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 대법제자 김광하(金光河)
【정견망】
필자가 보기에 만물에는 다 영(靈)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나는 운 좋게 영성(靈性)을 지닌 벽돌 두 개를 얻었는데 여기서는 이 두 벽돌의 내력에 대해 말해본다.
18년의 풍상을 거쳤음에도 이 두 벽돌은 오히려 신기한 경험이 있고 아직까지 보존하고 있다.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자택은 장춘시 건설가(建設街)와 해방대로 교차로 서북쪽 코너에 있다. 즉, 장춘시 해방대로 103호에 있는 극히 평범하고 낡은 시민 주택건물이다.(사진 2 참조)
이 건물은 4층짜리 옛날주택으로 사부님 댁은 4층에 있었다. 즉 맨꼭대기 층이었다.(사진 3 참조)
나 역시 장춘 출신 파룬따파 수련자다. 필자의 장춘 집은 사부님 자택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부님의 옛날 집에 대해 잘 안다. 대법수련자에게 있어 이 집이 갖는 의미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1999년 파룬궁 박해 초기 이 집 아래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집을 수색당하는 바람에 사진을 잃어버렸다. 또 장춘의 다른 대법 수련자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매우 공경한다.
나중에 다른 동수가 쓴 《사부님이 장춘에서 법을 전하신 것을 회억하다 (1)》는 글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바로 이 작고 누추한 집에서 사부님께선 《전법륜》 등 몇 권의 초기 대법저작을 완성하셨다.”
때문에 내 맘속에서 이 옛집은 더욱 신성하다.
1999년 파룬궁이 박해 당한 후 나는 지역 경찰과 사구(社區)사람들의 소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돌아 다녔고 몇 년을 전전하다가 2002년 사부님의 고거 부근에 거처를 빌렸다. 그래서 늘 이곳을 지나다녔고 매번 지나갈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들어 몇 번씩 쳐다보곤 했다.
내 기억에 2001년 9~10월 어느 날 오전 연변(延邊) 대법제자 신연준(辛延俊 이미 박해로 사망)이 세 폭의 대형 현수막을 썼다. 가장 큰 것은 5~6미터에 달했고 노란 천에 붉은 글씨로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還我師父清白)”,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眞善忍)”을 적어 사부님의 예전 자택이 있던 건물에 걸려 했다. 우리 일행 9명이 그곳에 갔다. 신연준과 내가 4층으로 올라갔다.
당시 이 건물에는 이미 몇 집만 살고 있었는데 아마 철거를 앞두고 이사를 갔을 것이다. 사부님의 집을 찾아갔을 때 문을 봉인한 쪽지는 이미 오래되어 찢어져 있었고 문이 열려 있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도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가구도 없었고 단지 바닥에 돗자리로 만든 간이침대만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이곳에 잠시 거주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너무나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우리는 창문에 3개의 큰 현수막을 걸기로 했고 현수막을 건 후 곧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맞은편 인도에 멀리 서서 이 신성한 장면을 바라보았다. 이 세 폭의 대형 현수막은 조용히 걸려있었고 가을바람이 불어와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건물 맞은편 거리는 해방대로와 건설가가 교차하는 십자로였는데 지나가던 많은 차량과 행인들이 이 현수막을 보았다.
내게 인상이 꽤 깊었던 장면은 어느 군용차 한 대가 이곳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는 병사들이 가득 타고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고개를 내밀고 이 현수막을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면 길가는 행인들만 본 게 아니었다. 일행 중 한 여 동수는 전 우주의 신(神)들도 모두 이곳을 보고 있다며 감격해서 말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내게 있어 이곳은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2002년 여름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진상전단지를 나눠주고 돌아오다가 이 건물이 헐리는 것을 보았다. 꼭대기부터 한 층씩 철거했는데 인부들이 4층을 허물고 있을 때 마음이 매우 쓰렸다. 그들은 건물을 허물며 낡은 벽돌을 던졌는데 낡은 벽돌이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나중에 다시 팔기 위해) 긴 나무 홈통을 이용해 4층에서 미끄러져 내린 후 아래쪽에 있던 사람이 받아 다시 쌓았다. 나는 사부님 집 창문에서 내려오는 벽돌을 보고 아래에서 정리하는 사람에게 부탁해 벽돌 두 개를 얻었다.
마음은 쓰렸지만 비할 바 없이 운이 좋다는 생각을 품고 벽돌을 갖고 거처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신문지로 벽돌을 하나하나 잘 싼 후 테이프로 붙였다. 기회를 보아 내가 우리 집으로 가져가 베란다에 둘 생각이었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하자. 당시 사부님의 옛집을 강제로 철거한 데는 원인이 있었다. 그중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명혜망에 상세히 보도된 바 있다. 《대법창시인 장춘의 고거를 철거한 성우그룹 이사장이 정직당하다(拆除大法創始人長春故居的星宇集團董事長被停職)》 <참고자료2>
그러나 이 자리에 새로 건축된 건물의 이름이 성우명좌(星宇名座 사진 4)인데 신성우(新星宇)란 회사가 건설한 것이다. 신성우란 이 회사는 2005~2006년 장춘 성우그룹을 개편한 후 생긴 것이다(그림 5 참조).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게 아닌가?
구우주가 해체되고 갱신하여 신우주가 다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개인적인 인식에 따르면 현재 세간의 악인들이 구세력의 통제를 받아 고거를 철거했지만 사부님께선 세인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사악의 안배 위에 더 높은 안배를 하신 것이다. 창세주의 무량한 자비와 무량한 지혜다.
진실로 세인들이 빨리 깨어나길 바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두 벽돌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이 두 개 벽돌은 지금도 여전히 보존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 나는 파룬궁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았고 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살았다. 이 기간에 우리 집은 아내가 세를 주었고 또 세입자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 이들 세입자들은 우리 집이 겨울에 너무 추웠기 때문에 장기간 살지 않고 이사를 가버렸다.
마지막으로 세든 사람은 과일 행상이었는데 이곳에 살면서 다른 방을 창고로 삼아 과일을 보존했다. 과일 상자는 매우 높이 쌓여 있었다. 통풍과 습기방지를 위해 그는 도처에서 벽돌을 구해 상자 밑에 깔았다. 내가 감옥에서 나온 후 이 세입자는 몇 년을 계속 살았다. 집은 장기적으로 이 과일 장수가 살면서 창고 겸용으로 사용하여 매우 더러워졌는데 2013년이 되어 집을 회수하려 했다. 그래서 집을 기한이 되기 한 달 전 이 세입자에게 더 이상 계약하지 않는다고 통지했다.
집을 정리할 때 쓰레기가 매우 많이 나왔다. 상자를 받치던 벽돌이 한 무더기나 나왔는데 아주 신기한 것은 베란다를 청소할 때 이 두 벽돌은 조용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과일 장수는 상자를 받치기 위해 벽돌을 주워왔는데 장춘 이 도시 거리에서 버린 벽돌을 찾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는 오히려 한 무더기를 구해 왔으니 이는 그가 오랫동안 주워모아 이렇게 많이 구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벽돌은 줄곧 베란다에 있었는데 과일 상자 받치는데 사용되지 않았고 오랫동안 여전히 내가 그때 신문지에 싼 상태로 있었다. 그런데 두 벽돌은 누가 봐도 벽돌임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이사 간 몇몇 세입자들은 아마 벽돌이 필요하지 않았으니 이 벽돌에 주의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것은 말이 된다. 하지만 이 세입자는 과일 행상이 아닌가? 또 이곳에서 과일 장사를 한지 4~5년이었다.
벽돌을 가져와서 집 베란다에 방치해 둔 지 오랜 세월이 지나 이 벽돌이 재차 나타난 것은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였으나 줄곧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이 두 벽돌을 보존하기 위해 나는 얼른 그들을 단단한 종이로 다시 포장한 후 주방 안 아주 은밀한 곳에 숨겨놓았다.
나중에 이리저리 전전하던 나는 2013년 가을 한국에 왔고 2016년에는 이곳에 정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벽돌은 여전히 장춘 집에 보관 중이라 나와 함께 한국에 올 수 없었고 이것이 내겐 좀 유감이었다. 장춘 집은 줄곧 장춘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맡겨 대신 세를 주고 있었다, 이런 경험과 벽돌을 숨긴 은밀한 공간으로 인해 나 외에 누구도 이 벽돌을 발견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공교롭게 겹쳐져 장춘 집을 2018년 팔게 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부탁해 그 벽돌을 찾아 한국으로 부쳐 달라고 했다.
우편물을 받은 후 나는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마침내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사부님 고거의 전체 벽돌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모른다. 장춘에는 나와 유사한 경력이 있는 동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사부님 옛집의 이 두 벽돌이 전전하다 한국에 온 것이 기연이라는 점이다.
두 개 벽돌 중 하나는 내가 한국의 옥(玉)씨 성의 대법제자에게 주어 보관하게 했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소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것도 재미가 있는데 나는 김(金)씨 그는 옥(玉)씨이니 둘을 합하면 신기하게도 금옥(金玉) 두 제자가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 벽돌의 내력과 의미가 깊은 것을 잘 알기에 나와 마찬가지로 소중히 여긴다. 우리는 누구든 기회가 되어 사명의 최후가 되면 그 사람이 벽돌을 함께 거두어 세간에서 진정 이 벽돌이 필요할 때 그들이 인간세상에 드러나게 하자고 약속했다.
아무리 사소한 곳이라도 빠지지 않는 사존의 끝없는 보호에 감사드리며 사존의 안배가 없었다면 아무리 작은 한 가지 일이라도 원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려는 것은 사부님 고거의 두 벽돌에 이처럼 신기한 경험이 있다는 것으로 사부님의 위대함, 파룬따파의 위대함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세인들이여 빨리 중공의 거짓말을 버리기 바란다. 대법을 인정하는 것만이 유일한 출로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하고 자기를 위해 광명한 미래를 선택하기 바란다.
참고 사이트:
1. 《憶師父在長春傳法(一)》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06/5/13/127610.html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6/5/13/127610.html
2. 《拆除大法創始人長春故居的星宇集團董事長被停職》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4/18/99898.html
3. “長春豪宅”的真象-圖(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00/11/9/“長春豪宅”的真象-圖–267.html)
4. 《新星宇集團建設集團有限公司》
新星宇集團是在2005年—2006年長春星宇集團整體改制後應運而生的
http://jz.shejis.com/job/201403/article_11537.html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9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