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백
【정견망】
나는 여러 다른 곳에서 몇 개의 찻잔을 얻었는데, 그 중 하나는 녹색 찻잎색이었다. 이전에 나는 도자기, 특히 경덕진의 도자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녹색 찻잔을 사용하여 차를 마실 때마다 항상 그것이 경덕진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하곤 했다. 그 연한 갈색의 잔을 보면 항상 그 내면의 진흙이 경덕진의 하얀 고령토가 아니라고 느꼈다. 이 생각이 자꾸 떠올라 스스로 잘난 척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잔 입쪽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갈라진 틈이 생긴 것을 발견했는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안에 새하얀 태(胎)가 드러나자 나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 컵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몸을 자해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 태 역시 흰색이라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었다. 나는 급히 찻잔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차와 물을 마실 때 항상 그것을 사용하며, 일부러 파손된 면도 사용하여 감격의 뜻을 표했다.
의심은 분명히 있었지만, 사실은 질투가 더 심했다. 그것이 경덕진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며 품질이 낮고 깨끗하지 않으며 ‘서출-짝퉁’로 간주했다. 또 다른 공간의 생명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반복해서 견딜 수 있겠는가.
오직 자신을 부셔서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을 뿐이며, 이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선호(喜好취향)가 항상 작동하고 반복해서 평가하는 것이다. 그 뒤에는 심각한 등급 관념이 뒤따르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만족시키고 만족하면 기뻐하고, 불만이면 원망하고, 미워하고, 질투한다. 당 문화 전반에 걸친 “자식이 용이 되기를 바라며, 잔이 옥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구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지역의 풍토가 그 지역의 사람과 기물을 기른다. 만물은 그 자신이 되면 되지, 어떻게 그것이 (다른) 물건이 되기를 요구할 수 있는가.
취향에는 평소 자신이 버려야 할 모든 마음이 숨어 있다.
하나의 기쁨이 있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망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