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기실:천재옥아(5) 호구시회(虎丘詩會)
작자:소연
【정견망 2009년 7월 24일】
중국 문화사를 아는 독자들은 이 제목을 보고 내가 쓰려는 것이 명나라 때의 일임을 알 것이다.
명나라 때 강남 소주(蘇州)일대에 당백호(唐伯虎), 축지산(祝枝山), 문정명(文征明) 등을 대표로 하는 뛰어난 문인들이 나타났다. 이들의 시가(詩歌), 서예와 회화는 중국 문화에서 역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반 사회도덕이 이미 매우 쇠퇴했기 때문에 그들의 언행 중에도 많은 변이된 요소들이 나타났다. 이 방면에서는 특히 당백호가 심했다! 당백호는 자칭 “강남 제일의 재주꾼(大才子)”이라고 자처했는데 이 자체가 바로 제멋대로이며 겸손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안하무인한 태도로 어떻게 진보할 수 있겠는가?
그가 쓴 한수의 시 《도화암가(桃花庵歌)》의 앞 네 구절은 다음과 같다.
桃花屋裏桃花庵
桃花庵裏桃花仙
桃花仙人種桃樹
賣了桃花換酒錢
복사꽃 집안에 복사꽃 초가가 있네
복사꽃 초가에 복사꽃 선인이 있다네
복사꽃 선인이 복숭아를 심어
복사꽃을 팔아 술로 바꾸네
이런 품격과 도연명의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꽃 따며 남산을 유유하게 바라보네”의 경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는 조금도 세상에 대해 분개하거나 증오하는 것이 없다.
예를 들어 그는 이렇게 썼다.
不煉金丹不坐禪
不爲商賈不耕田
閑來寫副丹青賣
不使人間造孽錢
금단을 연마하지도 좌선을 하지도 않으며
장사를 하지도 않고 밭도 갈지 않는다
한가할 때면 그림을 그려 팔며
인간세상에 나쁜 돈을 벌지 않게 하네
당백호는 당시 술을 매우 좋아했으며 친구 사귀기를 좋아했다. 친구들을 데리고 도처로 놀러 다녔으며 온갖 기방이나 술집은 다 다녔다. 그의 친구 중에 문정명은 비교적 바른편이고 군자다운 면이 있었지만 축지산은 더욱 방탕했다. 그러나 그의 시문은 매우 좋았다.
한번은 그들이 함께 서호(西湖)에 놀러가 서하령(西霞嶺)에 올랐는데 멋진 경치를 동반해 서로 간에 각자의 마음을 읊었다.
一上一上又一上
一直上到高山上
海面初平雲腳低
四海五湖皆一望
오르고 오르고 또 올라서
줄곧 높은 산에 올랐다네
바다가 평평하고 구름이 발아래 있고
사해 오호(四海五湖)를 모두 바라보네
(당백호)
이때 하늘에서 두 마리 큰 새가 날아왔고 문정명이 기회를 놓칠 새라 시를 읊었다.
雙鳥飛躍西霞嶺
西湖美景碧萬頃
遊子文人來做客
洗盡俗念方自醒
쌍조가 서하령에 비약하니
서호의 경치는 푸른빛이 끝없구나
유람하는 문인이 손님으로 오니
속세의 생각을 다 씻어 깨어나리라
이를 듣자 축지산이 하하 대소하며 말했다. “문 아우, 자네의 “속세의 생각을 다 씻어”라는 구절을 던져버리고 내 것을 보게나.”
西湖景美魚更美
此時不醉何時醉
世間萬事酒中過
管他紅塵是與非
서호 미경에 물고기는 더욱 아름답구나
이때 취하지 않으면 언제 취하리
세간의 만사는 취중에 지나니
속세의 시비를 상관하지 말아라
아, 문정명은 화가 나서 그저 고개를 저었다! “축형이 이 모양이라니. 머릿속엔 온 종일 이런 생각뿐이구나.”
나중에 인근 문인들이 소주의 호구(虎丘)에서 시 대회를 열었다. 시 대회에서 그들 세 사람은 아래 3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평소 배운 바를 다 발휘해 휘황한 시 대회를 엮어냈다. 아래 3천 명은 대부분 일반 백성들로서 떠들썩하게 보러온 사람이었고 그저 일부만이 부근의 다른 지역에서 온 글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비록 이들은 이백의 시가처럼 대범한 심경이나 소동파와 같은 소탈함은 없었지만 그들 나름의 경지가 있었다. 부동한 시대에는 부동한 천체에서 온 생명이 있기 때문인데 그들이 여기에 온 것은 자기 천체의 문화를 이곳에 가지고 온 것이 아닌가? 목적은 문화의 기초와 내포를 다지려는 것이었다. 인간은 이때 도덕이 쇠퇴하고 전반 천체 우주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는가? 다만 천체중의 구체적 표현이 좀 다를 뿐이었다.
시가로 말하면 설사 같은 음률을 따르더라도 내포와 품격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동시에 시를 짓는 본인의 사상 품격과 직접 관계가 있다. 그래서 신이 무엇을 배치했든 사람으로서 이번 생에 어떻게 선택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신의 안배에 따라 사명을 완수하면 그것이 공이며 신의 안배를 위반하면 잘못이다. 잘못이 있으면 상환해야 한다. 이것은 하늘의 이치이다.
당백호는 이 생에 명성이 그리 좋지 못했다. 가난과 병으로 죽은 후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했다. 그는 또 지옥에서 몇 년을 지낸 후 일부 고생을 겪었는데 무엇 때문인가? 그는 하나의 “명인”의 신분으로 일부 문화를 변이하는데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정명은 군자의 신분으로 많은 정통적인 것을 남겼고 죽은 후 하늘에 올라 한동안 복을 누렸다. 부동한 문화를 개창할 사명이 또 있었기 때문에 얼마 안 되어 그들은 또 인간에 내려와 윤회전생했다. 축지산과 당백호의 운명은 비슷했다. 나중에 환생했을 때 그는 한때 당백호의 다음 세에 200 냥의 은전을 빚졌다.
바로 이러하다.
文朋詩友行世間
開創文化莫等閑
今朝得法破迷霧
回望前世淚漣漣
글 쓰고 시 짓는 친구들 세상에 다니며
문화를 개창하니 한가롭지 않았네
이번 생에 법을 얻어 미혹을 타파하니
전생을 돌아보고 눈물 흘리네
발표시간 : 2009년 7월 24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7/24/607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