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위원룽(宇文龍) 정리
편집자의 말: 한 왕조(王朝)가 천시(天時), 지리(地理), 인화(人和)의 상태에 처하면 사회에도 반영되어 인민들은 편안하고 즐거우며 풍족해지고 사회는 안정되고 번영한다. 그러나 위정자가 천도(天道)와 민심(民心)을 잃을 때면 전반 사회의 도덕이 퇴폐하고 천재(天災)인화(人禍)가 발생하며 기이한 현상이 잇달아 발생한다. 기이한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종종 인간세상에 커다란 사회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최근의 일부 뉴스들을 수집해 본다.
사진 : 대형 발자국을 측정하는 모습
10월 2일 중국 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윈난(雲南) 징구(景谷) 태족(傣族)과 이족(彝族) 자치현은 고대 중국과 동남아, 남아시아 국가간의 중요한 통로였던 “다마고도(茶馬古道)”의 요충지이다. 이 현에서는 이미 26곳에서 천년이상 된 대형 손자국과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불교를 신앙하는 태족 사람들은 이 곳을 “바다(巴達)”라고 부른다 (신선의 자취가 있는 곳이라는 뜻).
이 손자국과 발자국들은 큰 바위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가장 큰 것은, 현성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융핑진(永平鎭) 뇌광불적사(雷光佛迹寺)에 길이 1.5미터, 너비 1미터를 넘는 거대한 발자국이 있다. 손자국의 크기도 다양한데 가장 큰 것은 1미터를 넘는다. 이런 손자국과 발자국들이 있는 곳은 한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모두 산이 높고 길이 험하며 숲이 우거지고 물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들이다.
현성에서 남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진 망쉬선인산(芒旭仙人山)의 큰 바위에는 거대한 발자국이 네 번 중첩된 모양이 또렷이 찍혀 있다. 크기는 대략 1.5미터 길이에 너비가 1미터 가량 되는데 발끝은 남쪽을 향하고 세 발자국은 차례로 앞으로 1센티미터 가량 이동했는데 아주 사실적이다.
또 징구(景谷) 현소재지에서 9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궁랑촌(公郎村) 망둬사(芒朵社)의 한 산비탈에는 2~3톤 가량의 큰 바위가 두 개 있는데 한 곳에는 두 개의 손자국이 있고 다른 한 쪽엔 발자국이 있다. 현지 태족들은 손자국과 발자국에 금분을 칠해 놓았다. 손자국 하나의 크기는 길이 0.65미터, 나비 0.53미터 가량 되고 다른 하나는 길이 0.84미터, 너비 0.41미터 가량 되는데 모두 바위에 5센티미터 정도로 깊이 새겨져 있다. 두 개의 큰 손은 마치 큰 바위를 힘껏 밀고 있는 것 같다. 2미터 가량 떨어진 다른 바위에는 길이 1.52미터, 너비 0.75미터 가량의 큰 발자국이 찍혀 있다.
징구(景谷)현 동와총불사(動臥總佛寺)의 주지가 소개한데 의하면 태력(傣曆) 207년에 한 현지인이 이곳에 손자국과 발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금년은 태력 1367년이므로 이것이 발견된 지 1150년이 되는 셈이다.
또한 태족의 고대 경서(經書)인 『불조유력기(佛祖游歷記)』에도 이와 비슷한 기재가 있다. 고대 경서에는 불조 고타마(果大麻, 석가모니를 말함)가 동쪽으로 세계를 운유할 때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로부터 중국의 징구(景谷)로 오시면서 경(經)을 전하고 설법하시며 악마를 굴복시키시면서 이르는 곳마다 수십 곳에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이외에도 죽엽편에 씌어진 태족 경서 『26족 고타마(二十六脚果大麻)』에도 손자국과 발자국에 관한 기재가 있다. 이 경서의 잔존하는 부분이 현재 현 자료관과 한 마을의 절에 보존되어 있다.
현지 태족인들은 이 손과 발 흔적들을 석가모니가 남겨 놓으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매년 거행하는 “조선절(朝仙節)”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4월 20일부터 사람들이 매일 한 곳에 절을 하는데 이것은 이미 몇 백 년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문장 발표: 2005년 10월 5일
문장분류 : 생명탐구
원문 위치: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5/10/5/340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