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함(真涵)
【정견망】
어느 날 갑자기 등이 매우 가려워서 등긁개를 가져다 긁었더니 좀 편해졌다.
등긁개가 말했다.
“주인님, 편해지셨죠! 저에 대해 좀 써주세요!”
나는 말을 하지 않고 등긁개를 가늠하며 그것이 눈물이 많은 생명인지 알고 싶었다.
등긁개가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 울보 소도호에 너무 놀라셨군요. 저는 울지 않아요. 저는 낙관적인 생명이라, 무슨 일이든 초연하며 즐겁고 잘 놀아요. 당신이 날 사는 그날 나는 마침 곤두박질치며 놀고 있었는데 당신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나는 제자리에 돌아왔어요. 당신이 나를 훑어보고 있을 때 나도 당신을 가늠하며 생각했죠. ‘빨리 절 사가세요! 제가 할 말이 있어요.’”
나는 생각했다.
‘저 녀석이 말을 잘하네, 유머러스하면서도 패기가 있고 시원시원해.’
그 순간, 나는 그것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내가 붓을 들어 그것에 대해 쓰려할 때, 그 녀석이 말했다.
“주인님 제게도 이름이 있어요. 명호(明昊)라고 해요.”
“아주 당당한 이름이구나. 네 이야기도 다채로웠으면 좋겠다.”
“저는 자신을 치켜세우지 않아요. 제 이야기에 볼 게 좀 있을 겁니다.”
“우리가 즐겁게 협력하면 좋겠구나.”
명호가 말했다.
“당연합니다. 저와 함께라면 즐거우실 겁니다! 저는 하상주(夏商周) 삼대(三代)에도 있었죠. 하나라 경궁(傾宮)에서 저는 손잡이였고 걸(桀)과 매희(妹喜 역주: 말희末喜라고도 함)를 보았죠.”
“이것은 하(夏)가 패망할 때의 일이구나. 역사 기록에 따르면, 하의 걸왕은 잔혹한 군주로 백성을 착취하고 신하를 학살했지. 그는 호랑이를 시장에 풀어놓고는 높은 곳에서 시장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것을 보았단다. 그는 또 매희를 총애했는데, 매희가 비단 천을 찢는 소리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걸은 힘센 궁녀들에게 비단을 찢게 해서 매희를 즐겁게 했지. 집안을 망치는 면에서 그들은 어울리는 짝이었지.”
명호가 말했다.
“상조(商朝)에서는 밥을 담는 그릇이었죠. 저는 태갑(太甲 역주: 상조 초기의 임금으로 처음에 정치를 잘못해 이윤에게 쫓겨났다가 나중에 다시 자리에 오른다)을 보았고 이윤이 태갑을 쫓아내어 태갑은 동궁(桐宮)에 있었어요.”
내가 말했다.
“이윤이 태갑을 내쫓은 이 일은 아주 유명한 일이지. 태갑이 군왕이 되어 포악하고 정치를 태만하게 하자 상탕(商湯)의 노신인 이윤이 태갑의 손에서 천하가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태갑을 내쫓았단다. 나중에 태갑이 잘못을 고치고 나서야 다시 그를 받아들였지. 이윤은 당시 정말 충신이었단다.”
명호가 말했다.
“주조(周朝) 시기 저는 제(齊)나라에서 의자로 있었습니다. 강자아(姜子牙 역주: 주조 개국공신 강태공을 말함)를 봤죠. 강자아는 가끔 의자에 앉아 가부좌를 하곤 했어요.”
내가 말했다.
“무왕이 주(紂)를 토벌한 후 강자아를 동해 지역에 제후로 봉해 그더러 동해 지역을 수호하게 했단다. 강자아는 노심초사하며 이 지역 중생들에게 복을 가져다주었지.”
명호가 말했다.
“전국 시기에 저는 검이 되었는데, 그때 저는 매우 호방했어요. 나중에 너무 위험한 것을 알았어요. 주인이 검객이었는데 늘 사람을 찔러 죽이곤 했죠. 저는 이 일이 너무 나쁜 것을 발견했죠. 드디어 어느 날 부러져 죽었는데 주인도 죽었답니다.”
“전국 시기에는 전쟁이 아주 많다 보니 천하 일통(一統)의 추세가 나타나게 마련이야.”
명호가 말했다.
“진조(秦朝)에서 저는 채소 절이는 단지라서 뭐 말할 게 없죠. 한조(漢朝)에 와서는 매우 재미있었어요. 저는 일찍이 어느 집 시녀였는데 제영(緹縈)이란 어린 소녀를 돌봐주었죠.”
내가 말했다.
“제영은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하단다. 《사기》에도 ‘제영이 부친을 구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 제영의 아버지 순우의(淳于意)가 남에게 모함을 당했는데 관아에서 무고를 믿고 순우의를 “육형(肉刑 역주: 신체를 손상시키는 처벌)”에 처하고 장안으로 압송하여 형을 받게 하려고 했단다. 당시 순우의는 딸만 다섯이 있었는데 떠날 때 자기를 따라가 도와줄 아들이 없음을 슬퍼했단다. 그러자 가장 어린 딸 제영이 아버지를 따라 경성(장안)에 가서 아버지를 구할 방법을 생각했단다.
장안에 도착한 후 아버지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 어린 제영은 정세가 급해지자 의연히 조정에 상소를 올려 부친의 무죄를 호소했단다. 서신으로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아버지 대신 자신이 노비가 되고 대신 아버지를 풀어줄 것을 호소했지.
그녀는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고 육신의 형벌을 당한다면 원상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첩은 관비가 되어도 좋으니 부친의 죄를 대신하고자 합니다.’라고 했지. 제영의 서신은 곧 문제(文帝)의 손에 들어갔단다. 문제가 편지를 보고는, 제영의 효성에 감동해 즉시 조서를 내려 순우의를 사면하고 아울러 잔혹한 육형을 폐지했단다. 이후 제영이 상소를 해서 부친을 구한 효행 이야기가 천하에 아주 빠르게 전해졌단다.”
명호가 말했다.
“한 무제 때 저는 동전으로 전생해 어느 커다란 항아리 속에 있었는데 주매신(朱買臣 무제 시기 관리)의 부(府)였어요. 저는 그 동전들과 함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매우 재미있었어요. 어느 동전은 자기는 전세에 말구유였으며 평양공주 부에 있으면서 위청(衛靑)을 안다고 했어요.”
“그것은 위청을 어떻게 평가했니?”
“그것이 말하길 위청은 아주 훤칠하게 생겼고 기마술이 뛰어났으며 대담하면서도 세심하고 사람이 신중해서 말수가 적었대요.”
내가 말했다.
“위청 가문은 명성이 아주 대단했지. 위청은 흉노를 격퇴해 군사적인 공이 탁월해서 나중에 공주를 아내로 맞았단다. 그의 누나인 위자부(衛子夫)는 황후가 되었고, 외조카인 곽거병(霍去病)도 대장군이었지. 하늘이 위청에게 많은 고생을 겪게 하고 마음을 고달프게 만든 것은 나중에 현달(顯達)하게 하려고 그를 단련시킨 것이었지! 사실 위청은 천계(天界)의 무령(武靈)이 전세(轉世)한 것으로 무제와 계약을 맺고 내려와 영토를 수호한 핵심 인물 중 하나였지.”
명호가 말했다.
“저는 부(府)에서 또 주매신을 보았어요.”
내가 말했다.
“주매신은 젊었을 때 가난한 서생이었단다. 40이 넘을 때까지 나무꾼으로 생계를 꾸렸지.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읽었단다. 아내 최 씨는 그와 이혼하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갔지. 나중에 주매신의 동향 사람이었던 엄조(嚴助)가 한 무제에게 주매신을 추천했고 주매신이 조서를 받들어 경성에 가서 무제에게 《춘추》, 《초사》 등을 설명했는데 말이 아주 유창하고 논리가 정연했지. 그는 또 무제에게 책략을 바쳐 동월(東越 오늘날 복건성에 해당)의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이 반란을 가라앉힌 후 한 무제가 매우 기뻐하며 말했지.
‘경은 이미 재주도 있고 공도 있으니 고향으로 돌아가서 회계군(會稽郡)의 태수를 맡아주시오.’
주매신은 무제에게 감사드리고 곧 회계군으로 돌아갔으니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지.”
명호가 말했다.
“주매신이 태수가 되면서 저는 태수부(太守府) 창고에 있었는데 큰 항아리 속에 동전이 가득했어요. 항아리 아래쪽에는 은자가 든 상자가 있었죠. 저는 어떤 사람이 창고의 재물을 기록하는 것을 보았어요. 또 황금도 있었어요.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태수가 자기를 환영하는 인파 중에서 전처 최 씨를 봤대요. 그가 사람을 시켜 최 씨 부부 두 사람을 부 안으로 데려오라고 했데요. 한 달 쯤 지나 심부름꾼이 말하기를 그 집에서 어떤 사람이 최 씨를 비웃자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어요. 당시 우리 이 동전들끼리 매우 열띤 토론이 있었는데 주태수가 쓸데없는 일을 한 것인지 아니면 최 씨가 정말 복이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요.”
“너희들이 열띤 토론을 하면 결론이 나니?”
“당연히 각자 자기 의견만 고집하니 결론이 나지 않죠. 나중에 저는 다시 큰 항아리로 전생했는데 이번에는 아주 오래 살았어요!”
나는 참지 못하고 웃었는데 찻주전자도 큰 독으로 전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호가 말했다.
“저는 한때 북조(北朝)에 있었는데 수련인의 짚신으로 전생했어요. 그는 매우 유명한 스님이었는데 담요(曇曜)라고 했어요.”
내가 말했다.
“담요는 아주 유명한 화상(和尙)이란다.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가 불교를 멸하려 할 때 담요는 태자의 보호를 받아 난을 피했단다. 이후 문성제(文成帝)는 불법을 진흥하려고 했지. 문성제가 동쪽을 순행하는 도중 담요를 만났는데 어가(御駕 황제의 수레)를 끌던 말이 입으로 담요의 옷을 물어 가지 못하게 했단다. 문성제가 이상하게 여겨 담요와 대화해보니 그의 불리(佛理)가 고심함을 느껴 담요를 스승으로 모시고 또 ‘사문통(沙門統 역주: 승려들을 총괄하는 직책)’으로 봉해 승려들에 관한 사무를 관리하게 했단다. 멸불(滅佛)이란 큰 겁난(劫難)을 겪은 담요는 불법을 널리 알리고 후세에 경계를 보여주는 중요함을 잘 알았기에 황제에게 석굴을 파고 불상을 조성해 민심을 교화할 것을 건의했고 문성제의 지지를 받았단다. 담요는 당시 수도였던 대동(大同) 서쪽 교외에 있는 무주산(武周山) 남쪽 기슭 조용한 곳에 굴을 팠지. 이것이 중국 역사상 최초로 황실이 주관해서 만든 대형 석굴인 운강(雲崗) 석굴로 아주 유명하단다.”
명호가 말했다.
“담요는 도처에 석굴을 팔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는데 그가 가파른 절벽을 보니 절벽에 구름이 감돌고 있었대요. 담요는 그때 매우 감격했는데 담요가 그때 신었던 신발이 바로 저랍니다, 저는 아주 운이 좋았죠.”
“너는 확실히 행운아구나. 나중에는 또 어디로 전생(轉生)했니?”
“수조(隋朝) 시기 양제(煬帝)가 용선을 타고 천하를 순행할 때 저는 용선을 젓는 노로 사용되었어요. 황제가 용선을 젓는 여자 중 미녀를 하나 발견했는데 용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 일을 알았다고 했어요.”
내가 말했다.
“이 여자가 오강선(吳絳仙)이란다. 양제는 어리석은 임금이라 먹고 마시고 노는데 능했지.”
명호가 말했다.
“전 불행히도 노가 물에 떨어지는 바람에 썩어버렸어요. 다시 전생한 것은 당조(唐朝) 중기였어요. 이부(吏部)의 관리 집의 옷장이었는데 계속 평범하게 태어났다 죽곤 했어요. 명조(明朝)에 저는 연왕부(燕王府)에 거위로 전생했어요. 이 거위는 매우 컸는데 하루종일 하늘을 향해 노래를 불렀어요.”
내가 말했다.
“주윤문(역주: 명나라 2대 황제인 혜제로 영락제의 조카)이 번국(藩國)을 삭감하면서 한사코 연왕을 괴롭히자 연왕 주체(훗날의 영락제)가 부득이 ‘황제 주위의 간신들을 제거한다’는 근왕(勤王)의 깃발을 내걸었지. 거위는 집을 지킬 수 있고 또 무기를 만들 때 나는 소리처럼 소음을 가릴 수 있으니 거위도 공헌한 셈이지!”
명호가 말했다.
“나중에 사람들한테 잡아 먹혔어요. 이어서 어항으로 전생했죠. 화원(花園)에 있었는데 여전히 북경성이었어요. 어항이 깨졌을 때는 청조(淸朝)였어요.”
내가 말했다.
“청조 260년 동안 네가 항아리로 전생하지 않았다면 또 여러 번 전생했겠구나.”
명호가 말했다.
“저는 황태극(청 태종)의 말채찍이 되어 그를 오래 따랐죠. 그가 초원에 갔을 때 아름다운 여자, 해란주(海蘭珠)를 좋아했어요. 이 일은 저도 아는데 초원에서 그들이 헤어지는 것을 직접 보았거든요. 정이 꽤 깊었어요.”
“이건 영웅이 미녀를 만난 이야기지. 나중에 해란주가 세상을 떠나자 황태극은 마치 넋이 나간 것 같았단다.”
“사랑이 깊으면 슬픔도 깊은 법이죠. 정이란 아주 지독해요! 나중에 저는 또 예쁜 비단 꽃신으로 전생했고 강희제의 후궁에 있었어요. 후궁 여인이 대단히 예뻤죠.”
내가 말했다.
“그때 너는 분명히 아주 예쁜 화분 신이었겠구나. 내 생각엔 항아리보단 그래도 좀 자유로웠을 거야. 게다가 청 궁녀들의 장식은 그래도 매우 화려하지.”
“저는 또 원명원에도 있었어요. 물건을 놓아두는 선반 같은 거였죠. 그 위에 많은 귀중한 물건을 놓았는데, 나중에 저는 도태되었고 창고에 들어가자마자 곧 망가졌어요.”
“그건 그래도 괜찮단다. 만약 내내 선반으로 있었다면 나중에 1860년의 어느 날 화재에 불탔을지 몰라.”
“그후 저는 관인(官印)이 되었는데 임측서의 관인이 되었어요.”
“그가 흠차대신으로 있을 때 관인이었니?”
“아니요. 총독 관인이었어요. 그 후 생명의 전세는 모두 아주 평범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찻주전자, 밀짚모자, 접시, 멍석, 얼음알갱이, 담요 등이었어요. 등긁개가 되기 전까지 저는 남자 슬리퍼였죠. 발 냄새에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어요. 지금은 주인님 손에 들려 있는데 역시 기분이 크게 다르며 저는 주인님을 좋아합니다.”
나는 웃었다. 등긁개의 아첨 때문이 아니라 마침내 글을 다 썼기 때문이다.
이 글은 중간에 여러 번 중단되었다 다시 쓰곤 했다. 아무튼 원고는 탈고되어 발표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모든 생명은 다 자신이 겪은 일들이 있는데 만물에 영(靈)이 있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좋아했으면 하는데 명호도 아마 이런 소원이 있었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