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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심법: 함해서역 (2)

작자/석방행

【정견망】

전편에서 우리는 서역에서 중국 국경 안쪽을 말했다면 이편에서는 중앙아시아 5개국에 대해 말해보겠다.

이 지역에서는 매우 일찍부터 인류가 출현했고 신석기 유적 역시 비교적 많다. 대략 기원전 7000년에서 4000년의 신석기 시대에 중앙아시아 고대 주민들은 인류 활동의 증가로 자연산물이 증가한 시기로 들어섰다. 수렵을 하다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고 식물을 채집하다가 농업을 시작했다. 대략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까지의 시기에 중앙아시아에서는 석기뿐만 아니라 구리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제1차 사회 분업이 완성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아시아5개국사강(中亞五國史綱)》 참조)

중국 신문망(中國新聞網)에서 2016년 8월 17일 보도한 ‘카자흐스탄 발견 사전 피라미드 이집트보다 1000년 빠를 듯’(哈薩克斯坦發現史前金字塔 或比埃及早1000年)을 보면 “이 유적지는 사전의 무덤이며 카자흐스탄 중부의 카라간다 주에 있다.” “묘지의 전체적인 형태는 피라미드와 유사하다. 경사면이 계단 상태이고 특징이 분명하며 시간의 대략 기원전 14세기에서 12세기 청동기 시대에 속한다.” 문장의 마지막에서는 “영국 ‘데일리 메일’은 전에 중국과 멕시코 등에서 고고학자들이 유사한 피라미드 유적을 발견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 카자흐스탄에서 발견한 피라미드 유적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것에 속하며 이집트보다 천년 정도 앞설 수 있다.”고 했다.

지도상에서 이곳은 발하슈 호(巴爾喀什湖) 서쪽에 위치한 발하슈성에서 멀지 않고 서북 방향의 새 수도 아스타나와도 아주 가까운 편이다. 카자흐스탄 구릉지대에 속한다.

이 시기를 중국 역사에 대응해보면 바로 상(商)나라(기원전 16-11세기) 시기다. 기존 보도에서는 고고학적 각도에서 이 지역의 문명과 중국문명의 관계를 설명하진 않았다. 하지만 전편에서 보았다시피 신강(新疆)을 포함한 이 지역(신강 새이람 호수와 카자흐스탄 경계에서 중국 쪽에 위치한 고 문명의 유적지는 전편에서 언급했기에 여기서는 상세히 말하지 않는다.)에는 아주 오랜 문명이 존재했었다. 또 거리가 멀지 않고 상고시기에는 쉽게 접촉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 카라간다 주에서 발견된 유적지가 그 고대 문명에서 남겨진 것인지 혹은 계승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이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아직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일단 가설로 남겨둔다. 계승 관계가 있든 없든 이 유적의 발견은 적어도 중국 상나라 시기 이 지역이 그래도 사람들이 살고 발전하기에 매우 적합했음을 증명한다.

그 밖에 나는 《/span>산해경서산삼경(西山三經)’ 중에 이런 기록이 있는 것을 기억한다. 곤륜산에서 발원한 한 가닥 하류 중 백옥(白玉)과 그곳 사람들이 선약(仙藥)이라 부르는 옥고(玉膏)가 있다. 헌원황제가 이 옥고를 식용했다고 하며 그것으로 손님을 접대하고 헌원황제가 종옥(種玉)과 옥으로 사악을 물리친 일을 언급한 적이 있다. 상세한 내용은 《/span>부록1>을 참조.

뿐만 아니라 수계(水系)로 볼 때 “동남연해 하류 유역”에 속하는 절강성 여요(餘姚)의 하모도유적(河姆渡 약 7천 년-5천 년 전)에서도 옥제품이 발견되었고, 요하유역(내몽골, 요녕 및 하북의 경계) 홍산(紅山)문화 유적(약 6천년 –5천년 전)에 속하는 우하량처(牛河梁處 요녕성 능원시와 건평현 경계)의 한 분묘에서도 형태가 각기 다른 옥기(玉器) 20개가 발견되었다. 다른 분묘에서도 옥이 발견된다. 고찰에 따르면 이곳에서 발견된 옥의 출처는 요녕의 수암(岫岩)이라고 한다. 아울러 도처에서 종교활동의 흔적이 발견된다. (《中華考古事典》에서 인용)

이상의 설명을 통해 이미 황제(黃帝) 시대부터 중국에서는 옥을 알고 있었고 그 범위도 중화문명 중심의 변두리를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의 특징을 말하자면 동한의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옥의 오덕(五德)을 말했다. 이는 사람들이 잘 아는 것으로 이전에 여러 번 인용한 바 있다. 선진(先秦)시대 저서 《관자(管子)》에서는 옥에 구덕(九德)이 있다고 했다. 《/span>부록2>

상고시기 사람들은 옥의 정화를 선약으로 먹었고 옥의 색채와 특징은 군자의 덕이라 여겨졌다. 또 예나 지금이나 옥의 덕과 아름다움에 대해 후인들이 거듭 찬사를 그치지 않았으며 “황금은 가치를 따질 수 있지만 옥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설이 생겼다.

관련 서적에서는 “화전옥(和田玉)은 중화 대지 옥원(玉苑 옥의 산지) 중에서도 독특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옥기의 대표작은 모두 화전옥을 재료로 만들었다.” “상나라 때부터 화전옥이 중원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和田玉的品鑒與收藏》에서 인용)

역사 발전에 따라 옥(화전옥뿐 아니라 각지에서 생산되는 옥을 포함)은 사악을 물리치고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데 쓰였을 뿐 아니라 존귀와 왕권의 상징이었다. 옥으로 만든 옥새(玉璽)와 옥의(玉衣 서한시기에 저 유명한 금루옥의)는 옥처럼 이런 아름다운 돌이 중국 수천 년 문화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깊은 영향을 주었고 사람들에게 군자와 고결한 심태를 유지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사람들이 오늘날 법을 인식하고 역사와 문화를 다져주기 위함이었다.

《산해경》에 늘 나타나는 글자 중 하나는 ‘금(金)’이며 통상 ‘옥(玉)’과 동시에 출현한다. 비록 상고시기 금이란 개념이 진짜 금뿐만 아니라 지금의 금속에 가까운 넓은 개념이긴 하지만 말이다.

금과 옥을 언급하면 일상생활에서 떠오르는 고사성어나 속담이 있다. 바로 “금옥만당(金玉滿堂)” “금옥양언(金玉良言)” “겉은 금과 옥이나 속은 쓸모없다(金玉其外,敗絮其中)” 등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곤륜산이 옥의 생산지인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아이타산(阿爾泰山)이 바로 금광으로 유명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지구를 만든 신이 중화대지에 지형적인 특징을 안배할 때 많은 고심 끝에 상세한 배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금의 내원에 대해 정견망에 실린 《/span>금과 은, 백금은 어디서 오는가? 사이언티스트: 별의 ‘사망’ 과정 중에서(金銀鉑來自哪裏?科學家:星體“死亡”的過程中)>라는 문장이 우리에게 일부 계시를 준다. 이 문장에서는 현대 천문학자들의 관측 결과 두 별이 충돌할 때 생기는 금속원소 (금, 은, 백금 등 금속)가 있다. 문장 말미에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대사의 말씀을 일부 인용했다. (우리는 지면을 줄이기 위해 원작자가 인용한 그 중의 중요한 말만 따온다. “그 금은 바로 방대한 바른 생명의 신체 잔해다. 한 광대한 우주가 해체될 때, 일체가 모두 순간에 분쇄된다.” 《/span>미국서부법회설법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주 중의 별이 부딪혀 생기는 금(은 백금 등 비중이 귀중한 금속을 포함하여)이 무엇 때문에 우연히 지구상에 나타났는가? 하늘이 일부러 이런 일을 안배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재부와 재화 따위의 효용 가치와 의미 때문인가?

무엇 때문에 중화문화에 ‘금옥(金玉)’을 함께 칭하는 문화를 남겨놓았을까? 필자 개인의 생각은 속세의 사람들이 역사 발전 중에서 품성을 중시하고 표면적인 번영 때문에 본성이 미혹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사람의 불순하거나 도덕이 패괴되면 직면하는 결과는 두렵다. 서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은 나중에 기후 변화가 극심해 역사가 오래된 많은 나라들이 사라졌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기후변화나 다른 원인으로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사라졌고 대다수 주민들도 따라서 사라졌지만 실질적으로는 도덕이 안 되거나 신을 모독한 일 때문에 하늘의 징벌을 받은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황금을 대표로 하는 귀금속은 재물의 상징이며 옥은 도덕의 품성을 싣는 것이다. 이것을 결합하면 마치 파룬따파 창시인 이홍지 대사의 《정진요지(精進要旨)》에서 쓴 “부이유덕(富而有德)”과 같다. 이것이 아마 몇천 년에 걸쳐 ‘금옥’을 함께 논한 내포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상으로 서북과 중앙아시아 지역이 금과 옥 방면에서 중화문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약간의 개인적인 인식을 말해보았다. 아래에서는 간단히 헌원황제가 사람들에게 우물 파는 것을 가르칠 때 펼쳐보인 신의 역량에 대해 말해보겠다.

이 일대는 중화 조상들이 상고 문명시기에 활동하던 지대였다. 때문에 우물 파는 일과 분리할 수 없다. 나는 그래서 역사에서 아직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은 헌원황제가 백성들에게 우물 파는 것을 가르친 경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아는 한 당시 장면은 이랬다. 당시 주위에서 20여 명이 와서 우물을 하나 팠는데 조금만 더 깊으면 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때 헌원황제가 직접 우물 입구에서 변두리에서 손으로 우물을 눌러 물이 좀 빨리 나오게 했다. 뒤에는 초가집이 하나 있었다.

당시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큰소리로 말했다. “힘을 너무 많이 쓰지 마세요. 물이 너무 많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헌원황제는 신(神) 사람의 몸을 사용해 인간세상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신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세 번 힘을 썼을 때 한줄기 거대한 물줄기가 맹렬히 우물 구멍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이것만이 아니고 우물에서 동시에 하나의 용(龍)과 두 마리 다른 신수(神獸)가 분출되어 나와 뒤편의 초가집 지붕에 떨어졌고 그 후 땅바닥으로 굴렀다. 땅바닥에 닿자 용과 다른 두 신수는 막 깨어난 것처럼 눈을 뜨고 사방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좋은 꿈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현재의 말로 하면 매우 ‘싹트는’ 일이었다. 주위의 사람은 처음에 놀랐으나 나중에 이 몇 마리 짐승(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을 보고 모두 박수(拍手)를 치며 환호했다. (옛날 사람들은 매우 순박해서 박수를 칠 때 두 손으로 칠뿐만 아니라 손발을 모두 사용해 춤을 추었으므로 拍手라고 하며 지금처럼 손바닥만 두들기는 鼓掌이란 글자를 쓰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헌원황제는 정말 신인(神人)임을 느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문화 발전 방면의 일을 이야기 했는데 아래에 우리는 쇄엽성(碎葉城 7세기 경 서돌궐의 성)과 관련된 법을 찾으러 다닌 윤회경력을 말해 보고자 한다.

내가 처음 이 지명을 들은 것은 십대 초반이었다. 당시 우리 마을에 좀 큰 아이가 내게 대시인 이태백의 출생지가 쇄엽성인데 지금은 외국의 어느 지방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대체 얼마나 신비한 곳이기에 이렇게 위대한 시인을 낳았을까?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쇄엽성이었다. 지금은 키르키스스탄에 속하는 토크마크다. 당나라 때 개척한 비단길에서도 중요한 도시였다. (비단길은 한나라 때 처음 열렸지만 당나라 때도 지속해서 개척되었다) 위키백과 “비단길” 기록에 따르면 2014년 6월 22일 카타르 도하에서 거행된 제38회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비단길은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와 함께 유네스코 교육문화위원회에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나중에 ‘인걸지령(人傑地靈 걸출한 인물이 나면 그 지방도 이름이 난다)’ 이란 숙어를 배울 때 쇄엽이 생각났다.

임남(琳楠)은 주(周)나라 말기에 쇄엽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 살 때 집안에 변고가 생겼다. 부모님이 다른 종족들에게 살해당했고 그들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집안 곳곳에서 그를 찾았다. 다행히 천신(天神)의 보호하에 그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떠난 후 그는 한 여자 수행자에게 안겨 길러졌다.

이 여자 수행자는 그를 안고 천산(天山)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를 키우면서 일부 법술과 공부를 가르쳤다. 이때부터 일반적인 속인은 그를 상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16살 때 여자 사부는 그에게 아래로 내려가서 운유하라고 하면서 범위를 정해주었다. 지금 지명으로 하자면 서쪽으로는 카스피 해, 북쪽은 아이타 산, 남쪽은 아프간 북쪽지역, 동쪽은 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그녀는 또 그에게 20년의 시간을 주었다. 이 범위는 그리 크다고 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그는 비교적 재미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 반복해서 다니다 보니 뭔가 좀 부족함을 느꼈다.

쇄엽성 고향에 갔을 때 어렸을 때 상심했던 기억이 다시금 솟아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몇 차례 거쳐 갔을 때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옛날 기억이 나도 더 이상 상심하지 않았다. 아마 그를 고험하기 위해서였는지 한번은 그가 이곳에 와서 앉아 있을 때 옆 자리의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다. 당시 누구누구가 임남의 부모를 죽였으며 또 그들의 최근 상황을 말했다. 당시 그는 마음이 움직였지만 나중에 모두 인과가 있을 것이며 더는 생각해선 안 된다고 느꼈다. 그가 다시 이곳에 왔을 때 자기 부모를 죽인 그 사람들이 차례로 다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그는 그와 무관한 일을 들은 것과 같이 마음은 고요한 물처럼 파문이 일지 않았다.

그의 사부가 그의 운유 범위를 한정한 범위 내에는 당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걸어도 한사람도 만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번은 공교롭게 오늘의 발하슈 호 동쪽 언덕의 이리하 호수 입구에 도착해 호수를 바라며 보며 감개에 젖어있었다. 마치 어쩔 수 없고 할 일 없이 방황하는 듯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얼마 안 되어 한 백발노인이 오더니 그와 함께 앉으며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말해주고 동시에 마음속에 어쩔 줄 몰라 방황한다는 말을 했다. 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운유하는 범위는 표면적으로는 그리 크지 않지만 사실은 매우 크다네!” 그는 노인의 말에 뜻이 있음을 느껴 그 노인에게 매우 큰 곳에 가보기를 부탁했다. 하지만 사부의 부탁(한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음)을 위반하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했다.

웃으면서 “이건 간단해. 우리 내일 발하슈 호수 서쪽에 가서 보자구.”라고 말했다. 며칠이 지나 그들이 발하슈 호수 서쪽에 도착했는데 바로 현재 카자흐스탄 구릉 지대였다. 그곳에 당시 무슨 특별함을 느끼지 못해 노인에게 물었다. 여기는 내가 이전에 몇 번이나 다녀갔는데 무슨 변화가 없었습니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당시 자네는 혼자 온 것이지 나를 만나지 못했지 않은가, 지금 눈을 감아보게. 그가 다시 눈을 뜨자 환경이 완전히 바뀐 것을 알았다. 다시 보니 노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 환경에서 계속 운유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기서 매우 많은 불공평한 일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은 각종 방식으로 그에게 수행을 포기하라고 했으나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 결과 5년째 되던 해에 그 백발의 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나타난 후 그에게 물었다. 이번에 너는 느낌에 이 지방이 큰지 아닌지? 그는 자기가 겪은 일을 대략 말했다. 노인은 그럼 좋다 하고 우리 다시 어느 곳에 가보자 하며 그를 더욱 큰 지방으로 데리고 가서 운유했다. 그는 더욱 많은 일과 사람을 만났다.

그의 심태는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성숙했다. 마침내 19년째(부동한 시공에 부동한 시간 재는 방식이 있어서 여기는 지상의 시간으로 계산한 것이다) 노인이 나타나 그를 발하슈 호수 변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너는 너의 사부를 찾아가라. 그가 계산해보니 사부와 약정한 시간이 아직 좀 남아있었다. 그래서 다시 운유를 떠났다.

그가 천산 산맥의 어느 봉우리(주봉은 아님)를 오르는 과정 중 그는 설련화(雪蓮花)를 보았다. 생각하기를 무엇 때문에 이런 생명이 이 엄혹한 환경에서도 완강하게 생존하고 있을까. 생명의 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슨 인연이 있어서 내가 그 여사부와 백발노인을 만났을까? 등등의 계열적으로 문제의 실마리가 마음속에 떠올랐다. 비록 그는 이 긴 운유 수련 중 생명의 의의에 대해 심각한 깨달음이 있었지만 이때 그는 깨달음이 아직 비교적 얕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한분의 천신이 천천히 내려오더니 공중에서 서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생명의 진정한 의의를 깨닫고 싶지 않느냐? 이번 차례는 기초를 다지는 것으로 생각해라. 몇천 년 후 전륜성왕이 세상에서 법을 전할 때 다시 찾을 것에 유의하라” 하고는 천신은 사라졌다. 그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말을 하지 못했다.

1년의 시간은 매우 빨리 지나갔고 20년의 약속 시간이 거의 되었다. 그가 다시 사부를 만났을 때 자기의 겪은 바를 일일이 말했고 더욱이 그 노인과 천신의 일을 말했다. 그는 백발노인이 두 번 그를 데리고 매우 큰 곳에 간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사부가 한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떻게 현실중의 범위와 차이가 그리 큰지 물었다. 사부는 웃으며 그를 데리고 작은 강변으로 가서 말했다. 이 강을 보아라, 눈을 감았다 다시 떠 보아라. 그가 다시 눈을 뜨자 그는 일체가 변한 것을 보았다. 그의 사부가 다시 눈을 감았다 뜨라고 하니 원래의 곳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사부는 설명하기를, 방금 내가 너를 데리고 간 것은 이 강에 대응되는 경지로 간 것이다. 그 백발노인은 단지 너를(내가 한정한 범위) 대응된 경지와 상대경지로 데리고 갔을 뿐이다. (현대 과학으로 예를 들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가 말하는 비행기 여행은 모처에서 레이더망에서 10분내지 20분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비행기 상의 사람은 아무 이상을 느끼지 못한 것과 같다. 하지만 지상의 인원들의 시계와는 10-20분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또 버뮤다 군도에서 배나 비행기 실종은 되었다가 몇 년 후 다시 나타나는 일이 있는데 부동한 공간 형식이 함께 교차한 것을 설명한다. 일부 지방이나 혹은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그것과 대응한 다른 공간으로 갈수 있다)

나중에 그는 또 천신이 말한 “몇천 년 후 전륜성왕이 법을 전하기 시작한다”는 일이 무슨 일인지 물었다. 사부는 말했다. 나의 층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나는 단지 천계에서 전해지는 장래 창세의 신이 직접 내려와서 친히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되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때가 되면 생명은 비로소 진정으로 돌아갈 희망이 있다. 이에 앞서 유전되는 수련 방법은 모두 그때 창세의 신이 대법을 개창하는데 바탕을 깔기 위한 것이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즉시 자기는 반드시 수행에 노력하여 진정하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의 윤회 중에서 그는 티베트의 라마와 네팔의 비구니가 되었고 또 청해의 대부호와 인도의 왕자 등 여러 역할을 맡았다. 이번 생에 그는 인도에서 법을 얻었다.

중앙아시아에 고생하며 떠돌이 수행하다우연히 신인을 만나 다른 경지에 들어가고천산 꼭대기에서 신의 가르침을 받아천년을 전전하다 법 속에서 행하네

雲遊中亞苦修行偶遇神人入別境天山峰頂聞神諭輾轉千載法中行

부록:

1. 문장에서 옥과 헌원황제가 먹은 옥고의 출처와 대응하는 문자: 밀산峚山 (《/span>채도전해산해경이라는 책에서는 이 산이 신강 엽성현 미어타이 산(米爾岱山)이라고 한다. 지도상에서 보면 이 산은 곤륜산 계통에 속한다)에서 발원한 단수(丹水)가 흘러 직택(稷澤)에 들어가는데 물속에 많은 백옥과 옥고가 있어서 헌원황제가 이 옥고(玉膏, 옥에서 나는 기름으로서 일종의 선약)를 식용으로 하며 그것으로 손님을 대접했다고 함. 또 이 문장에 헌원황제의 일을 기술했다.

2. 《管子》에 기록된 옥의 9가지 덕: “溫潤以澤,仁也;鄰以禮者,知也;堅而不蹙,義也;廉而不穢,行也;鮮而不垢,潔也;折而不撓,勇也;瑕適皆見,精也;茂華光澤並通而不相相陵,容也;扣之其音清博徹遠,純而不殺,辭也。”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0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