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천애심법: 흥개동영(興凱冬影)

글/ 석방행

【정견망】

이런 시가 있다.

정정당당하게 세간을 다니며
창천에 대해 무한히 겸손하고
발아래 길을 착실히 잘 걸어
조용히 무아를 생각하며 시간을 아끼네

堂堂正正走世間
謙卑無限對蒼天
紮實走好腳下路
靜思無我惜時間

현재 많은 사람들은 명승지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 중에 또 많은 이들은 고상한 이론을 주고 받거나 큰소리로 떠들거나 하는데 마치 자기가 경내의 일부 장소에 대해 좀 많이 알거나 더 깊이 아는 것 같다. 작은 점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예의가 없는 것이고 크게 보자면 오만방자한 것으로 신에 대해 불경한 일이다.

이백은 《야숙산사(夜宿山寺)-밤에 산사에 묶다》라는 시에서 말했다.

“함부로 큰소리 내지 않으니 천상의 사람 놀랄까 두렵다네(不敢高聲語,恐驚天上人)”라고 했다.

이 구절의 시는 사람이 명승지에서 관광하는 태도를 말한 것이다. 지금 중국인들은 중공 무신론의 세뇌를 받아 이미 이런 명승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른다. 심지어 높고 큰 신의 조각상 앞에서도 떠든다. 더욱 심한 경우는 사찰의 승려도 향을 돈을 분배하는 문제를 가지고 다툰다. 이런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모두 사람의 도덕이 패괴(敗壞)된 후 나타난 표현이다.

명승지든 산수의 경치가 좋은 곳이든 또는 인문지리를 겸한 것이든 모두 하늘이 의도적으로 만드신 것이다. 역사문화에 축적된 이런 것들이 미래에 오성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 심신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사람들이 생명회귀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바로 ‘나는 속세의 화려함은 아깝지 않지만 오직 청산에만 본심을 남긴다’(塵世浮華吾不惜,唯有青山留本心)는 말과 상응한다.

사람들은 번잡한 세간의 화려함에 피로해지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어느 경치 좋은 명승지에 가서 좀 걷는다. 그러면 마음이 확 트이고 정말 좋아진다. 2011년 가을 우리가 용문석굴에 가서 50대 부부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남자가 그 텅빈 석굴을 보고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늙으면 아예 이곳에 와서 살며 가부좌하는 수행인이 됩시다.”

나는 그가 농담하는 줄 알았지만 일종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것이다. 대다수의 명승지는 수행인이나 신불(神佛)과 관련이 있으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일종의 정신적인 위안을 찾으려 할 때 자연히 ‘수행(修行)’이란 이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도 신이 현대인이 여행을 좋아하도록 안배한 근본 목적중 하나다.

아동(阿冬)과 아영(阿影)은 올해 여름 흥개호(興凱湖 중국 동북지역과 러시아 국경 지역의 호수)에 가서 일을 했는데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울러 이곳의 파도가 크다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듣자 나는 종전에 그들이 함께 법을 찾으러 다닌 고생을 본 것 같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 전에 우리는 역사상 그곳에 살았던 한 민족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바로 숙신인(肅慎人)이다.

이 민족은 《상서》, 《좌전》, 《산해경》, 《사기》 등 고서에 모두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는 간단히 발췌해본다.

《상서》 : “성왕이 동이를 벌하자 숙신이 축하를 했다. 왕이 숙신에게 선물을 주라고 명령하였다.(成王既伐東夷、肅慎來賀。王俾榮伯賄肅慎之命。)”

《좌전 노소공 9년》 :“숙신(肅慎), 연(燕), 박(亳)은 우리 북쪽의 땅이다.”

해석: 주나라 왕조가 보기에 숙신 연과 박을 모두 자기 북방의 영토라는 뜻이다.

《죽서기년(竹書紀年)》 :“순임금 유우씨 25년 식신(숙신)이 와서 내조했으며 활을 공물로 바쳤다.(帝舜有虞氏二十五年,息慎氏來朝,貢弓矢。)”

《산해경-대황북경》 : “동북해 밖에 … 큰 황무지에 산이 있는데 불함이라 한다. 숙신의 나라가 있다.”

해석: 불함산은 한나라 때 개마대산(蓋馬大山), 수당(隋唐)시대에 도태산(徒太山), 태백산(太白山)이라 했으니 지금의 장백산(長白山 역주: 백두산)이다.

《사기-공자세가》 “.. 매우 흉맹한 새가 진국의 정원에서 죽었다. 조사해보니 돌촉을 가진 긴 화살에 맞은 것이었다. 진(陳)나라 민공(泯公)이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숙신이 공물로 바친 화살입니다. 당초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紂)를 토벌할 때 주변 민족 부족에게 내조하게 했으며 숙신도 왔는데 이런 병기를 공물로 가져 왔습니다. 주나라 왕이 이 공물을 주요 인물에게 나눠주어 그들이 가지고 돌아가 나라를 봉하게 했습니다.’ (이런 공물을 진귀하게 보았다는 뜻) 진나라 창고에서 정말 이런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사기-오제본기》 “(우임금이) 남쪽에 교지를 설치하고 … 북쪽에 산융 융, 발, 식신이 있다.”고 했다. 정현(鄭玹)의 주에 따르면 ‘식신은 어떤 경우 동북 오랑캐라 한다.’고 했다.

이상 고서의 기록에서 우리는 숙신과 중원 왕조의 관계를 볼 수 있다. 흥개호 이곳은 개발이 비교적 늦어서 문화가 덜 발달했을 뿐이다.

우리 이야기는 바로 전국시대부터 시작한다. 형가(荊軻)가 진시황 시해에 실패한 후 진나라 시황이 대노해 정병을 파견하여 연나라를 멸망시키려 했다. 이때 연나라에 한 중신(重臣)의 아들이 있었다. 비록 무공은 못했지만 충성심이 있었는데 그를 아동(阿冬)이라 하자. 그는 연나라가 곧 망할 것을 보고 매우 걱정이 되어 한 산에 올라가 고인(高人)의 계시를 받으려고 생각했다.

그는 그곳에서 20대의 한 여자 협객을 만났는데 이름을 아영(阿影)이라 했다. 이 협객은 “나의 사부님께서 저더러 숙신에 가서 항아리 모양의 호수에 가서 장차 생명을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대법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마침 함께 갈 동행이 없었는데 같이 가도 좋습니다. 우리 사부님이 당신을 만날 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녀는 아동더러 아주 총명하다고 했다.

이때 아동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연나라의 국운이 어떻게 될지 묻고 싶습니다.”

아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아동은 이번 진나라의 공격이 자기 나라에 불리한 것임을 알았다.

아영의 제안에 대해 아동은 자신은 아직 무예를 할 줄 모르니 당신을 보호할 수 없고 생활하는데 자신도 잘 돌볼 수 없으니(그는 가정환경이 좋아 늘 남이 자기를 돌봐주었으므로 사실대로 말한 것이다) 여자 협객이 자기를 데려가면 좋은 점은 없고 귀찮게 할뿐이라고 했다.

아영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과 상대를 보호하는 것이 제 장점입니다. 당신은 일을 만났을 때 잘 처리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산에서 자라서 속세의 일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니 오랫동안 법을 찾는 길에 분명 불편한 점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아동이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말했다.

그러자 아동도 자신이 생겼고 아영과 함께 동북 숙신의 땅으로 항아리 모양의 호수로 가서 대법을 함께 찾기로 약속했다.

아동은 집이 부자였기 때문에 많은 돈과 몇 명의 하인 및 하녀를 데리고 함께 길에 올랐다. 그러나 오늘의 요동성 조양시 봉황산 일대에 도착했을 때 산적을 만났다. 협객 아영이 평생의 능력을 다하여 아동을 구해냈으나 다른 사람은 모두 산적에게 살해당했다.

그들은 낭패하여 도망하다가 산적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었는데 잠시 후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다급한 중에 그들은 어느 작은 객잔에 가서 비를 피했다. 객잔에 도착하여 이곳은 30대 여인이 혼자 가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여주인은 그들이 배가 고픈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내어 주었다. 다 먹고 난 후 그들에게 쉴 방을 안내해주었다.

다음날 그들이 계산을 마치고 길에 오르려고 할 때 그가 품을 만져보니 돈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여자 사장은 그들의 난감한 모습을 보고 시원하게 말했다. 만일 돈이 없으면 할 수 없지요. 이때 아동은 자기가 한때 연나라 대신의 아들이었는데 어떻게 산에 올라 국운을 알고 싶었고 나중에 아영을 만난 일과 아영이 함께 법을 찾으러 가자고 한 일 등등 일일이 다 말했다.

여인이 이 말을 듣더니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말했다.

“이 가게는 본래 나와 남편이 함께 운영하던 것이었는데 우리가 결혼한 지 막 3년 만에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이곳에 특별난 여인이 왔는데 마치 다른 민족의 차림이었고 그녀가 여기에 와서 나의 상황을 알고 말했습니다. 비록 당신 남편은 떠났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이곳을 나의 법술로 보호할 것이고 장래 어느 날 만일 어느 여자 협객과 그녀의 친구가 이곳에 도망쳐오면 당신은 그들과 함께 남은 길을 가야합니다.”

아영이 그 말을 듣자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여인이 말했다.

“나는 아총이라 합니다.”

아영은 즉시 사부가 말해준 것이 생각났다. 아영의 부친이 한때 아이를 잃어버렸는데 이름이 아총이라고 했다. 아영은 그래서 물었다.

“그럼 당신은 5살 때 가족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아총이 그렇다고 했다.

아영은 사부가 말해준 일을 아총에게 말했다. 그래서 아총과 아영 자매가 마침내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것을 본 아동은 매우 감격했다.

다음날 그들은 짐을 싸서 함께 길에 올랐다. 가는 길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아동이 매우 똑똑하여 기지를 살려 위기를 넘겼다.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어느 날 그들은 장백산 경계에 도착했다. 이곳의 숙신인은 당시 비교적 야만적이었고 외부 사람에 대해 경계가 매우 컸다. 그들은 잘못하여 숙신인이 설치한 함정에 빠져 모두 잡혔다.

이곳 두령은 그들을 다 죽이려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오늘은 살인하면 안 되는 날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무로 만든 간이 감옥에 가두었고 주변에 사람이 지켰다. 한밤에 갑자기 부근 감옥에서 한 어린 처녀가 호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큰 호수의 호법이여 들어보세요
공주가 이곳에 어명을 내리니
잘못되지 않게 어서 구해주세요
호수 언덕에 비가 세차면 다시 만날 것입니다!

大湖護法你聽真
公主在此發禦令
快來救人不得誤
湖岸滂沱再相逢!

여자 아이가 말을 마치자 건너편 감옥 방에서 날개가 높이 펼쳐졌는데 어디로 가는지 종적을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하늘에 채색 안개가 내려왔으며 그들 몇 명은 정신을 잃었다. 그들이 깨어났을 때 이미 큰 호숫가 옆에 도착해 있었다.

이 큰 호수는 파도가 용솟음쳤으며 끝없이 넓었는데 아영과 아총은 사부님이 말한 그 호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동과 함께 한 바퀴 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호수가 너무나 커서 정말 한 바퀴 돈다 해도 호수의 윤곽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그들 셋은 함께 이곳에 초가집을 짓고 호수의 윤곽을 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렸다.

이런 기다림도 일종 수행이었다. 아동은 부잣집 자제 출신으로 생활에서 각종 어려움을 탄연히 대할 수 있는가, 또 이 꽃같이 예쁜 두 여인들에게 무슨 마음으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가, 이런 것이 그가 마주해야 하는 문제였다. 다행히 흥개호는 물산이 풍부하여 그들이 여기서 고기잡이를 배우며 점점 주위 숙신 사람들과 잘 융합되어 적어도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들이 숙신인에게 이번 여행의 목적을 말하자 그들은 매우 놀랐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에도 법을 얻으려는 종자가 깊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재삼 부탁하기를 그들이 장래 도를 전하는 그 각자(覺者)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자신들에게도 알려 달라고 했다.

나중에 큰 비가 내리는 밤에 그 소녀가 또 나타나 그들에게 일깨워 주며 이번에 그들을 데리고 흥개호의 전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매우 기뻤다. 소녀는 그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일어나라’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그들은 함께 떠올라 매우 높이 날았다. 그들은 공중에서 흥개호의 전부를 볼 수 있었는데 호수는 정말 항아리 같았다.

그들이 지상에 도착했을 때 소녀가 말했다.

“당신들은 호수 아래에 있는 우리 집에 가보고 싶지 않아요?”

그들은 물론 가고 싶다고 했고 소녀는 그들을 호수 아래로 데리고 갔다.

사실 흥개호는 다른 호수와 달리 큰 차이가 있다. 여기는 표면적으로 보기에 호수이지만 사실 그것이 대응한 공간이 일으키는 작용은 북방 해역의 일부 해신들이 모이는 별장 또는 영지라고 해도 좋았다. 그 해신들은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무슨 작용을 일으킨다. 동시 흥개호의 신도 대단하여 우수리 강 유역의 일체 사물을 관장하고 있었다.

소녀는 그들을 데리고 흥개호 아래의 아름다운 경치와 해신들이 거주하는 지방을 유람시켰다. 마지막에 흥개호 신이 거주하는 궁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여자가 흥개호 신의 딸임을 알았다. 그때 장백산에서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먼저 그곳에 가서 숙신인에게 잡힌 후 그들이 함께 오기를 기다려 소녀가 신통으로 흥개호 호법을 오게 해 그들을 구하고 흥개호 해안으로 보내준 것이었다.

호수의 신이 말해주었다. 그들이 법을 찾는 중 겪은 것들이 신선계(神仙界)를 감동시켰다. 그래서 그가 딸을 보내 그들을 구한 것이었다. 동시에 미래에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함이었다.

한참 이야기 하고 나서 아동은 갑자기 이번 행의 최종 목적은 법을 찾는 것임을 생각했다. 그래서 말했다.

“그럼 존경하는 호수의 신이시여, 장래 세상에 와서 대법을 전하실 각자는 어디 계십니까? 또 우리는 언제 그를 만날 수 있습니까?”

호수의 신이 막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북태평양을 관리하는 한 해신이 다가와서 말했다. “내가 알기에 장래 인간세상에 대법을 널리 전하실 그 각자는 장래 평민 신분으로 나타나며, 법을 전하는 시각은 이 주위가 대규모로 개발된 이후이며 그 각자는 장백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나신다고 합니다…..”

한바탕 말에 그 자리의 사람과 신이 매우 놀랐고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묵묵히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 각자가 법을 전하는 그 날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아동과 아영, 아총은 호수 주변에 정착했고 흥개호 호수신의 공주인 여자아이는 늘 그들을 만나러 갔다. 이곳은 사계가 분명하여 겨울이 되면 그들은 지내기가 매우 고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은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흥개호가 대규모로 개발된 것은 1960년대의 일이다.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여기는 처음에 군부대가 개발했다. 나중에 사악한 정책 때문에 산 아래위 마을로 대량의 지식청년들이 와서 큰 개발을 촉성했다. 그 특별한 연대의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청춘과 정열 전부를 바쳤다. 그들로 말하면 극히 불공평한 것이었다.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은 길림성 공주령(公主嶺)시에서 출생하셨고 1992년 장춘(長春)에서 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금생에 아동은 어려서부터 무술단련을 좋아했다. 그의 말로 하면 땀을 몇 항아리나 흘렸으며 파룬따파를 만난 후 비로소 생명의 진실한 존재 의의를 알았다고 했다.

아영은 금생에 그의 며느리가 되었다. 비록 법을 얻지 못했지만 사람됨이 선량하고 특히 아동이 박해받아 떠돌아다닐 때 아영은 가정의 일을 떠맡았고 직접 나서 아동을 지지하고 격려했다.

금생에 원래의 숙신인은 모두 각지로 흩어져 거주하는데 아동과 아영은 오랫동안 함께 많은 곳을 다니면서 어느 곳을 가더라도 파룬따파의 진상을 가져간다. 이것도 종전의 소원을 달성하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아총은 금생에 18세 이전 이미 법을 얻었다. 당시 이웃을 통해서 얻었다. 나이가 어려서 놀기 좋아했는데 나중에 점점 법에 대한 인식이 깊어져 이것이야말로 진리라고 여겨 이제 확고하게 오늘까지 걸어왔다.

흥개호의 신과 그 소녀는 금생에 서남부 지역에서 부녀로 전생했고 이미 법을 얻었다. 비록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받긴 했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확고하게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걷고 있다.

이를 시로 표현하면 바로 다음과 같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자 아동은 산에 오르고
아영을 만나 법연을 말했네
도적을 피해 아총을 만났고
흥개 공주는 위험을 가로 막았네!

호수 밑을 유람해 해신을 만나고
대법이 전할 시기를 분명히 알아
금생에 법을 얻어 함께 정진하니
애초 신의 은혜 저버리지 않았구나!

秦滅大燕冬上山
遇到阿影話法緣
逃得匪難偶遇聰
興凱公主攬波瀾

神遊湖底見海神
明白大法傳時辰
今朝得法同精進
不負當初眾神恩!

설명: 역사상 흥개호의 명칭은 이미 몇 차례 변화가 있었으나 여기서는 말하기 쉽게 현재 명칭으로 처리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