이 없는 ‘혈기의 용기’일 뿐이다. 격앙되고 격렬하며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혈맥의 분출 상태는 흔히 마성(魔性)이 충만한 표현이다.

공자는 “의로움을 보고도 행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논어·위정》)”라고 했다. 여기서 가리키는 ‘의로운’ 행동이란, 인자의 용맹인 ‘큰 난관에 임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올바름을 지키며 변치 않는 준칙이자, 상리(常理)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것’이다.

채절은 《논어집설》(권1)에서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이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마땅히 해야 할 바’란 사람 마음(人心)에 이끌린 감정이나 분노 같은 일시적인 폭발이 아니며, 또한 어떤 이념에 이끌려 인선(仁善)과 인애(仁愛)에서 벗어난 폭력적인 억지도 아니다.

그러나 인류 사회의 전반적인 도덕 수준이 떨어져 내려감에 따라 사람들의 내심 경지와 시대 상황 사이에 괴리가 생겼고, ‘의로움(義)’에 대한 해석도 어느 정도 편향이 생겼다. 예를 들어 ‘의로움’을 현실적인 ‘정의’로만 해석하는 식이다. 그 결과 의로움은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목표로 변질되었고, 이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극단적인 추구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런 현실 이익적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흔히 격렬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한다. 이렇게 빗나가게 된 원인은 “죽을 때까지 좋은 도를 지킨다(守死善道)”는 의로움의 적절한 준칙을, 세간에서 현실적 공리(功利)를 따지는 목표 달성과 추구로 변이시켰기 때문이다.

이로써 ‘용(勇)’이란 글자 하나에 선(善)과 악(惡) 혹은 정(正)과 사(邪)의 양면이 공존함을 알 수 있다. ‘인자의 용’과 ‘자로의 용’의 차이는 도덕과 이익, 중화(中和)와 격양, 순리(循理)와 격렬, 선을 지키며 안으로 찾음과 긴장해서 밖을 향함, 그리고 불성(佛性)과 마성(魔性)의 차이다. 사람마다 내심에서 선을 굳게 지키는 것만이 아름다운 미래로 통하는 평탄한 다리가 될 것이다.

주석:
[1] 《좌전·애공 15년》: “……석걸과 을염이 내려와 자로를 대적하며 창으로 치니 갓끈이 끊어졌다. 자로가 말하기를,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 하고 갓끈을 묶고 죽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