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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우연이 아냐

주정도(走正道)

【정견망】

세상 사람들은 흔히 어떤 사람이 행운아라고 말하며, 마치 복이 우연히 머리 위로 떨어진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전통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한 사람의 득실, 화복(禍福), 전기(轉機)와 귀숙(歸宿)은 왕왕 모두 그가 예전에 심었던 선악의 원인과 관련이 있다. 이른바 행운이라는 것은 많은 경우 단지 선한 원인(善因)이 성숙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다.

고인(古人)은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넘치는 경사가 있고, 악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넘치는 재앙이 있다(積善之家,必有餘慶;積不善之家,必有餘殃)”고 말했다. 이것은 막연한 권선(勸善)의 말이 아니라, 천리(天理)와 인심, 그리고 운명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인의 깊은 인식이다.

‘복에는 이전의 원인이 있다(福有前因)’는 도리를 잘 보여주는 전통문화 이야기가 있다.

명조(明朝)에, 강소 진강(鎭江) 경구(京口)에 장생(張生)이라는 수재가 있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고 성품이 거칠어, 평소에 적지 않은 불의한 일을 저질렀으며 심지어 향리에서 흔히 재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전적으로 선근(善根)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가 공갈 협박으로 갈취한 재물을 또 흔연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해 주었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집에는 도리어 왕왕 이튿날까지 먹을 양식이 없었다.

어느 해 제석(除夕·섣달그믐날 밤), 장생의 집은 또 양식이 끊어졌다. 그는 친우들 사이에 예전 원망이 많음을 생각하고, 자신이 또 비굴하게 남에게 엎드려 구걸하고 싶지 않았기에, 집안의 낡은 천 조각 하나를 가지고 전당포에 가 약간의 돈으로 바꾸어 쌀과 양식, 식품, 향과 초, 종이를 사서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걸어갔다.

그날은 날이 저물고 눈이 많이 내렸으며 길 또한 미끄러웠다. 집 문앞에 다다랐을 때 장생은 조심하지 않아 한 차례 넘어졌고, 바구니 안의 물건들이 온통 진흙탕 속에 엎어졌다. 그는 급히 집으로 돌아가 등불을 들고 다시 찾아 나섰다. 뜻밖에 그는 눈 속에서 묵직한 자루 하나를 주웠다. 집에 가져와 보니 안에는 원보(元寶), 부스러기 은, 외국 은화, 잔돈이 있었고 장부와 수절(手折 어음)도 있었는데, 분명히 어느 주단장(綢緞莊 포목점)에서 수금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장생은 일시적으로 매우 기뻐하며, 속으로 이제 편한 날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 자루를 안방으로 가져가려 할 때, 그는 문득 생각을 바꾸었다. ‘이 물건들은 틀림없이 점포의 점원이나 회계원이 수금하러 이곳을 지나다가 잃어버린 것일 게다. 만약 분실자가 주인에게 장부를 맞춰주지 못한다면, 온 가족을 팔아도 배상하지 못할 것이니 결국 죽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장생의 마음은 약해졌다. 그는 재물을 자기 것으로 가로채지 않고 자루를 잘 거둔 뒤, 자신이 등불을 들고 문밖의 풍설 속에 앉아 분실자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과연 한 노인이 두 소년을 데리고 주단장의 이름이 새겨진 등을 든 채 길을 따라 비추며 찾아오는데, 안색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장생이 이 정경을 보고 대략 분실자임을 알아채고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신들은 무엇을 찾고 계시오?”

노인은 상대가 장생임을 보고 그가 평소 평판이 좋지 않음을 알았기에 감히 곧바로 말하지 못하고, 그저 우물쭈물하며 떠나려 했다. 장생이 추궁하자 노인은 그제야 말하기를, 자신이 방금 수금하여 이곳을 지나다가 비바람과 눈이 교차하여 급히 길을 가느라 천 자루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지금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장생은 자루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노인은 은돈과 장부 등의 물건을 하나하나 말했는데 완전히 부합했다. 장생은 그를 집 안으로 청해 자루를 꺼내며 말했다.

“보시오, 이 안의 물건이 맞는지?”

노인은 대경실색하여 장생을 바라보았는데, 마음속으로 두려우면서도 의혹이 생겨 일시적으로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 장생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노인장, 나를 의심하지 마시오. 내가 만약 이 자루 안의 물건을 가지려 했다면, 어찌 혼자 풍설 속에 앉아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겠소?”라며 자루를 노인에게 돌려주었다.

노인은 잃었던 것을 다시 찾게 되자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그는 자신이 점포에서 수금을 담당하고 있는데 오늘 만약 이 돈과 물건을 잃어버렸다면 온 가족을 팔아도 배상할 수 없어 오직 죽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장생이 그를 구했으니, 이는 그의 온 가족 노소의 목숨을 구한 것과 같았다. 노인은 연신 머리를 숙여 감사해하며, 또 장생에게 절반을 나누어 가지자고 청했다. 장생은 엄숙하게 거절했다.

노인은 고집을 부리며 떠나려 하지 않았다. 장생이 웃으며 말했다. “만약 정 주려거든 나에게 은 두 덩이만 빌려주시오, 내가 설날에 배불리 한 끼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오.” 노인은 그가 진심임을 보고 서양 은화 두 개를 꺼내 선사하고는 절을 하고 떠났다.

장생은 돈을 가지고 다시 나가 양식과 과일을 사서 신(神)에게 바치고 하늘에 공양했으며, 부부 두 사람은 그제야 제석 음식을 먹었다.

그날 밤 장생은 꿈을 하나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묶여 왕의 모습을 한 어느 사람 앞으로 끌려갔다. 그 왕이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네가 불의한 짓을 많이 했으니 앞으로 고치지 않으면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질 것이다!”

장생이 막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하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고장(狀子) 하나를 들고 앞으로 나와 고했다. 왕이 그것을 본 후 얼굴빛이 즉시 온화해지더니 말했다.

“이는 아주 큰 좋은 일이니, 이전의 악행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마땅히 그에게 관직 운을 돌려주고 올해 과거 합격자 명단에 올리도록 하라.”

그리고 장생에게 말했다.

“너는 돌아간 후에 마땅히 과거의 잘못을 뼈저리게 고치고 한마음으로 선을 행해야 앞날이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장생이 깨어나니 자루를 돌려준 일이 신명의 보호를 감응시킨 것임을 알았다. 이때부터 그는 신명 앞에 맹세하고 공과격(功過格·선악을 기록하는 표)을 준수하며, 악행을 멈추고 선을 따라 이전의 죄업을 갚았다.

얼마 후, 그 노인이 의관을 정제하고 찾아와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 자신이 이미 이 일을 주인에게 보고했고 주인 역시 깊이 감동했다고 전했다. 훗날 가을 과거 시기가 되어 여러 수재들이 분분히 금릉(金陵)으로 응시하러 가는데, 장생은 도리어 빈곤하여 돈이 없어 매일의 밥 식사조차 주선하기 어려웠으니 멀리 시험장으로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마침 이때 노인이 다시 그를 만나 왜 아직 응시하러 출발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장생은 자신이 여비가 없다고 말했다. 노인은 그에게 집에서 기다리라고 청했다. 얼마 후 노인과 주단장 주인이 함께 장생의 집으로 찾아왔다. 주인은 그의 높은 뜻에 감동해 금 20냥과 백미 네 석을 바쳤고, 노인 역시 자신이 저축한 품삯인 금 20냥을 꺼내 주며 그에게 빨리 과거를 치르러 가라고 재촉했다.

장생은 사양하다 못해 결국 거두어들이고 즉시 배를 타고 금릉으로 가 시험에 응시했다. 방이 붙을 때 그는 과연 합격했다. 훗날 노인과 점포 주인은 또 그에게 경성에 시험을 치르러 갈 여비를 보태주었고, 장생은 뜻밖에 연달아 합격해 진사가 되었으며 훗날 관직이 관찰사에 이르렀다.

장생의 복은 결코 허공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원래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고, 심지어 예전에 적지 않은 악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관건적인 순간에 그는 눈앞의 횡재에 마음의 눈이 멀지 않았고, 도리어 분실자의 난처함을 생각했으며, 한 가정이 이로 인해 파탄 날 수 있음을 생각했고, 자신의 탐욕이 어쩌면 다른 사람의 죽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생각했다.

이 일념(一念)이 바로 그의 전환점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결코 단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악의 관두갈림길에서 여전히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장생은 제석에 먹을 양식이 없을 정도로 빈곤했으나 거금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할 수 있었고, 그는 예전에 악행이 있었으나 꿈속에서 경각한 후에 과거의 잘못을 고칠 수 있었다. 또한 바로 이 때문에 그의 운명은 그 일념의 선심(善心)으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도리는 결코 옛날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천리는 결코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았다. 오늘날의 사람 역시 매번의 선택 속에서 자신의 원인을 심고 있다. 특히 시비(是非)가 전도되고 선악이 헷갈리는 연대일수록, 한 사람이 진상을 명백히 분별하고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 없는가는 흔히 자신의 미래와 관계된다.

명혜망에 일찍이 한 파룬궁 수련생의 직접 겪은 경험이 발표된 적이 있다. 그녀가 불법 노동교양을 마치고 직장에 돌아와 출근했을 때 신체가 매우 허약했고, 또 신앙 문제로 인해 처지가 아주 어려웠다. 직장에서 회의를 열어 그녀를 어디로 배치할지 토론할 때 많은 사람이 침묵을 지켰는데, 오직 번거로움이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직 한 명 C 주임만이 일어나 말하기를 “내가 그녀를 맡겠습니다, 그녀는 일하는 것이 진실합니다. 그저 단순히 신앙 문제일 뿐이지 않습니까? 내가 그녀를 맡겠습니다”라고 했다.

이 한마디 말은 보기에 평범한 듯하지만, 거대한 압력 앞에서 내린 선택이었다. 다른 이들이 회피할 때 그는 받아들였고, 다른 이들이 관망할 때 그는 감당했으며, 다른 이들이 거짓말의 영향을 받아 수련인을 멀리 할 때 그는 도리어 한 사람의 신실함과 선량함을 중시했다.

그 수련생이 막 직장에 돌아왔을 때 신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아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다. 공장의 관례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거의 모두 3교대(三班倒)를 돌아야 했으나, C 주임은 그녀의 신체 상태를 보고 그녀에게 주간 근무만 시켰고 그녀의 능력이 닿는 일을 하게 했고 보너스도 똑같이 지급했다. 어떤 이들은 사사로이 논의하며 불공평하다고 여겼다. C 주임이 이를 듣고 곧 “내가 지도자이니 내가 결정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만큼 줄 것이오”라고 말했다.

훗날 이 수련생의 신체가 점차 회복되자 C 주임은 그녀에게 비교적 홀가분한 포스트(보직)를 배치해 주었다. 어떤 이가 뒷문을 통해 그녀를 대신하려 하자 C 주임이 이를 안 후 대중 앞에서 제지했고, 다시 그녀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또 한 번은 작업장 당 서기가 그녀처럼 당원이 아닌 사람에게 당원 회의에 참가하라고 했는데 그녀가 가지 않자, 처벌하겠다거나 출근을 불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녀가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C 주임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자, C 주임이 단 한마디만 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러 가시오.” 그녀는 그리하여 당당하게 돌아가 일을 했다.

이 C 주임은 여러 차례 대법 진상을 알았고 대법을 아주 인정했다. 훗날 그 수련생이 일찍이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내게 잘하는 것은 파룬궁을 잘 대하는 것이며, 당신이 파룬궁에 잘 대하면 당신은 걸음마마 승진할 겁니다”라고 했다. C 주임은 당시 자신은 이미 올라갈 만큼 다 올라갔으니 더 승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그는 뜻밖에 부주임에서 정주임, 부공장장, 공장장으로 승진했고, 훗날 다시 본사로 이동해 처장급 간부가 되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것은 관직이 순탄한 것이지만, 선악유보(善惡有報)의 도리로 보면 오히려 더 깊은 전인(前因)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편안할 때 좋은 말 몇 마디 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으나, 어려운 것은 압력과 거짓말, 그리고 집단적인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선악을 분명히 나누어 좋은 사람을 선대(善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C 주임이 대단한 점은 바로 그가 흐름에 따르지 않았고, 외부 압력 때문에 선량한 수련인을 박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같은 문장에서 또 다른 지도자인 당지부 서기도 언급되었다. 그는 중공의 거짓말을 믿고 진상을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위에 보고하며 박해에 가담했다. 훗날 이 사람은 불행을 겪었다. 이 일은 결코 남의 재앙을 고소하게 여기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이다. 선악 앞에서 사람마다 모두 자신을 위해 미래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악을 돕고 사람을 해치는 것은 자신을 위해 화근(禍根)을 심는 것이다.

난세(亂世)에 가장 어렵고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선악을 분명히 구별하고 양지(良知)를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난세 중에는 시비가 흔히 어지러워지고 선악 또한 쉽게 헷갈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압력과 거짓말 앞에서 침묵을 선택하며, 심지어 흐름을 따르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천리가 보는 것은 사람마음(人心)이다. 한 사람의 진정한 선택은 왕왕 호언장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각에 있다. 즉, 다른 사람을 한 번 도와줄 용의가 있는지, 공평한 말 한마디를 과감히 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이 난을 겪을 때 여전히 공정한 대우를 해줄 수 있는지.

장생의 일념은 눈보라가 내리는 제석날 굶주림과 추위, 빈곤 속에서 발생한 것이며, C 주임의 일념은 압력과 대중의 침묵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시대가 다르고 처지는 다르지만 사람마음이 직면한 시련은 서로 통한다. 한 사람이 관건적인 순간에 선(善)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곧 스스로를 위해 복의 원인을 심은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운은 결코 단지 우연히 무엇을 얻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이는 한 사람이 관건적인 순간에 양심을 잃어버리지 않은 데 있다. 복에는 이전의 원인이 있고 화(禍) 또한 연유가 있다. 사람의 미래는 흔히 일념 사이에 변하기 시작한다.

여러분들이 분란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진상을 똑똑히 알고고 양심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선량한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악한 흐름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과 가족을 위해 한 조각 복을 심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