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문화팀

테무진의 명성은 점차 초원의 몽골 부족들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에포크타임스 제작)
아버지를 잃고 보낸 힘든 세월은 테무진의 강인한 의지를 단련시켜 끈기 있는 성격, 강인한 체력, 남다른 인내력을 갖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다음의 작은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13살 되던 어느 날, 테무진은 집 앞에 있던 8마리의 은회색 거세마를 도둑맞은 것을 발견하고 즉시 형편없는 말을 타고 흔적을 쫓았다. 사흘 밤낮을 추격했지만 말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넷째 날 아침, 말무리 속에서 젖을 짜고 있던 한 소년을 만나 은회색 말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지 물었다.
소년은 그가 비록 지쳐 보이지만 의지가 굳은 것을 보고 흔쾌히 음식을 내어주며 좋은 말로 갈아타게 한 뒤, 여덟 마리 말을 찾는 여정에 동행했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보오르추(博爾術)라고 했다. 이틀 후 두 사람은 말들을 찾아 함께 끌고 돌아오려 했는데, 알고 보니 말을 훔친 자들은 타이치우드인들이었다. 추격해 오는 타이치우드인들과 마주치자 테무진은 보오르추가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아 그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몸을 돌려 활을 쏘며 맞섰다. 날이 저물어 가자 추격자들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테무진과 보오르추는 사흘 밤낮을 달려 보오르추의 집에 도착했다.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테무진이 되찾은 말 중 일부를 나누어 주겠다고 했으나, 그 못지 않게 의리 있던 보오르추는 그런 건 필요 없으며 그저 좋은 친구를 돕고 싶었을 뿐이라고 거절했다. 이때부터 테무진과 보오르추는 생사를 함께하는 벗이 되었다. 훗날 보오르추는 무칼리와 함께 칭기스칸의 두 팔이 되었고, 무칼리, 보르쿨, 치라운과 함께 ‘몽골 사걸(四傑)’로 불리며 칭기스칸의 정복 전쟁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 일화를 통해 테무진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믿고 따르게 만드는 비범한 매력, 즉 과감함, 대범함, 결단력을 지녔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울란바토르에 위치한 칭기스칸 및 휘하 대장 무칼리(우)와 보오르추(좌) 동상. (shutterstock)
옹 칸에게 의탁하며 맺은 첫 동맹
1178년, 17세가 된 테무진은 약혼녀 보르테의 집으로 가서 결혼식을 올린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초원의 풍습에 따라 신부는 남편의 부모에게 옷 한 벌을 예물로 주어야 했다. 보르테가 가져온 것은 초원에서 가장 귀한 검은 담비 가죽 외투였다. 테무진은 이 외투를 아버지의 옛 우정을 되살리는 데 사용하여 자신의 가문 재건을 도울 후원자를 찾기로 결심했는데, 그 인물이 바로 케레이트 부족의 수장인 토그룰(脫斡鄰勒), 즉 옹 칸(王汗)이었다. 그는 과거 칸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둘째 동생과 조카를 죽였으며, 훗날 금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왕(王)’에 봉해져 옹 칸으로 불렸다.
젊은 시절 옹 칸과 테무진의 부친 예수게이는 ‘안다’, 즉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고, 예수게이는 옹 칸이 칸위를 탈환하는 것을 도왔으며 두 사람은 다른 부족에 맞서 동맹을 맺기도 했었다. 테무진이 동생 카사르, 벨구테이를 데리고 결혼 예물을 옹 칸에게 바치자, 그는 기쁘게 이를 받으며 테무진이 보르지긴 부족을 재건하는 것을 돕겠다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네가 나에게 검은 담비 가죽옷을 선물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흩어진 백성들을 너를 위해 모아주겠다”라고 말했다. 이는 옹 칸이 테무진을 수양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보호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테무진은 최초의 동맹을 맺었고, 처음으로 지략(智略)을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케레이트 옹 칸의 약속을 얻어낸 테무진은 그 밑에서 작은 두령이 되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무진이 태어날 때 아들 젤메를 ‘안다’로 보내겠다던 대장장이 자르치우다이가 정말로 젤메를 데려왔다. 그는 테무진의 가장 오래된 친위병으로 훗날 시위장(侍衛長 호위대장)에 임명되어 테무진을 따라 사방을 누비며 용맹함을 떨쳤고, 쿠빌라이, 수부타이, 제베와 함께 ‘몽골 사맹(四猛)’으로 불리게 된다. 자르치우다이가 젤메를 이처럼 훌륭하게 키워내 테무진을 따르게 한 것을 보면 그의 솜씨 또한 범상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보오르추와 젤메는 테무진 곁을 가장 먼저 지킨 충신이 되었다.

활을 쏘는 테무진. (에포크타임스 그래픽)
첫 습격에 참여
테무진을 시험할 순간이 곧 찾아왔다. 테무진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메르키트 부족원 300여 명이 수장 토크토아 베키(脫黑脫阿)의 지휘 아래 보복할 요량으로 어느 날 새벽, 테무진 가문의 영지를 기습하여 아내 보르테를 납치해 갔다. 무방비 상태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테무진은 아내를 구출할 계획을 세웠다. 초원의 정세를 곰곰이 살핀 그는 형제들을 데리고 케레이트의 옹 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원래부터 메르키트인들과 철천지원수였던 옹 칸은 약속을 지켰다. 군대를 내어주었을 뿐 아니라, 자다란 부족의 자무카(劄木合)에게도 출병을 요청해 보라고 조언했다. 자무카 가문 역시 메르키트인들에게 재산과 백성을 약탈당한 적이 있어 원수지간이었기 때문이다. 자무카는 테무진과 의형제를 맺은 ‘안다’이자 초원에서 꽤 실력 있는 용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테무진의 아내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옹 칸 혼자 큰 공을 세울까 염려하여 출병에 동의했다.
테무진 일행은 자무카가 이끄는 2만 명과 케레이트 군 2만 명과 합류해 메르키트인들을 치러 향했다.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자무카가 총지휘를 맡아 각 부대의 합류 시간, 장소, 진군 경로, 공격 전술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군기를 엄격히 세웠다. 이것이 테무진이 참여한 첫 번째 기습 전투였으며, 그는 자무카를 따라 인생 최초의 큰 전투에 발을 내디뎠다.
메르키트인들은 케레이트 옹 칸과 자무카가 테무진을 위해 군대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다. 기습을 당해 궤멸당한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도망쳤다. 테무진, 옹 칸, 자무카는 대군을 이끌고 뒤를 쫓으며 소, 양, 마차 등을 남김없이 노획했다. 테무진은 도망치는 인파 속에서 보르테의 이름을 외치며 찾았다. 남편의 목소리를 들은 보르테는 달아나던 수레에서 뛰어내려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고,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재회를 했다.
메르키트인을 겨냥한 이 기습은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테무진은 아내를 되찾았고, 메르키트의 남자들은 죽거나 포로가 되어 노약자와 부녀자만 남았다. 테무진은 옹 칸과 자무카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고, 그들은 전리품을 가득 싣고 귀환했다.
자무카와의 모순
보르테를 구출한 후, 테무진은 가족들을 이끌고 자무카를 따라 동쪽으로 향했다. 그는 자무카의 힘을 빌려 아버지 예수게이의 옛 부하들을 되찾아 부족을 재건하길 희망했다. 그 여정 중에 보르테는 첫아들 주치를 낳았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대화를 나누던 중 예전에 ‘안다’를 맺었던 일을 회상했다.
첫 번째는 테무진이 11살 때였는데, 당시 자무카는 노루 복사뼈를, 테무진은 구리를 부어 만든 복사뼈를 서로 교환하며 안다를 맺었다. 이듬해 봄, 둘이 함께 나무 활을 쏘며 놀 때 자무카는 두 살배기 소의 뿔 두 개를 이어 만든 소리 나는 화살촉을 주었고, 테무진은 잣나무로 만든 화살촉을 답례하며 두 번째로 안다를 맺었다.
이제 성인이 된 그들은 세 번째로 안다의 맹세를 맺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옛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 ‘안다를 맺은 자는 한 목숨이니 서로 버리지 말고 의지하며 구해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서로 친밀히 아끼는 이치는 이와 같아야 하니, 오늘 우리 두 사람은 안다의 의리를 거듭 다지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자”라고 공언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옷을 바꿔 입으며 서로의 체취를 공유했고, 허리띠와 준마를 교환했으며, 같은 이불을 덮고 자면서 친밀함을 과시했다.
1년 반 동안 테무진은 자무카의 영도 아래 머물렀다. 수만 명에 이르는 자무카의 부족 중에는 예수게이의 옛 부하들도 섞여 있었다. 초원에서 이미 세력을 굳힌 자무카로서는 형제의 정 때문에 예수게이의 옛 백성들을 스스로 테무진에게 돌려줄 리 만무했다. 이를 깨달은 테무진은 스스로 호걸들과 교류하며 현재의 정세와 몽골의 미래를 논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나라와 백성을 구하겠다는 큰 뜻, 즉 몽골 각 부족이 자유롭게 유목할 수 있는 밝은 미래를 지닌 대몽골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망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이러한 테무진의 행보는 당연히 자무카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자무카에게는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쓰는 재능이 부족했다.
점점 자무카는 테무진을 대등한 안다가 아니라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추종자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가장 명백히 드러난 것은 1181년 5월 중순 영지를 이동할 때였다. 자무카는 은근한 방식(말을 방목하는 곳과 양을 방목하는 곳은 다르니 각자 편한 곳으로 나뉘어야 한다)으로 테무진에게 이제 서로 각자의 길을 가자고 완곡하게 암시했다. 처음에는 자무카의 뜻을 알아채지 못한 테무진이었지만, 지혜로운 보르테의 설명을 듣고 비로소 상황을 파악했다.
이에 테무진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밤새 길을 나서 자무카를 떠나 자신의 출생지인 부르칸 산 동쪽으로 가서 자립하고자 했다. 그를 따르는 무리 중 상당수는 예수게이의 옛 부하들이었다. 자무카는 추격대를 보내지 않았는데, 아마도 자신의 세력이 막강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듯하다. 두 사람의 결별은 훗날 기나긴 전쟁으로 이어졌다. 자무카를 떠날 당시 테무진의 나이는 겨우 19세에 불과했지만, 이때부터 그는 더 많은 추종자를 모으며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자무카 밀랍 인형 (CeeGee/Wikimedia Commons 제공)
테무진이 국주(國主)가 될 것이라는 신의 계시
그 무렵 테무진의 명성은 이미 초원의 몽골 부족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예수게이의 옛 백성들이 속속 귀부해 왔을 뿐 아니라, 다른 부족 사람들도 하늘의 계시를 듣고 그에게 투항해 왔다.
예를 들어, 자무카와 공동 조상을 두고 과거 테무진의 천명(天命)을 예언했던 코르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본래 자무카와 갈라져서는 안 되지만, 신께서 내게 강림(降臨)하시어 직접 보게 하셨다. 황백색 암소가 자무카 곁을 맴돌며 그의 텐트 수레와 자무카를 들이받아 뿔 하나가 부러지자 흙먼지를 일으키며 자무카를 향해 ‘내 뿔을 돌려다오!’라고 연신 울부짖었다. 그리고 뿔 없는 황백색 수소가 큰 텐트의 기둥을 끌고 테무진의 뒤를 따라 수레길을 오며 ‘천지가 상의하여 테무진을 나라의 주인으로 삼기로 했기에, 내가 나라를 싣고 왔다!’라고 외쳤다. 이는 신께서 내게 지시하여 직접 목격한 것이다.”
이러한 신의 계시는 테무진이 천명을 안고 태어났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를 확신한 초원의 호걸들은 테무진이 견문이 넓고 지혜가 깊으며 배포가 커서 큰일을 성취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재산과 부하들을 이끌고 테무진의 휘하로 모여들었다. 테무진 역시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고 교류하며 이 뜻있는 인재들을 중용했다. 대업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라는 말처럼, 테무진은 훗날 대업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있었다.
칸(可汗)으로 추대되다
이후 가슴에 큰 뜻을 품은 테무진은 흩어졌던 부족 친척과 백성들을 점차 모으고 더 많은 호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세력을 키웠다. 테무진 형제가 전투에 능했던 덕분에 다른 작은 부족들과의 전쟁에서 연승을 거두었고, 그의 휘하에는 어느덧 예순일곱 개의 몽골 부족과 수만 명의 백성이 모였다. 이와 동시에 자무카 역시 초원에서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자무카를 떠난 지 8년 후인 1189년 여름, 테무진과 그의 추종자들은 ‘심장’이라는 뜻을 가진 산기슭 푸른 호숫가 초원에서 쿠릴타이(忽裏勒台)를 열었다. 쿠릴타이란 고대 몽골 및 돌궐족의 부족 및 연맹 의사결정 기구로, 수장 추대, 전쟁 결정, 법령 공포 등 중대사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몽골의 ‘국회(國會)’라 부르기도 한다. 이 회의는 훗날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 회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테무진은 마침내 그가 속한 키야트 씨족 귀족들에 의해 전 몽골의 ‘칸(可汗)’으로 공식 추대되었다. 이때 테무진의 나이는 27세였다.
칸이 된 테무진은 관리들을 임명하고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다. 칸의 종합적인 대형 텐트는 부족의 통치 중심지, 즉 군정과 행정이 일치된 총사령부로 간주되어 ‘오르도(斡耳朵)’라 불렸다. 테무진은 오르도의 책임을 자신이 신임하는 측근들에게 분담시켜 궁수(弓手), 도수(刀手), 말 관리, 음식 관리, 양과 말 방목, 수레 제작 및 궁궐 수비 등 열 가지 직무를 신설했다. 총무를 담당하는 자를 대단사관(大斷事官), 문서 관리를 비체치(必闍赤), 수라간 관리를 보오르치(保兀兒赤)라 칭했다. 과거 대부분의 초원 부족 오르도는 칸의 친척과 귀족들로 구성되었지만, 테무진은 이러한 구조를 바꾸어 혈통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충성도에 따라 인재를 선발했다.
그는 또한 150명으로 구성된 정예 호위대를 창설하여 자신의 텐트 주변을 에워싸게 함으로써 안전을 지켰다. 체격이 크고 건장한 동생 카사르에게 호위대 책임을 맡겼고, 보오르추와 젤메를 시위대장으로 삼았으며, 가축 관리는 이복동생 벨구테이에게 맡겼다. 확실히 테무진의 통치 아래 이때부터 몽골 부족의 행정 기구는 맹아를 틔우고 있었다.
하지만 칸으로 추대된 테무진은 아직 자신의 세력이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러한 행보가 케레이트의 옹 칸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옹 칸에게 사절을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도 그에게 충성을 다할 것임을 표명했다. 옹 칸은 몽골인들이 통일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정세가 자신의 통제하에 있다고 판단하여 테무진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반면, 자무카는 테무진이 전체 몽골 씨족의 칸이 된 것을 단호히 거부하며 오히려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테무진 칸은 초원의 패권을 다투는 격동의 시대로 걸어 들어간다.

2006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칭기스칸 시대 전통 역사 공연 중의 몽골 병사들. (shutterstock)
(계속)
참고자료:
《蒙古秘史》
《元史》
《成吉思汗與今日世界之形成》
《中國曆代戰爭史》(元朝) 台灣出版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gb/20/9/21/n12420405.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