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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암리에 정해져 있다: 영종이 과거 합격자 3명을 꿈에 미리 보다

덕혜(德惠)

【정견망】

명 영종(英宗) 주기진(朱祁鎮, 1427~1464년)은 재위 기간에 두 개의 연호를 사용했는데, 첫 번째 연호가 바로 ‘정통(正統)’이다. 정통 13년(1448년), 그해 과거시험 정시(廷試)가 치러지기 한 달 전, 영종은 기이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세 사람이 자신을 찾아와 배알했는데, 각각 유(儒), 석(釋), 도(道) 삼교(三教) 인물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꿈의 내용이 너무나 선명하여 영종은 사람을 시켜 이 꿈을 기록해 두게 했다. ‘정시’란 곧 전시(殿試)를 말하며, 과거시험 중 최후의 단계로 성적순으로 각각 장원(狀元), 방안(榜眼), 탐화(探花)가 된다.

전시의 최종 성적이 발표되는 날이 되어 순위를 공표하고 이력을 대조해 보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장원을 차지한 팽시(彭時)는 전통적인 유생 집안 출신이었고, 방안 진감(陳鑑)은 어릴 적에 신낙관(神樂觀)에서 도동(道童)으로 출가한 적이 있었으며, 탐화 악정(岳正)은 소싯적에 경수사(慶壽寺)에서 서기(書記-사찰의 문서와 필묵 일을 맡아보던 직책)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은 영종이 꾼 기이한 꿈이 신령이 그에게 내려준 일깨움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번 과거시험의 상위 3명인 장원, 방안, 탐화가 모두 신령에 의해 미리 안배된 것임을 알려준 것으로, 꿈속의 유, 석, 도 삼가(三家) 인물을 통해 세 사람의 출신이 저마다 내력이 있음을 예시해 준 것이다. 진정으로 암암리에 정해진 수(數)가 있는 것이다!

5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 역사를 되돌아보면 신령(神靈)이 안배하신 깊은 뜻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당시의 연호가 ‘정통’이었으니, 이것이 어찌 유, 석, 도 세 가의 문화가 함께 중국 문명의 정통 문화를 구성했음을 잘 설명해 주지 않는가? 오늘날 중국 대륙을 통치하는 공산악당은 애초부터 무신론을 사악한 당 문화의 핵심이자 기초로 삼았으다. 유, 석, 도는 모두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는다. 공산악당은 근본에서부터 중국의 유, 석, 도 정통 문화를 반대했으며, 결코 중화의 정통이 아니다.

중공 악당이 집권한 수십 년은 바로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파멸과 파괴적인 이용이었다. 앞선 수십 년 동안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온갖 운동, 특히 ‘문화대혁명’을 발동해 얼마나 많은 전적과 문물을 파괴했는지 모른다. 개혁개방부터 지금까지는 전통문화로 돈을 벌고 중공을 위해 분칠하는 데 이용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전통문화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는 말이 있었고, 사원과 도관은 대다수 ‘석영신(釋永信 스융신)’과 같은 가짜 승려나 도사들에 의해 통제되었다. 중공의 소행은 중국인들의 도덕관념을 철저히 타락시켜 5천 년 역사의 예의지국(禮儀之邦)으로 하여금 남들의 조소를 받게 만들었다.

중공의 죄악은 실로 너무나 크기에 이미 하늘이 그것에 사형 선고를 내렸으며, 수련계의 모든 고인(高人)들은 ‘하늘이 중공을 멸(天滅中共)’하는 천상(天象)의 변화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창성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順天者昌,逆天者亡)”고 했다. 중화의 자손들은 하늘의 뜻에 순종하여 행동하고, 중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가능한 한 빨리 중공의 당·단·대(黨·團·隊) 조직 탈퇴 의사를 표명해야만 미래에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자료 출처: 《요산당외기(堯山堂外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