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방행
【정견망】
당나라 시인 왕창령(王昌齡)은 말한다.
청해호 위에 낀 구름이 설산까지 덮은 날
외로운 성에서 멀리 옥문관을 바라보네
사막에서 싸우고 싸우다 갑옷에 구멍이 날지라도
누란을 쳐부수지 않고는 끝내 돌아갈 수 없으리
青海長雲暗雪山 청해장운암설산
孤城遙望玉門關 고성요망옥문관
黃沙百戰黃金甲 황사백전황금갑
不破樓蘭終不還 불파누란종불환
《종군행(從軍行) 7수 중 네 번째 수》)
이백도 일찍이 《새하곡(塞下曲)》을 읊었다.
새벽엔 쇠북소리 따라 싸우고
밤에는 옥안장을 품고 잠드네.
원컨대 허리춤의 칼 빼어들고서
단번에 누란(오랑캐)을 내리치고자.
曉戰隨金鼓 효전수금고
宵眠抱玉鞍 소면포옥안
願將腰下劍 원장요하검
直爲斬樓蘭 직위참누란
당나라 때 이 시에서 볼 수 있다시피 당시 서역에 있던 누란이란 나라가 중원 왕조의 대외 관계에 영향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중원왕조의 군주가 장령들에게 이런 기세와 결심으로 제거하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2019년 초겨울에 직장 일로 해남(海南)에 갔다. 그곳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나의 누란(我的樓蘭)》이라는 시가를 검색했다. 이 시는 누란고국의 쇠락을 의인화한 수법으로 애통한 마음을 표시했다. 이것이 아마도 나의 내심에 있던 문명의 흥망성쇠에 대한 관심과 연민의 마음을 건드린 것 같다. 노래를 듣고 난 후 새벽까지 몇 시간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2020년 중공이 무한폐렴(중공바이러스)을 은폐해 전세계로 확산시킨 결과 7월 28일 현재 감염국가는 189개, 확진자 1681만 8607명, 사망자 66만 1025명이나 된다. 이것은 각국이 공식으로 발표한 수치이니 중국, 이란 등 실제 상황을 은폐한 국가에서는 감염이나 사망자 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중공폐렴은 각 나라의 경제와 민생에 심한 타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 남방에는 수해와 지진이 끊이지 않고 황충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심지어 북경, 해남, 신강에는 여름에 눈발이 날리는 기상 이변도 자주 나타난다. 많은 백성들이 요행히 살아남아도 떠돌아다니며 편안히 살 수 없다. 이런 시기 우리에게 지위나 돈은 중요하지 않다. 재난은 바로 사람의 생명을 겨냥해서 오는 것이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누란을 생각해보니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누란 고국이 사라진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해 그동안 국내외 전문가들이 많은 노력과 많은 가설을 세웠다. 기후변화, 비단길의 변화 및 전쟁, 역병 등 다양한 설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관건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했으니 그것은 바로 겉으로 어떤 재난이든 재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폼페이가 화산에 매물된 것처럼 사람들은 이것은 하늘의 재앙이므로 막을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하늘은 일부 성자(聖者)를 인간 세상에 배치해 사람들더러 도덕을 중시하라고 했지만 많은 이들이 듣고도 못들은 체했다. 때문에 어떤 국가는 한동안 지킬 수 있었으나 얼마 후 또 도덕이 타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늘의 표준을 무시하고 심지어 놀리거나 모독한다면 그럼 이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안배한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 자연히 하늘의 징벌을 받거나 도태된다. 다시 말해 수많은 천재(天災)는 모두 사람이 도덕을 중시하지 않고 자연법칙을 위반해서 야기한 것이지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중공이 정권을 찬탈한 후 50년대 대약진, 강철 제련 등 하늘과 땅을 반대하고 인성을 반대하는 일련의 운동 중에 체현된 극단적인 무지와 미친 듯한 행동은 결국 하늘의 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천재인화가 빈번한 역사의 관건적인 시각에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체 무엇이 생명을 보전할 좋은 방법인가? (마치 인터넷에서 누군가 말한 것과 같은데 “해가 바뀔 때 폐렴이 오고 3, 4개월 지나 겨우 폐렴의 폭발을 견디니 돈도 많이 썼다. 직장에 나가려니 일자리가 없고 지금 또 강남에 대홍수가 났으니 이번에는 도망가야 하는구나. 2020년은 한마디로 살아남기만 해도 다행이다.”)
그것은 바로 중공을 멀리하고 거짓을 거절하는 것이다. 9자 진언(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을 기억하고 중공을 멀리하며 무신론과 그것이 선전하는 거짓, 사악, 투쟁, 사람이 하늘과 싸워 이긴다는 등의 사악한 논리를 버려야 한다. 하지만 파룬따파가 중시하는 것은 유신론이며 신불(神佛)은 그들을 믿는 사람을 보호한다. 따라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 하오”를 믿으면 자연히 신의 보호를 얻게 될 것이다.
됐다. 우리 이 방면에 더 많이 말하지 않겠다.
누란에 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란, 고사읍에 성곽이 있고 소금 호수에 임해 있다.” 또 “옥이 나고 갈대가 많으며 성류, 백양나무, 백초가 많이 나고 목축을 하며 수초를 따라 말, 나귀 낙타가 많다.”
누란 유적지는 타림분지 동쪽에 있다. 현재 말라붙은 라포박(羅布泊) 호수 서쪽이다. 신강 파음곽릉(巴音郭楞) 몽고 자치주 약강현(若羌縣)에 속한다. 한 무제가 장건(張騫)을 파견해 비단길을 개척한 후 누란은 중원과 서역의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중요한 역참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또 중앙아시아와 중원문화의 정수가 융합되었다. 게다가 본래 이곳 인종은 백인종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황인종과의 혼혈이 되었다) 그래서 문화가 매우 풍부하다.
다른 말로 하면 이곳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신장(神將)이 그 지혜와 능력을 세간의 사람을 통해 이곳(길을 지나가든 아니면 원주민이든)에 펼쳐냈다. 때문에 이곳에는 신의 지혜가 매우 풍부하게 녹아들어가 있다. 동시에 이곳은 또 중국 고대 번성 시기의 대외 무역의 중요 지점이라 다양한 지역의 상품과 문화의 상징이 이곳을 통해 전해졌다. 그래서 사실 누란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비하게 느껴지는 연분을 다졌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바로 이렇다. 사람들이 상용하는 중원과 중앙아시아 많은 물품이 모두 누란을 통해 유통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물품은 자연히 누란의 물질 원소가 들어 있고 이런 원소는 누란과 연분이 있다. 우리가 다시 이 물품을 사용할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품 중에 포함된 모종의 연분을 알고 공명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누란이 우리의 혼과 꿈과 얽혀 있게 된다. 게다가 우리는 과거 이곳에서 전생했거나 아마 원주민 역할도 했을 것이다. 아마 과거의 장사꾼이었을 수도 있다.
누란은 나중에 표면적으로 각종 원인으로 쇠락했다.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마침내 천천히 매몰되어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20세기 초부터 국내외 고고학자와 탐험가들이 이곳 유적지에 대해 여러 번 고찰했고 길이가 약 330여 미터에 달하는 정방형의 유적지를 발견했으며 대량의 정교한 문물들이 출토되었다. 성 주위 분묘에는 대량의 견직물, 화폐, 금은보석, 칠기, 옥기, 유리제품이 출토되었고 서방에서 유래한 회화, 조각, 예술품이 나왔다. 또 이곳 성에서 발견된 불탑 잔해는 지금까지 중국에 존재하는 가장 이른 종교 건축물이다. 그러니 당시 누란국의 번영을 볼 수 있다.
누란과의 연분에 관해 우리 먼저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Sven Anders Hedin)이 삽을 잃어버린 일부터 말하자.
1900년 3월 28일 스웨덴의 탐험가 헤딘이 탐험대를 이끌고 공작하(타림강의 지류)를 따라 라포박의 황량한 평원에 도착했다. 탐험대가 공작하를 따라 라포박 평원에 도착한 그날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탐험대는 숙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숙영을 위해 물을 찾아 땅을 파던 중 삽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한 위구르족을 보내 찾아오라고 했는데 그가 삽을 찾아 돌아올 때 위구르 족 안내원은 모래 폭풍을 만났으므로 재빨리 달렸다.
얼마나 멀리 달렸는지 모르지만 모래폭풍이 그쳤을 때 그가 천천히 눈을 떠보니 황량무인 지경인 폐허에 회색의 성벽, 오랜 고성, 긴 시가지, 비뚤비뚤한 집, 높이 솟은 흙 탑, 폐허가 된 봉화대 등이 있었다. 또 그의 발아래에 꽃이 조각된 목판과 고대 화폐 몇 개를 발견했다. 바로 하늘에서 의도적으로 안배한 것으로 뜻하지 않은 순간에 누란고성이 인간의 시야로 되돌아온 것이다.
누란 유적지에 대한 끊임없는 발굴을 통해 더 많은 문물이 출토되었고 사람들은 누란국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동시에 누란 원주민들이 왜 갑자기 사라졌고 국가가 소멸했는지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하게 되었다. 환경 문제도 21세기 세계 각국이 직면한 중요 의제이다.
만일 윤회의 각도에서 말하면 만일 누란과 연분이 매우 깊은 사람이 그 생에 위구르 안내원으로 태어났다면 누란의 수호신이 모래폭풍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인도해 천 년간 묻혀 있던 누란 고국을 발견하게 했을 것이다. 그 목적은 신이 육성한 누란이 덕을 중시하지 않아 쇠퇴에 이르게 되었고 마침내 신에 의해 도태된 실제 사례를 들어 오늘날 지구촌 사람들에게 덕을 중시하고 착하게 살기를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모두 신에 의해 역사에서 도태될 것이다.
오늘 나는 누란국 말기와 관련 있는 몇 사람이 법을 찾으러 다닌 경험을 말하고자 한다.
누란고국이 쇠퇴해질 무렵 장기간 곤륜산에서 수도하던 한 사람이 누란에 나타날 결말을 보고는 제자를 파견(천행이라 부르자. 당시 30세 정도였다)해 하산해서 그곳 사람들의 양지(良知) 일깨우게 했다.
바로 이때 이 수도인와 함께 수도하는 여자 도인이 말했다.
“이번에 천행(天行)의 임무가 매우 복잡하고 중요하니 혼자서는 사명을 완성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린 제자(운비雲飛 16세)를 파견해서 함께 가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수도인이 말했다.
“운비는 소녀라서 성인 남성과 동행하기에 불편할 텐데요.”
여자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 불편하지 않을 겁니다, 그곳은 중국이 아닌 서역이라 백성들의 풍속이 다르거든요. 또 제가 비아(飛兒 제자 운비에 대한 애칭)를 남장을 시키면 됩니다. 게다가 저들 둘은 정말 아주 인연이 있으니 함께 자신에게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일을 성취하게 한다면 이후 더 좋은 안배가 아니겠습니까!”
수도인이 듣고는 역시 도리가 있다고 느꼈다. 이에 천행에게 보검(寶劍) 한 자루를 주고 운비에게는 남색의 채릉(彩綾 채색 비단이란 뜻으로 1미터 길이의 비단천이자 법기)을 주어 여정에 오르게 했다.
두 사람(천행과 운비)은 대화를 나누며 곤륜산을 내려갔다. 이 과정에서 천행은 운비의 처지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황인종이 아니었다. 하늘이 곤륜산에서 도를 배우도록 그녀의 일생을 배치한 것으로 그녀가 속한 백인종 사람들에게 더 좋은 미래가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보다 구체적인 일은 운비도 몰랐고 오직 이만큼만 알뿐이었다. 천행은 사부님이 이렇게 안배하신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이때는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그들은 가는 길에 수많은 고생을 겪었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누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들은 누란국왕의 내심이 이때 좋지 않은 생명에게 점거당했음을 발견했다. 국왕은 진정한 신을 믿는 국민들에게 큰 박해를 가했고 기타 나쁜 신을 믿는 백성들은 크게 포상했다. 동시에 중원 왕조와 서역 열강 사이의 관계를 처리하는 것도 타당하지 못했다.
여기서 그들은 누란국왕의 한 어린 왕자(3살 가량)가 자신들과 특별한 연분이 있음을 알았다. 그들이 어린 왕자를 데리고 왕궁을 떠나려 할 때 천행과 운비의 사부는 사유전감으로 그들에게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이에 그들은 어린 왕자가 국왕의 영향과 피해를 받지 않도록 몰래 보호했다. (왜냐하면 이때 국왕의 내심이 이미 사악한 생명에게 점거당해 선량한 생명에게는 설령 자기 아들이라도 악행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왕자에게 한 시녀가 있었는데 이 시녀는 어린 왕자를 몹시 좋아했다. 이 시녀는 원래 국왕에게 쫓겨난 왕비의 소생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쫓겨난 비를 동정하전 왕비 궁전의 사람이 몰래 밖으로 보내 키웠던 것이다. 나중에 궁으로 돌아와 어린 왕자를 모시면서 기회를 엿보아 진짜 신분을 밝히려고 했다. 나중에 한 친척이 이 사정을 국왕에게 말했고 국왕은 시녀에게 원래 공주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다.
앞에서 우리는 이곳이 동서방 문화가 모이는 장소라고 했다. 수많은 부동한 종류의 신들이 모두 이곳에서 사람의 방식을 이용해 그들 각자의 문화와 지혜를 펼쳐보였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적 특징을 지녔다.
가령 음악과 무용을 말하자면 이곳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체계의 음악과 무용의 풍격과 양식에 익숙하다. 공주를 말하자면 그녀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춤추기를 좋아했다. 궁중에서 공주의 지위를 회복한 후에는 또 무용 전문가가 춤을 가르쳤다. 그녀가 춤을 연습하는 과정에 또 여러 차례 신적(神跡)이 나타났다.
한번은 궁녀들과 함께 한 가지 춤을 연습할 때의 일이다. 그녀는 궁녀들의 뒤에서 수많은 천녀(天女)들이 함께 거문고 소리에 따라 우아하게 춤추는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 춤을 보면서 자신의 심신을 정화할 수 있음을 분명히 느꼈고 그 천녀들이 춤출 때 강대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을 통해 공주는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공주가 춤출 때 자신이 마치 궁중 무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방이 상서로운 구름 위에 떠 있는 광활한 대전(大殿)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위에 산과 물이 있고 이 산과 물도 그들의 방식으로 따라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 미묘함은 인간으로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천행과 운비는 이때 누란인이 다시 덕을 중시하게 하기 위해 조야(朝野)에서 일부 신적을 나타냈다. 국왕이 알고는 그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국사(國師)로 삼았다. 누란국왕의 국사는 몇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들은 바른 길을 걷지 않고 국왕을 협박해 바른 신앙과 주위 환경을 박해해 천인공로하게 했다.
운비는 본래 목소리가 아주 좋았고 노래를 부르면 아주 청신하고 구성져서 듣기가 좋았다. 궁중에서 그녀는 또 이곳의 수많은 음악과 가곡을 접했다. 그녀가 감상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면 마찬가지로 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수행인이라 그녀가 이런 요소를 사용할 때 자연스럽게 보다 많은 생명이 참여하게 했고 에너지가 더 커졌으며 경지도 더욱 미묘(美妙)해졌다. 이런 것은 지면의 제한으로 일일이 말하지 않겠다.
오래 지나지 않아 누란국은 주위 다른 나라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공주는 그녀를 질투하던 왕후의 모함을 받았다. 왕후는 원래 공주를 독살하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운 좋게 구조되었다. 하지만 독약을 조금 마셔야 했다. 이때 천행과 운비가 모두 보고 있었으나 손을 내밀어 돕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주에게 마땅히 이 하나의 난(難)이 있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공주는 한 서역 상인의 도움을 받아 두 시녀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돈황(敦煌)에 도착했다.
사실 외모는 상인이었지만 그 상인과 한 시녀는 이때 겁난에서 이미 사망했고 천행과 운비 두 사람이 사부의 도움하에 그들의 신체를 빌려 이 사명을 완성한 것이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돌아오는 일(借屍還魂)”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신통법력으로 한 것이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삼언이박(三言二拍) 역주: 명나라 때 풍몽룡이 지는 단편소설집과 희곡 대본》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았을 것이다. 당나라 현종이 한번은 장과로(張果老)를 불러 술을 마시게 하자, 장과로가 술통을 어린 도사 모습으로 변하게 했다. 사실 고대에 어느 정도 도술이 있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이 시각 천행과 운비는 또 어린 왕자를 데리고 길을 떠났으며 두 사람은 가는 동안 몰래 공주일행을 도왔다.
길을 가는 동안에 곤경에 빠진 공주는 늘 고민했으며 자신의 운명이 고달프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그녀는 신변의 두 시녀에게 멀지 않은 곳의 호양림(胡楊林)에 가보게 했다. 시녀들이 그곳에 가보니 키가 매우 큰 사람이 서 있었다. 처음에 그녀들은 무척 놀랐으나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호양림을 관리하는 신이다. 이 나무가 생장해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3천년이 걸린다. 나는 그것들의 존재를 관리하고 있다. 이 나무는 사실 문명의 흥망성쇠를 견증하기 위한 것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우담바라가 3천년에 한번 피는데 전륜성왕이 세상에 와서 법을 전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라고. 대 사막의 호양나무는 사실 바로 사람이 덕을 중시하지 않으면 문명이 쇠락함을 보여주며 사람에게 심각한 교훈을 남겨주려는 것이다. 동시에 하늘이 육성한 생명의 강인함을 인증하는 것이다. 어쨌든 아무리 교란이 많고 환경이 열악하다 해도 그것이 마땅히 완수해야 할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 설령 황사에 깊이 묻히더라도 썩거나 부패하지 않고 그것들의 몸으로 천지를 향해 자신이 한때 존재했었고 또 휘황했음을 증명할 것이다.
사실 타림 강 지류의 공작하는 모두 하늘이 인간세상에 파견해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한 것이다. 그것들 배후에도 마찬가지로 신의 요소가 있다. 만약 사람들이 그것들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생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동시에 또 이후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 오시어 진정으로 천상으로 회귀할 수 있는 대법을 전하시는 바탕을 깔아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너희들 공주의 신세는 나도 알고 있고 그녀가 이 순간 매우 번민하고 있으며 왜 너희들을 내게 오게 했는지 다 알고 있다. 너희는 돌아가서 공주에게 알려라. ‘당신들은 이 겁(劫)을 지나가야 하며 이 일체는 모두 창세주의 도래를 기다리기 위해 질서 있게 안배한 것이다. 너희들의 고국(누란)은 역사에 의해 한동안 봉폐될 것이며 창세주께서 대법을 널리 전하실 세기 초에 너희들 금생의 어린 왕자가 그 베일을 열 것이다. 이것은 모두 질서 있게 배치된 것이다.”
이렇게 많은 말을 들은 두 시녀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중에 그 신은 호양나무 가지 하나를 가져와서 두 시녀에게 주며 공주에게 돌아가게 했다. 만일 앞으로 곤경에 빠진 공주가 무슨 일을 만나면 그 가지를 자세히 보라고 알려주었다. 말을 마치자 신은 사라졌다.
두 시녀는 호양나무 가지를 들고 공주에게 돌아가 신의 말을 전했다. 공주는 그 말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그 ’서역 상인‘이 곤경에 빠진 공주를 돈황에 데려왔다. 이때 돈황은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는 풍속이 매우 성행했기에 그녀들은 월아천(月牙泉) 주변에 머물렀다. 상인은 다른 장사를 해야 한다며 먼저 떠났다 (실제로는 상인과 시녀의 육신은 사망했으므로 진작 떠나야 했다) 곤경에 처한 공주는 두 시녀가 돌봤다.
얼마 후 천행과 운비 두 사람이 왕자를 데리고 이곳에 도착했다. 또 며칠이 지나자 공주가 병에 걸렸다. (사실 왕궁에서 왕후가 독을 써서 생긴 병이었다) 증세가 매우 심했는데 두 시녀도 잇달아 병에 걸려 도와줄 수 없었다. 그래서 천행과 운비 두 사람이 각자 그녀들을 돌보았다. 이 과정에서 월아천의 신도 늘 그들을 도왔다. 월아천의 신에 관해서 우리는 돈황에 관해 쓸 때 자세히 쓰겠다.
다행히 천행의 사부가 그에게 약물(藥物)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많이 가르쳤고 천행도 잘 사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두 시녀는 또 오는 길에 호양림을 지날 때 신선의 점화를 받은 일을 또 한번 말해주었다.
천행과 운비는 모두 오성이 좋아서 그들은 마치 사부가 그들을 파견해 하산시킨 근본 목적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생에 생명과 연분을 맺고 최종적으로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 법을 널리 전하실 그 시각의 도래를 기다리란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들은 매우 기뻤다.
이때 공주는 성격적으로 천행에게 매우 깊은 호감과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천행에게 직접 자기의 평생을 돌봐달라고 했다. 천행도 생각해보니 공주는 어쨌든 누란국의 대표라 할 수 있고 누란과 더 깊은 연분을 만들기 위해 곧 그렇게 하겠노라고 응낙했다. 운비는 사실 천행과 곤륜산을 내려오던 때부터 마음속으로 영원히 그를 따르기로 했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을 보고도 더 이상 생각지도 않았고 공주와 천행을 도와주었다. 운비와 두 시녀는 이때부터 전심전력으로 아무런 원망도 없이 공주와 천행 및 왕자를 돌보았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그들이 월아천에 온지 6년째 되던 어느 날 밤이었다. 천행의 보검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천행은 좋지 않은 생명이 출현해서 보검이 우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운비에게 공주와 어린 왕자, 두 시녀를 보호하게 하고 자신은 집밖에서 보검을 품에 안고 조용히 가부좌하며 사악한 생명이 출현하길 기다렸다.
한참이 지난 후 몇 마리 괴물(怪物)이 나타났다. 천행이 주문을 외우자 보검이 분체(分體)하더니 괴물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몇 번 만에 괴물의 머리를 잘랐다. 천행이 검을 들어 괴물을 완전히 죽이려 하자 뒤편에 있던 누란국의 몇몇 국사들이 나타났다 (괴물에 대해 말하자면 머리를 잘려도 완전히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없었다).
앞에서 우리는 천행과 운비가 국사가 되었을 때 누란국에 또 다른 국사가 몇 명 있었는데 정도를 걷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었다. 그들은 천행 일행을 보자 먼저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 몇이 정말 이곳에 있었군. 우리는 왕후의 명령을 받들어 공주와 어린 왕자를 데리고 누란으로 돌아가려 하네. 당신과 운비 둘은 만약 우리의 말을 따라 저들을 우리에게 내주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네.”
이때 천행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운비가 남색 채릉을 들고 말했다.
“능력이 있으면 너희들 왕후더러 오라고 해라. 내가 그녀에게 내 법기가 얼마나 대단한 지 보여주겠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 운비가 채릉을 한번 흔들자 순식간에 하늘에서 다양한 종류의 신수(神獸 하늘의 동물)들이 나타났다. 이 신수들은 곧바로 몇몇 국사들에게 달려들자 깜짝 놀란 국사들은 머리를 감싸고 도망갔다.
사실 운비가 드러낸 능력을 보고 천행 역시 적지 않게 놀랐다. 그 역시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공주와 어린 왕자 및 두 시녀도 매우 놀라게 했다. 공주는 이때 속으로 운비에 대해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체면 때문에 시종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그 후 이렇게 평탄한 세월이 지나갔다. 하지만 오년 후 어느 날 천행의 보검이 또 특이한 소리를 냈는데 이번에는 귀를 매우 자극할 정도였다. 천행은 즉시 경계하며 아마 한바탕의 악전 고투가 될 것을 알았다. 운비에게 공주 일행을 보호하게 하고 그는 신통으로 사부와 연락해 사부더러 얼른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공주는 또 호양나무를 관리하던 신이 준 호양나무 가지에 매우 위대한 신이 나타나 이 난을 도와주는 것을 보았다.
2, 3일이 지나자 이곳에 매우 기괴한 사람이 왔다. 이 사람은 평소에는 보통 사람과 같았으나 저녁이 되면 손발 머리가 거의 다 신체 내로 축소되어 온 신체가 동그란 공처럼 되었다.
이 괴인은 해가 진 후 천행이 거주하는 마당으로 굴러 들어와서 말했다.
“나는 누란 지방을 관리하는 살신(煞神 이는 묘사하는 말이며 누란 지구에 대한 바른 신이 펼친 좋고, 바른 장에 교란 작용을 하는 나쁜 신이었다)이다. 원래 누란국 몇몇 국사들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 와서 공주와 왕자를 데려가려고 왔다. 그렇지 않으면 너와 운비 모두 혼백이 날아갈 것이다!”
천행이 말을 하려고 하는데 공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했다.
“제자는 함부로 하지 말라. 사부가 이곳에 있다.”
음성이 떨어지자 마자 하늘에서 몇 사람이 내려왔다. 천행의 사부뿐 아니라 운비의 사부 및 다른 도인 몇이 있었다. 이 도인들은 그 살신을 포위해 하나의 장을 펼쳐 살신을 가두었다. 이렇게 했음에도 그 살신은 정말 능력이 대단해서 도인 몇이 힘을 합해야 겨룰 수 있었다. 그 한차례 대전이 밤새도록 지속되었다.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달려와서 구경을 했다.
나중에 새벽이 되지 한가닥 금광(金光)이 쏘아져오며 천만갈래의 상서로운 기운이 내려왔고 한분의 거대한 부처님께서 중간에 나타나셨다.
도인들과 운비 일행은 땅에 무릎을 꿇고 공경하게 거대한 부처님의 강림을 맞이했다. 그 살신은 한쪽에서 깜짝 놀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거대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창세주로 장래 인간세상에 와서 대법을 널리 전하려 한다. 만약 너희들이 원한다면 때가 되면 모두 내 제자가 될 수 있다.”
도인들과 천행은 모두 때가 되면 따르겠다고 표시했다.
운비가 창세주께 여쭈었다.
“당신께선 언제 대법을 널리 전하기 시작하실 겁니까?”
창세주께서 말씀하셨다.
“누란성이 발견되는 그 세기의 말이다.”
이때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 때가 되면 제가 발견해도 될까요? 호양나무를 관리하는 신이 이미 말했거든요.”
공주도 지지 않고 말했다.
“저도 한몫 하겠습니요! 제 몸에는 누란과 연분이 새겨진 수기가 있어요!”
창세주는 미소를 지으시며 묵인했다.
이때 살신이 말했다.
“때가 되면 나는 여전히 방해할 것이오. 만일 내가 없다면 당신의 제자들은 아마 수련 성취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오.”
창세주가 미소를 지었다.
“그 때는 정법을 할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별 말씀이 없었다. 말을 마친 창세주는 천만갈래의 빛을 지니고 떠나갔다.
도인들과 천행, 살신은 남았다. 살신은 아직도 그들과 계속 싸우려고 손을 뻗었으나 아무리 해도 자신에게 아무 능력도 없음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그것의 일체 능력을 창세주께서 거두어 가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신은 화나 나서 꽥꽥 고함을 질러댔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자 잠시 후 풀이 죽어 떠나버렸다.
이 한바탕의 일을 경과하여 천행, 운비 일행은 사부가 그들에게 하산하라고 한 목적을 더욱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들 일행은 이 세상에서 수도하는 방식으로 창세주가 대법을 널리 전하는 그 시각이 도래하기를 기다렸다.
그 일생의 최후 순간 공주는 운비에게 말했다.
“사실 나는 네가 천행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금생에 네가 나와 왕자를 돌봐준데 대해 감사한다. 만일 장래 창세주께서 대법을 널리 전하실 그날이 오면 그 순간에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만날 것이며 반드시 이번 생의 은혜를 갚을 것이다.”
말을 마친 공주는 눈을 감았다.
나중에 천행과 운비 둘은 사부의 가르침에 따라 왕자와 두 시녀를 데리고 곤륜산으로 돌아가서 계속 도를 닦았다.
금생에 천행과 운비는 각기 대륙의 다른 지역에 태어났다. 그들에겐 공통의 특징이 있는데 서역 누란에 대해 버릴 수 없는 정서가 있었다. 동시에 서역풍의 음악과 춤을 매우 좋아하고 그리워한다.
천행은 속세 중의 도인과 같아서 속세 일에는 관심이 없고 반대로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운비는 노래와 춤에 장점이 있으며 공주와 왕자는 스웨덴 탐험가가 누란 유적을 발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중 왕자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위구르족 안내원이었다. 공주 역시 그 탐험대의 일원이었다. 공주는 금생에 노래도 잘 불렀다. 왕자와 두 시녀는 금생에 한집에 태어났고 이들(천행과 운비를 포함)은 이미 법을 얻었다. 누란의 그 살신은 경찰로 전생해 대법제자에게 악행을 하다가 최후에 악보를 받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바로 다음과 같다.
누란은 천년 모래에 파묻혔는데
신이 부여한 옛 운치는 여전하구나
이전 인연으로 이곳에서 수행의 길을 걸으니
이번 생에 법의 연꽃이 피어나길 원하노라
樓蘭千載掩沙海 누란천재엄사해
神賦古韻仍猶在 신부고운잉유재
前緣此地修行路 전연차지수행로
今朝了願法蓮開 금조요원법련개
설명: 법을 찾는 간신난고는 반드시 주인공이 두 발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고생스레 찾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한 지방에서 굳은 신념으로 창세주께서 오시길 기다리면서 각종 관념과 사악한 생명의 안배 및 교란을 타파하는 등의 다른 방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부록: 에포크타임스 중공바이러스 감염 통계
http://cn.epochtimes.com/gb/nf1368917.htm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0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