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생명은 윤회하지만 절대 다수는 전세(轉世)할 때 이전의 기억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전생의 기억을 갖고 전생(轉生)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갓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는 아기가 생겨났다.
여기서는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특별한 사례를 소개하겠다. 이를 통해 사람은 절대 불이 꺼지는 것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며 죽는 것은 육신일 뿐 원신(元神)은 계속해서 윤회하고 전생한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다. 무신론(無神論)은 완전히 착오적인 사설(邪說)이다.
1. 진사 방란(龐瀾)의 아들이 말을 하다
방란은 임구(任丘 지금의 하북성 임구시) 출신이다. 명나라 가정(嘉靖) 38년(1559년) 전시에서 진사에 합격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날 때부터 말을 할 수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말했다.
“나는 절강성 모 지역의 공생(貢生)으로, 원래 ‘경성에 가서 임직해야 했는데’, 문득 자신이 작은 가마에 실려 이곳에 온 것 같다고 했다.”
가족들이 듣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느 날 이 아이가 사람에게 안겨서 대문 앞에 갔을 때 문밖을 지나가던 행인을 불러 세우고는 말했다. “이 행인은 바로 전생에 이웃이었다.”
이 행인도 의아해하며 둘이 대화를 나눴는데, 그 내용은 전생 아내의 상황 및 ‘대문·성곽·현판’ 등을 모두 맞게 말했다. 이 아이가 성장해 열 살이 되자 전생에 대한 상황을 점차 잊어버렸다.
2. 수보 하언이 섬서에 전생
하언(夏言, 1482-1548년)은 자가 공근(公謹), 호가 계주(桂洲)로 명대의 고위관리이자 문장가였다. 하언은 벼슬을 하면서 정직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예부상서(禮部尙書) 겸 무영전대학사(武英殿大學士)가 되어 국정에 참여한 이래 소사(師師)·특진광록대부·상주국(上柱國)을 거쳐 수보(首輔)대신으로 발탁되었다. 그야말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었다. 하언의 시문은 웅장하고 정연하며, 가사와 노래로도 유명한데 문집인 《계주집》이 세상에 전해진다.
하언은 사람됨이 아주 강직해서 많은 이들의 미움을 샀다. 이로 인해 가정제에게 세 차례 면직되었으나 세 번 다 복직되었다. 결국 엄숭(嵩等) 등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처형당했는데 명나라에 역사에서 처형당한 최초의 수보였다. 19년 후 가정제의 아들인 목종(穆宗 융경제)이 하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에게 ‘문민(文湣)’이란 시호를 내렸다.
명대(明代) 시인 구단(丘坦, 자는 ‘장유長孺’)이 한때 이런 기이한 일을 말한 적이 있다.
즉, 가정 27년(1548년) 하언이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섬서(陝西)의 한 평민 집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입을 열었다.
“나는 수보(首輔) 하언 계주인데 왜 여기에 있는가?”
가족들은 그의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아이는 곧 요절했다. 나중에 하언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섬서에 전해졌다. 이 가족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추산한 시간은 바로 하언이 처형될 때였다. 알고 보니 하언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마자 이 집에서 환생했는데, 아마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울화가 너무 많아 곧바로 요절했을 것이다.
자료출처: 《이담(耳談)》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