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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전생을 기억한 청나라 진사

작자/대법제자

【정견망】

청나라 말의 어느 탐화(探花)가 있었는데 탐화란 과거에서 최종 3위로 급제한 사람을 말한다. 그는 한때 꿈에서 자기 전생을 기억했다. 그의 이름은 오음배(吳蔭培 1851-1831)로 자는 수백(樹百) 호는 영지(穎芝)로 강소성 소주 오현(吳縣 지금의 소주시 오중구와 상성구) 출신이다. 원래 호는 영지(穎芝 중국어 발음 잉즈)였지만 비슷한 발음인 오인지(吳引之 중국어 발음 우인즈)로 불리곤 했다.

오음배는 타고난 성품이 민첩하고 지혜로웠다. 책을 보기만 하면 외울 수 있었으며 광서 16년 (1890년)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에 제수되었고 일찍이 복건성 향시를 주관하는 시험관을 지냈다. 한림원 찬문, 조주지부 등의 관직을 지냈다. 그는 자비를 들여 일본 시찰을 했고 귀국 후 일부 좋은 의견을 낸 적도 있는 개명하고 또 청렴한 관원이었다. 중화민국 시기에 그는 공익에 열심이었고 모금 운동으로 빈민을 구제하고 문물을 보호했으며 저명한 자선인사가 되었다.

민국 10년(1921년) 보타산에 예배하러 갔는데 당시 유명한 고승이었던 인광(印光) 화상을 만났다. 그는 노화상에게 자신이 전생에 운남의 승려였다고 말했다. 당시 인광 화상은 손님을 접대하느라 바빠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진 못했다. 나중에 민국 19년(1930년) 인광 화상이 보국사에서 수행할 때 오음배가 또 찾아갔다. 담화 중에 인광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전생에 운남의 승려였음을 아시나요?”

오음배의 대답은 이랬다. 자신이 26세 때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어느 사찰에 갔고 그곳이 운남의 어느 사원임을 알았다. 꿈에서 본 전당, 방, 나무의 형상이 매우 익숙했고 자신이 바로 그 사원의 승려였다. 깨어난 후 기억이 매우 뚜렷하여 꿈에서 본 일체를 기록해놓았다. 나중에 친구인 장중인(張仲仁)이 그곳에 부임했고 그에게 자신이 쓴 대로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정말로 그런 절이 있었고 광경도 꿈에서 본 것과 완전히 일치했다.

이로써 오음배는 진실하게 꿈에 자기의 전생을 기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장중인 역시 문화 교육 등 공익사업에 열심히 공헌했다. 그들 두 사람이 이같이 공익과 자선 사업을 열심히 한 것은 그들이 생명의 윤회를 본 것과 관련이 있다. 인광 화상은 민국 시기의 공인된 고승으로 절대 망언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음배가 꿈에서 전생을 본 일은 믿을 만하다. 윤회는 확실히 존재하며 생명은 절대 이 일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신론은 잘못된 가설일 뿐이다.

자료출처:《인광법사문초(印光法師文鈔)》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6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