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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꾼이 중량을 속이지 않자 큰불에도 무사

안단(顏丹)

【정견망】

2026년 병오년(丙午年)은 60년 만에 한 번 오는 ‘화마의 해(火馬年)’이자 ‘붉은 말의 해(赤馬年)’인데, 몇 달 동안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중국 각지에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6월이 되자마자 공식적으로 통보된 화재만 이미 45.2만 건에 달했다.

흔히 “물과 불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水火無情]”고 한다. 특히 화재가 발생하여 불길이 맹렬할 때는 설령 어떤 사람이 불바다를 탈출해 생존자가 되더라도, 이웃한 가옥과 연결된 건물까지 계속 번져서 타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청(清) 도광(道光) 병오년(1846년)에 큰불이 나도 도저히 태울 수 없었던 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이 큰불은 그해 양주(揚州)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당시 양주의 원문교(轅門橋)는 주점과 상점이 모여 있는 곳으로, 매일 사람들이 오가며 매우 번화하고 시끌벅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일어났는데, 원문교 일대에 갑자기 큰불이 난 것이었다. 불길은 끊임없이 번졌고, 많은 호화로운 건물과 가게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 폐허 속에서 오직 한 잡화점만이 불에 타지 않고 온전하게 남았다.

이 가게 주변에는 불길을 막거나 보호해 줄 만한 건물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큰불은 이 가게를 조금도 태우지 못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거리의 모든 사람이 똑똑히 목격한 장면이었다. 큰불이 휩쓸고 내려와 이 가게를 막 태우려 할 때, 가게 지붕 위에 갑자기 빽빽한 검은색 깃발들이 나타나 큰불을 가게 밖에서 직접 막아버렸고, 이 때문에 불길이 아무리 해도 번져오지 못했다. 불이 꺼진 후 이웃들이 가서 확인해 보니, 가게 안의 점원 수십 명과 주인 가족은 이미 미리 대피해 있었고, 가게 안의 물건도 아무런 손실이 없었다.

모두들 매우 의아해했다. ‘이 가게 주인은 도대체 어떤 비범한 점이 있는 걸까?’ 나중에야 사람들은 가게 주인이 왕(汪) 씨 성을 가진 노신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비록 특별한 점은 없었지만, 가게를 경영하기 시작한 30여 년 동안 단 한 마디의 거짓말도 하지 않았고, 단 한 가지의 속이는 일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가 신의를 굳게 지킨 것이 천지를 감동하게 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송(宋) 순희(淳熙) 을사년(1185년)에도 일어난 적이 있다. 효종(孝宗) 재위 후기, 악주(鄂州: 지금의 호북성 무창)에 ‘남초시(南草市)’라는 이름의 번화하고 시끌벅적한 저잣거리가 있었다. 그곳에는 ‘이이파(李二婆)’라고 불리는 할머니가 계속 소금을 팔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저잣거리에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여 남쪽에서 북쪽으로 5리를 태웠고, 불에 탄 가옥이 무려 수천 채에 달했다. 온통 잿더미가 된 속에서 오직 한 소금 가게만이 온전하게 남았다. 알고 보니 이 가게가 바로 이이파의 가게였다. 가게 밖에는 소금을 파는 가판대 두 개가 놓여 있었고, 집 외벽에는 푸른 천으로 감싼 멍석이 걸려 있었는데, 모두 불에 탄 흔적이 전혀 없었다.

이 기이한 일은 곧 온 성안에 퍼졌고, 모두가 매우 놀라워했다. 군수(郡守)와 군사(軍師)가 이이파를 관아로 불러 신문했다.

“화재가 이토록 맹렬하여 저잣거리의 집들이 모두 탔는데, 어찌하여 그대의 소금 가게만 화를 면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도대체 무슨 도리인가?”

이이파가 대답했다. “저는 특별한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소금 한 근(즉 16량)을 사러 오면 저는 그에게 18량을 달아주었습니다. 말하자면 그저 저 저울대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을 뿐입니다.”

군수와 군사는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깊이 감탄하여 이이파에게 두터운 상을 내리도록 명하고, 그녀를 정중하게 관아 밖으로 배웅했다.

이이파(李二婆)는 단지 저울대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가산을 화재 속에서 머리카락 한 올 상하지 않고 지켜냈는데, 듣기에는 불가사의하지만 실제로는 깊은 도리가 담겨 있다. 저울대는 처음에 노반(魯班)이 설계하고 제작할 때 13개의 별 무늬(星花)를 새겨 넣었다. 이후 진시황(秦始皇)이 도량형을 통일할 때 3개를 더 추가하여, 본래 1근 13량이던 것을 16량으로 바꾸었다.

이 3개의 별 무늬는 의미가 매우 큰데, 각각 사람의 복(福)·록(祿)·수(壽)를 대표한다. 장사하는 사람이 만약 무게를 속여 이익을 남기면, 자신의 복·록·수가 깎이게 된다. 예를 들어, 1량을 속이면 ‘복이 깎이고(損福)’, 2량을 속이면 ‘록이 상하며(傷祿)’, 3량을 속이면 ‘수명이 줄어든다(折壽)’.

이러한 인과응보는 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데, 아래는 송조(宋朝)의 한 가지 일화다.

당시 강서(江西) 여간현(餘幹縣)의 한 마을에 주거천(朱巨川)이라는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매일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까만 궁리했기에, 재물을 모으기 위해 자주 불의한 짓을 저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대낮에 그의 집 안으로 갑자기 돌멩이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는 누군가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해 집 밖으로 나가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찾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더 큰 돌이 하늘에서 떨어져 마당을 내리쳤다. 그 후에는 옷을 넣어두던 함과 상자 안에서 갑자기 불길이 일어났고, 그의 옷가지들을 흔적도 없이 모두 태워버렸다.

주거천은 처음에 귀신의 짓인 줄 알고 마을의 무당을 청해 굿을 했다. 그러나 괴이한 일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빈번해졌다. 그의 가족들도 모두 잇달아 화를 당했는데,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는 느낌을 받았고, 어떤 이는 뺨을 맞았으며, 어떤 이는 매를 맞아 큰 소리로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고, 어떤 이는 심지어 묶인 채 매달리기도 했다. 온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어 매일 단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다.

주거천은 승복하지 못하고 무당의 도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해, 이번에는 도사(道士)를 찾아가 제단을 차리고 법사를 행하게 했다. 그러나 도사가 막 제단을 차렸을 때, 제단 아래에서 불타는 공 하나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도사는 개의치 않고 오직 주문을 외우며 법사를 행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몇 개의 돌이 날아와 하마터면 도사의 옆을 맞출 뻔했다. 도사는 방법이 없어 법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제단 아래의 불공은 이미 주 씨의 집 전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은 폐허로 변했다. 주거천은 어쩔 수 없이 온 가족을 데리고 십여 리 떨어진 다른 저택으로 이사해 살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집에 계속 일어나는 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가산도 이 때문에 절반 이상 소모되었다.

나중에 한 고인(高人)이 그의 집을 지나가다 그에게 직접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대의 집에 연이어 일어나는 괴이한 일은 귀신의 짓이 아니라 하늘의 벌[天罰]이네. 만약 그대가 장사하면서 근량을 속이고 늘 다른 사람의 이익을 탐내지 않았다면, 하늘도 이토록 그대를 벌하지 않았을 것이네. 하늘이 일단 재앙을 내리면 인력으로는 구제할 수 없는 법이네. 하지만 하늘 역시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 있으니, 그대가 만약 진심으로 뉘우치고 개과천선한다면 이러한 천재인재는 점차 사라질 것이네.”

주거천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후회했다. 그 후로 그는 지난날의 탐욕스럽고 교활한 태도를 싹 바꾸고, 장사할 때도 이전보다 더욱 신의를 지켰다. 그러자 그의 집에 발생했던 괴이한 일들은 정말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참고자료: 《북동원필록(北東園筆錄)》, 《이견지(夷堅志)》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