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석방행(石方行)
【정견망】
많은 세인들이 수련에 대해 상당한 오해가 있다. 당신들(수련인을 가리킴)은 세상의 이익을 가지지도 않고 곳곳에서 손해만 보는데 대체 당신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뭐요? 우리가 맛있는 것을 먹고 돈이 많고 미녀가 이렇게 많은 것을 보시오, 얼마나 좋소? 사실 그들은 단지 눈 앞의 일시적인 이익의 득실만 보고 생명의 영원함을 보지 못한다. 이것이 그중 하나다.
둘째, 생명의 경지가 다르기에 소위 행복의 방식 역시 각기 다르다. 층차가 더 높을수록 무엇이 진정한 행복이며 즐거움인지 더 잘 알게 된다.
본 문장은 모여서 바둑을 두거나 차를 마시는 인간세상의 흔한 2가지 ‘취미’를 통해 천계(天界) 일정한 층차의 표현을 말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신의 상태에서는 무엇을 행복과 즐거움이라고 하는지 설명해보고 수련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보고자 한다. 동시에 사람들의 사유를 좀 넓혀보고자 한다.
하나의 매우 높은 경지 중에서 비할데 없이 높고 넓은 궁전이 있다. 천상의 궁전은 인간세상보다 더 화려하고 풍요롭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궁전은 아무리 넓다 해도 땅 위에 고정되어 건립되어 있고 적어도 지탱하는 기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천상의 궁전은 공중에 매달려 있으며(지탱하는 기둥이 없다) 주변에 구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떠다닌다. 또 물속에 잠길 수도 있어서 맑은 물이 졸졸 흘러가는데 매우 편안하다. 높은 산과 일체가 될 수도 있는데 오직 이 경지에 도달해야만 어디가 고산이고 어디가 궁전인지 분별할 수 있다. 뜻하는 대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형상으로 변화할 수 있는데 볼게 너무 많아서 눈이 쉴 틈이 없을 정도다.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이 물질공간의 이 물체가 마치 죽은 것 같고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외에 어떤 한 공간의 물체도 다 운동하고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분자는 운동하고 있으며 원자도 그러하며 일체는 모두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전자는 원자핵을 둘러싸고 운전하고 있으며 일체는 모두 운동하고 있다. 물질은 운동하는 것이다. 그 수미산, 그는 어떤 때에 한 갈래의 직선을 이루고 어떤 때에는 삼각형을 이루며 그것은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이 부동한 각도에서 그것을 볼 때, 부동한 상태에서 그것을 볼 때에 그것의 진실한 면모를 보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파룬따파 미국법회 설법-뉴욕법회설법>
궁전에 있는 뭇신들은 사실 ‘많은 경치가 중첩된’ 상태에 처해 있다. 마치 우리 인간세상에서 같은 지점에 산이 있고 물이 있고 꽃과 신들이 있는 것같다. 이는 인간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뭇신들이 존재하는 환경은 매우 복잡하고 아름답다. 뭇신들 역시 모두 아주 거대한 지혜와 능력으로 이 일체를 지배하고 있다.
또 다양한 종류의 신조(神鳥)들이 하늘에서 맴돌고 있으며 각종 신수(神獸)들이 주위에서 놀고 있다. 대전 내에 각종 신들이 바둑 시합과 다회(茶會 차모임)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일을 위해 구체적인 안배를 하고 있다.
이 바둑은 다 합해서 36국(局)이 있는데 매 국마다 두 사람이 있고 차 모임은 모두 45국이 있는데 매 국마다 네 명이 모인다. 총 81국으로 252명의 신선이 참가한다. 알아야 할 것은 이곳에 온 뭇신들은 층차가 다 다르며 형상도 각기 다르고 생명 특징도 다르며 입은 옷도 다르고 지니고 있는 법기와 신수도 다르다. 게다가 시중드는 선녀와 선동도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차와 물을 나르느라 매우 바쁘다.
천상의 바둑은 인간세상의 바둑과 배치는 유사하지만 두는 방법에는 차이가 많다. 인간세상에서는 어떻게 하든 진정으로 그 바둑판이나 바둑알로 들어갈 수 없지만 신선이 바둑을 두면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매 한 수는 매우 복잡하다. 이것은 사람의 관념으로는 상상할 수 없다.
많은 경우 대전 옆에 서서 이 신선들이 바둑 두는 것을 보는데 어떤 때는 36국 중에 신이 있는 것은 몇 국 안되고 나머지 대국에는 바둑알만 움직인다. 더 재미있는 것은 어떤 바둑은 오직 한명의 신이 앉아 있고 다른 편은 바둑알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는 기본적으로 다중 장면이 함께 중첩되어 있어서 보기에 더욱 복잡하다. 변화는 그야말로 오묘하기 짝이 없다.
또 다회(茶會)를 보자. 다회는 탁상에 본래 4명의 신선이 함께 차를 맛보는 일이다. 하지만 이 신선들은 신통을 드러내 ‘명품차’를 꽃처럼 다양하게 만든다. 인간에서 우리는 무슨 차든지 모두 물에 담그거나(泡) 끓여야(煮) 한다. 하지만 천상의 신은 차를 품평하는데 단순히 담그거나 끓이지 않는다. 신은 법력이 있기 때문이다. 천상에는 샘물(神泉)이 매우 많은데 각종 샘물의 성질이 다 다르다. 어떤 신차(神茶)를 겨냥하느냐에 따라 우려낸 효과도 같지 않다.
그중 한 신은 분신(分身)하여 다른 경지중에서 만 리 떨어진 곳의 신차(神茶)나무 곁으로 가서 신차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신에게 찻잎 몇 개를 가져왔다. 또 차를 씻는 신의 샘(神泉)으로 가서 물을 떠가지고 찻잎을 씻었다. (이것은 찻잎이 더러워서 씻는 것이 아니다. 천계에는 먼지가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신의 물로써 이 공간 거리요소 때문에 생기는 신의 차이를 없애기 위함이다. 부동한 경지(境界)와 지계(地界)에는 부동한 신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하나의 신이 관리하는 경지와 지계중의 일체는 모두 이 신의 요소가 있다.) 그리고 나서 신의 샘물을 가져와서 그 물로 우려낸다. 그 맛은 그야말로 인간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차를 가져와도 비교할 수 없다.
설사 이런 신선들이라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가져다 신호(神壺, 항아리) 속에 넣어둔다. 신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차항아리가 아니다. 가령 <수호지>에 나오는 ‘자금팔보야광호(紫金八寶夜光壺)’라는 귀중한 차항아리도 신호에 비하면 너무나 조악하고 형편없을 정도다. 신호의 종류도 아주 다양한데 색채와 형상 및 손잡이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한 항아리에도 여러 종의 도안이 날거나 움직일 수 있고 항아리 자체도 영롱하게 변화한다. 항아리가 이와 같으니 차 역시 이러하다. 게다가 차를 맛보고 품평하는 과정에서 신선들의 신통이 크게 드러나는데 온 찻집이 매우 재미있게 변한다.
그 옆에는 십여 명의 선녀들이 훨훨 춤을 추는데 어떤 선녀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한다.
일체는 시간의 제한이 있다. 시간이 되면 매우 높은 경지의 신이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와서 ‘성적 검사’를 하며 매 신의 생명 특징 및 능력과 지혜를 본다. 그리고 계통적인 안배를 한다. 이런 것은 자동적으로 긴 두루마리에 기록되는데 이 두루마리들이 매우 많은 두루마리 책을 이루어 부동한 신의 수중에 떨어진다. 이 두루마리 자체는 천계의 서각(書閣) 내에 보존되고 하나의 증거로 삼는다. 이것은 서각을 관리하는 신이 보살피는 책임을 지고 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6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