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거봉진-시공지잡
작자:소연
【정견망 2007년02월01일】몇 년 전 <과학과 사람> 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느 외국인의 강연 내용을 번역해 놓은 글이었다. 그 당시 내가 읽은 부분 중 “작은 물고기가 대해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와 “고에너지 물리학자가 더욱 기본적인 입자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가장 기본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아마 작자는 사람들이 무한한 우주에 대해 유한한 인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복잡한 우주에 대해 수련인은 속인과는 다른 인식을 하는데, 이는 보통 사람에겐 신화같지만 실존하는 진실이다. 파룬궁 창시자이신 리훙쯔(李洪志) 선생은 <전법륜>의 <논어>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만약 인류가 자신과 우주를 새롭게 인식하고 굳어진 관념을 개변할 수 있다면, 인류에게는 곧 하나의 비약이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다른 공간에 대한 나의 인식을 거론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버뮤다 삼각지”에 대해 알고 있는데, 비행기나 화물선이 그곳에서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고, 때로는 몇 년간 실종되었던 사람이 음차양착으로 그곳에 나타나는 일이 있는데 그들은 더욱 젊어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그것은 다른 공간에 진입해서 나타난 정황이다.
우주의 시공은 매우 복잡한바 수련자의 인식 또한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것은 나의 협애한 견해일 뿐이다.
1. 다른 공간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존재한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한 손을 예로 들자면 표면적으로는 이런 모양이다. 하지만 이를 아주 미세하게 보게 된다면 이곳에는 생명이 있는데 심지어 산과 물이 있다. 과거 도가에서는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라고 했는데 이는 도리가 있는 말이다. 손으로 들면 아름다운 입체인 꽃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 공간에서는 두 사람의 거리가 매우 가깝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이곳이 히말라야보다 높은 산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수련자가 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할 때 염두가 순정하다면 강한 공능으로 이런 공간사이의 간격을 없앨 수 있다. 만약 염두가 순정하지 못할 경우에는 강대한 공능을 조정하지 못하기에 공간의 간격을 줄일 수 없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수련하지 않는 사람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서한 (西漢) 시기에 이광(李廣) 장군은 사냥할 때 한 마리 늙은 호랑이를 발견하고는 정신을 집중하여 화살을 당겨 호랑이를 명중시켰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큰 돌이었는데 그 다음엔 아무리 힘을 주어 활을 쏴도 돌을 뚫을 수 없었다. 공간의 간격을 없애는 데는 또 다른 중요한 인소가 있다. 옛사람은 도를 얻으면 많은 도움이 되고 도를 잃으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바, 어떤 일을 할 때 하늘의 뜻에 따른다면(바로 불법의 요구대로 한다면) 민심을 순조롭게 움직일 수 있으며, 적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개인의 염두를 바른 기점에 두려고 했을 경우 어떤 일을 하더라도 개인의 사심과 구하려는 잡념이 없다. 그럴 경우 사악과의 간격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효과는 좋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모두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어하며 고통을 줄이고 싶어하지만 각종 고난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수련인과 도덕이 높은 사람은 조건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하고 더욱 많은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할 뿐 개인의 이익은 얻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수련자의 지혜와 능력이 많은 경우 세인을 초월하는 원인이 된다.
2. 횡적으로 존재하는 공간
횡적 공간에 대한 이해도 어렵지 않다. 북경에서 광주는 바로 횡적 공간 안에 함께 있는데 횡적 공간은 동일한 입자로 조성되어 있다. 인류가 사람의 눈으로 보거나 망원경으로 보는 것, 또 현미경으로 얼마나 큰 천체, 얼마나 작은 입자를 보아도 사실 우리 이 공간 범위 이내에 있는 것이다. 인류는 근본적으로 다른 공간으로 돌파할 수 없다. 별이나 미세한 입자에도 물론 다른 시간장이 있다. 만약 한 사람이 다른 별이나 미세한 입자로 들어갈 수 있다면 이런 차이를 느낄 것이다. 마치 인류가 달에서 살면 지구에서 사는 시간과는 감각적으로 다르게 느낄 것이다.
감각을 이야기 하자. 사람들은 늘 일종 법칙이 있어 “만물”이 우주의 어느 곳이든 실용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사실 이 생각은 아주 우스운 것으로 인류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은 맹인이 코끼리 만지듯 단지 표면적인 것만 알 수 있는데, 인류의 인식으로 어떻게 놀라우리만큼 복잡한 우주를 잰단 말인가? 당연히 사람은 탐색과 연구를 위한 것으로 이는 크게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현유의 틀에 박힌 인식에 국한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3. 종향으로 존재하는 공간
종향으로 존재하는 공간은 간단히 아래 위와 안팎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손은 이런 모양이지만 손은 각종 세포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세포는 분자로 조성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인데, 만약 수련자가 이 손을 보게 된다면 그 속에는 매우 광활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그 속에는 무엇이든 다 있는바, 이는 수련자가 우리 이 공간을 돌파하여 더욱 미세하고 광대한 공간이 존재하는 정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 세계는 이 종향으로 존재하는 공간 중에 있다.
우주 공간의 복잡한 정도는 나도 다 인식하지 못하고 또 완전히 뚜렷하게 표현할 수도 없다. 여기에 쓴 것은 극히 간단한 몇 종류인데 세인들이 자신의 한계를 뚜렷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세인들이 더욱 많이 시간과 공간의 오묘함을 알고자 하면 우리 수련자의 행렬로 들어올 것을 권한다. 견정히 수련하는 중 시공의 오묘함을 깨닫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발표시간 : 2007년 2월 1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2/1/420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