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방행(石方行)
【정견망】
광동(廣東)은 영남(嶺南)에 위치해 있다. 옛날 이곳에 남월국(南越國)이 있었고 춘추 시기에는 백월(百越)에 속했다. 진(秦)나라 때 남해(南海) 등 세 군을 설치했고 한나라 때 교주(즉 交趾部) 등의 세 주를 설치했다. 당나라 때는 영남도(嶺南道), 송나라 때는 광동, 광서 양로(兩路) 원나라 때는 광동, 해북(海北), 해남(海南)의 삼도, 명나라 때는 광동포정사, 청나라 때는 광동성이 설치되었다.(자세한 내용은 《中國地圖分省地圖冊 廣東》을 참조할 것)
당, 송, 원 시기 광주廣州는 중국 대외 무역의 주요 항구였다. 당송(唐宋) 시기 광주는 중국 최대의 항구였고 명청(明淸) 시기에는 광주항이 유일한 대외무역의 대항구였다. 근대(1840년이후)에 들어와 이 지역은 굴욕과 영광이 교차해서 나타났다. 홍콩과 마카오는 근대에 무역으로 발생한 전쟁때문에 중시되었다. 나중에 뛰어난 지리적 위치 덕분에 국제적으로 중요한 무역의 중추이자 도박업이 발달한 곳이 되었다.
소관(韶關 사오관)시 곡강(曲江)에 위치한 남화사(南華寺)는 선종의 육조 혜능이 이곳에서 선종을 널리 편 곳으로 절 안에 혜능의 진신(眞身)을 모시고 있으며 남북조 시기에 처음 건설되었다.
임어당 선생이 쓴 ‘소동파전(역주: 국내에서는 지식산업사에서 ’소동파평전‘이란 제목으로 출판)’에 소동파가 혜주(惠州)로 폄적되어 간 이런 기술이 있다.
“그는 혜주에 정착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동의 40척 높이의 작은 산꼭대기에 집을 지었으며 그 집은 귀선성의 성벽과 매우 가까웠다. 하지만 집이 완공되기 전에 그가 아끼던 셋째 부인 조운(朝雲)이 세상을 떠나 그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소동파는 아내를 성 서쪽 호수가의 작은 산 부근에 묻었는데 불탑과 몇 개 사원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분묘를 만든 후 계곡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호수로 들어갔다. 분묘는 매우 구석진 곳에 있고 비탈은 몇 갈래로 나뉘어 언덕 높은데서 내려왔는데 마치 치마 주름 같았다. 묘 뒤편은 큰 소나무 숲이었다. 묘지 옆에 서서 보면 서쪽 산뒤의 첨탑을 볼 수 있었으며 대략 2, 3리를 가면 큰 절이 몇 개 있었다. 유람객은 황혼의 종소리와 적적한 소나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인근 사찰 스님이 돈을 마련해 정자를 하나 지어 조운을 기념하게 했다.”
“매장한지 3일 후인 8월 6일 밤에 광풍 폭우가 내렸다. 다음날 농민이 묘 곁에 거대한 발자국을 보았다. 사람들은 부처님이 와서 그녀를 동반해 서방극락세계 데려갔다고 믿었다. 8월 9일 밤에 혼을 초도하는 경을 읽으려고 했다. 예식이 시작하기 전에 소동파와 아들이 함께 자세히 발자국을 보았다.” (소동파전》에서 인용)
소동파가 혜주와 관련해서 이렇게 많은 글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화 문화사에서 아주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역주: 소동파를 지칭)이 혜주라는 이 토지, 사람들 및 관련된 신과의 연분이 매우 크구나.’
남송 말의 또 다른 인물 문천상(文天祥)은 원나라에 저항하다가 포로가 되어 주강구(珠江口)의 영정양(伶仃洋 링딩양)에서 천고의 명시 《과영정양(過零丁洋)–영정양을 지나며》을 썼다. 그중 마지막 두 구절 “인생에 자고로 죽지 않는 사람 있으랴 일편단심을 역사에 남기리라(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汗青)”는 대대로 중국인을 고무시켰다.
광동은 객가인(客家人)이 집중된 곳인 동시에 교향(僑鄉 교포들의 고향)이다. 개평(開平 카이펑)의 망루와 촌락이 이런 문화의 대표를 이루었고 주강 삼각지 역시 중국에서 경제가 가장 발달한 지역 중 하나다.
본문에서 쓰려고 하는 것은 주명(朱明)이라는 사람이 중국 근대에 매주(梅州)에서 조주(潮州), 게양(揭陽)과 혜주를 거쳐 홍콩, 마카오, 광주, 불산(佛山), 개평, 양강(陽江)을 거쳐 담강(湛江), 서문(徐聞)으로 가서 법을 찾아다닌 일이다.
주명은 당시 작은 가게의 사장으로 매주에서 차와 과일을 팔아 생활했다. 장사는 잘될 때도 있고 못될 때도 있었다. 주명도 늘 그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날씨가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그의 점포에 어떤 사람이 왔는데 이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혜주산 사전유(沙田柚 귤의 일종)와 여지(荔枝)를 사고 싶다고 했다. 주명이 두 가지 과일을 꺼내 와서 그더러 고르라고 했다. 그는 보더니 이건 모두 정통이 아니며 신선하지도 않다고 했다. 그 후 또 그는 이곳의 다른 과일과 차를 보더니 이런 것은 모두 매우 정통이 아니라며 가버렸다.
주명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생각했다. ‘내가 가진 이것이 정통이 아니라면 원산지의 것을 찾아보자.’ 그래서 그는 먼저 게양으로 가서 차를 볶고 청피리青皮梨 오엽烏葉여지의 생산지에서 자세히 그곳의 환경과 규범적인 생산 방식으로 생산되는 원래 즙과 맛의 차와 과일을 관찰했다. 한번은 주명이 농민들과 이야기하는데 한 농민이 말했다. “우리 조상님이 하신 말씀인데 이 작물 역시 영성이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착하게 대하면 그것들이 좋은 보답을 해준다고 합니다.”
이 농민은 여지를 하나 땄을 때 놀라며 말했다.
“이 여지가 마치 내게 말하는 것 같네. 그것이 다 익었으니 내게 보답을 해야 한다고 하네?” 주명은 이런 장면을 보고 많은 계발을 받았다.
나중에 그는 혜주에 가서 소동파가 살았던 곳을 방문했고 소동파가 이곳에 남긴 일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또한 정통 사전유와 진융의 여지를 맛보고는 느낌이 정말 다른 것을 느꼈다. 맛이 다른 문제에 대해 그는 현지 노인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노인이 말했다. “설사 종자가 같더라도 (잡종이나 변이된 것이 아닌) 다른 토질과 수질에서 생산된 과일은 맛이 자연히 다르다네. 하물며 이런 종자는 이미 불순하게 되어버렸어. 그러니 먹으면 맛이 더욱 다르다네.”
이때 어떤 도사 모습을 한 사람이 걸어와서 그들이 과일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과일을 먹는 것과 사람이 되는 것은 유사점이 많아요. 과일에는 각종 맛이 있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로 생명 특징이 서로 다르지요. 하지만 생명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합니다. 일체는 한 가지 신성한 일을 위해서 온 것입니다. 생명이 이전에 나쁘게 변했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 세상에 온 것입니다. 더욱 고층의 생명은 이런 것을 보고 생명이 훼멸되는 겁수를 지나가도록 하고 장래 법을 전해 생명이 돌아갈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생명은 장래 인간세상에 법을 전하는 고층 각자와 연분을 맺어야만 구도가능성이 큽니다.”
주명은 이 말에 매우 놀라 즉시 말했다.
“그럼 저는 어디로 가서 그 대각자(大覺者)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해변 부근을 따라 가보게.”
도사가 말했다.
그래서 주명은 정식으로 장래 인간세상에 법을 전할 대각자를 찾는 여정에 올랐다. 먼저 그는 홍콩에 도착했다. 당시 홍콩에는 영국인이 많았다. 그 역시 영국의 일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기에 영국인을 찾아 정황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곳 사람을 통해 비교적 잘 아는 영국인 한사람을 찾았는데 그는 “중국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찻집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함께 영국인이 믿는 기독교와 여왕의 정황을 이야기할 때 주명은 이번 여행의 목적이 장래 인간세상에 법을 전할 대각자를 찾는 거라고 했다. 어쩐 일인지 그 “중국통”이 갑자기 놀라며 말했다. “내가 중국에 오기 전에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꿈속의 신이 점지해주기를 중국에 가서 진정으로 나를 구도해줄 신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이 말을 들으니 장래 인간세상에 법을 전할 대각자가 전할 대법은 분명 세계적인 것일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신봉하는 신이 이렇게 점지하지 않았을 거예요!”
주명도 듣고 매우 놀랐다.
나중에 주명이 마카오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두 명의 포르투갈인을 만났다. 이 두 사람과 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할 때 뜻밖에 이 두 사람도 말했다.
“중국은 지금 비교적 낙후되어 있고 굴욕을 당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장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중국 영해에 접근했을 때 우리는 검은 색은 진한 연기가 지나간 후 노을빛이 크게 드러나고 하늘에 거대한 신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장래 중국인이 한바탕의 겁난을 지나간 다음 반드시 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명은 주강 입구로 거슬러 올라가 광주와 불산에 도착했다. 이곳은 당시 경제가 매우 발달했는데 그는 그곳 과일을 맛보았다. 어떤 과일은 먹으면 매우 맛있었고 어떤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기의 게양과 혜주에서의 경험을 사장과 나누었다. 동시에 자기가 이전에 법을 찾으러 다닌 경험을 모두 말했다. 뜻밖에 사장은 그의 이 열성을 보고 자기도 어렸을 때 어느 스님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한번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장래 한 성자(聖者)가 동북에서 대법을 널리 전하실 텐데 때가 되면 사람들이 이곳에서도 그를 볼 수 있으니 때가 되면 기회를 소중히 하시게.”
주명이 물었다 “그 스님은 그게 언제인지 말 안했어요?”
“언제라는 말은 안했어요.” 사장이 말했다.
주강 강변에서 주명은 점점 멀어지는 배를 보며 깊은 감촉을 느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속세 욕심의 바다에서 무거운 짐을 싣고 왔다갔다 하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끝없는 욕심의 바다에서 깨어날 수 있는가? 생명이 진정 해탈을 얻게 하는 대법이 널리 전해지기 시작할 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치며 잘 항해할 수 있을까? 망망한 고해를 떠나 해탈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는 나중에 개평에 도착하여 이곳의 교포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교적 깊이 느꼈다. 그는 몇 집을 방문했는데 이런 집 사람들은 모두 해외에서 삶을 도모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몇 년에 한번 돌아왔다. 하지만 소식을 주고받으며 만나는 과정에 간절히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해외에서 돌아온 한 사람은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꿈에 장래 이곳에서 어느 층차 매우 높은 사람이 대법을 널리 전하는 지방이 될 것임을 보았어. 그래서 나와 이곳 땅의 연분이 반드시 더 굳건해야 해.”
양강의 해릉도(海陵島)에서 그는 남해에 손님으로 온 신선을 만났다. 신선은 그에게 그곳 일부 강산과 사물의 유래를 말해주었고 또 장래 각자가 인간세상에 와서 대법을 전하는 일을 언급했다.
그는 무명茂名을 거쳐 심강湛江에 왔으며 심강에서 동해도로 갔다. 그때 마침 현지 어부가 그물로 큰 새우 한 마리를 건져 올리는 것을 보았다. 이 큰 새우는 불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돈을 내어 이 큰 새우를 어부로부터 사서 방생해주었다. 날이 진 후 그가 여관으로 돌아갔는데 잠시 후 어떤 노인이 문을 두드렸다. 이 노인은 그를 보자 몸을 굽혀 그에게 생명의 은혜에 감사했다. 그는 영문을 몰라 노인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자기는 새우의 왕인데 낮에 잘못하여 어부에게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가 다행히 그에게 살아났다고 했다. 그의 구명지은에 보답하기 위해 그의 소원을 하나 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당신은 장래 인간세상에 와서 대법을 전하는 각자가 어느 때에 법을 널리 전할지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새우 왕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장래 각자가 인간세상에 와서 대법을 전하는 일은 해신들 사이에서도 전해지고 있지요. 우리 다른 물고기 족도 들은 적이 있는데 상세한 것은 모릅니다.”
말하면서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보충 설명했다.
“당신은 서문에 가서 경주(瓊州) 해협에 가서 그곳 해신에게 물어보세요. 그가 혹시 알지 모르죠.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이 해신은 한때 다른 해신들과 이런 일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주명은 듣고 즉시 다음날 서문의 경주 해협으로 달려갔다. 하양진(下陽鎮)에서 전산(前山), 용당(龍堂)을 거쳐 해안진(海安鎮)에 도착했는데 이런 지방에서는 그 해신을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해안진에서 서쪽 각미향(角尾鄉)까지 걸어갔다. 이곳에서도 내내 알아보았지만 사람들이 그런 해신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만일 그 해신을 찾지 못하면 그 장래 인간세상에 어느 시기에 대법이 전해지는지 이 의문이나 수수께끼는 파헤칠 방법이 없었다.
주명은 이 수수께끼를 너무나 파헤치고 싶었기에 그는 줄곧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각미향에 도착했을 때 그는 너무 피곤하여 해변에 도착했을 때 해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자기가 바다 안개에 둘러싸인 것을 발견했고 점점 이 바다 안개에 휩쓸려 바다로 걸어갔다. 이상하게도 바다속에 도착하여 몸 아래는 출렁이며 포효하는 바닷물인데 그는 빠지지 않았다. 참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어느 해신이 나타났다.
이 해신이 말했다.
“내가 며칠간 외출했는데 어제 돌아와 네가 나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주명은 해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장래 인간세상에서 각자가 어느 시기에 대법을 전하시는지 아십니까?”
그 해신이 말했다.
“약 일백년 정도 지나야 할 것이다. 평화로운 시기에 당시 집권자가 한 무리 젊은이들에게 총을 쏜 일이 지난 후일 것이다”
주명이 더 상세히 물었으나 해신은 “시간이 되었으니 자네는 돌아가야 하네.”라고 하면서 그를 해변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생에 중공의 집정자는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 청원하는 학생들에게 발포했다. 그 후 1990년 1월 1일 파룬따파 창시인 이홍지(李洪志 리훙쯔) 선생님은 다음고 같은 시를 쓰셨다.
소원(願)
망망한 천지 내 보기에는 작거늘끝없는 창궁은 누가 만드느뇨건곤 밖은 더욱 끝없나니크나큰 소원 위해 대도를 전하노라
茫茫天地我看小浩瀚蒼穹是誰造乾坤之外更無垠爲了洪願傳大道
(《홍음》)
또 1992년 5월 파룬따파가 세상에 널리 전해졌다. 불과 몇 년만에 배우는 사람이 1억 명이 넘어섰고 지금은 전세계 5개 대륙에 걸쳐 1백여 나라에서 전해지고 있다.
금생에 주명은 이미 일찍이 법을 얻었고 홍콩에 거주하고 있다.
바로 다음과 같다.
매주의 차와 과일로 연을 맺어주강에서 배를 바라보네.도사의 점화와 해신의 도움으로서문의 양주에서 미혹을 해결하네.
梅州茶果緣線牽珠江之上望影船道士點化海神幫徐聞瓊州解迷團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6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