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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원만 이야기(17) – 손사막

도가원만 이야기(17) – 손사막

작가 : 구양자운 정리

[정견망 2003년 1월 4일]

손사막은 옛 웅주(雍州) 화원 사람이다. 칠세 때 공부를 하는데, 매일 일천여 자를 읽었다. 20여 세 좌우로 장자, 노자, 제자백가의 이론을 담론하기 즐겼고 불경도 좋아하였다. 낙양의 총관 독고신이 그를 본 후 감탄하기를, “이는 신동이다. 단지 그릇은 크나 견식이 짧아 쓰이기가 어려울까 걱정이다.”라고 하였다. 후주 선제 때 손사막은 왕실에 변고가 많은 까닭에 태백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수문제가 보좌할 때 그를 박사로 임명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그 관직을 받지 않았다. 그는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오십 년이 지나면 성인이 나오는데, 그때 나는 그를 도와 세인을 구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십 년 후 당태종이 즉위하여 그를 경성으로 불러 그의 용모가 젊은 것을 보고 감탄하며 말하기를, “당신을 보니 도인은 실제로 존경하고 흠모할만 하군요. 광성자 등은 확실히 빈말이 아니군요.”라고 하였다. 태종이 작위를 주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당 현경 사년 고종이 그를 불러 간의대부를 시켰으나 고사하였다. 상원 원년에 그는 병을 핑계로 고향에 가기를 청하였다. 고종은 곡식과 말을 그에게 내리고 파양공주의 성읍을 주어 거주하게 했다. 당시의 명사인 송지문, 맹신, 노조린 등이 모두 사제의 예를 갖추어 그를 대했다.

노조린이 병이 들어 손사막의 집에 거주하는데, 당시 정원에 한 그루의 큰 배나무가 있어 노조린은 이 배나무를 위해 한 수의 사부(辭賦, 역주 – 문체의 종류)를 지었다. 그는 사부의 서문에서 쓰기를, “계유년 올 해에 내가 병 때문에 장안 광덕방의 궁내 숙사에 있는데 여기의 노인이 말하기를 이것은 파양공주의 성읍이라 한다. 파양공주가 시집 못가고 죽으니 그 성읍은 황폐했다. 당시의 손사막이라는 처사 한 분이 고금에 능통하고 각종 술법을 다 알았다. 도가의 이론을 깊이 알며, 그 학문의 깊이는 둘도 없어 당금의 유마힐(역주 – 부처님 시대의 거사)이라고 할 것이다. 천문역법의 추산, 하늘, 땅을 재는 것 등에 대해서는 낙하굉, 안기선생과 더불어 논할 만하다. 자기 스스로 개황 신유년에 났다 하니 벌써 93세다. 고향에 가서 알아보니 사람들은 이미 수백 세가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사람들과 주(周), 제(齊)나라의 일들을 함께 담론하는데 매우 명확하여 마치 친히 본 듯하다. 이것들로 참조해 보면 그가 단지 일백 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귀는 먹지 않고 눈도 침침하지 않고 원기왕성하다. 가히 고대의 총명하고 박식한 불로장생인이라 할 만하다.”라고 했다.

당시 노조린이 명성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중병이 들어 그는 매 사람마다 같지 않은 일을 만나며 사람의 수명이 이처럼 큰 차이가 있음을 탄식했다. 그래서 손사막에게 묻기를, “명의가 병을 고치는데 그 이치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했다. 손사막이 대답하기를, “내가 듣기에 하늘을 논하는데 능한 사람은 필히 본질적으로 정해져 있고, 사람을 논하는데 능한 사람은 반드시 하늘의 도리에 의거한다고 합니다. 하늘은 사계절의 변화가 있고 오행의 움직임, 혹서의 교체가 있습니다. 그것이 운행할 때 조화로우면 비가 되고 노하면 바람이 되며 엉겨 붙으면 서리가 되고 펼쳐지면 무지개가 되나니 이는 천지의 규율입니다. 사람은 사지와 오장이 있어 하나가 깨어있으면 다른 하나는 잠들며, 호흡의 날숨, 들숨의 순환 왕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흐름은 사람이 영위하기 위함이고, 현저해지면 기색을 좋아지고, 일어나면 목소리를 위한 것이니 이것이 사람의 규율입니다. 양은 그 정(精)을 쓰고 음은 형(形)을 쓰는데 이것이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같은 점입니다. 이런 정상적인 현상을 잃어버릴 때, 끓어오르면 열이 나고 그렇지 않으면 추워지며 사마귀가 생기고 종기가 패이고 숨이 차서 급해지고 다해 말라가는 것입니다. 병의 증상은 표면에 나타나지만 그 원인은 오히려 체내에 있습니다. 이러한 도리는 천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행이 가득 차거나 줄어들거나, 별이 길을 벗어나거나, 해와 달이 잘못 운행하거나 혜성이 흐르거나 이것들은 천지가 병든 것입니다. 추위와 더위가 때도 없는 것은 이 천지가 막혀서 그런 것이고 땅이 솟아오름은 이 천지에 사마귀가 생긴 것이고, 산이 무너지고 땅이 꺼짐은 천지에 종기가 생긴 것이고 거센 바람과 폭우는 천지의 숨이 찬 것입니다. 비가 때가 없고 수원이 고갈됨은 천지가 시드는 것입니다. 좋은 의원이 병을 고치는 데는 약을 써서 소통시키고, 사람을 구할 때는 침을 쓰며, 성인은 도덕으로 조화를 시키고 정치로써 보조합니다. 그러므로 신체의 질병을 고칠 수 있고 천지의 재난을 없앨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담욕이 크되 마음에는 욕심이 작고 지혜는 커도 행동은 바르도록 해야 합니다. 시경에 “깊은 웅덩이에 임하듯 하고 살얼음 밟듯이 한다” 소심한 것이며, “용맹한 무인, 제후가 성을 지킨다”는 담이 큰 것이며, “이익을 위하거나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아니다”는 말한 행위가 바른 것이며, “기회를 보아 일하고 마지막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는 지혜의 원융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문학에 대한 조예는 이와 같이 발군적이었고 도술은 너무 많아 다 기록할 수 없다.

당초 위징(魏徵) 등이 왕의 명령으로 제, 양, 주, 수 등의 오대사(五代史)를 편찬할 때 빠짐이 있을까 염려하여 여러차례 손사막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가 말로 전수하는데, 마치 직접 눈으로 본 것 같았다. 동태시랑 손처약(孙處約)은 다섯 아들인 손정, 손경, 손준, 손유, 손전을 데리고 손사막을 알현하였었다. 손사막은, “손준이 응당 먼저 지위가 귀하고 손유는 비교적 늦으며 손전은 최고이며 재난이 나면 병권을 잡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모두 그가 말한대로 되었다. 태자 첨사 호제경이 어렸을 때 손사막으로부터 인륜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는데 손사막은, “오십년 후 너의 관직은 제후의 장이 될 것인데, 나의 손자가 너의 부하가 될 것이니 자기 자신을 보중해야 한다.”라고 했다. 호제경은 나중에 서주자사가 되었고 손사막의 손자 손부는 과연 서주 소현의 현령이 되었다. 손사막이 당초 호제경에게 이 말을 했을 때는 손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였으나 그는 이미 손부의 일을 알고 있었다. 손사막의 신변에는 허다한 기이한 일이 발생하였다. 영순 원년에 손사막이 서거할 때 요구하기를,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되 묘 안에 어떠한 순장품도 넣지 말고 어떠한 살아있는 소나 양으로 제사 지내지 말라.”라고 하였다. 일개 월 여후 그가 죽었는데 얼굴 용모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시신을 관속에 넣을 때 텅 빈 의복만 남아 있었으며 그는 이미 시해하여 가버렸고 당시 사람들은 모두 놀라마지 않았다.

그가 편찬한 책은 <천금방> 삼십권, <복록론> 삼십권, <섭생진록>, <침중소서>, <회삼교론> 각 한 권씩이 있다. 개원년 간에 어떤 사람이 그가 종남산에 은거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일찍이 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손사막에게 말했다. “당신이 지은 <천금방>은 사람을 구제하는 공덕이 무량하다. 하지만 동물을 써서 약을 만드니 살해한 생명 또한 너무 많다. 그래서 일개 시해 신선이 되었지만 백일승천할 수는 없다.” 이후부터 손사막은 초목으로 뱀, 거머리 등을 대신하여 약을 처방하였으며 그가 지은 <천금방기> 삼십편에는 매 편마다 용궁의 선방이 하나씩 들어 있다.

이때부터 손사막은 때때로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였다. 함통 말년에 산 아래의 한 시골에 십여 세 된 남아가 있었는데 육류를 먹지 않았으며 부모는 그가 선행을 좋아한다고 여겨 백수승원으로 보내 동자를 시켰다. 갑자기 자칭 손처사라는 손님이 나타나더니 정원을 한바퀴 돌고나서 소매에서 한 포의 탕약을 동자에게 주며 말하길, “이걸 좀 달여주렴.”이라고 하여 달인 후에 처사가 일부를 먹고는 남은 것은 동자에게 주었다. 동자는 이 약즙이 매우 맛이 있어 한 그릇 더 달라고 하였다. 처사는 “이 탕약은 너를 위해 달인 것이다.”라고 하며 한 숟가락 정도 되는 약을 주어 달여 먹게 했다. 그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문밖을 내다보니 처사는 이미 떠나버렸다. 그리고 동자는 날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사이 약을 달인 솥은 금으로 변해 있었다. 이후에도 수시로 사람들은 손사막을 보았다.

자료: <태평광기>

발표시간 : 2003년 1월 4일
정견문장 : http://back.zhengjian.org/zj/articles/2003/1/4/199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