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영(淑英)
【정견망】
민국 시기에 나온 선을 권하는 책(勸善書)인 《공과명벌음률(功過冥罰淫律)》에는 부부간의 절제와 몸을 닦고 덕을 쌓은 권선징악 이야기가 하나 수록되어 있다.
동경성(童慶成)은 안휘성 영국부(寧國府) 선성현(宣城縣) 사람으로,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고 성품이 정직하며 사람을 선하게 대했고, 매사에 도리를 따지며 정의(情義)를 중시했다. 평소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렴(廉)·치(恥)’ 등의 전통 미덕을 실천하며 자주 남들을 이렇게 권도(勸導)했다.
“하늘과 신을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향을 피우거나 촛불을 켜거나 종이돈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공경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몸이 더러워지면 부지런히 씻어야 하고, 목욕할 때도 몸을 가리는 것에 주의해야 하며, 볼일을 볼 때도 노출을 피해야 합니다. 해와 달 아래서 벌거벗은 몸으로 있어 천지신명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평소에도 속옷 차림 그대로 부모나 자녀, 또는 다른 친족 앞에서 돌아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마땅히 늘 자신을 반성해야 하며, 비록 작은 과실이라도 경계하여 고침으로써 훗날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예우하는 방법입니다.”
상대의 신분이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동경성은 늘 사람들에게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고 권했다. 그의 감화를 받아 허물을 고치고 선으로 돌아선 사람이 매우 많았다.
장성하자 부모는 그의 혼사를 주선해 주었다. 동경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옛사람들이 말씀하시길 ‘불효 중에 큰 것이 후사가 없는 것이다’라 하였으니, 아내를 맞이하는 것은 본래 대를 이어서 자손을 남기기 위함이지 남녀의 즐거움에 빠지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또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딸이 나에게 시집오는 것도 행복한 가정과 믿을 만한 의지처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텐데, 그녀가 나의 이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아내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모든 일에는 마땅히 절제가 있어야 하며 색욕에 빠져 방종해서는 안 되오. 아내를 맞이하는 것은 색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며, 지나치게 욕정을 좇으면 사람의 정신을 소모하게 만드오.”
아내는 이 말을 듣고 대답했다.
“당신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혼 후 동경성 부부는 비록 한방에서 함께 잠을 잤으나 언제나 서로 엄숙함을 유지했고, 가벼우며 희롱하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정욕을 방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은 그들 부부의 정애(情愛)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서로를 보살피고 배려하며 서로를 이끌어주고 함께 격려하게 되었다.
나중에 동경성은 과거에 응시해 진사에 급제하였고, 최종 시험인 전시(殿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황제에게 선발되어 한림원(翰林院)에 임명되었다. 그의 세 아들 역시 훗날 모두 고위 관직에 올랐고, 딸들은 명문가에 시집갔으며, 사위들은 아들과 함께 조정의 관리가 되어 가문이 크게 번성하고 현달(顯達)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