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삼국연의》에서 조조는 비록 간웅(奸雄)으로 묘사되긴 하지만(주유와 마찬가지로 유비와 제갈량의 맞수로 설정되어 역사상의 실제 인물과는 크게 다르다), 저자 역시 조조가 가장 먼저 충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천하 제후를 소집해 함께 역적을 토벌한 영웅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의로운 거사에서 조조는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그는 동탁 암살에 실패한 후 진류(陳留)로 도망쳐, 한편으로는 가짜 조서를 발표해 각지 제후들과 연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군(義軍)을 모집했다. 이에 각방 의사(義士)들이 신속하게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비록 이번 전국 규모의 봉기가 낙양으로 진격하는 두 큰 전투인 사수관에서 화웅의 목을 베는 일과 호뢰관에서 여포와 싸우는 일을 묘사하며 유비 형제 세 사람이 이로써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되지만, 그 과정은 의(義)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점차 전개된다. 전투 장면이 화려한 것도 사실이나, 봉기 전체의 과정이야말로 고인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중점이다. 조조의 이번 의거를 통해 저자는 천하 각계 의사들의 공통된 심지를 보여주려 했다. 여기에는 상인(商人)도 포함된다.
조조의 의거, 전 국민의 심지를 드러내다
우리는 유비가 당초 황건적을 소탕하기 위해 의병을 모집할 때 장비와 다른 상인들이 의롭게 재물을 내놓은 덕분임을 알고 있다(물론 훗날 동오의 주유 역시 노숙의 큰 도움을 받았다). 조조의 경우에는 거부 위홍(衛弘)이 있었는데, 그는 “가산을 다 털어 의복과 갑옷, 깃발을 장만했다.” 이는 중국 고대 유상(儒商)들이 ‘영달하면 천하를 함께 구제한다’라는 절개와 대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늘날의 상인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의를 중시하고 재물을 가볍게 여겨, 돈으로 나라를 구하는 것을 인생의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 고대에는 이것이 매우 보편적인 덕행(德行)이었다. 저자는 삼국 중 어느 한 편의 이야기를 쓰더라도 부유한 상인 가문의 의로운 거동을 기록하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이는 병사나 장수 이외에 고대 각계 민중이 국난에 처했을 때 보인 공통된 심지와 절개를 대표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 본연의 모습이다.
아래 원문을 보자.
조조가 술자리를 마련하고 위홍(衛弘)을 집으로 정중히 청해 말했다. “지금 한실(漢室)에 주인이 없고 동탁이 권력을 휘두르며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해치니 천하가 이를 갑니다. 조조가 사직을 힘써 붙들고 싶으나 힘이 부족함이 한스럽습니다. 공은 충의지사(忠義之士)이시니 감히 도움을 청합니다.”
위홍이 말했다.
“나도 그런 마음을 품은 지 오래되었으나 영웅을 만나지 못했을 뿐입니다. 맹덕에게 큰 뜻이 있으니 가산(家産)을 내놓아 돕고 싶습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이에 먼저 가짜 조서를 발표해 각로(各路)에 신속히 알리고, 뒤이어 의병을 모집하며 ‘충의(忠義)’ 두 글자를 쓴 백기 하나를 세웠다. 며칠 되지 않아 응모하는 선비들이 비 오듯 모여들었다.
또한 “사방에서 군량을 보내오는 자가 부지기수였다”라고 묘사한다.
모든 묘사는 국가의 대의를 위해 사람들이 가산과 식량, 그리고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고인(古人)의 마음속에는 충의가 으뜸이었으며, 이 의(義)야말로 당시 사람들이 받들던 바른 이치(正理)이자 행동 준칙이었다. 신뢰할 만한 영웅을 찾으면 필히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가산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격문과 서약
다음으로 조조가 천하 제후를 불러 모아 함께 의로운 군대를 일으켜 국적을 토벌하자고 한 격문을 살펴보자.
“조조 등은 삼가 대의로써 천하에 알리노라. 동탁은 하늘과 땅을 속이고 나라를 멸하며 임금을 죽였으며, 궁궐을 더럽히고 생령(生靈)을 잔혹하게 해치니 그 사나움과 불인함이 죄악으로 가득 찼도다! 이제 천자의 밀조를 받들어 대대적으로 의병을 모으니, 화하(華夏)를 깨끗이 쓸어버리고 흉악한 무리를 소탕하기로 맹세하노라. 바라건대 의로운 군대를 일으켜 공분을 함께 풀고, 왕실을 붙들며 백성을 구제하라. 격문이 도달하는 날 즉시 받들어 행하라!”
유비 세 사람이 당초 황건적을 소탕하고 나라를 구하며 백성을 평안케 하기 위해 세 사람이 결의했다면, 조조는 천하 제후와 결의한 셈인데 다만 격문의 형식을 빌렸을 뿐이다. 토벌 대상인 국적이 동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연합군이 집결했을 때 제후들 역시 똑같이 맹세했다.
격문이 나간 후 원소를 시작으로 원술, 공융, 공손찬, 손견 등 17로(路) 제후들이 잇달아 호응하여 조조와 합쳐 총 18로 대군, 수십만 명이 군사 연맹을 결성했다. 그들은 공동으로 원소를 맹주로 추대하고 서약을 세워 통일된 명령을 받기로 했다.
서약에 이르기를, “한실이 불행하여 황실의 기강이 계통을 잃었도다. 역신 동탁이 틈을 타 해를 끼치니 화가 지존에게 미치고 학정이 백성에게 흘러 넘쳤노라. 원소 등은 사직이 무너질까 두려워 의병을 모아 함께 국난에 뛰어들었으니, 우리 동맹은 마음을 합치고 힘을 다해 신하의 절개를 다하고 결코 두 마음을 품지 않겠노라. 이 맹세를 어기는 자는 목숨을 잃고 후손을 남기지 못하리니, 황천후토(皇天後土)와 조상님의 밝은 신령께서 실로 굽어살피소서!”
이 서약은 조조 격문과 내용은 비슷하지만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이것이 서약이라는 점이다. 어기는 자는 목숨을 잃을 것임을 표명하고 조상과 신령을 증인으로 삼았다. 보국구민(報國救民)의 목적과 서약을 어겼을 때의 결과가 유비 세 사람의 결의 맹세와 어찌 그리 닮았는가. 동오의 손견은 훗날 낙양에 입성한 뒤 서약을 어기고 옥새를 감추어 신하답지 못한 역심을 품었고, 또 독한 맹세를 하는 바람에 얼마 안 가 화살 세례를 받고 죽게 된다.
이로써 알 수 있다시피, 소집한 자는 조조였으나 통일 지휘를 맡은 맹주는 원소였다. 원소는 이름뿐인 명성에 결단력이 부족하고, 계책 짜기는 좋아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하는 용기와 식견이 없었다. 또한 출신 가문을 중시하고 사람을 쓰는 데 의심이 많으며 친족만 믿었으니, 이 봉기가 중도에 그만두게 될 것임은 예정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는 유비 세 사람을 완성해 주었다. 따라서 두 큰 전투는 모두 그들이 천하 제후 앞에서 단숨에 이름을 알리는 무대가 되었다.
연맹군 출사, 연이은 참패
제후 연맹군은 낙양으로 진격하기 위해 먼저 사수관을 함락해야 했다. 손견이 선봉을 자원해 관 아래로 달려갔다. 다른 제후 포신은 첫 공을 세우고 싶어 몰래 동생 포충에게 군사를 주어 지름길로 보냈으나, 동탁이 보낸 화웅에게 단칼에 목이 잘리고 말았다. 손견 또한 원술이 군량을 관리하며 손견의 세력이 커질 것을 두려워해 군량 공급을 거부하자 군심이 흩어졌고, 화웅의 야습을 받아 겨우 목숨만 건진 채 참패하여 돌아왔다.
제후들은 크게 놀랐다. 손견은 강동의 맹호라 불리며 매우 용맹하여 천하에 이름이 높았는데, 첫 출전에서 기세가 꺾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여러 제후 중 누구도 감히 화웅과 싸우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화웅은 기세를 몰아 연맹군을 반격했고, 원술과 한복 두 제후가 차례로 상장(上將)을 보내 화웅과 맞섰으나 모두 몇 합 만에 화웅의 칼날에 쓰러졌다. 군사들은 안색이 변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비로소 관우가 등장하게 된다. 관우의 신장(神將) 같은 위명을 떨칠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는 조조로부터 비롯되었다.
즉, 조조의 호소로 연맹이 결성되었고, 조조의 밝은 안목이 관우에게 실력을 드러낼 기회를 준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52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