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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심법: 완약강절(婉約江浙)

글/ 석방행

【정견망】

이런 시가 있다.

달이 지니 까마귀 울고 하늘 가득 서리 나리는데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 보며 근심 속에 잠을 청하네고소성 밖 한산사 종소리나그네가 묵는 뱃전까지 들려오네.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夜半鍾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당나라 장계(張繼)의 《풍교야박(楓橋夜泊)–밤에 풍교에 정박하다》

또 이런 시가 있다.

출렁이는 호수의 빛 비 개니 더 좋은데안개 낀 산에는 내리는 비도 기이하구나.서호를 월나라 서시에 비유하자면담박한 의상에 짙은 분이 적당하네

水光瀲灩晴方好 수광렴염청방호山色空蒙雨亦奇 산색공몽우역기欲把西湖比西子 욕파서호비서자淡妝濃抹總相宜 담장농말총상의

《호수에서 술을 마시는데 맑다가 비가 오다(飲湖上初晴後雨)》 소동파

소주(蘇州)와 서호(西湖)는 강남 수향(水鄕)의 별칭으로 역대 문인과 묵객들의 표현을 거친 후 후세인들이 꿈에도 찾고 싶어 하는 이상향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옛 시를 읽으며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늘 시에서 묘사한 의경(意境)을 찾아 시인의 당시 심경을 느껴보고 싶어 한다. 이런 동경은 마치 꿈을 찾는 것과 같은데 사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한 가닥 추억이다]

강소(江蘇), 절강(浙江)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연히 우아한 소주의 원림(園林), 아름다운 비단, 쾌적한 서자호반(西子湖畔), 3월 꽃처럼 피어오르는 안개 및 육조의 옛 도읍으로 불리는 남경(南京)과 동리(同裏), 주장(周莊) 등 강남의 고진(古鎮)을 떠올린다. 여기는 기후가 눅눅하고 물길이 종횡하여 줄곧 살기 좋은 땅으로 또 미녀가 많이 나는 곳이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면 강남은 신이 일부러 육성한 번화한 곳이다. 상해의 번영은 비록 근대에 시작되었지만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남송부터다.

강남은 부드러운 아름다움으로 유명한데 이는 황하 문명 속의 강하고 굳센 것과 함께 공동으로 중화 문명을 완전한 표현해낸다.

역사상 회계(會稽 원래는 산 이름으로 절강 중부에 위치)는 대우(大禹 우임금)로 인해 유명해 진 곳이다. 나중에 또 월왕 구천 때문에 새로운 내함이 첨가되었다. 회안(淮安 회음 진한시기) 한신(韓信)과 명나라의 오승은(吳承恩 서유기 저자) 및 근대의 관천배(關天培 역주: 아편전쟁 시기 청나라 장수로 영국군에 맞서 싸우다 순국)로 인해 세상에 유명해졌다.

또 항주의 서호(西湖)는 백거이(白居易)와 소동파(蘇東坡) 덕분에 유명해졌고 소주의 풍교(楓橋)와 한산사(寒山寺)는 장계(張繼) 덕분에 사방에 유명해졌다. 상해 서휘구(徐彙區) 화경진(華涇鎮)은 황도파(黃道婆 송말원초의 유명한 방직업자이자 기술 혁신가로 청나라 때 포목업의 시조로 존중되었다) 때문에 나중에 후인들의 기억에 남는다. 또 남경은 강남에 안거한 조정의 수도 외에도 부근 회하(淮河)는 부유한 기운이 충만하며 공자묘는 유가 문화를 더 폭넓게 다져주었다.

영파(寧波)는 장서루(藏書樓 책을 보관하는 누각)인 ‘천일각(天一閣)’으로 멀리까지 유명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 많은 유명인들이 모였던 곳이다. 게다가 하모도(河姆渡 신석기) 유적지와 고대 월요(越窯 월 지방 도요지)의 소재지다. 또 전국적으로 유명한 회양채(淮揚菜 회양 요리)의 발원지가 바로 강소 회안과 양주 일대다. 강소, 절강 일대의 역사문화 명인은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 외에도 아주 많다. 가령 서불, 유방(劉邦 한고조), 당백호(唐伯虎), 김성탄, 황종희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당나라 두목의 옛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남조의 480개 사찰에 얼마나 많은 누대가 안개비에 젖었나(南朝四百八十寺,多少樓台煙雨中)”(《강남의 봄(江南春)》) 이 유명한 구절로부터 우리는 420년~589년 시기(남조)에 송(宋), 제(齊), 양(梁), 진(陳) 등 몇 조대(朝代)에 불교가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알 수 있다. 이후 바로 수당(隋唐) 시기로 대일통(大一統)이 후 중국 역사상 두 번 째 휘황한 시기였다(첫 번째는 진한시기).

많은 사람들이 강남 사람들은 풍속이 유약하며 겸손하게 사람을 대한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그곳 풍토가 사람에게 다져준 성격의 특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일체는 모두 그렇게 자연스럽고 풍족했기에 사람들도 옷이나 음식을 놓고 다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외래 요소가 들어올 때는 강남인의 혈기도 거저 준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명나라 때 소주 사람들은 동창과 서창 특무의 가혹한 수탈에 항의해 폭동을 일으켰다. 또 명나라 말기 진회(秦淮)의 여러 기생들과 문인 학사들이 함께 정부의 폭정에 항쟁했고 류여시(柳如是 역주: 명말청초의 여류시인으로 반청 활동가이자 전겸익의 첩)와 전겸익(錢謙益), 이향군(李香君), 동소완(董小宛)과 모양(冒襄)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나중에 청나라 병사들과 ‘양주(揚州)’, ‘가정(嘉定)’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양주십일’과 ‘가정삼도嘉定三屠’ 두 사건은 모두 이 지역 민중들이 청나라에 항거한 것으로 성이 함락된 후 많은 백성들이 청군에 학살당했다.)

몇년 전 나는 몇몇 강소성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과 이야기할 때 그들이 말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은 북방인과 달라. 우리 그곳 사람들은 욕하는 소리가 큰 것을 보면 사람은 갈수록 더 멀어져. 반면 북방 사람들은 걸핏하면 손을 쓰지.”

이 역시 아마 한 측면에서 그곳 사람들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곳 복사꽃이 예쁘고 강물이 맑으면서도 먹어보면 맛이 아주 달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여기를 중화문화의 후원에 비유한다. 조정에서 관리를 지내다 너무 오래되어 실증난 사람이거나 쫓겨한 사람들이 이곳에 돌아와 작은 마을을 찾아 맑은 물가에 머물며 조용히 지낸다. 우아한 저택을 짓고 아름다운 풍경을 누리며 지내는 등등.

사실 이 모든 환경과 인문적 요소 역시 창세주께서 일찍이 안배한 것으로 중생이 법을 얻기 위해 기초를 다진 것이다.

본문에서 쓰려는 것은 자조(子照)라는 요리사가 강남에서 법을 찾으러 다닌 이야기다. 그의 당시 발자취는 오늘날 강소성, 절강성과 상해 일대에 두루 미친다.

청나라 중기 그는 남경 교외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명나라 후기의 재자(才子)들과 기생들이 나라를 위해 일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이야기로부터 그는 무슨 직업이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하려 하면 큰일을 할 수 있음을 알았다. 나중에 점점 자라는 과정에서 몇몇 서당 선생을 만났는데 이들 선생에겐 공통의 특징이 있었다. 요리를 잘했으며 동시에 상나라 재상 이윤(伊尹 원래 요리사였다가 탕임금에게 발탁되어 재상이 됨)의 사적을 그에게 들려주었는데 요리를 배우다 때가 되면 마찬가지로 나라를 도울 수 있다고 했다. 그 역시 이런 환경속에서 끊임없이 훈도되었다.

나중에 15,6세 되었을 때 그는 양주, 회안 일대에 도착했다. 회안의 한 주점에서 그는 이곳의 유명한 요리사를 만났고 그와 이야기할 때 요리사가 말했다. “사실 무슨 요리든 어떤 재료와 방법을 쓰는가가 가장 중요한게 아니라 마음이 가장 중요해.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생각한다’고 하지. 다시 말해 사람들은 먹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는 말이지. 우리가 고객에게 가장 존경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고 게다가 이곳 사람들의 음식습관에 적합하게 만들면 자연히 식객들의 인정을 받게 되지.”

이곳에서 그는 두 달가량 머물렀다. 원래 더 일찍 떠나려 했는데 공교롭게도 며칠간 연달아 비가 내렸다. 그래서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물렀다. 어느 날 할 일이 없이 좀 쉬고 있었는데 꿈속에서 수염이 매우 긴 백발노인이 그를 데리고 어느 대전(大殿)으로 인도했다. 이곳에서 그는 요리사가 요리하는 것을 보았다. 이 요리사는 인간 요리사와 달리 음식을 만드는데 칼을 쓰지 않고 비녀처럼 생긴 것으로 식재료를 잘랐다. 그러면 식재료는 저절로 상태가 변하거나 막대기나 고무래 모양으로 변했다. 조미료도 매우 간단하여 몇 가지만 있었다. (자세히 쓸 수 없으니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식재료는 매우 다양했지만 거의 다 채소였고 육류는 거의 없었다.

몇 가지 식재료의 조합에 조미료와 요리를 더하면 모두 두터운 내함을 드러낼 수 있다. 생명이 먹은 후 생명의 어느 부분에 어떤 영향이 있었고 심지어 생명경지를 제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전에는 몰랐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요리사가 특정 식재료를 조합하는 과정 중에 해당 식재료를 어느 신이 안배하여 그곳에 가서 식물이 되게 배치하는지를 보았다. 또 어떤 생명에 의해 발견되고 어떻게 그것이 식용할 수 있는지 등등을 발견했다.

이 장면을 보고 그는 식재료는 모두 부동한 종류의 에너지 물질이며 부동한 식재료의 합리적인 조합이 생명에 대해 매우 관건적인 영향이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을 때 어떻게 배치하는가는 간단한 교제문제가 아니라 한 생명의 과정의 중요한 부분에 관계됨을 알았다.

(주: 《자치통감》 기록에는 한나라 때 황제가 어느 대신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이 황제가 대신에게 은총을 내리는 방식이었다. 이때 그 요리는 황제의 구미에 맞아야 한다. 고대에는 또 “복숭아 2개로 세 장사를 죽인다”는 이야기 등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다. 사실 반대로 말하면 어느 특수한 사람이 어떤 요리를 먹을 때 자기 구미에 부합하면 이것은 단순히 미각을 자극하는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과 자기가 어느 방면에 인연이 연결되는 문제이다. 사람이 어느 시간 내에 가정과 사회에서 환경 중 어떤 경우에 처하는가 하는 이런 요소들은 모두 연분이다. 선한 연분이거나 또는 악한 연분이 촉성한 것으로 일부 인간의 표현을 통해 사람과 사물을 대하고 현재의 ‘인(因)’을 만든다. 그리고 이후 과‘(果)’를 다진다. 맛있는 음식은 그중 한가지 표현이다.)

나중에 그는 대전에서 송나라 때 복장을 한 많은 사람들이 식사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다가가서 문인 복장의 한 사람 옆에 앉았는데 마침 빈자리가 있고 수저가 차려져 있었다. 그는 먼저 사람들에게 예를 행한 다음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먹는 중에 그는 모든 요리가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아버리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의 정신이 맑아질 뿐 아니라 사람이 날아갈 것 같았다. 막 그가 음식의 묘한 점을 느끼고 있을 때 옆에 있는 그 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항주에 가서 돼지다리 요리를 먹어보게, 이곳에는 없는 것이니.”

사람들은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 이 요리사가 방에서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오늘은 장래 요리로 인류문화를 다지고 개창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방법의 정수를 연기했습니다. 시간이 되었으나 모두 돌아가야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 그 모든 장면이 사라졌다.

이때 그는 급히 물었다. “무엇 때문에 저를 위해 연기하신 겁니까?” 하지만 대전을 포함하여 주위에 모두 다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깨어나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그러나 방금 꿈에서 맛본 미식(美食)의 에너지는 오랫동안 기억에 새로웠다.

이런 꿈에 대해 추적하는 마음으로 그는 세심하게 회양요리를 배웠다. 그것은 정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짐이 없었고 무슨 곡절을 만나도 타협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 일신의 능력을 연마했을 뿐 아니라 심성의 단련에도 뛰어났다.

한번은 경성에서 관리 한명이 왔다. 이곳 전문점에서 현지의 유명 요리를 했는데 당시에 아주 유명했다. 마침 주방의 큰 사부가 자리에 없어 젊은 그가 부엌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과는 요리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요리 이름이 이 관원이 싫어하는 것을 건드렸다. 그래서 관원이 기분 나빠하면서 사장을 찾아 한바탕 야단을 쳤다. 그래서 사장은 단지 그를 다른 곳으로 쫓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는 양주, 진강 및 소주, 태호에서 멀지 않은 곤산(昆山 곤곡昆曲의 발원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미식 곤산욱(昆山燠)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적인 뜻은 송나라 때 황승영(黃勝永)이란 효자가 주점을 열었는데 경기가 좋지 않았다. 나중에 모친이 병이 났는데 의원은 천천히 조리하라고 하며 동시에 그더러 들짐승 요리를 하라고 했다. 나중에 또 풍수사를 만나자 그에게 집의 풍수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웃을 위해 이웃의 담은 뜯지 않고 자기 집 창문을 다 막았으며 이 나중에 장사가 좀 잘 되었다. 어느 날 거지가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며 또 짐승 요리를 좀 달라고 했다. 다 먹고 나서는 돈이 없다고 했는데 그도 화내지 않았다. 그 결과 거지가 그에게 오리 삶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시키는 대로 오리를 삶자 모친의 병이 조금씩 나아졌고 그의 장사도 점점 좋아졌다. 나중에야 비로소 이 거지가 여동빈이었음을 알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는 많은 요리법은 사실 신선이 전한 것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는 마음속에 또 의문이 생겨났다. “신이 이런 것을 전한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그는 소주에서 유람하며 많은 조경과 건축을 구경하며 많은 계발을 받았다. 소주의 조경은 매우 우아하고 운치가 있으며 세밀하고 다른 격을 갖추어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그는 어느 중간급 음식점에서 3년 넘게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더욱 소주의 풍토와 인정을 알았고 요리 재주와 내포도 많은 진보가 있었다. 나중에 태호 주변을 유람할 때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그에게 왜 소주, 강소, 절강 부근에 호수가 많은 지 말해주었다. 이것은 천상에서 일부러 배치한 것으로 이 호수들은 물을 가두는 작용을 한다. 사람이 합리적으로 이용하기만 하면 연안 거주민들이 큰 가뭄이나 홍수에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애초에 황하가 회수를 빼앗아 바다로 들어가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이렇게 큰일은 황하길을 고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아서 원래 있던 해안선을 바다로 옮겨 그로부터 문명을 증가시키고 바다에서 오는 재앙이 육지로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런 것은 표면적인 원인이다. 더 깊은 원인은 육지가 어느 시간에 얼마나 큰 범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는지 다 정해져 있었다. 이 사람들은 문명을 개창하는 동시에 장래 법을 얻는 기초를 다져야 했다.

그는 앞의 말은 어느 정도 알아들었으나 마지막 한마디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노인의 모습은 태호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큰소리로 쫓아가며 마지막 한마디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멀리서 두 글자가 바람에 날려왔다. “돼지 다리”

그는 이게 무슨 말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자기가 종전에 회안에서 꿈을 꾸었던 일을 생각나서 서호에 가보면 아마 좀 계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는 주점 사장과 주방장에게 하직하고 서호에 가보겠다고 했다.

한달 정도 지나서 그는 오늘의 주장, 동리, 녹직(甪直)과 상해 경계를 거쳐 항주에 도착해 서호에 도착했다, 먼저 소제(蘇堤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둑), 백제(白堤)와 기타 경치를 유람했다. 그 후 악비묘를 참관하고 마지막에 주점에 가서 동파육을 맛보았다. 아울러 그곳 사람들에게 동파육의 내력을 청해 들었다.

그가 그곳 사람이 보여준 소동파의 초상화를 보았을 때 단번에 꿈속의 장면이 생각났다. 자신이 바로 소동파 곁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는 발길 내키는 대로 전당강을 유람했고 그곳에서 전당호를 보았다. 그것은 정말 장관이었다. 불가사의한 것은 그가 전당호를 관람하고 있을 때 조수(潮水)가 솟아오르는 가운데 일부 역사 화면과 같은 것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종전에 그는 갑옷을 입은 신장이었으며 광대한 궁전을 지키고 있었다. 나중에 궁전 주인은 많은 일을 겪고 나서 저층으로 내려가야 했으며 궁전 입구에 왔을 때 그에게 작별했다. 그는 차마 궁전 주인과 헤어지기 싫어서 함께 내려왔다. 층층이 찾다가 마침내 어느 경지 중에서 한 천신이 성지(聖旨) 같은 두루마리를 들고는 그들에게 보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번에 마침내 창세주와 연분을 맺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들은 더욱 굳건하게 마음 놓고 더 낮은 층차로 왔으며 인간세상까지였다.

인간세상에서 그는 여러 차례 전생했다. 어떤 때는 창세주를 찾았고 때로는 인연이 조금 모자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진심을 품고 기다렸고 장래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서 법을 전하는 그날을 기다렸다.

그가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알았다. 알고 보니 자신의 생생세세는 모두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서 법을 전하시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서였구나! 그러자 종전에 자기에 두 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그것도 다 답안이 나왔다(신선이 요리하는 꿈을 왜 자기에게 보여주었고 태호 노인이 말한 마지막 한 구절에서 “이 사람들은 문명을 개창하는 동시에 법을 얻을 기초를 다져야 한다.”

그가 이런 것을 다 보고 그곳 주점에서 실습한 것부터 주방장이 되기까지 벌써 16년이 되었다. 요리 솜씨는 숙달된 경지에 이르렀다. 나중에 태주 부근의 안탕산(雁蕩山)에 신선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더욱 신과 더 접촉하고 싶고 창세주에 관한 일을 더 많이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안탕산 자락에 도착했다.

이곳 작은 주점에서 술을 마실 때 옆에 있던 식객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 돼지족발은 서호 변 돼지다리처럼 진짜가 아니야.”

그는 이 소리를 듣자 정신이 들어 말했다.

“만일 두 분이 진짜 ‘동파육’을 드시고 싶다면 제가 여기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단지 여기 사장님만 동의해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사장에게 이 일을 말했더니 사장은 그더러 이 요리를 해보라고 했고 두 식객은 먹고 나서 매우 만족했다. 사장은 그에게 또 무슨 요리를 할 줄 아느냐고 했고 그는 자기가 할 줄 아는 요리를 일일이 다 말해주었다. 사장은 그 말에 매우 기뻐하며 그를 이곳에 남겨 주방장을 시켰다.

일이 없을 때면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안탕산의 그 신선이 어디 있는지 물었고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보지 못했고 그냥 소문만 들어보았다고 했다.

어느 날 이곳에 아름다운 소녀가 왔는데 이 소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여기 와서 앉더니 ‘천장지구(天長地久)’를 주문했다. 그는 이 요리 이름은 자기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만들지 못한다면 사장이 싫어할 것이며 만들자니 소녀의 구미에 맞지 않을까 겁이 났다. 한참 생각하다가 이래도 저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나중에 그는 이 소녀가 말한 요리 이름을 생각해보다가 식재료루 산 모양을 만들고 다른 식재료로 큰 기러기 모양을 빚었다. 큰 기러기가 아래로 굽어 내려오는 모습이었다(여기에서는 대용추 폭포와 서로 눈부시게 빛남을 비유해 말한다. 안탕산 대용추 폭포는 낙차가 197미터로 중국에서 가장 높다)

그가 이 요리를 받들고 왔을 때 소녀는 먼저 놀라더니 이 요리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물었다. 그는 탄연하게 말했다.

“제가 처음에 회안에서 꿈을 꾸었는데 신선이 요리법을 가르쳐 주셨고 신선이 만든 요리를 먹었더니 갑자기 정신이 시원해졌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매우 신선을 동경하게 되었으며 노력하여 신선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태호에서 한 노인을 만났는데 전당강에서 내가 어떻게 내려왔는지에 관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신선은 내가 신선을 만나기를 갈구하는 심정을 분명히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사람과 사회상의 일체는 장래 창세주가 대법을 널리 전하는데 기초를 다지기 위한 것임을 압니다.

금일 당신이 이 요리를 원하는 것을 듣고 이전 경험이 생각났습니다. 이 산은 바로 안탕산인데 소문에 따르면 산 위에 큰 기러기와 큰 폭포가 있으며 기러기가 폭포로 향해 굽어 내려가는 것은 폭포의 물 흐름과 함께 있으려 하는 것입니다. 물은 산위에서 낙하할 수 있으며 마침내 천상으로 돌아갑니다. 기러기도 마찬가지로 지상에 내려앉을 수 있으나 하늘로 올라 갈수 있습니다.

그럼 이 각도에서 말하면 기러기와 산과 물은 ‘천장지구天長地久’의 가장 좋은 상징이 아니겠습니까? 소녀는 그 말을 듣고 미소 지었으며 매우 즐거워하며 말했다.

“우리 사부님이 정말 당신을 잘못 보지 않으셨군요. 장래 창세주의 격에 맞는 제자라고 느낍니다.”

말을 마치고 소녀는 사라졌다. 그는 신선을 만나지 못하고 이 신비한 소녀가 온 곳도 알지 못해 좀 실망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하며 법을 구하는 것도 그래야 함을 알았다. 이만큼 알면 되었고 다른 것은 인연을 따르자고 생각했다.

지금 자조는 여전히 요리에 자질이 높아 나중에 해외에 나가 마찬가지로 중화의 미식문화를 사방에 전하고 있다. 물론 파룬따파 수련자의 신분으로 일을 하고 있다.

바로 다음과 같다.

진회 호반에서 어린 시절 보내고회안의 꿈에서 신선 점화 받았네.태호 전당강에서 이전의 인연 알고오늘날 신의 길에서 요리와 함께하누나.

秦淮河畔過童年 진회하반과동년淮安夢遇神仙點 회안몽우신선점太湖錢塘明前緣 태호전당명전연今朝神路廚藝伴 금조신로주예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5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