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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20주년원고】 서시(西施) 상편

선희(善喜)

【정견망】

들어가는 말

힘차게 오르는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고, 성시(城市)는 점차 아침 햇살을 받아 깨어난다. 망망한 천지에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눈꽃이 휘날리며 어느덧 얼음도 녹고 나뭇가지에는 한매(寒梅)가 피어났다.

며칠 전 달 밝은 밤, 모든 것이 조용했고 피곤하고 졸리더니 점차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여러 시공(時空)의 터널을 통과해서 자유롭게 푸른 하늘을 날았음을 분명히 기억했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 분홍색 꽃밭이 있었고 바다와 풍경이 훌륭했다. 나는 꽃의 바다를 날아갔다. 꽃의 바다에 핀 꽃들은 연분홍빛으로 화사해서 마치 크리스탈처럼 광채를 발산했다. 꽃의 바다 속을 걷다 보면 앞으로 쭉 뻗은 꽃길을 따라 옅은 회색의 옥(玉)과 같은 질감이 있는 땅이 있었는데 그 꽃길을 따라 넓고 밝은 두 개의 문을 지나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막 설법하시는 중에 많은 대법제자들이 대전(大殿 큰 전당)에서 법(法)을 듣고 있었다. 사존께서 막 서시(西施)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서시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나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서시는 나의 예전 이름이었고, 지금 내 이름은 서시가 아니다. 사존께서 설마 지금 내 이름도 모르신단 말인가?’

내가 막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부님께서 엄숙하게 나를 바라보셨다.

꿈에서 깨어난 후 나는 자신의 오성이 너무 차(差)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나더러 고대 서시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쓰라고 점화하신 게 아닌가? 대법을 수련한 지 20여 년 동안 내 생명 윤회의 기억이 두터운 먼지에 봉폐된 마음의 바다에서 우연히 일부 단편들이 떠오르곤 했다. 똑똑하긴 했지만 전면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꿈에 본 것과 서시에 관한 문장을 쓰려는 생각에 대해 점오(點悟) 상태에 있는 한 동수와 상의했다. 동수는 내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더니 마음을 가라앉힌 뒤 숙명통(宿命通) 공능을 사용해 그 특수한 생명의 역사 과정을 추적해 역사의 본래 모습을 되돌렸다. 동수는 중화 5천년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두루 돌아볼 때 역사 문화의 진정한 정수는 수련문화라고 말했다. 고대 역대 왕조는 위로는 제왕에서 황족, 사대부 계층에서 아래로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늘을 공경하고 도를 지향하는 수련자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도(道)를 닦고 성취한 인인지사(仁人志士 어진 사람들과 뜻 있는 선비들)들이 적지 않았다. 아래 문장에서는 서시에 관해 점오 상태의 동수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상편(上篇)

지금부터 약 2천 4백 년 전 춘추 시기 주조(周朝)가 쇠퇴하자 제후들의 세력이 강성해졌다. 남방의 제후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월왕(越王) 윤상(允常)이 죽고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막 왕위를 계승한 것을 보고 새로 즉위한 왕의 지위가 불안한 국상(國喪) 기간을 틈타 군대를 파견했다. 오월(吳越) 양군은 취리(檇李리 지금의 절강 가흥 지역)에서 필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당시 월왕 구천은 상장군(上將軍) 범려(范蠡)의 전략을 채택했다.[월의 상장군 범려는 젊을 때 우연히 신선을 만나 수도(修道) 비법을 전수 받았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 들어와 관리가 되었다.] 월나라 군사들은 군사 수가 두 배나 많은 오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오왕 합려는 혼전 중에 사망했다.

합려가 사망한 후, 아들 부차(夫差)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부차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을 품고 3년 상을 지켰다. 3년 기간이 끝나자 부차는 국력을 총동원해 월나라를 공격했고, 월왕 역시 국력을 총동원해 맞섰다. 월왕 구천은 3년 전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적을 과소평가했다. 게다가 오와 월의 국력과 병력 차이가 현격히 커서 월왕이 회계산(會稽山)에서 곤경에 처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은 상황에서 범려의 조언에 따라 오왕에게 항복하고 평화를 구하는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월나라는 오나라 대신 백비(伯嚭)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어 구천에게 항복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 오왕은 구천을 오나라로 불러들여 3년간 노예로 삼았다. 구천과 그의 아내는 3년 동안 오왕을 위해 수레를 몰고 말을 기르다 사면받아 월나라로 돌아갔다.

구천이 귀국한 후 바로 병력을 일으켜 오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범려가 간언했다.

“오나라의 국운이 강성하니 강력한 오나라를 약하게 만들려면 10년은 걸립니다.”

월왕 구천이 말했다.

“과인이 그대의 말을 따르겠노라.”

범려가 또 말했다.

“산천(山川)과 하류(河流)에는 동정(動靜)의 이치가 있고 성신(星辰)의 변화는 길흉을 드러내 줍니다. 신이 밤에 천상(天象)을 관찰해 보니 혜성[彗星 소파성掃把星이라고도 함]의 수주(宿主 역주: 宿은 숙박의 뜻일 때는 ‘숙’으로 읽지만 별자리의 뜻일 때는 ‘수’로 읽어야 한다. 여기서는 별자리의 주란 뜻이라 수주로 읽는다)가 우리나라에 강림했으니 이는 나라가 망할 징조입니다.”

구천이 말했다.

“(그를) 죽이면 어떠하오?”

범려가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성수(星宿)가 세상에 내려오는 것은 천명(天命)입니다. 천명을 받들어 세간에서 도(道)를 행해야 하는데 만약 그를 죽이면 반드시 하늘의 징벌을 받아 나라가 망하고 민중들이 죽어도 묻힐 곳이 없을 겁니다.”

구천이 말했다.

“하늘이 왜 혜성의 수주를 속세에 내려보낸 것이오?”

범려가 말했다.

“천하가 태평한 날이 오래되니 세인들의 칠정육욕(七情六慾)이 방자해졌고 많은 사람을 서로 죽여 하늘의 도를 위배하니 중생의 업이 쌓여 겁난(劫難)이 되니 하늘이 파견한 것입니다.”

월왕이 말했다.

“어떻게 타파할 수 있겠소?”

범려가 말했다.

“타파할 수는 없고 단지 오나라로 재앙을 옮길 수 있을 뿐입니다.”

범려는 마침내 도법(道法)을 사용해 혜성의 수주가 태어날 시간, 지역 및 모습을 추론했다. 월나라 제잠현(諸簪縣) 저라촌(苧羅村)에서 음년(陰年) 음월(陰月) 음일(陰日)에 시이광(施夷光 서시)이란 여인이 태어나는 것을 추론했다. 그날 밤, 하늘에 기이한 변화가 나타났고 서쪽에서 혜성이 나타났는데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꼬리가 길었다.

월나라는 서시를 포함해 민간에서 선발한 9명의 미인을 월왕 왕후에게 맡겨 궁중 예절, 기악, 무용 및 미용 기술을 익히게 했다. 이 3년간 범려는 서시에게 수도선법(修道仙法)의 상권인 《장생술》을 포함해 각종 양생단약(養生丹藥) 및 수련에서 단약을 채집하는 비법 등을 가르쳤다. 동시에 서시에게 세 가지 도가 수련의 주문인 “천금주(天禁咒)”, “지금주(地禁咒)”, “인금주(人禁咒)”를 가르쳤다. 이는 각각 하늘, 땅, 사람의 물건과 일에 대해 효능이 있다. 또 어려서부터 ‘백명을 죽이는’ 전투술을 익힌 두 여성 노예를 동행하게 해서 늘 서시 주변을 지키게 했다.

서시가 오나라에 들어가기 전 범려가 말했다.

“오왕 부차는 한마음으로 중원의 패자가 되고 싶어 작년에 제나라와 연합해 노나라를 정벌했다. 두 호랑이가 싸우면 반드시 하나가 부상을 입고 승자 역시 원기를 손상할 것이다. 부차는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라 누가 좋은 벗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는 진왕(晉王)의 친척이고, 오나라 왕후는 제왕(齊王)의 직계다. 궁궐에 들어간 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태재인 백비가 쓸 만하고 상국(相國)인 오자서는 목의 가시와 같으니 조심해서 방비하거라! 내가 오늘 밤 천상을 보니 혜성이 우두성(牛頭城) 위에 걸려 있으니 이는 아주 길한 징조다. 바로 오나라가 멸망할 징조다. 하늘이 오나라를 멸망시킬 때 내 반드시 너를 맞이해 고향에 돌려보내 주겠다.”

범려가 오나라에 바칠 조공과 함께 오나라 수도인 고소(姑蘇 지금의 강소성 소주)에 들어가니 부차는 왕좌에 앉아 있고 문무 신하들이 두 줄로 아래에 늘어서 있었다. 범려는 10명의 월나라 미녀들을 소개했다. 오왕 부차는 10명의 미녀들 모두 자색이 뛰어나고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것을 발견했다. 그중 유독 흰 치마를 입고 날씬한 몸매의 여인이 돋보였는데 우아한 자태가 마치 계곡의 그윽한 난초와 같았다.

오왕이 부르니 그녀는 마치 연약한 버드나무처럼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왔다. 오왕이 자세히 보니 흰옷을 입은 여인이 머리를 살짝 숙이는데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에 피부는 섬세하고 입술은 붉었다. 눈썹은 초승달과 같았고, 눈동자는 검었으며, 맑고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야말로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웠다.

오왕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다니. 정말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절대적으로 아름답구나. 조물주의 창조물이 이렇게 신기하다니!”

오왕이 말했다.

“미인(美人)은 노래와 춤을 출 수 있는가?”

서시가 말했다.

“소녀 한두 가지 할 줄 아옵니다.”

오왕이 말했다.

“오늘 밤 미인과 같이 춤을 추리라.”

이때부터 오왕은 서시를 점점 총애하게 되었다.

월나라가 패전한 후 오나라는 월나라의 인구와 재산을 합병해 국력이 날로 강해졌고, 오왕의 패권욕도 날로 강성해졌다. 몇 달 후, 오왕이 갑자기 중병에 걸렸다. 그는 밤에 흰 수염을 가진 ​​노인이 침대로 다가와 오왕의 입과 코에 숨을 불어넣는 꿈을 자주 꾸었다. 오왕은 즉시 두통이 심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

국사(國師)를 소환해 점을 치게 하자 국사가 말했다.

“이것은 천 년 된 자라 정령이 요사한 법[妖法]으로 왕을 상하게 한 것 입니다.”

오왕이 물었다.

“이 요괴가 어찌하여 내 몸을 해치는가?”

국사가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라 고기를 좋아해서 그 자손을 해치자 늙은 자라가 화가 나서 일부러 왕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에 오왕은 자라 요괴를 잡기 위해 병력과 장수들을 파견했지만 열흘이 넘도록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모두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서시가 이 말을 듣고 오왕에게 제안했다.

“대왕께서는 길인천상(吉人天相)이시라 이 자라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불에 타는 코뿔소 뿔로 깊은 연못 바닥을 밝히면 자라 정령이 모습을 숨기지 못할 겁니다.”

오왕이 시키는 대로 하자, 열흘 뒤 강바닥에 그물을 던져 자라의 정령을 잡았는데, 크기가 작은 배만 했고 무게가 약 300킬로그램이나 나갔다. 오왕이 이것을 먹고 병이 나았다. 서시가 또한 비밀리에 양생하고 단을 보충하는 방법을 알리자 오왕은 건강을 과시하며 관왜궁(館娃宮)을 지어 서시에 대한 총애를 보여주었다.

관왜궁은 연석산(研石山 지금의 소주 영암산) 위에 건설되었으며, 약 3년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밤낮으로 일해 완공했다. 산기슭에서 궁궐 문 앞까지는 푸른 돌로 포장된 계단과 옥으로 조각한 난간이 있었다. 난간 옆에는 산, 강, 숲, 샘, 울창한 숲, 대나무가 있다. 관왜궁은 규모가 큰 거대한 궁전으로 원림식 궁전 건축물에 속한다.

궁성은 이층으로 날렵한 처마, 분홍색(흰색) 벽과 빨간색 문, 높은 탑과 거대한 건물이 대단히 웅장했다. 본당은 백옥석을 기초로 하고 금실을 수놓은 녹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우뚝 솟은 누각, 팔각형 처마(2층), 조각이 장식된 들보와 비단 병풍이 있었다. 대전은 구리와 옥으로 만든 문턱에 진주와 거북 껍질로 장식되어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해지는 황혼 무렵이면 산길에는 100m마다 한 쌍의 진주 등불이 켜졌다. 수많은 등불이 마치 밤하늘과 은하수처럼 빛났다.

정전(正殿) 대청(大廳)은 밝게 빛나고 황금 벽돌과 푸른 타일이 특히 눈부시게 빛났다. 오왕은 신하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고 노래와 춤과 음악 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코뿔소 뿔을 컵으로 사용하고, 상아를 젓가락으로 사용하며, 진미와 고급 포도주를 가득 채운다. 3일간의 축하 행사를 마친 후 서시는 관왜궁으로 옮겨 살았다.

서시는 점차 궁궐 생활에 적응했고, 오왕은 조정에서 정무가 바빠서 궁에 없었고 서시는 매일 노래와 춤, 악기 연주를 연습했고 밤에는 혼자 각종 단약을 준비하고 밤늦게까지 가부좌하며 명상했다. 낮에는 그는 시녀 앵앵(櫻櫻), 도도(桃桃) 및 시위들과 함께 연석산에 놀러갔다. 그중 삵이 남긴 일곱 마리 새끼를 발견했는데 하나는 새까만 털과 희귀한 황금색 눈을 가졌다.

서시가 7마리를 데려다 길렀는데 이중 검은 털을 가진 삵만 남기고 나머지 6마리를 숲에 풀어주었다. 세상 동물들 중에서 인성(人性)과 잘 소통하는 특별한 것들이 있다. 닭, 개, 고양이, 쥐 중에도 봉황이나 기린과 같은 영물이 숨어 있다. 검은 삵은 몸이 4자에 꼬리가 3자로 몸집은 개만 했고 품행이 바르고 사람의 뜻을 잘 알아들어 늘 서시의 발아래 눕곤 했다.

서시에 대한 오왕의 총애는 다른 후궁이나 비빈들 특히 왕후의 강렬한 질투를 초래해 여러 차례 참언과 비방이 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시는 이런 소문에 흔들리지 않았고 종종 ‘인금주(人禁咒)’를 조용히 외워 악인들의 계획을 여러 차례 좌절시켰다. 이때 마침 오왕은 제나라와 동맹을 맺어 노나라를 공격했는데 노나라가 맞서지 못하자 협상을 벌였다. 오왕의 어가(御駕)는 궁을 떠나 노나라에 가서 협상했다. 이 틈을 탄 왕후가 관왜궁의 여관(女官)을 시켜 국에 독을 타게 했다.

무더운 여름날, 서시가 목이 말라 국을 마시고 싶었다. 옆에 있던 삵이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 두 눈이 금빛으로 빛나고 검은 털을 솟구치며 울부짖으며 앞발로 국그릇을 넘어뜨리자 순식간에 국물이 바닥에 튀었다. 작은 거품이 생기면서 톡 쏘는 냄새가 났다. 서시는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주변에 있던 시녀들 역시 큰 충격을 받고 침묵했다.

오왕이 궁궐에 돌아와 그 사건의 경과를 듣고, 잠시 고민한 뒤 독을 탄 여관을 죽인 뒤, 심복 총관을 파견해 관애궁을 접수하게 했다.

오왕이 서시에게 말했다.

“왕후와 재상(오자서)이 간언하길 짐이 오직 그대만 사랑해 정사를 황폐화시키고 발전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했소. 이 일은 대부분 왕후와 재상이 꾸몄을 것이오.”

그러자 서시가 엄숙한 표정과 창백한 얼굴로 오왕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첩은 단지 연약한 여자로 몸과 마음을 바쳐 대왕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첩의 본분입니다. 부디 왕후를 탓하지 마십시오. 왕후는 제나라 왕실 출신으로 제나라는 대왕의 상국(上國)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소녀 때문에 제나라 왕과 원한을 맺지 마십시오.”

이어서 또 말했다.

“사계절의 변화 및 가문과 나라의 흥망은 하늘의 뜻에 따릅니다. 천명(天命)에 따라 하는 것이니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속세의 세인은 업에 따라 마음이 변하고 세간의 만물은 하늘 이치의 속박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마땅히 마음에 선념(善念)을 품고 만물을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

부차가 한참을 침묵하다 음울한 눈빛으로 점차 회복되더니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내 명은 하늘에 달려 있지 사람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며칠 뒤 오왕의 어가가 관왜궁에 왔다. 멀리서 맑고 신나는 음악 소리, 슬프고 처량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오왕은 손을 저어 시위들을 멈추게 하고 혼자 정전으로 걸어갔다. 부차가 깊고 푸른 천궁(天宮)을 올려다보니 밤하늘을 가로질러 고요한 밤 속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이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를 느꼈다.

어느 가을날 앵앵이 연석산에 보물을 찾으러 갔다가 풀밭에 누워 있는 암사슴을 만났다. 숨이 아주 미약하고 사지가 경직되어 곧 죽을 것 같았다. 앵앵이 관왜궁에 와서 서시에게 이를 알리자 서시는 수의사와 시위를 불러 앵앵을 따라 풀밭에 가보게 했다. 새끼가 이미 절반 정도 나오고 있었는데 엄마 사슴이 너무 약해서 출산할 수 없었다. 어미 사슴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혼란스러워했고 눈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큰 눈에는 애처로운 간구로 가득했다.

서시가 몸을 굽히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네 어려움을 구해주러 왔다!”

수의사의 치료를 받은 후 어미 사슴은 새끼를 낳았으나 너무 약해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서시는 어미 사슴과 새끼를 궁궐로 데려와 열흘 동안 키운 후 숲에 풀어주게 했다.

몇 달 후, 시위들이 어미 사슴과 새끼들이 궁전 문 앞에서 서성인다고 보고했다. 서시가 궁전 문에서 나왔을 때 전에 그녀가 구해주었던 어미 사슴이 새끼 사슴을 품고 있었다. 어미 사슴은 거대한 영지(靈芝)를 물고 서시에게 다가갔다. 서시는 놀람과 기쁨으로 영지를 받았다. 어미 사슴은 떠나기 싫은 듯 서시를 향해 길게 울더니 새끼 사슴과 함께 천천히 떠났다.

며칠 사이 이 일은 오나라 조정과 재야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하들은 차례로 오왕을 찾아와 이는 오나라의 번영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징조라고 말했다. 오왕은 어미 사슴이 궁궐에 와서 보물을 바친 이야기를 듣고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서시가 오왕에게 대례(大禮)를 올리고 영지를 바치자 오왕이 말했다.

“이 보물은 그대가 선행을 해서 얻은 것이니 당연히 그대 소유이고 과인이 사치를 부릴 수 없다.”

서기가 말했다.

“이 물건은 오나라의 복이자 상서로운 징조이니 신첩이 홀로 누릴 수 없습니다. 첩이 어릴 때 우연히 신선을 만났는데 수도하는 선인(仙人)이 선법(仙法)을 전수해 주어 천년 영지를 선단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대왕께 바치고자 하니 대왕께서 허락해 주십시오.”

오왕이 놀라서 물었다.

“그대가 수도하던 사람이라고?”

서시가 대답했다.

“다년간 수도했으며 각종 단약을 만드는 방법도 압니다.”

오왕이 상을 붙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좋다!”

왕은 태의에게 명령해 궁중의 진귀한 보물을 서시에게 넘겨 단약을 만들게 했다.

서시가 말했다.

“궁궐 안에 어떤 진귀한 영물(靈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왕이 말했다.

“궁에 존재하는 천년 영물은 수오, 복령, 산삼이 있다. 그 외 필요한 사항이 있으시면 태의(太醫 어의)에게 무엇이든 말하라.”

서시가 대례를 올리며 말했다.

“대왕의 두터운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에 서시는 《장생술(長生術)》이란 도서(道書)에 따라 천년 영지를 비밀리에 18개의 단약으로 만들어 오왕에게 10알을 먹이고 8알을 남겼다. 오왕은 영지 선단을 먹은 후 정력이 충만해져서 3일간 잠을 자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국사를 다스리는 효율도 두 배로 좋아졌다. 그는 서둘러 서시에게 다른 천년 영물을 단으로 바꾸어 먹을 수 있게 하라고 촉구했다. 궁중 어의들을 파견해 천하를 두루 돌며 각종 진귀한 영물을 수집해 단약을 만들게 했다.

서시가 만든 각종 단약을 복용한 후 오왕 부차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웅지가 커졌고 기개가 산하를 집어삼킬 듯했다. 그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주나라가 사슴을 잃으니 천하가 모두 그것을 추구한다.[역주: 천하의 패권을 두고 쟁패하겠다는 의미]”

어느 날, 오왕이 관왜궁에서 오랫동안 술에 취해 잠에서 깨어났는데, 궁궐에서 흰 안개가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서시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는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오왕 부차는 월나라를 정복한 후 적극적으로 북벌에 나서 진(陳)나라와 제(齊)나라를 멸망시켰다. 또 오나라, 주(邾)나라, 노나라 등과 동맹을 맺어 황지(黃池 지금의 하남 상구)에서 진(晉)나라 및 중원의 제후들과 회맹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병력이 부족한 틈을 타서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 수도를 공격한 후 군대를 철수시켰다. 4년 후, 오(吳)나라에 흉년이 들자 구천이 병력을 이끌고 침입해 오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오왕 부차는 도성을 방어한 지 3년 만에 도시는 파괴되고 나라도 망하고 군주도 죽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7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