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대륙대법제자
【정견망】
본문은 한 매체 인사가 법을 찾아다닌 전생이다.
주인공은 영국 사병의 후예다. 1780년대 영국이 호주 식민지를 건설할 때 죄수들의 유배지로 삼았다.
개발 초기 이곳은 살기가 매우 힘들었다. 죄수와 교도관들이 정착한 곳은 호주 동남부 평원이었다. 뒤로는 대분수령이 있고 앞은 태즈만 해였다. 태평양에서 시작된 폭풍이 뉴사우스웨일즈 주로 불어왔다. 당시 호주는 식량이 귀해서 남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에서 실어 와야 했다. 문제는 모두 배로 운송했기 때문에 비바람이 불거나 하면 늦어지기 마련이었다. 식량이 부족하니 사람들은 힘겨운 날을 보냈다. 나중에 호주에서 금광 등 자원이 발견되자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서 대량의 이민인구가 들어왔다.
20세기 첫날 호주는 비로소 연방국가가 되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때부터 시작한다.
어릴 때 부모님은 그에게 조상들이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처음 사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가끔 부모님과 주변 노인들의 이야기를 묶어 머릿속에 자기가 호주를 떠도는 그림을 떠올리곤 했다.
한 노인이 말했다. “생존은 사람의 본능이야. 살아남기 위한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관건이지. 아주 힘겨울 때 만약 약간의 음식을 남겨 놓았는데 다른 사람이 좀 달란다고 그에게 주면 굶어죽을 수 있어. 주지 않으면 양심이 괴롭고 나눠 먹으면 둘 다 배고프지. 이런 모순 속에서 사람마다 각기 다른 선택을 하지. 결과는 자연히 다르단다.”
그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어떤 사람은 음식을 나눠주지 않고 혼자 살아남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음식을 나눠주고 자기는 죽었겠구나.’
노인이 그를 보더니 웃으면서 “자네가 뭘 생각하는지 알겠네. 자네가 직접 이런 문제에 만나보면 결과가 다르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될거야.”
그는 성장한 후 호주의 환경과 지리를 조사할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20여 명을 데리고 시드니에서 대분수령을 넘어 중부 평원지대에 도착한 후 서부 고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사막을 가로질러 서부에 도착했다. 또 해안을 따라 북으로 갔다가 방향을 바꿔 시드니로 돌아왔다.
이후 시드니에서 출발하여 해안선을 따라 남행 하여 태즈매니아 섬을 거쳐 퍼스로 돌아왔다.
그들은 길에서 정말 그 노인이 말했던 문제에 봉착했다. 그는 조금 남은 자기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굶어죽진 않았고 현지 원주민의 도움을 받았다.
원주민이 말했다. “우리 선조들은 당신들 같은 외래인에게 쫓겨 멀리 중서부로 갔다. 본래 우리는 줄곧 마음이 매우 아팠고 당신들이 이곳에 온 것을 보고 당신들을 죽여 원한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호기심에서 우리 몇몇이 조용히 따라가며 당신들의 언행을 살펴보았다. 나중에 음식이 부족할 때 자기 음식을 남에게 주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당신들을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남긴 말이 있는데 만일 자기 음식을 남에게 주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비밀을 말해주라고 하셨다.”
“무슨 비밀이죠?” 모두들 큰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 선조들이 살던 지방(뉴사우스웨일즈)의 산 속에 오랫동안 수행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많은 일을 알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쫓겨 가고 이 대륙이 외지인들에게 통치 당할 것이며 원주민들은 매우 오랫동안 빈곤하게 지낼 것 등등. 하지만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장차 여기에 특별한 사람이 오는 것이다. 그는 이 대륙 사람들에게 장래에 매우 좋고 평화롭고 무사무아하며 사람의 이목을 일신할 수 있는 수련방법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되면 많은 수련의 사정 때문에 이곳을 왕래하는 외부(다른 대륙이나 도서) 사람을 신의 사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럼 때가 되면 우리가 어떻게 그를 찾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 죽으면 지옥이나 천당에 가는 게 아닙니까? 다시 사람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 기독교 문화에는 윤회라는 개념이 없다.)
그 원주민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당신들 사상의 틀에서 말한 것이다. 당신들의 선조가 원래 거주하던 지방에서는 이곳 동물(캥거루 등)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많은 일은 너무 고정화할 필요가 없다.”
말을 마친 후 그는 가장 좋은 음식으로 일행을 대접했다. 그들 마음에는 갈망(그 수련방법을 전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할 일(사람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는가?)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 고찰로 인해 그들은 수확이 매우 컸다. 이번 조난으로 20여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이치를 알게 되었다. 바로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남을 생각할 수 있다면 고생 중에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드니에 돌아온 후 그는 또 몇 사람들을 데리고 나중에 “12사도 바위”라 불리는 곳에 갔다. 그곳에서 석회암이 바닷물에 미친 듯 씻기는 것을 보자 마음속에는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의 고험을 거치지 않은 일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실된다. 만약 장래 내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좋기는 단련을 견뎌내고 불변하는 수련 방법을 만났으면 좋겠다.”
이때 한 사람이 혼잣말 하는 걸 들었다. “단련을 견디는 수련 방법을 희망하는 동시에 자신도 무사(無私)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그가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해변에는 즐겁게 노는 사람들만 있을 뿐 대체 누가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이 말을 자세히 연구해보니 매우 일리가 있었다. 이후에 그는 어떤 일을 해도 무사(無私)한 성격을 유지했다. 많은 이들도 그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선한 인연을 널리 맺었다.
매번 원주민이 언급한 수행인에 관한 말을 생각할 때마다 그는 갈수록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러다 아예 서너 명을 데리고 인근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또 대분수령으로 찾으러 갔다.
2,3 년간 돌아다녀도 찾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본 것은 처음 동굴 부근에 갔을 때 동굴 속에서 비쳐 나오는 자색 빛이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갔을 때 동굴의 입구가 너무 작아 전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다. 부근 사람에게 물어보니 사람들도 이곳에서 늘 자색 빛이 나온다고 하는데 때로는 동굴 입구가 매우 크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들어가 봤는데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다.
그는 동굴 입구에서 며칠을 기다렸으나 자색 빛 외에 무슨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돌아가던 중 누군가 말했다. “아마 수행을 다년간 하신 분은 우리가 온 것을 알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만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숨었겠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주었습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는 희미하게 답했다.
만일 한 사람이 갈망이나 의문의 모순적인 심리를 가지고 지낸다면 그는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할 것이다. 그는 이런 마음이 줄곧 늙을 때까지 있었다. 임종 전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만약 장래 사람의 눈을 번쩍 띄게 할 수련방법을 전해줄 사람을 만난다면 반드시 그것을 널리 알려 나처럼 마음 졸이며 기다리지 않아도 되게 하겠다.’
바로 다음과 같다.
跋涉澳洲遇土著告知將有法傳出保持無私世中等輾轉惜緣莫貽誤
호주를 떠돌다 원주민을 만나장차 법이 전해질 것을 알았네세상에 무사를 유지하고전전하다 잘못 전하지 않기를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39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