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천애심법: 평당신서(平塘神書)

글/ 석방행, 사진/ 연아(蓮兒)

【정견망】

이 문장부터 시작해서 귀주(貴主)에서 법을 찾은 경력을 쓰는데 본문이 첫 편이다.

귀주를 말하면 주지하다시피 산이 높고 숲이 깊어 일부 작은 촌진(村鎮)들은 여전히 교통이 불편하고 경제적인 조건도 연안 지역보다 많이 뒤쳐져 있다. 많은 지역이 아직도 ‘원시림’ 상태에 있다. 하지만 바로 이것 때문에 대도시에 염증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무엇이 진정한 자연인지 한번 체험해보려 한다.

귀주는 운귀고원(雲貴高原)에 속하며, 고원지대가 89%, 기타 구릉이나 계곡 분지가 11%를 차지한다. 지질학적으로는 캄브리아기에 이곳은 바다였으며 제4기 지각운동 중에 점차 고원이 생겨났다. 귀주성은 장강(長江), 주강(珠江) 등 수계의 상류에 위치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르스트 지형이 있다. 즉 중국에서 가장 전형적인 생태 취약지역이다(자료는 《中國分省地圖冊 貴州分冊》를 참조할 것). 카르스트 지형의 특징은 물이 침식하는 종유석이나 석회암류에 속하는데 이들 암석의 주요 성분은 탄산칼슘이고 빗물도 약산성이다. 때문에 종유동, 지하천(地下河), 석순(石筍), 석림(石林) 등의 지형 특징이 많이 나타난다.

귀주는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성으로 귀주성에만 56개 민족이 있고 전 인구의 36.1%를 점유한다. 특히 묘족(苗族), 동족(侗族)은 전국 인구의 과반을 넘으며 포의(布依)족과 흘로(仡佬)족은 거의 대부분 귀주 중남부에 분포해 있다. 이들 소수민족 대부분은 가무에 능하고 독특한 문화 특색을 지녀 중화문화에 다양한 요소를 많이 첨가시켰다.

묘족을 예로 들면 그들은 중원 민족과는 달리 치우(蚩尤)를 조상으로 모시며 염황(炎黃 염제와 헌원황제)을 조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기서 과거 헌원황제가 치우와 큰 전투를 치른 역사를 돌아보고 우리가 평소 소홀히 했던 내용들을 일부 찾아보자.

《사기》 〈오제본기〉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

“헌원황제 때 신농씨의 세력이 약해졌다. 제후들이 서로 침략하고 백성을 괴롭혔지만 신농씨가 정벌할 수 없었다. 이에 헌원황제가 창과 방패를 익혀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을 정벌하니 여러 제후들이 모두 찾아와 복종했다. 하지만 치우는 가장 사나워서 이길 수 없었다.”

“치우가 난을 일으켜 황제의 명을 받들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여러 제후를 모아 치우와 탁록에서 전쟁을 벌였고 마침내 치우를 잡아 살해했다.”

여기서 사마천의 “치우가 가장 사나웠다”고 하는데 그 근거는 무엇일까? 《상고신화연의(上古神話演義)》 제11장에는 치우는 구리머리에 철 이마, 돌 정수리, 붉은 쇠로 된 갑옷과 병기를 주조하며 비바람을 부를 수 있고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헌원황제의 군대 무기는 나무, 대나무, 옥석 등으로 만든 것이었다. 나중에 헌원황제가 치우군사를 막지 못하자 서왕모는 차례로 구천현녀(九天玄女)와 소녀(素女)를 보내 돕게 했고 그제서야 비로소 치우를 물리칠 수 있었다. 치우가 패배한 후 원래 있던 부락 일부분은 염황부락으로 합병되었고 또 일부는 변경지역에 남았다.

행간의 뜻을 읽어 보면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당시 치우가 구비한 능력은 이전 차례 문명의 산물을 계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장비 면에 있어서 당시 헌원황제가 이끈 군대를 훨씬 뛰어넘었던 것이다. 이는 치우를 선조로 받드는 묘족 등 서남부 소수민족들의 문화가 중화민족의 문화와 너무나 다른 이유를 설명해준다.

사실 이 방면에서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대사는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중국 서남의 소수민족은 왜 그렇게 많고, 게다가 중국 근대 5천 년 문화와도 마치 단절되어 있는 것 같은가. 사실 이런 사람들은 5천 년 문명 이전에 남겨진 인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헌원황제와 치우의 대전은 사실 신구(新舊)문명의 체계의 싸움이었다. 상고시대의 결전의 성질을 제대로 알자면 우리가 오늘 표현하려는 내용을 다시 보면 좋을 것이다.

귀주에는 황과수(黃果樹)폭포, 안순(安順), 귀양(貴陽) 등 많은 유명한 지역과 명승지가 있다. 이들 명소에는 모두 수많은 생명이 법을 찾으며 다닌 온갖 고생으로 쌓여 있다. 이런 내용들은 후속 문장에서 말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평당(平塘)만 말해보자.

평당은 검남(黔南)시 포의(布衣) 묘족자치주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은 원래 그리 유명한 곳이 아니었지만 나중에 바위가 하나 나오는 바람에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그렇다. 이 바위는 바로 중공이 떠받드는 ‘구성석(救星石)’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망공석(亡共石)’이라 여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한 바위에 두 가지 이름이 있는가“ 이유는 ‘구성석’이라 부르는 자들이 공산당에 아첨하기 위해 바위에 새겨진 6번째 글자 ‘망(亡)’자를 고의로 빠트린 것이다.

반면 ‘망공석’이라 부르는 것은 그 바위에 적힌 글자가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產黨亡)’이기 때문이다.


 장자석 입장권


 유리 너머로 찍은 중국공산당망: 사진제공 연아, 판권: 정견망

현재 이 관광지에는 유리문과 감청 설비가 설치되어 사람들의 논의를 방지하고 있다.

평당현(平塘縣) 관광지에서 중국과학원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한 결과 이 돌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인공적인 조각이 아니지만 너무나 교묘해서 감탄할 정도라고 한다.

이 바위 위의 몇 글자의 내력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들은 NTD사이트에 발표된 《아미산 고인이 드러낸 귀주 ‘장자석’의 진실한 내력(峨眉山高人透露貴州“藏字石”真實來曆)》란 문장을 보기 바란다.

본문에서 말하려 하는 것은 이 바위가 왜 평당현에 놓여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그 오래된 단풍나무가 왜 그 지역이 관광지로 건설되기 전에 저절로 쓰러졌는가?

이 단락의 경력을 말하려면 우리는 먼저 헌원황제의 상태를 설명해야 한다. 중공 무신론의 영향을 받은 역사학자들은 헌원황제가 설령 확실히 역사상 실존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기껏해야 일개 부락의 수령일 뿐이라고 한다. 사실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그런게 전혀 아니다.

헌원황제는 바로 신(神)이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출현해 중화 오천년 신전문명(神傳文明)을 개창했다. 헌원황제 자신이 신통법력(神通法力)을 구비했다. 다만 많은 때 다른 사람들이 도와서 협력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만일 다른 사람이 협력하지 않았을지라도 헌원황제는 마찬가지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단지 다른 생명이나 혹은 다른 신의 체계에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헌원황제는 치우 등 상고문명의 잔폭한 세력을 평정한 후 계통적으로 중화 신전문명 개창에 착수했다. 이런 종류의 개창에서 사실 헌원황제는 많은 ‘분신법(分身法)’을 사용했다. 그가 북방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남방에서도 출현했었다.

한번은 헌원황제가 창힐(蒼頡) 등의 대신을 거느리고 귀주의 경계로 갔다. 장래에 법을 전할 때 만약 교란을 당할 경우 사람들에게 경고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그들 일행은 많은 지방을 고찰했으며 나중에 평당에서 이 지역의 토지를 장악한 매우 높은 층차의 신(토지신이 아니다)을 만났다.

그 신이 말했다. “나는 극히 멀고 오랜 역사 전에 한 무리 특별한 생명들을 책임졌는데 그것들이 우주 중생을 해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그것들이 소멸되기 전에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장래 그것들의 말을 듣는다면 그것들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나중에 우주 구조를 관리하는 책임을 진 일부 신들이 이곳의 물질을 수집해 지구를 만드는데 사용했습니다. (상세한 것은 파룬따파 창시인의 글을 보라. 부록2) 이 과정에서 나는 줄곧 그것들을 보호해 왔습니다. 반고신은 원래 있었던 이런 물질들을 이용해 이 소우주(지구를 포함)를 만든 후 수많은 신들이 계통적으로 장래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 내려가 대법을 널리 전하시도록 체계적인 배치를 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만 중생이 대법을 똑똑히 알 수 있는지? 장래 법을 전하는 이가 어떤 방식으로 법을 전할지? 등에 대해 많은 실험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거인과 소인 등의 문명형식을 안배했다. 거인과 소인에 대해서는 청나라 기효람이 지은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중에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 왜냐하면 이 부근의 넓은 지역에 비교적 특별한 생명이 소각된 후의 잔해가 독특한 지리환경(구체적인 특징은 카르스트 지형)을 형성했고 도태된 문명의 보존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지역이 매우 편벽한 곳에 위치해 중원에서 새로 발전하는 문명에 무슨 큰 영향이 없으면서 일부 예전의 역사를 남길 수 있으니 일종의 기억으로 삼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필경 그 어떤 문명의 시초든 모두 신의 조화이지만 단지 나중에 사람들이 발전하는 과정 중에 점차적으로 사람마음이 패괴되고 변이되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신에 의해 도태된 것입니다.”

그 신은 이어서 말했다.

“이곳 산 위에는 사실 상고문명(上古文明)의 신들이 남겨 놓은 아주 많은 글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문자 체계와는 다르다)”

이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헌원황제 일행에게 보라고 가리켰다. 그들이 신이 가리키는 곳을 멀리 바라보니, 비록 어떤 문자가 완전하진 않지만 모두들(그들은 신의 역량과 지혜가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는 알아볼 수 있었다.(하지만 일반인은 보아도 이해하지 못한다) 문자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어떤 특별한 생명의 특징을 진술하면서 만약 어떤 생명이 멋대로 저층 생명을 통제해 불법(佛法)과 중생을 해친다면 그럼 온 하늘의 뭇 신들이 함께 그것을 주살할 것이며 그 특별한 생명은 자연히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천지의 뭇 신들을 증인으로 삼는다.


 글자가 새겨진 절벽. ‘()’, ‘()’, ‘()’ 글자의 원경. 사진: 연아, 판권: 정견망


 글자가 새겨진 절벽. ‘()’, ‘()’, ‘()’ 글자의 근경. 사진: 연아, 판권: 정견망

헌원황제가 보고는 장래를 자세히 관찰했다. 만약 정식으로 대법을 널리 전할 때 어떤 시기에 모 집단이 나쁜 생명들에게 이용당해 불법(佛法)과 불법 수련자를 교란하고 박해하는 일이 출현한다면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즉시 창힐에게 이곳에 후세인들이 보고 일부는 명백히 볼 수 있지만 약간의 미혹을 남기도록 세 글자 ‘書’, ‘九’, ‘評’을 직접 쓰게 했다.

그 중 ‘书’자는 비교적 매끄럽고 또 간제차로 표현했다. ‘九’는 한 획이 더 많아 보이는데 당시 창힐이 힘을 비교적 많이 주었고 암석이 단단하지 않아서 글자가 이런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評’자는 쓰고 자르는 두 가지 신력(神力)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도로에서는 거리가 꽤 멀어서 일반인들이 발견하거나 주의하기란 쉽지 않았다. 창힐이 이 세 글자를 썼을 때 ‘구평’이란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이미 준비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중에는 어떤 사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등등 일체가 포함되어 있는데 인간세상의 기연(機緣)이 과연 올 것인지에 달렸다.


 ()’ 자 근영, 사진: 연아, 판권: 정견망


 ()’ ‘()’ 근영, 사진: 연아, 판권: 정견망


 ()’, ‘()’, ‘()’이 새겨진 절벽과 장자석의 위치, 사진: 연아, 판권: 정견망

글자를 다 쓴 후 인간세상의 사물을 관리하는 다른 신이 마침 이곳을 지나다 헌원황제와 창힐 일행이 이곳에 이런 일을 안배하는 것을 보고는 나아가 진언했다. 인간세상에서 중화문화의 표현이 반신반인(半神半人) 방식에서 점차 표면상 사람 위주의 국면으로 전이되는 과도시기에 어쩌면 계속해서 이곳에서 사람에게 (더 명확한) 경고를 줄 수 있는 기연이 있을 것입니다. 헌원황제가 그 말을 듣고 또 자세히 안배했다. 아울러 그 신에게 이후의 일을 책임지게 했다. 그래서 아미산 고인이 말한 그 진실한 일이 있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그 옛 단풍나무를 말해보자.


 쓰러진 옛 단풍나무


 옛 단풍나무 앞의 비석. 사진: 연아, 판권: 정견망

그것은 본래 치우 쪽의 주요 장수였다. 나중에 헌원황제 쪽에 사로잡혀 살해당한 후 혼백(魂魄)이 시종 원한을 품었고 불공평하다고 느껴 저승에 매우 오랜 시간 머물렀다. 나중에 이 혼백이 헌원황제가 한 일의 일체가 장래 인간세상에 우주 대법을 널리 전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임을 알고는 속으로 후회했고 뭇 신들에게 회개하고 스스로 새로워지겠노라는 뜻을 설명했다. 뭇 신들은 층층이 위로 보고를 올리자 그것이 한때 부면 작용을 일으킨 것에 근거해, 그것으로 하여금 망공석을 수호하는 작용을 하게 했고 그것의 표현상태를 이용해 경고하게 했다.

그래서 망공석이 왕국부(王國富-亡國夫와 같은 발음)에게 발견된 후 여기서 이 일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했을 때 아마 중공이 표면적으로 태평성대를 노래할 때 그것이 콰당하고 넘어져 그 나무의 내재적 진실을 표현해 사람들더러 위기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인식시키고 더 나아가면 ‘중국공산당망’을 볼 수 있게 했다. 이때 ‘구평’ 두 글자는 마치 주문처럼 ‘중국공산당망’을 영원히 번복할 수 없는 국면이 되게 했다. 사실 당초 헌원황제가 창힐에게 이 두 글자를 쓰게 한 목적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마치고 이제 우리는 연아(蓮兒)가 이곳에서 법을 찾은 인연을 말해보겠다.

한나라 초기의 일이다. 당시 이곳은 점차 중원 왕조와 연계가 시작되었다. 야랑국은 처음에 “한나라와 야랑국 중 어느 나라가 더 큰가?”라고 할 정도로 모호하던 상태에서 중원 왕조는 점점 이곳을 중시하게 되었고 아울러 이곳에서 더욱 효과적인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연아는 한나라 중기 이곳의 여파현(荔波縣)에서 출생했다. 그때 그녀의 집에는 삼남매가 있었는데 그녀가 둘째였고 위로 오빠, 아래로 여동생이 있었다.

한번은 삼남매가 밖에 나가 놀 때 한 노인을 만났다. 이 노인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가 중원에 가서 본 것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이것이 연아 일행을 끌어들였다. 삼남매는 중원에 대해 아주 깊은 인상을 가졌다. 여파현은 카르스트라 지형이라 아이들은 늘 빛이 잘 드는 종유굴에 가서 놀곤 했다.

한번 그녀들이 큰 종유굴에 들어갔는데 한참 놀다 보니 배가 고팠다. 그러나 밖이 갑자기 어두워져서 매우 무서웠다. 오빠는 좀 당황했지만 연아는 오히려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 원래 장소에서 꼼짝 말자. 잠시 후면 날이 밝아질 거야.” 이때 그녀 동생이 무서워하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과연 잠시 후 하늘이 맑아졌고 그녀들은 얼른 동굴에서 달려 나왔다. 집 부근에 돌아갔을 때 어느 자상하게 생긴 노인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금 내가 일부러 하늘을 어둡게 하여 너희들의 담을 한번 시험해보았지. 보아하니 연아는 충분히 합격했구나. 하지만 오빠와 동생은 연아가 이끌어준 후에야 두려움에서 벗어났군.”

그러더니 노인이 소매 속에서 한 장의 지도를 꺼내 연아에게 주었다. 그림에는 하나의 절벽이 그려져 있었고 거기에는 글자 같은 게 있었다. 세 어린이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본 노인이 말했다.

“너희들은 20년 후 평당에서 이 글자가 새겨진 절벽을 찾아가거라. 때가 되면 한 신이 중요한 일을 너희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꼭 성실하게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20년 후 삼남매는 이미 장성해서 가정을 이뤘고 또 각자 자기 아이들이 생겼다. 이때 그들은 여전히 예전의 약속을 기억했고 함께 여행을 떠나 글자가 있는 절벽을 찾아갔다.

사실 20년 간 그녀들도 부단히 이 글자가 새겨진 절벽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 절벽과 유사한 곳이 평당에 몇 곳 있었다. 그들은 몇 곳을 찾아가보았다. 하지만 신인은 만나지 못했고 다른 곳으로 찾아갔다. 마침내 그녀들은 장포향(掌布鄉)에서 그 절벽을 찾았다.

멀리서 바라볼 때에 절벽은 그들에게 절벽에 새겨진 글자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마치 영화를 상영하는 듯했다. 이래서 그녀들은 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신이 한 분 나타났다. 그도 20년 전 그 노인처럼 자상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모두 가정이 있다. 하지만 너희들의 진정한 집은 하늘에 있는 것을 아느냐? 장래 창세(創世) 주신(主神)께서 인간세상에 법을 전할 때 귀주 이곳에도 오실 것이다. 너희들은 그때가 되면 반드시 노력해서 정진해야 한다. 아마 나쁜 사람이 박해하는 일이 나타날 수 있을 텐데 걱정하지 말거라. 어떤 신의 힘이 제어할 것이다. 때가 되면 너희들은 절벽에서 두 글자를 발견할 것인데 그 글자는 나쁜 사람을 완전히 억제할 수 있으며 그들이 반박할 수 없게 하고 사람들도 나쁜 사람의 진면목을 똑똑히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때 연아 오빠가 말했다.

“혹시 당신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신인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뭇 신의 일원이다. 다만 너희들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러 온 것이지. 다른 것은 너희들이 알 필요가 없다.”

몇 년 전 연아 일행은 함께 평당현에 가서 ‘망공석’을 보았다. 그러다 매우 우연하게 절벽에 글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으나 도로에서 멀어서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사진기로 확대한 후 자세히 보니 ‘구평(九評)’ 두 글자였다. 본래 당시에 공개하려 했으나 아마 인연이 닿지 않아서였는지 올해 설날 무렵에야 사진이 내게 들어왔다. 나는 사진을 보고 일부 일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에 정리하여 천하의 독자 여러분들에게 보여준다. 여러분들이 역사의 관건적인 시각에 반드시 하늘의 뜻과 신의 자비를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평당의 기이한 바위 하늘 뜻을 드러내고절벽의 새긴 글자 신의 뜻을 알리네.이번에 붉은 왕조 막을 내릴 때빨리 각성해 삼퇴하고 사당을 버려라.

平塘奇石示天意 평당기석시천의山崖題字顯神諭 산애제자현신유今朝紅朝落幕時 금조홍조낙막시快醒三退把黨棄 쾌성삼퇴파당기

부가 설명:

1. 아미산 고인이 드러낸 장자석의 진실한 내력(峨眉山高人透露貴州藏字石真實來曆)一文網址https://www.ntdtv.com/gb/2018/11/19/a1399745.html

2.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은 설법에서 석회암의 내원과 우주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셨다.

“마(魔)의 피는 백색이다. 그러므로 석회암 그것은 사실 마의 피이다. 물론 그것은 죽은 물질로서 이 공간에서는 이미 작용을 하지 못한다. 폭발되었거나 소각되어 돌․모래․흙 이러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성이 없다. 그럼 인류는 그것으로 벽을 칠하고 염료로 쓰는데 이것은 모두 상관없다.”

“ 방대한 우주의 역사에서 이 지구는 여러 차례 바뀌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바뀌어진 것인가? 지구의 가장 표면적인 것은 이 한 층의 물질로 구성된 것이고 이 공간의 분자로 구성(組成)된 물질로 구성되었다. 그렇다면 곧 이 공간의 물질로 만들어야 했다. 우주 중에서 이 공간의 부동한 천체는 모두 새롭게 바뀌는 것이 있고 모두 신진대사의 상태가 있다. 일정한 천체가 해체된 후의 먼지나 혹은 찌꺼기를 우주 중의 방대한 神은 이러한 것을 수집하여 분류시키고 그런 다음 새로운 지구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지금의 과학자가 역사를 연구하고 지리를 연구함에 있어서 어떤 물질이 지구에서 얼마나 오래 동안 생겼다거나 지구가 얼마나 오랜 역사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전혀 조사해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물질은 지구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것은 아주 큰 한 덩이의 돌이었고 바로 대단히 큰 한 덩이의 천체였기 때문에 여기에로 가져와 지구로 만들기 전에 그것은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지구가 얼마나 오랜 역사가 있는지를 전혀 연구해낼 수 없다.”

(《미국 서부법회 설법》)

3. 관련 사진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또 이곳에 처음 싣는 것으로 저작권은 정견망에 속한다. 인용하려면 출처를 분명히 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6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