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방행
【정견망】
당나라 때 이백이 일찍이 이런 시를 썼다.
아침 일찍 구름 낀 백제성을 떠나천리 먼 강릉을 하루에 돌아왔노라.양쪽 강 언덕에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데가벼운 배는 이미 첩첩 산을 지나왔구나.
朝辭白帝彩雲間 조사백제채운간 千裏江陵一日還 천리강릉일일환 兩岸猿聲啼不住 양안원성제부주 輕舟已過萬重山 경주이과만중산
이 시의 제목은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으로 이백이 야랑으로 유배가던 도중에 사면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쓴 것이다. 《신당서》 〈이백전〉에 “이백은 자가 태백(太白)으로 흥성황제의 9세손이다. 선조가 수나라 말기 죄를 지어 서역으로 유배당했다. 신룡(神龍) 초년(705년) 그의 부친이 서역에서 돌아와 파서(巴西-지금의 사천 강유江油)에 자리 잡았다. 이백의 일생 역시 뜻을 얻지 못하고 유배되거나 방랑하곤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상의 기록으로 보면 이백은 유배와 매우 인연이 크다.
또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이백이 당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에게 신발을 벗기게 한 일화가 적혀 있다. 이 이야기는 명나라 때 풍몽룡(馮夢龍)이 쓴 《경세통언(警世通言)》 중 〈이적선이 취해 오랑캐를 놀라게 하는 글을 쓰다(李謫仙醉草嚇蠻書)〉라는 문장에 나온다. 즉 발해에서 국서를 바쳤는데 조정의 문무백관들 중에서 그 글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자 이백이 불려갔다. 이백이 발해국 사신의 오만한 기세를 누르기 위해 양귀비에게 먹을 갈게 하고 고력사에게 신발을 벗기게 했다. 하지만 바로 이것 때문에 이백은 나중에 장안에서 쫓겨나 사방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나중에 또 다른 일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는데 도중에 사면되었다.
이백의 일생은 비록 뜻을 얻지 못했으나 이런 억압과 고난 중에서도 그는 의연히 자신의 고결한 본성을 유지했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수많은 천고의 명편(名篇)을 남겨놓았다. 만년에는 아마도 인생에 대해 더 투철히 꿰뚫어보고 도가수도 방면의 학문을 깨닫기를 즐겨했다.
중화 신전문화 방면에 대한 이백의 공헌은 아주 큰 것으로 그는 ‘적선(謫仙-죄를 짓고 귀양 온 신선)’이라 불린다. 그는 자칭 ‘청련거사(青蓮居士)’라 했다. 그가 쓴 많은 시편은 모두 더욱 높은 경지에서 문제를 본 것이다. 우리가 간단한 비유나 수사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늘 “이백은 한말 술에 시 백편”이라고 하는가? 수련하는 사람들은 아는데 이백은 술로 주의식(主意識)이 마취된 후 부의식(副意識)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아울러 이백은 하늘의 의도적인 안배로 인간세상에서 문화의 한 방면에서 이끄는 작용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때문에 그는 술에 취한 후 그렇게 많은 참신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이백이 유배와 큰 인연이 크다고 했는데 사실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소동파 역시 여러 차례 유배되었고 유배 과정에서 심신이 비록 많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의 고귀한 영혼은 오히려 이 과정에서 용련(熔煉)되고 승화되었다.
이백이 사면을 받은 후 쓴 《조발백제성》, 소동파가 황주에 유배되어 있을 때 쓴 《전적벽부》, 《후적벽부》 등 이런 것들은 모두 후세인들에 의해 소중한 보물로 여겨 널리 애창되고 있다. 사실 후인들은 많은 경우 이런 시사(詩詞)나 가부(歌賦)를 부르고 싶어 하지만 종종 작자가 고난을 받을 때 이런 시를 써낼 수 있는 마음의 여정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다.
중앙아시아의 쇄엽(碎葉)이 이백의 고향으로 불리며 이백은 평생 유배와 관련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이 고결했기 때문에 속세에 부합되는 걸 용납하지 않았고 다만 산수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화 문화사에서 아주 짙은 향기를 남겨놓았다. 아마 이백에게 이처럼 속박 받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의 풍몽룡이 발해국과의 연분에 이백을 ‘연루’시켜 놓았을 것이다.(사실 이 이야기는 정사에는 보이지 않고 일화나 전설로만 전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저 ‘연루’되었다고 표현했다.)
중앙아시아 서역의 요소를 지니고 이를 중국 산수에 연결시켰으며, 또 동북지방의 인연에 연결했고 그의 ‘적선(謫仙)’이란 신분과 수도(修道)에 대한 애호 등이 모두 이백 한 사람의 몸에 연계되었다. 때문에 바로 ‘고운 말 토해내니 성당(盛唐)의 절반’(대만 여광중餘光中의 싯귀로 이백의 시가 당시 중에서도 최고봉임을 찬양한 것) 이란 표현이 있게 된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읊을 때 이런 요소의 영향을 받아 큰 계발을 얻곤 한다.
발해는 당나라 시기 동북에 있던 번국(蕃國)이었다. 극성기 때는 지금의 흑룡강성 일부, 길림성, 요녕성 일부, 빈해변강구(濱海邊疆區 우수리강 동쪽의 남반부로 현재 러시아 영토)와 한반도 북부의 일부를 포함했다. 약 200여 년간 존재했으며 나중에 거란에 의해 소멸되었다.
거란에 소멸된 후 평지에 있던 수도 동경성(東京城)에 대화재가 발생했고 얼마 후 역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요나라의 뒤를 이은 금나라는 이곳에 석불사(石佛寺)를 세웠으나 청나라 때에 이르러 석불사의 석불(石佛)만 남았다.(불두는 땅에 떨어져 있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다시 올려붙였다) 기타의 것은 모두 오래되어 잃어버리고 잔해만 남았다. 이곳도 유배지역이 되었다.
청나라 때 ‘영고탑(寧古塔 닝구타)’이란 세 글자는 조정 대신들이 가장 두려워 떠는 곳이었다. 누구든 이곳으로 유배되면 죄가 얼마나 큰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야만인들과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명사회 사람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청나라 장진언(張縉彥)이 쓴 《영고탑산수기(寧古塔山水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영안寧安 부근) 성곽 동쪽 4, 5리 되는 곳에 백석애(白石崖)란 산이 있는데 현지인들이 상양합달(上陽哈達)이라 부른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마치 흰 흙으로 발라 놓은 것(백악화) 같고 그 깎아지른 산세가 뛰어나다. 놀러가는 사람은 매번 물에 막혀 갈 수 없으며 모래 언덕에 이르러 쉰다. 강변에는 버드나무와 잡목이 우거져 있고 여름, 가을에는 푸른 그늘이 우거져 시원한 바람이 불며 강에는 물고기 자라 등이 많다. 낚시꾼들은 낚싯대를 드리우며 망을 던지면 물고기가 모여든다. 겨울에는 물이 얼어 바지를 걷고 강을 건널 수 있으며 눈이 겹겹이 쌓여 펼쳐져 있어 황홀하기가 옥돌 위를 다니는 것 같다. 나무로 틀을 만드는데 얼음수레라 한다. 사람이나 소가 끌고 갈 수 있다.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면 끊어진 강변이 천척이고 가파른 괴석이 전에 본 백악화같다. 모든 산 입구 빈터에는 초목이 그리 길지 않으며 천년의 풍우에 깎인 흔적이 확연하다. 그늘진 곳이 더욱 우거져 바위가 어지러이 버티고 있다. 칡을 헤치고 올라가 지름길로 오르면 큰 바위가 세 개 있는데 반듯하고 평평해서 3~5명은 앉을 수 있다. 북쪽에 있는 두 개 바위는 서로 지척에 떨어져 있으며 남쪽에 하나의 바위는 5보 밖에 있다. 하인이 술, 음식을 가지고 두세 명이 함께 다니며 각자 한 바위를 차지하면 하인은 등나무를 꺾어 제치고 휘어 술잔을 전한다. 마음이 확 트여 그곳이 속세인 줄 잊어버린다. 산봉우리를 올려보면 푸른 이끼가 높이 솟아 있고 높이는 한척이 안 되며 역력히 셀 수 있다.”
이 글의 작자는 석불사의 잔해와 동경성(발해진)이 당시 남겨놓은 유적을 언급했다. 물론 현재 영안시 주위의 다른 지방도 언급했다.
나중 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백석애 부근은 유배된 문인들이 늘 술을 마시며 시를 읊던 곳이라고 한다.
백석애를 따라 목단강 상류의 홍석애(紅石崖)는 완전히 붉은 흙과 붉은 바위로 구성된 언덕이다. 이것은 흑토 지형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부근의 현무호(玄武湖), 상관지(上官地) 이곳은 전설에 청나라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유람하고 조정을 향해 조공미를 바치던 곳이라 한다.
홍석애와 강 아래를 따라가는 백석애는 하나는 붉고 하나는 흰색으로 매우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수련하는 사람들은 홍석과 백석의 내원이 완전히 다름을 알고 있다. (이것에 흥미가 있는 독자들은 《미국서부법회설법》을 보라.) 하지만 이런 다양한 것들이 모두 모란강과 연결되어 있으며 마지막에는 모두 흑룡강으로 들어간다.
본문에 언급할 두 주인공은 동북 영고탑에 유배되어 기연을 만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유배라는 두 글자의 내포를 해석하고 풍부하게 하고자 한다. 고난을 만나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며 두려운 것은 마음에 절망이 생기는 것이다. 가장 고생스러울 때에도 만약 마음속의 그 선량한 본성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기연이 닿으면 모든 것에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법을 찾는 이야기는 동경성(지금의 발해진)에서 일어난 일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강남의 두 선비가 다른 사람의 일에 연루되어 함께 영고탑 지역에 유배되었다. 영고탑이란 지명은 음역(音譯)으로 그곳에 탑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두 사람 중 당시 45세 정도의 사람을 유지(有志), 30세 정도 된 사람을 유재(有才)라 부르자. 그들은 강남지방 문인이라 몸이 약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았다. 평소 시나 문장을 좋아하고 다른 문인들과 가끔 연회에도 참석했다. 나중에 어느 어떤 사람과 사이가 좋았는데 그가 문자옥(文字獄)을 당하는 바람에 그들 역시 연루되었고 결국 함께 영고탑으로 유배되었다.
그들은 한겨울에 이곳에 도착했다. 날씨는 매우 추웠고 또 큰 눈까지 내려 거의 얼어 죽을 뻔했다. 그런 심신의 고통은 너무 견디기 힘들어 정신이 거의 붕괴 직전까지 갔다. 다행히 청풍(淸風)이란 현지인이 남몰래 그들을 도와주어 난관을 넘을 수 있었다.
청풍은 그곳의 전호(佃戶)였는데 문자는 몰랐지만 위인됨이 호방하고 의로웠다. 이듬해 봄꽃이 필 때 유지와 유재는 자신을 감시하던 간수들과 비교적 친해졌다. 이에 간수들에게 이틀 정도 밖에 나가자고 하자 간수 역시 동의했다. 이에 청풍의 인도하에 함께 영고탑 주변 지역에 갔다.
그들이 과거 발해의 도성을 보니 이미 완전히 원래 모습이 사라져 속으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껴졌다. 아무리 휘황하더라도 언젠가는 몰락하는 날이 있다. 석불을 보았을 때 그들은 사람은 마땅히 더 큰 지혜가 있어야만 인간의 고난을 똑똑히 볼 수 있다고 느꼈고 속으로 기쁨을 느꼈다.
그들이 막 떠나려 할 때 열 살쯤 되는 예쁜 소녀를 만났다. 그 소녀는 일행에게 말했다. “제가 어제 꿈에 홍석애를 갔는데 어느 신선을 보았어요. 그 신선이 저더러 석불이 있는 곳으로 가서 석불을 보러 온 사람을 찾아 세 사람을 데리고 홍석애로 가라고 했어요. 그분이 할 말이 있다면서요.”
청풍이 소녀에게 집이 어딘지 물었지만 소녀는 다만 애매하게 이곳에서 서너 리 떨어진 멀지 않은 곳이 있다고만 말했다. 그녀는 세 사람을 홍석애 부근에 데려갔는데 그곳에는 몇 집밖에 없었다. 그들이 어느 집을 찾아가 자신들이 찾아온 까닭을 설명하고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날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집안에서 강물만 바라보았는데 한동안 강물이 온통 붉었다. 이때 목단강은 마치 피가 흐르는 혈관 같았다.
큰 비는 나흘이 지나서야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이날 그들이 마침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중년 부인이 들어왔다. 이 부인을 보니 현지인들과 옷차림이 같지 않았고 일종의 선기(仙氣)가 있었다. 소녀가 부인을 보자마자 즉시 말했다.
“당신이 꿈에서 뵀던 그 신선인가요?”
부인은 웃으면서 직접 대답하지 않고 세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들 세 사람이 함께 이곳에 온 것은 모두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남에서 온 두 분은 남에게 연루되어 왔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이곳은 비록 겨울에는 몹시 춥지만 여름에는 지내기가 아주 좋습니다. 반드시 낙관적인 심태를 갖고 일체를 대하기 바랍니다.”
말을 마치자 부인이 떠나려 했다. 소녀는 이 말을 듣고 즉시 부인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더러 이 세 사람을 찾아가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말씀을 하시려던 건가요?”
그러자 부인은 아이를 품에 안고 고개를 들게 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장차 저 세 사람을 네가 설득해야 한단다!”
“제가 설득한다고요?” 소녀는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부인은 “오늘은 먼저 당신들을 만나보는 것이고 이후에 기회가 있으면 백석애로 가세요, 때가 되면 진정으로 해야 할 말을 하게 될 겁니다.”라고 했다.
간단히 줄이자. 또 한동안 시일이 지나 소녀와 그들 일행은 함께 백석애로 갔다. 여기서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은 귀부인을 만났다. 귀부인은 그들을 보자 다가와서 맞이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미 이곳에서 한나절 기다렸습니다.”
소녀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당신이셨군요! 어떻게 이렇게 모습을 하셨어요?”
유지는 “제가 알기에 신선은 인간의 익힌 음식도 먹지 않는다는데 당신은 매우 화려한 옷을 입었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했다.
유재는 유지의 말이 좀 당돌하다고 느껴 곧 완곡하게 표현했다.
“당신이 이렇게 입으신 것은 더 깊은 뜻이 있기 때문입니까?”
여신(女神)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 역시 당신들을 위한 것입니다. 장래에 알게 될 것입니다.”
청풍은 여신이 이 문제에 대해 더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을 알고 화제를 돌렸다.
“당신께선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말씀해주시려는 것이 아닙니까?”
여신은 미소를 그치더니 즉시 엄숙해졌다.
“당신들은 이곳을 만든 신과 인연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시기에 이곳에서 ‘당직’을 서는 신이라 치세요. 나는 그 신의 부탁을 받은 동시에 다른 신들과 협력해 당신들 두 남방인을 이곳에 오게 한 것입니다. 비록 당신들이 유배 과정과 이곳에 온 후 수많은 고난과 치욕을 당하긴 했지만 만약 이번 여행에 나를 만나 자기 생명의 목적을 알게 된다면 그리 힘들진 않을 겁니다.
내가 지난번에 당신들에게 원망을 내려놓으라고 한 까닭은 당신들 마음속에 원망하는 기운이 있을 때는 당신들에게 진상을 알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에게 그렇게 요구했습니다. 이번에 보니 당신들 마음속 원망이 지난번 나왔다 돌아가는 과정 중에 절반 이상 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지난 경력을 알려주려고 내가 온 것입니다.
청풍과 유지, 당신들 두 사람은 천상에서 원래 모두 신장(神將)이지만 다른 경지에 속해 있었습니다. 몸에 신의 갑옷(神盔)을 입었는데 위무가 아주 대단했습니다. 유재 당신은 일정한 층차에 그 경지의 주신(主神)인 동시에 그 한층 천체 물질의 풍부한 상태를 관리하는 신이었습니다. 같은 층차에도 많은 부동한 천국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 대청(大淸) 왕조에 각 부분이 있고 각 부분마다 모두 관리하는 관원이 있는 것과 같은데 이들 부분은 또 대청의 일부분입니다. 우주의 시간이 너무나도 길기 때문인데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명과 물질에 패괴(敗壞)가 생겼습니다. 당신들도 이 정황을 보고 그 한층 우주와 중생이 위난에 처한 것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힘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주저하고 있을 때 보다 높은 층차에서 온 신이 당신들에게 한 가지 중대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우주 창세의 주불(主佛)께서 부동한 층차를 거쳐 최후에 인간 세상에 내려가 법을 전하고 법을 바로 잡기 시작할 것이란 소식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이 일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비록 당시 창세의 주불께서 어떤 모습인지 본 적도 없었지만 당신들은 그를 찾기만 하면 자신과 그 한 층차의 중생이 구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을 확고히 믿고 분분히 아래로 내려왔으며 부동한 층차 중에서 끊임없이 주불께서 아래로 내려가 인간세상에서 법을 전하시는 소식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일부의 단서만 알았지만 이것에 의지해 당신들은 아주 큰 신심을 품었습니다. 인간세상에 와서 당신들은 끊임없이 전생하며 제왕이나 장상(將相)은 물론이고 강도나 장사꾼, 가난한 백성이 되어 가며 많은 좋은 일을 했지만 또 나쁜 일도 아주 많이 했습니다. 지금 당신들은 비교적 글재주가 있지만 이곳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밖에 위인됨이 의로운 사람이 오히려 비교적 빈곤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이전 인연 때문입니다.
내가 알려주고 싶은 것은 이때 당신들은 반드시 당신이 세상에 온 소원(주불을 찾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번 본 홍석애와 지금 백석애 및 석불을 포함해서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입니다. 이런 분포가 바로 대비되는 것으로 사람들이 천지의 기묘함을 찬탄하고 경외할 때 마음속으로 천지를 경외하고 하늘 및 신불(神佛)에 대한 동경과 경앙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느 방면을 선택하는가는 사람의 선택이지만 하늘의 안배는 절대적으로 공평합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서 소녀가 여신의 말을 끊었다.
“당신께선 그들과 한참을 말씀하셨으면서 제게는 한마디도 안하셨습니다. 제 이전 경력에 대해서도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여신은 미소를 띠며 소녀를 품에 안았다.
“네가 겪은 것은 너무 많아서 나 이 층차에서도 다 알 수 없단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더 높은 경지의 신이 나로 하여금 네 꿈에 나타나게 하여 네가 저 세 사람을 석불사에서 데려오게 하고 장래 네가 주불께서 직접 전하시는 구도를 얻은 후 반드시 저 세 사람에게 알리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때가 되면 네가 그들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한 말의 뜻이란다.”
청풍이 급히 말했다.
“당신께선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금생에 우리가 대체 어떻게 법을 전하실 그 주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여신이 말했다.
“사실 찾음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기다리는 것도 일종의 찾음입니다. 당신들이 금생에 이 정념을 유지하고 마음에 두고 알아보기만 한다면 만나야 한다면 반드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설령 만나지 못해도 관계가 없는데 그럼 장래에 또 만날 겁니다. 장래의 선택권은 여전히 당신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말을 마친 후 여신은 화려한 외투와 소중한 머리 장식을 벗어 유재와 소녀에게 주며 당부했다.
“이런 것들이 장래 수행방식을 검증할 것이다. 꼭 기억할 것은 이런 것에 미혹되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걸어 나와야 한다!”
여신의 오랜 설명에도 그들은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말을 마치자 여신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또 대략 반년 정도 지나 소녀는 또 꿈에 석불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유재를 찾아갔다. 이때 청풍과 유지는 다른 일로 나가 있었다. 소녀는 유재와 함께 석불이 있는 곳으로 갔으며 그들은 석불에 향을 올리고 절을 했다. 마음속으로 경건하게 석불에게 자신들이 창세의 주불을 찾을 수 있도록 점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이 머리를 들어 석불의 전면을 보니 한 막이 펼쳐졌다. 스크린에는 소녀와 유재 사이의 연분이 나타났다. 천상의 연분과 인간세상의 연분이 있었는데 선연(善緣)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 생에서 소녀의 수명이 비교적 짧았기 때문에 2년이 지나면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유재와는 그리 많은 만남을 안배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래 그들은 주불이 법을 전할 때 시대에 부부의 이름으로 신이 되는 길을 걷게끔 되어있었다.
이런 것을 다 보고 소녀는 매우 감개했으며 유재 역시 어쩔 수 없이 소녀에게 몸조심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아이는 눈물을 머금고 “장래 신과 천상의 안배를 잊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유재 역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소녀와 청풍, 유지, 유재 세 사람은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가치 있는 소식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2년 후 소녀는 중병에 걸렸고 세 사람은 소녀의 부모와 함께 수레로 소녀를 홍석애 앞으로 데려가서 이곳 산수와 작별하게 했다. 소녀의 당시 소원은 자신이 장래 법을 얻는 그 일생에 반드시 이 지역의 토지를 돌보겠노라고 했다.
이때 강 수면에서 구름이 비쳐 나왔는데 ‘남(南)’, ‘장존(長存)’이란 글자가 나타났다. 비록 그리 규칙적이진 않았지만 희미하게나마 알아볼 수는 있었다.
소녀는 이것을 보고 가벼운 소리로 말했다.
“아마 신께서 이미 우리에게 장래 주불이 법을 전하실 방향과 지명을 알려주신 것 같아요. 때가 되면 우리는 반드시 다함께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서 미소를 머금고 두 눈을 감았다.
유재, 유지, 청풍은 비록 소녀가 당시 생에 이렇게 가야함을 알았지만 정말로 그녀의 사망을 대하자 몹시 슬퍼했다. 한나절이 지나 청풍이 말했다. “우리 너무 슬퍼하지 맙시다, 생사는 하늘에 달린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보았으니 장래 주불이 대법을 널리 전할 때 잘 수련하기로 하지요. 적어도 우리가 정념을 지니기만 한다면 소녀와의 인연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도 점점 슬픈 음성을 그쳤으며 소녀의 부모와 함께 그녀를 잘 묻어주고 묘비를 세웠다. 그리고 소재지로 돌아갔다.
금생에 소녀는 이미 법을 얻었고 청풍, 유지, 유재는 아직 얻지 못했다. 소녀는 법을 얻은 후 자연스럽게 대법의 진상과 아름다움을 청풍, 유지, 유재에게 말해주었다. 그들은 대법에 대해 모두 정념이 있는데 특히 유지와 유재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 수련인을 돕고 있다. 과거에는 청풍이 유지, 유재 두 사람을 도왔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청풍이 그들의 도움을 받을 대상이 되었다. 소녀와 유재 두 사람은 금생에 부부가 되었는데 대학교 때 첫눈에 반한 사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재는 금생에 신이 준 기능을 잘 전승해 그들 영역에서 뛰어난 인물이 되었고 ‘소녀’의 생활도 자연히 아주 좋다. 이 역시 여신이 떠날 때 그들에게 귀중품을 준 전조를 인증한 것이다. 사실 그들이 장래에 돈과 지위가 있는 환경에서 신이 되는 길을 걸어 나올 것을 암시한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우연히 유재의 원신과 소통했을 때 그는 많은 일을 너무 상세하게 쓰지 말 것을 부탁했다. 현재 중공 사악의 박해기간이기 때문에 나도 이 점을 고려하여 일부 상세한 절은 적당히 처리했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부탁한다.
바로 다음과 같다.
천리 유배에 기연을 만나니마난을 두루 겪자 광명이 드러나네.홍석애와 백석애에서 신이 알려주시니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손잡고 돌아가세.
千裏流放遇奇緣 천리유방우기연魔難曆盡光明顯 마난력진광명현紅白石崖神開示 홍백석애신개시今朝珍惜攜手還 금조진석휴수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4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