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효명
【정견망】
천년의 윤회, 속세의 꿈에서 깨어나다.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과거의 내 인연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때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장사는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壯士一去不複還)”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구절은 원래 “형가자진(荊軻刺秦-형가가 진시황을 찌르다)”이란 역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내가 무의식중에 쓴 이 말에는 커다란 연유가 있었다. 그 배후에는 2천여 년 전의 비장한 역사가 감춰져 있었고 또 나와 연관이 있었다.
얼마 전 업무 관계로 다른 지방에 갔다. 그곳에서 갑(甲)을 알게 되었다. 갑을 알게 된 것을 말하자면 또 스토리가 있다. 나는 업무 관계를 이용해 진상을 알렸는데 진상을 알게 된 동료가 갑이 근무하는 곳으로 갔고 갑 역시 그에게 진상을 말했다. 이리하여 우리는 서로 상대방을 알게 된 것이다.
갑의 집에서 나는 매일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났다. 매일 시간이 아주 빠듯했다. 그곳에서 갑의 아내(편의상 병이라 부르자)와 또 집을 나와 떠도는 을(乙)이란 젊은이를 알게 되었다. 그는 평소 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늘 오지는 않았다.
내가 떠나기 하루 전날 밤, 나는 갑, 병과 이야기 하다가 을의 얼굴이 매우 익숙하여 불현 듯 물어보았다 “혹시 무슨 특수한 꿈을 꾼 적이 있지 않나요?”
그가 말했다.
“있지요. 그저 대다수는 오래된 일이라 잊어버렸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매우 뚜렷한데 지금도 잊을 수 없답니다.” “나와 다른 한명의 무사가 함께 진시황을 찌르러 갔는데 그가 비수를 제대로 찌르지 못했지요. 그래서 내가 나서서 찔렀는데 진시황이 몹시 놀라….”
내가 말했다.
“알았다, 당신이 바로 역사책에 나오는 유명한 자객 형가(荊軻)가 아닌가!”
그와 함께 진시황을 찌르러 간 또 다른 무사는 누구였을까?
옆에 있던 갑이 말했다. “그는 진무양(秦武陽)이죠.”
그래서 나는 얼른 인터넷에서 “형가자진(荊軻刺秦)”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전국시대 후기에 이으러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 군대가 연(燕)나라에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당시 연나라 태자였던 단(丹)은 몹시 두려웠다.
태자단이 형가를 불러 말했다.
“진나라 병사가 조만간 역수(易水)를 건널 터인데 어찌 해야 좋단 말이오?”
“태자마마의 말씀이 없었더라도 신이 알현코자 했습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증거가 없으면 그를 만날 수 없습니다. 만일 진나라에서 망명한 번어기 장군의 수급이라면 진왕이 천금이라도 주고 살 것입니다. 번장군의 수급과 연나라 지도를 바친다면 진왕은 반드시 기뻐하며 신을 맞이할 것이니 그때 신이 태자님께 보답할 수 있을 겁니다.”
한편 연나라에는 진무양이라는 용사가 있었다. 그는 나이 12살에 살인을 하고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아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던 위인이었다. 이에 진무양을 그의 부사로 딸려보냈다.
국경이 역수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이별해야 했다. 노래를 부르며 모두들 눈물을 흘리는데 형가가 나아가 이렇게 노래했다.
“바람 소소히 불고 역수는 찬데, 장사는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누나!(風蕭蕭兮易水寒,壯士一去兮不複還!)”
사기 《/span>형가자진의 기록에 보면 이후 결과는 다음과 같다. 형가는 번어기의 수급과 연나라 지도를 들고 용사 진무양과 함께 진시황을 보러 간다. 진무양은 비수와 지도를 싼 보따리를 들고 형가는 번어기의 머리가 든 상자를 들었다. 진무양은 담이 아주 센 용사였지만 진시황 앞에서는 그만 겁이 나서 벌벌 떨고 만다. 결국 진시황의 의심을 샀고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형가와 진무양은 모두 진시황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렇게 한단락의 비장한 역사를 남기고 문화를 다졌으며 “도궁비현(圖窮匕現-지도를 들추자 비수가 나타났다)”라는 고사성어를 남겼다.진무양의 성격 특징과 대조하고 또 사람의 성명 속에는 천기가 숨겨져 있으므로 나는 알았다. 그래서 을에게 반문했다 “혹시 내가 진무양처럼 생겼나요?”을이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꿈에서 나와 함께 진시황을 찌르려던 그 사람과 매우 닮았군요.”그 순간 나는 의연히 2천여 년 전의 그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홀연히 2천년 전으로 되돌아갔다.을이 형가고 내가 진무양이었다면 갑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당시 내가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을 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연태자 단.”그러자 을이 말했다. “연태자 단은 꼭 일본 무사처럼 생겼어요.”고개를 돌려 갑을 찬찬히 쳐다보던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정말 일본 무사 같았던 것이다. 갑도 어쩔 수 없어 미소를 지었다.내가 또 물었다. “그럼 병은 누굴까요?”을이 말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나는 손뼉을 쳤다. “연태자 비(妃)야!”내가 자세히 살펴보니 병은 정말 과거 연태자 비처럼 생겼다. 특히 귀밑머리가 그랬다. 병도 말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저더러 ‘당신 참 기품이 있군요. 존귀함이 느껴집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그 순간 우리 모두 피차간에 어찌된 일인지 알았고 매우 든든하고 평정해졌다. 확실히 이런 것이구나. 그날 밤 또 한 사람, ‘정’이 오지 않았지만 며칠 전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아마 정은 분명 그때의 번어기일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이천년 전의 한 단락 인연을 끝맺었다. 그 비장한 역사는 지나가고 역사적 문화를 다졌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이들 모두 법을 얻어 수련하고 있다.그날 밤 사람들은 매우 늦게까지 이야기 했고 다음 날 그들은 함께 나를 역까지 배웅해주었다.차창 밖에서 그들이 손을 흔들 때 나는 또 이 시가 기억났다.“바람 소소히 불고 역수는 찬데, 장사는 한번 가면 오지 않네.”내가 북경 천안문에 갔을 때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이 인연을 소중히 하고 자기의 사명을 알았으니 최후의 길을 잘 걷도록 하자.발표시간: 2013년 9월 8일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0761
형가는 번어기의 수급과 연나라 지도를 들고 용사 진무양과 함께 진시황을 보러 간다. 진무양은 비수와 지도를 싼 보따리를 들고 형가는 번어기의 머리가 든 상자를 들었다. 진무양은 담이 아주 센 용사였지만 진시황 앞에서는 그만 겁이 나서 벌벌 떨고 만다.
결국 진시황의 의심을 샀고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형가와 진무양은 모두 진시황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렇게 한단락의 비장한 역사를 남기고 문화를 다졌으며 “도궁비현(圖窮匕現-지도를 들추자 비수가 나타났다)”라는 고사성어를 남겼다.
진무양의 성격 특징과 대조하고 또 사람의 성명 속에는 천기가 숨겨져 있으므로 나는 알았다. 그래서 을에게 반문했다 “혹시 내가 진무양처럼 생겼나요?”
을이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꿈에서 나와 함께 진시황을 찌르려던 그 사람과 매우 닮았군요.”
그 순간 나는 의연히 2천여 년 전의 그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홀연히 2천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을이 형가고 내가 진무양이었다면 갑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당시 내가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을 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연태자 단.”
그러자 을이 말했다.
“연태자 단은 꼭 일본 무사처럼 생겼어요.”
고개를 돌려 갑을 찬찬히 쳐다보던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정말 일본 무사 같았던 것이다. 갑도 어쩔 수 없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또 물었다.
“그럼 병은 누굴까요?”
을이 말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손뼉을 쳤다.
“연태자 비(妃)야!”
내가 자세히 살펴보니 병은 정말 과거 연태자 비처럼 생겼다. 특히 귀밑머리가 그랬다. 병도 말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저더러 ‘당신 참 기품이 있군요. 존귀함이 느껴집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순간 우리 모두 피차간에 어찌된 일인지 알았고 매우 든든하고 평정해졌다. 확실히 이런 것이구나. 그날 밤 또 한 사람, ‘정’이 오지 않았지만 며칠 전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아마 정은 분명 그때의 번어기일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이천년 전의 한 단락 인연을 끝맺었다. 그 비장한 역사는 지나가고 역사적 문화를 다졌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이들 모두 법을 얻어 수련하고 있다.
그날 밤 사람들은 매우 늦게까지 이야기 했고 다음 날 그들은 함께 나를 역까지 배웅해주었다.
차창 밖에서 그들이 손을 흔들 때 나는 또 이 시가 기억났다.
“바람 소소히 불고 역수는 찬데, 장사는 한번 가면 오지 않네.”
내가 북경 천안문에 갔을 때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이 인연을 소중히 하고 자기의 사명을 알았으니 최후의 길을 잘 걷도록 하자.
발표시간: 2013년 9월 8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0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