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古遠)
【정견망】
당 현종(玄宗)이 불도(佛道)를 숭상하고 믿은 것은 사서에서도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의 곁에는 늘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의 고인(高人)들이 함께했다. 그렇다면 현종은 왜 이토록 신불(神佛)의 일을 믿었을까? 어쩌면 그가 친히 겪은 수많은 신기한 현상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고적 《명황잡록(明皇雜錄)》에는 유명한 ‘용을 그려 비를 빌다[畫龍祈雨]’라는 이야기가 기재되어 있다.
현종 개원(開元) 연간, 관중(關中) 지역에 심각한 가뭄이 들었는데, 특히 수도 장안(長安)은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더욱 심했다. 현종 황제는 매우 애가 타서, 대신들에게 명산대천과 호수 및 신사(神祠)를 두루 다니며 비를 기도하게 했으나, 끝내 아무런 감응이 없었다.
나중에 현종은 용지(龍池) 옆에 새로 큰 전각을 지으라고 명하고, 소부감(少府監) 풍소정(馮紹正)을 불러 전각의 사방 벽에 각각 용 한 마리씩을 그리게 했다.
풍소정은 먼저 서쪽 벽에 백룡(白龍) 한 마리를 그렸다. 그 백룡의 자태는 기이하고 꿈틀거리며 서려 있어, 마치 당장이라도 허공으로 날아오를 것 같았다. 그림을 절반쯤 그렸을 때, 마치 붓끝을 따라 풍운(風雲)이 일어나는 듯했다. 현종 황제와 수행 관원들이 벽 아래 서서 바라볼 때, 뜻밖에도 용 몸의 비늘과 갑옷이 은은하게 축축해져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았다.
당시 용 몸에 아직 채색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전각 처마 밑에서 갑자기 흰 기운이 몇 가닥 흘러나오더니 천천히 용지 속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못의 물이 뒤집히고 파도가 격렬하게 요동치더니, 이어서 번개와 천둥이 몰아치며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황제를 좌우에서 시위하던 수백 명의 관원은 백룡 한 마리가 용지의 파도 사이에서 솟구쳐 올라 구름 안개를 타고 하늘로 곧장 돌진하는 것을 모두 친히 목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먹구름이 신속하게 하늘을 뒤덮고 광풍이 갑자기 일며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단비가 경기(京畿 장안 주변 지역) 내에 두루 내렸고, 오랜 가뭄에 메말랐던 대지가 다시 윤택해졌다. (《명황잡록》)
현종이 불도(佛道)를 공경하고 믿은 것은, 어쩌면 그가 평생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을 너무나 많이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여기에 기재된 풍소정이 용을 그려 비를 빌었다는 일도 그중 하나이다.
민간에는 줄곧 ‘화룡점정(畫龍點睛)’에 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용에게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허공으로 날아 가버린다는 이야기다. 과거에 많은 사람은 이를 신화 전설이나 미신 이야기로 여겼지만, 고대의 대량의 유사한 기재로 볼 때 이러한 설이 온전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2》 〈흙으로 사람을 만든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공간에 대고 무엇이 형성되라고 말하기만 하면 즉시 형성된다. 또한 마음대로 어떠한 것이든 만들어낼 수 있으며 공중에서 그리기만 해도 바로 형성된다. 하지만 다른 공간에서다. 다시 말하여 과거에 세계를 만든다거나, 한 층의 하늘을 만든다거나, 불경에서 말하는 우주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바로 불력(佛力)의 체현이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많은 사람과 많은 일들의 이면에는 모두 다른 공간의 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 풍소정이 이쪽 공간에서 그려낸 용은 그 자체로 어쩌면 하나의 표상일 뿐이며, 진짜로 작용을 발휘한 것은 다른 공간에서 상응하는 생명 요소가 형성되어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이쪽에서 용의 형상이 완성되었을 때, 다른 공간에서도 동시에 대응하는 생명체가 형성되어 두 가지가 서로 합해짐으로써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릴 수 있는 진짜 용이 된 것이다.
사실 도리는 결코 복잡하지 않다. 진짜로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킨 것은 표면적인 회화 기교가 아니라, 수련인이 구비한 신통(神通)과 능력이다.
고대 전설 중에서 여동빈(呂洞賓)이 황학루(黃鶴樓) 벽에 학을 그렸는데 나중에 선학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다는 것도 이와 같은 도리이다. 언뜻 보기에 불가사의한 많은 일도, 신을 믿고 하늘을 공경하는 각도에 서서 이해한다면 종종 또 다른 합리적인 설명을 찾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