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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심법: 상강동정(湘江洞庭)

글/ 석방행

【정견망】

이런 시가 있다.

밝은 날 아름다운 그림자 상강에 드리우고유유한 시의 비는 악양에 넘치네.하늘이 내린 복지에 염제와 순을 제사지내고멱라강 영주永州영주靈姝를 드높이네

明天麗影浴湘江명천여영욕상강悠悠詩雨漫嶽陽유유시우만악양天澤福地祭炎舜천택복지제염순汨羅永州靈姝揚멱라영주영주양

이번 문장부터 우리는 주인공들이 호남(湖南)에서 법을 찾은 일에 대해 말해보자.

호남은 바로 동정호의 남쪽에 있다는 뜻이다.이곳을 지나는 강 중에서 상강(湘江)이 가장 길기 때문에 한글자로 줄여‘湘(상)’이라 부른다.이 강은 요임금 두 딸이 순임금이 붕어한 것을 알고 몸을 던진 곳이다.구의산(九嶷山)에 순의 능이 있고 주주(株洲)에는 염제(炎帝)의 능이 있다.

이곳은 하상주(夏商周)시기 형주(荊州)의 남부에 속했고 전국 시기에는 굴원이 유배된 곳으로 그는‘이소’, ‘구가’, ‘천문’등을 썼다.나중에 멱라강(汨羅江)에 투신했다.

당나라 때 유종원(柳宗元)은 영주(永州)에 귀양 갔을 때영주팔기永州八記》를 썼다.유종원의“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가렴주구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라는 문장은 이곳 사람들이 관아로부터 강제로 이사(異蛇뱀술)를 바치라고 압박을 받는 것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송나라의 명신 범중엄(範仲淹)은 등자경(滕子京)의 요구에 응해 천고의 명시‘악양루기(嶽陽樓記)’를 남겼다. ‘애련설(愛蓮說)’을 쓴 북송의 철학자 주돈이(周敦頤)는 호남 도현(道縣)에서 출생했다.송대(宋代) 4대 서원 중에서 악록서원(嶽麓書院)과 석고서원(石鼓書院)이2곳이 이 지역에 있고 오악(五岳)중 남악 형산이 바로 형양에 있다.

이외에도 상채(湘菜호남 요리)와 상수(湘繡호남지역의 자수)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봉황고성(鳳凰古城)과 장가계 무릉원의 경치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재작년 말 우리는 호남의 상덕(常德)과 소양(邵陽)을 지나 영주를 거쳐 계림에 도착했다.도중에 상강 상류를 경유했다.이것은 내가 상강을 처음 본 것으로 당시 마음속에 특별한 감촉이 있었고 내가 마침내 이 지역의 산수를 보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나중에 돌아올 때는 장사를 경유했는데 이곳에서 나는 또 이 지역 산수를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다.오늘 마침내 기회가 있어서 이 지방의 산수에 숨겨진 법을 찾으러 다닌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여기에는 역사와 인문의 요소가 매우 많지만 본 시리즈는 주로 법을 찾은 경험을 말하는 것이라 역사적 명승 중의 상세한 인연들은 상세히 쓸 수 없고 간략히 서술한다.

호남성을 말하자면 악양루는 범중엄과 대체 어떤 연분이 있는가?악양루는 범중엄의 문장을 빌려 중국에 이름이 났지만 반대로 말하면 범중엄 역시‘악양루기’를 통해“천하의 근심은 앞서서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나중에 즐긴다”는 인생관을 백세에 이름을 남겼고 또 대대로 중화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 굴원은 왜 멱라강에서 투신했을까?순임금은 무엇 때문에 구의산에 잠들었는가?등등 겉으로 보기에 우연처럼 보이는 요소들은 모두 종전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이런 것을 본 시리즈의 글에서 다 밝힐 것이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남송(南宋)시기에 나라 원강(沅江)의 도원(桃源)에 이영(李瑩)과 능운(淩雲)이라는 두 아가씨가 있었다.당시 나이는 둘 다14세였다.어느 날 그들이 함께 원강에서 놀고 있었다.그들은 원강변에서 자랐기 때문에 강물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작은 대나무 뗏목을 저어 강에 나가 놀았다.잠시 놀았는데 강에 한 무리 강도들이 나타났다.강도들은 그녀들이 예쁜 것을 보고 다가와서 그녀들을 잡아가려고 했다.아이들은 강변에서 자랐기 때문에 수영을 잘해서 강물로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수영을 할 때 큰 물고기를 하나 만났는데 그 물고기가 그녀들을 등에 태워 신속하게 동정호 방향으로 갔다.강도들이 한참을 추적했어도 따라잡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그 당시 동정호는 지금보다 훨씬 컸다.동정호 속의 한 작은 섬에 도착하자 그 물고기는 남자로 변해서 그녀들을 언덕으로 이끌어 섬 위의 큰 집으로 도착했다.그 남자는 웃으면서 농담조로 그 집의 원외에게 말했다. “내가 이 집 아드님의 두 며느리를 태우고 왔습니다.”

원외는 이영과 능운을 보더니 좀 겁이 난 듯이 얼른 피하며 말했다.

“우리 집 아이는 일찍 세상을 떠나서 아내가 필요 없소.”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원외는 그녀들을 이곳에 며칠 쉬라고 했고 그 남자가 말했다.

“너희들은 이 원외와 인연이 있어서 내가 이곳으로 데려 온 것이다.가족들에게는 염려하지 말라고 내가 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하고는 가버렸다.

이영은 비교적 호기심이 많아서 원외에게 물었다.

“그 분은 대체 어떤 분입니까?어째서 물고기의 형상이었다가 다시 사람의 형상으로 될 수 있습니까?”

원외가 대답했다.

“얘들아,너희가 모르는 게 있단다.그는 원강을 관리하는 신이다.너희들이 두려워할까 봐 큰 물고기로 변해 너희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럼 저희가 당신과 인연이 있다는 건 어떤 인연을 말합니까?”

능운이 이해하지 못해 물었다.

노(老)원외가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 사이의 연분을 말하자면 천상에서부터 말해야지.하늘에서 너희들은 모두 높은 경지의 신이었다.한번은 큰 호수 변에 왔는데 당시 나는 바로 그 호수의 신이었다.이곳에 나쁜 신이 왔는데 나는 호수 속 생명을 위해 그 나쁜 신과 싸웠다.아주 오랜 시간 싸웠는데 정말로 호수를 다 뒤집었다.바로 그때 너희들이 왔다.너희들이 내가 그 나쁜 신과 싸우는 것을 보았을 때 너희들은 손을 써서 그 나쁜 신을 쳐부쉈고 중생을 해치는 능력을 완전히 잃게끔 만들었다.

나중에 나는 너희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온 호수를 유람시켜주었다.호수에서 유람할 때 호수 바닥이 점점 갈라졌는데 호수의 물은 흘러나가지 않았다(물은 천상과 지상의 표현이 다르다)문득 갈라진 호수바닥에서 점점 한척의 배가 솟아났고 선상에는 매우 높은 경지의 신선이 앉아 계셨다.

천상에서 나도 많은 신선을 보았지만 종래로 이 신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 신이 말했다.

‘나는 더욱 높은 경계에서 왔는데 이번에 새로운 국면을 열기 위해 이 호수바닥에서 나왔다.바로 호수 중의 광대한 생명이 내가 온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나는 창세주(創世主)를 위해 인간 세상에 가서 법을 전하는 소식을 알리는 신이다.나는 창세주의 부탁을 받고 먼저 내려와서 혹은 돌아다니며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뭇신과 중생에게 창세주의 도래를 알린다.’

당시 내가 물었다.

‘그럼 부동한 경계에서 문제가 나타난단 말씀입니까?창세주께서 직접 내려오시는 겁니까?’

그 신은‘그렇소.그렇지 않다면 창세주께서 직접 오시지 않았을 거요.내려오실 뿐만 아니라 또한 삼계의 인간세상까지 내려가실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말에 얼른 대답했다.

‘나도 가고 싶습니다.’

자네들도 이렇게 생각했다.그래서 내가 이곳 동정호의 신이 되었고 너희들은 인간세상에서 전전하며 온갖 고난을 겪고 이번 생에 여인의 몸을 얻어 인연이 있어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능운이 말했다.

“그렇다면 원강을 관리하는 신과 우리의 연분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원외는“너희들과 그의 연분 역시 정말 크단다.천상에서 인연이 있었고 지상에서도 있지.우리 지상의 연분을 말해보자.순임금 때 너희들은 순임금 수하의 중요한 인물이었다.동시에 대우(大禹)를 도와 치수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었다.그래서 이번 생에 그는 원강을 관리하는 신이 되었고 이번에 너희들이 위험을 벗어나게끔 도와준 것이야.”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창세주를 만날 수 있습니까?”

이영이 급히 물었다.

“너희는 악양으로 가는데 멱라강을 거쳐 가고 장사를 지나 형산을 올라 염제능까지 가거라.”

능운이 말했다.

“지금 당장 가도 됩니까?”

“아니다,한 가지 기연이 도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하거라.”

기연이 어떻게 표현될 지 어느 시기에 올 지는 원외도 말하지 않았고 그녀들도 더 많이 질문하기에 멋쩍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이곳에 머물렀다.할 일이 없을 때 원외는 일부 시서(詩書)와 수행의 일을 가르쳤다.그녀들은 매우 총명했기 때문에 일부 시서의 것을 배우자 곧 알아들었다.수행에 대해서도 오성이 매우 좋아 점점 신통이 조금 생겼다.비록 이러했지만 원외는 아직도 법을 찾으러 떠나게 하지 않았다.약 십년 정도가 지나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왔다.이 불청객은 이곳에 오자 한 장의 쪽지를 남겨놓았다.거기에는“走(떠나라)”자가 쓰여 있었다.

다음날 원외는 그녀들에게 떠나라고 했다.그녀들이 맞은편 언덕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악양에 도착해 있음을 발견했다.이곳에서 그녀들은 악양루가 일찍이 삼국시대 오나라 때 노숙이 수군을 훈련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이때는 시문과 역사에 대해 좀 알았으므로 적벽대전과 삼국시기에 대한 의의를 알았다.

또 이 악양루는 당나라 때 많은 시인묵객들이 시를 읊던 곳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천하에 이름을 알린 것은 범중엄이었다.그는‘악양루기’를 써서 유가 사상에서 관리의 인생 태도를 도출해냈다.그녀들이 악양루에 올랐을 때 마치 장강 방향에서 한 가닥 안개가 날아오는 것 같았고 잠시 후 그녀들도 그 속에 갇혔다.

이 운무 속에 북송 관원 모습을 한 어느 사람이 그녀들에게 물었다.

“나의 그 시악양루기》를 읽어보니 어떻던가?”

그녀들 둘은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건 아주 좋았습니다.”

그 관원이 말했다.

“사실 나는 악양루와 연분이 매우 크다네.그때 설사 악양루에 직접 오지 않았더라도 그 글을 썼을 거야.”

그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좀 상세히 말해주세요.”

그 관원이 말했다.

“송나라는 하늘의 안배로 문화와 경제가 모두 번영한 왕조가 되었다.그중 많은 것들은 신이 의도적으로 안배한 것이다.시사(詩詞)도 그렇고 그림 역시 그렇단다.사실 그 누각은 등자경이 이곳에 있을 때 새로 지은 것이라고만 보지 말라.사실 이것은 천상의 건물을 인간세상의 재료를 사용해 만든 것이다.신은 인간에게 한가지 건축 자체를 남겨놓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일종 표면적인 것(시서,서화,건축 등등)을 통해 신이 사람에게 남겨주려는 문화와 내함을 싣고 있다.이것은 각 부류의 사람이 언어,문자,서화 등의 형식으로 표현해 내야 한다.당시 내가 이 글을 쓸 때 신(神)의 계발을 받아서 그 문장을 썼단다.

나와 악양루의 관계를 말하자면 천계(天界)의 일정한 층차에서 나는 이 누각의 관리를 책임지는 신이었다.이 누각은 천상에서 그 한 층차의 호법루(護法樓)였다.그 경계의 변두리에 위치하여 어떤 생명이 그 경계에 진입하려 하면 반드시 이 누각 앞을 지나가야 했다.

이 누각에 이런 용도가 있었기 때문에 신은 등자경을 점화해 이런 형식에 따라 복원하게 한 것이다.원래 삼국 시기 노숙이 지은 누각은 이것과는 풍격이 달랐다.물론 그것 역시 천상누각의 형상이긴 했지만 이것과는 달랐다.”

그 관원은 이런 것을 설명하는 동시에 그녀들이 천상에서 이 누각의 모양을 보여주었다.이것은 그녀들의 시야를 크게 넓혔다.

이어 그녀들은 멱라강 호반에 도착했다.이곳에서 그녀들은 현지 사람들이 초나라 삼려대부(三閭大夫)굴원(屈原)에 관해 하는 각종 이야기를 들었다.그녀들은 굴원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강변에 초가집을 짓고 며칠간 머물렀다.어느 날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렸는데 안개 같은 빗속에서 흐릿한 가운데 강에서 전해오는 초사(楚辭)를 읊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들이 얼른 초가집을 나와 강변으로 달려갔더니 머리를 산발하고 초나라 때 복장을 한 어떤 사람이 보검을 허리에 차고 강물 위에 서서는 끊임없이 읊고 있었다.정말이지 하늘에 하소연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들은 무의식중에 말했다.

“당신은 굴원이 아니십니까?”

그 사람은 직접 대답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과거에 해야 할 일은 내가 다 했다.다만 사람들은 내가 비분강개하여 나라를 위해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만 여기는데 사실 나는 도가의 시해(尸解)란 방식을 사용해 인간세상을 떠났을 뿐이다.사람들은 국가의 세속적인 방면에서 내 행동만 중시할 뿐 내가 천지에 대해 묻고 탐색한 생명에 대한 질문들은 늘 소홀히 했지.그것은 만물과 회귀의 길에 대한 생명의 탐색으로 하늘의 돌봄을 얻기를 희망한 것이었다.

나의 시‘이소’에서‘路漫漫其修遠兮,吾將上下而求索(길은 아득하고 수련은 머니,나는 위아래로 찾으려 하네)’ -중에서‘위아래’는 바로 천상과 지하라는 의미였다.나는 그 단락 역사에서 마땅히 다져야 할 것을 완성한 후 물에 몸을 던지는 형식으로 세상을 떠났지.또한 사람들에게‘단오절’이란 명절을 남겼지.사람들이 단오를 지낼 때 나를 회고하며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남겨놓으려 했던 것을 이해하는가가 중요한데 바로,집으로 돌아가는 길,신과 동행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이영이 말했다.

“그럼 당신은 왜 하필 다른 강이 아닌 멱라강에 투신했습니까?당신과 멱라강은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굴원이 말했다.

“내가 아래로 내려올 때 작은 용을 하나 만났는데 이 용이 매우 착해서 내가 장차 인간세계에서 겪을 수많은 고달픈 여정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지. ‘그 때가 되면 제가 있는 이곳으로 오세요.’인간세계에서 그는 멱라강이 되었고 이런 과거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비분강개했을 때 그의 품에 뛰어들었던 것이지.”

말을 마치자 굴원은 사라졌고 초사의 노랫가락만 남았다.

이어서 그녀들은 장사의 악록서원에 도착했다.송나라 진종(眞宗)이 쓴“악록서원”이란 편액 보고 이 서원이 흥성한 과정을 알게 되었다.악록서원은 소흥(紹興)원년(서기1131년)전란으로 불에 탔고 건도(乾道)원년(1165년)에 복원이 시작되었다.그녀들은 독서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보름동안 책을 보았고 일부 문화분야 어르신들과 좋은 교류를 했다.

교류 중에서 그들은 굴원과 가의(賈誼둘 다 장사와 인연이 있는 유명한 문인들이다.그들의 사적을 자세히 알고 싶으면 사마천의‘사기 굴원가생열전’을 볼 것)에 대해 토론했다.또 두보(杜甫)가 이곳 장사를 여행했을 때 상황(두보의 시 청명清明은 바로 이 시기에 쓴 것이다)과 일부 문학이나 사학 방면 서적의 가치에 대해 토론했다.토론과정에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해 이런 것들은 단지 일종의 지식과 문화를 전승하고 전파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니며 신이 인간의 이런 문자를 이용해 생명의 상태를 표현하고 생명더러 인간세상의 슬픔과 이합집산,무상함을 알게 하여 이를 통해 생명이 되돌아갈 길을 탐색하도록 한 것임을 알았다.

이런 것들을 분명히 알고 난 후 그녀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앉은 사람은 매우 감동했고 창세주와 인연을 맺어 그로부터 진정으로 생명 회귀의 길에 올라서기를 원했다.

그녀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형산으로 갔을 때 형산의 여러 봉우리를 바라보며 매우 감개무량했다.주봉인 축융봉(祝融峯)에서 한 수도인(修道人)을 만났는데 그가 형산의 내력에 대해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형산이 반고가 천지를 개벽할 때 왼손이 변한 거라고 한다.헌원 황제가 형산을 남악으로 삼았고 순임금도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다.당신들이 보기에 이 오악의 범위는 표면적으로는 상고시기 중원나라의 중심지대일 것이네.사실은 이 네 개의 큰 산은 모두 중악(中嶽)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어서 마치 하나의 집을 구성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네.이 구조는 위로는 천양(天陽)에 접하고 아래로는 지음(地陰)으로 연결되는 입체적인 모양이지.동시에 주위 사방에서 사악한 것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네.왜냐하면 산악마다 모두 부동한 수도인 및 각종 호법들이 방호하기 있기 때문이지.또 주변 사방은 점차적으로 중원을 향해 신하가 복종하는 모습을 이뤄 주변 사방이 중원 핵심문화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었지.

그곳의 산맥은 또 천상의 산맥을 따라 만들고 육성한 것으로 자연적인 것이 전혀 아니라네.예를 들면 축융(祝融)은 상고 시기의 인물인데 나중에 사람들에 의해 이곳 산신(山神)이 되었다.사실 축융은 매우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헌원황제를 도와 중화 오천년 문명을 개창하는 과정에 많은 공헌을 했지.이것은 사람들의 가장 표면적인 인식이며 사실 축융은 상천(上天)이 인간세상으로 헌원황제를 도우라고 파견한 신이며 헌원황제처럼 모두 신(神)이 사람 몸을 이용해 일을 한 것이지.다시 말해 그는 인간세상에서 완전히 신과 같은 신통을 크게 드러낼 순 없고 다만 보통 사람보다 더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지.아울러 위난에 처하면 천신(天神)이 신의 방식으로 돕게 되는데 기본적으로는 바로 이렇다.사실 헌원황제가 형산을 남악으로 세울 때 이후의 일이 다 잘 안배된 것이지.

왜냐하면 장래 헌원황제가 평민의 신분으로 사람 중에 나타나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기 때문이었지.그러자면 많은 복잡한 일들에 모두 상세한 안배가 있어야 하지.이곳 역시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지역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아주 많은 일들이 상세히 안배해야 한다네.”

능운이 호기심 있게 물었다.

“그럼 그 헌원황제는 우리가 전에 들었던 창세주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설마 같은 사람인가요?”그 수도인은 그저 웃으며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그녀들은 이곳 산봉우리를 하나씩 하나씩 다녔고 또 각종 수행인과 신을 만났다.그러면서 점차 수행과 역사상의 일부 일들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와 인식이 있게 되었다.

최후에 그녀들은 염제능에 도착했다.염제능에서 그녀들은 수령(守靈)의 신(神영을 지키는 신)을 만났다. (황제능이나 염제능과 같은 이런 능묘는 일반적인 능묘가 아니고 일반 황제보다 더 중요하다.때문에 하늘에서는 매우 신통이 있는 사람을 파견해 지키게 한다.일반인은 볼 수 없다.능묘가 있어야만 후인이 조상으로 인정한다는 개념이 있고 비로소 천백 세대가 지난 후에도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 신은 그녀들에게 염제의 일부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염제와 신농씨(神農氏)는 한 사람에 대한 다른 호칭이며 또는 부락과 추장을 다르게 부르는 방법이다.하지만 황제 시기의 염제와 백가지 약초를 맛본 신농씨는 한 사람이 아니다.신농씨는 한 부락이나 또는 그 추장을 부르는 이름이며 염제는 추장의 특징에 따라 부르는 법이다.

황제와 전쟁을 벌인 염제는 신농씨의 여러 세대 후예인데 이 염제가 신농씨 부락을 계승해 발전시킨 것이다.치우가 대표하는 것은 이번 차례 문명이 생기기 전의 문화이며 백가지 약초를 맛본 신농씨부터 황제시기의 염제가 대표하는 것은 헌원황제가 중화 오천년 신전문화를 개창하도록 길을 깔고 기초를 다지기 위한 것이다.이 헌원황제가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계통적으로 오천년 중원문화를 개창할 수 있었다.

그러면 염황(炎黃)간의 전쟁은 사실 인간의 문화를 전환하는 방식을 다진 것이다.후세의 왕조시대에 하늘이 부동한 왕조(王朝)의 생명에 부동한 문화를 준 것은 기본상 모두 전쟁을 통해 문화의 전환(文化轉型)을 실현한 것이다.

이때 이영이 물었다.

“그럼 당신은 창세주께서 장래 인간세상에 대법을 널리 전하시는 일에 대해 아십니까?”

그 수령신이 말했다.

“내가 알기에 장래 창세주께서는 동북(東北)지방에서 평민의 방식으로 나타나시고 널리 전하시는 대법은 우리 여기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락 구석까지 전해질 것이다.세상의 모든 생명은 다 이 법에 구도되기 위한 목적으로 온 것임을 알아야 하네.”

능운이 말했다.

“그게 언젠가요?”

그 신은 가만히 그녀들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만일 촛불이 아래로 향한다면(蠟頭朝下)창세주께서 법을 전하실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당시 그녀들은 촛불이 아래로 향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나중에 민국 시기에 그녀들은 상해에 전생했는데 부잣집 아가씨가 되었다.이곳에는 전등이 있어서 촛불이 아래로 향한다는(蠟頭朝下)뜻을 알게 되었다.그때 그녀들은 마음속에 생명의 의의를 찾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으나 도대체 어디 가서 생명의 의의를 찾아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금생에 그녀들은 각자 자신의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전법륜(轉法輪)》을 보았고 그 순간 이것이 바로 자기가 찾으려던 것임을 알았다.법을 얻은 후 그녀들은 각자 많은 장애와 마난을 겪었다.하지만 결국에는 둘 다 뛰쳐나왔다.단지 그녀들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이와 같았다.

필자는 그녀들이 계속해서 더욱 노력하고 해야 할 일을 더욱 잘하기를 희망한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7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