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석방행
【정견망】
본문에서 기술하려는 경험은 대흥안령(大興安嶺), 소흥안령(小興安嶺)과 외흥안령(外興安嶺) 및 북단 지맥이 추커치(楚科奇) 반도로 뻗은 곳, 캄차카 반도, 흑룡강 및 그 지류 유역 및 사할린 반도에 관련된다. 중국 국내 송눈평원(松嫩平原)은 포함하지 않는다.
흥안3령은 1년 4계절 색채가 분명하고 매우 웅장하고 식생과 동물이 많다. 중국쪽은 장기적으로 남벌을 했기 때문에 삼림이 많이 감소되었다.
외흥안령 북쪽 지맥과 캄차카 반도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고고학적 각도에서 볼 때 중화문명과 관계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음 연구결과를 보기 바란다. “학자들의 장기간 연구에 따르면 현재 일반적으로 인디안은 몽골인종의 한 갈래이다. 대략 1만 2천년에서 1만 5천 년 전 아시아 동북부에서 베링해협을 통해 알래스카로 건너갔고 또 장기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여 마침내 북미와 남미 전체에 퍼졌다. 그런데 근래 어떤 사람들은 몽골 인종 외에 일부 인디안은 호주의 멜라네시아 인종에 속한다고 여긴다.”
“인디안의 분포는 매우 광범위하며 종족도 매우 복잡하다. 각각의 부락과 종족마다 각자의 언어가 있고 피부색도 다 다르다. 그들이 분포한 정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북부 에스키모인, 캐나다의 Algonquins,미국의 Iroquois, 멕시코의 아즈텍인, 타어제커인 현재 멕시코와 중미에 마야인이 있고 카리브 해안에 Arawaks,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주변 각지에 Chibchas, 페루, 에쿠아도르, 볼리비아 등 안데스 고원에 잉카인이 있다.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에 Guaranis,칠레에 Araucanians이 있다. (이상 《미주고문명(美洲古文明)》에서 인용)
1863년 포더 포어라는 학자가 스페인 마드리드 황실 역사 서류에서 300년 전 난다 주교가 마야인의 많은 전설 중에서 ‘해상신로(海上神路)’로 건너온 높은 문화를 가진 12개 민족과 그들이 가져온 선진문명에 대한 기록을 발견했다. 중미 유카탄 반도에 거주하던 마야인들은 “3천 년 전 천국(天國)에서 체죽선(涕竹舟)을 타고 천지부교(天之浮橋)의 여러 섬을 거쳐 코반 반도에 도착해 콩과 밀을 심은 농민”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해상신로와 천지부교는 중국 고대 은(殷)나라 사람들이 동쪽으로 건너온 길을 암시한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동쪽 바다로 대한해협, 일본열도, 지시마열도(千島群島), 캄차카 반도 남단을 거쳐 북태평양의 알류샨 군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섬과 섬 사이의 거리는 대략 십여 해리에 불과하다. 정말로 해상신로와 천지부교라 할 수 있다. (《중화선조가 미주를 개척하다(中華先祖開拓美洲)》아폴로뉴스망(阿波羅新聞網)에서 인용함)
이에 대해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대사는 《미국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마야인(瑪雅人)의 문화를 많은 사람들이 모두 지금의 멕시코 사람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멕시코 사람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그들은 다만 스페인과 토착인(土著人)의 혼혈아다. 마야문화는 지난 번 문명 역사 시기의 것으로서 그 인류는 이미 멕시코에서 훼멸되었고 오직 소수사람만 도망쳐 벗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이 마야문화와 몽골인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위의 자료를 종합하여 보면 외흥안령 북단과 남쪽으로 바다에 이르는 지방을 포함하여 추커지 반도는 고대 황인종(몽골인종)과 중화문화의 은나라가 미주로 도달하던 통로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과정에 분명 상고 문화 혹은 은상(殷商)의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대(大)중화문화권에 포함시킨다.
그런데 흑룡강과 그 지류 유역의 고문명은 발전이 상대적으로 좀 높았다. 더욱이 흑룡강의 중심 남안은 그렇다. 하지만 흑룡강 하류 우수리강 동쪽과 사할린 반도의 고문명의 발전은 좀 늦다.
흑룡강은 중국 왕조시대에 늘 유배지로 간주되었고 대체로 개발이 늦었다. 대흥안령은 어룬춘(鄂倫春) 족이 많이 거주하고 사할린 반도는 허철족(허저인, 赫哲人)이 거주하는 지역인데 그들은 역사발전 과정 중에서 장기적으로 원시 상태에 처해 있었다.
나중에 산동 사람이 늘 ‘포위자(跑崴子, 와이쯔)’라 부르는 말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곳에 해삼(海參)이 있어 해삼위(海參崴, 블라디보스톡)로 가서 생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청나라 말기에 하북, 산동인이 동쪽으로 가서 대대적으로 개발했고 중공 통치 기간인 1950년대 말에 인위적으로 생긴 대기근 때문에 대대적으로 강소, 요녕, 산동 등 지역의 사람들이 진입했다. 그래서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흥안령산맥 부근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대흥안령 오지에서는 황금이 생산된다.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경력은 현재의 자커다치(加格達奇, 흑룡강성의 한 행정구역) 부근에서 있었던 일이다. 진한(秦漢) 시기에 한 젊은 사냥꾼 임진(林辰)이 호랑이 한 마리를 추적하다 도중에 길을 잃었다. 호랑이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삼림 속에서 보름 이상을 머물렀는데 울창한 삼림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나중에 꿈속에서 한 갈래 강을 찾기만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임진은 줄곧 북쪽으로 걸어 흑룡강에 도착했고 흑룡강을 따라 줄곧 걸어가다 중간에 일부 현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물었다.
그들은 임진에게 당신은 반대로 걸었다고 말했다. 임진은 어쩔 수 없이 소흥안령을 넘고 넌강(嫩江)에 도달했는데 임진은 이미 너무 피로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집이 비록 매우 가까웠지만 자기는 좀 쉬어야 했다. 임진은 너무 많이 걸었고 춥고 배고픔에 병으로 쓰러졌다. 때 마침 몇몇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그를 도와 의원을 찾아주었고 일부 민간요법을 사용해 병을 고쳤다. 임진은 감사의 말밖에는 달리 감사드릴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가 사냥꾼임을 알았고 아이들에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게 했다.
한번은 그가 몇몇 아이들에게 사냥법을 연습시키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한 중년인이 있었는데 이 중년인이 임진이 쏜 화살에 맞아 죽어버렸다. 임진은 급해져서 얼른 사람을 찾아서 고쳐달라고 했는데 그 중년인은 여전히 살아나지 않았다. 이래서 임진은 매우 상심해하며 자기의 실책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임진은 관을 만들어 이 사람을 뉘어 놓고 가족들을 대하듯이 며칠간 제를 지낸 후 며칠 있다 장례를 지내려고 했다. 결과 장례 지내는 전날 임진은 관 속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이때 임진이 용감하게 관을 열어보니 그 중년인이 살아났는데 기색이 매우 좋았다.
임진이 중년인을 관속에서 끌어내는데 그의 몸이 어찌나 가벼운지 마치 무게가 없는 것 같았다. 중년인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한번 놀렸는데 놀라지 않았는가?” 임진은 억지로 말했다. “별일 없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하고는 집으로 들어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꺼내어 몸을 보충하게 했다.
중년인도 사양하지 않고 먹으며 말했다. “자네는 분명 내가 화살에 맞았는데 왜 죽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당시 한때 사망했고 관속에서 숨이 막혔지만 나는 살아 있다네.” 임진은 이 말을 듣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 시험 삼아 물었다. “당신은 보통 분이 아니시군요?”
중년인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동북에서 호랑이를 쫓다 길을 잃었고 나중에 꿈을 꾸지 않았나? 흑룡강을 건널 때 길을 가르쳐 준 사람 몇 명을 만나지 않았나? 이는 모두 내가 안배한 것이다. 나는 흥안3령을 운유하며 수도하는 사람이다. 사부님의 문파를 계승한 지 이미 60년이 넘었지만 아직은 사부님을 오래 따라 다녔다고 할 수 없지. 나는 올해 130여 세인데 수행을 했기 때문에 겉보기엔 중년인으로 보이고 또 일부 소술(가령 죽은 체 하는 것)을 할 줄 알지. 자네는 나와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내가 호랑이를 이용해 자네를 삼림 속으로 인도해 길을 잃게 했고 꿈속에 점화하여 흑룡강을 찾게끔 했으며 몇 사람을 안배하여 이곳에 오도록 하여 금생의 인연을 잇게 했다네.”
임진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이 도인이 내력이 적지 않음을 알고 물었다.
“저희 가족들은 지금 어떻습니까?”
그 도인은 웃으며 “자네가 삼림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그들은 다음 차례 생명과정으로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윤회라는 명사가 없었다)
임진은 잠시 멍하다가 즉시 반응했다.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까?” 수도인은 그렇다고 했다. “그들과 자네의 연분은 여기까지이며 끝난 후 그들은 또 다른 사람과 한 단락 인연을 맺어야 한다네.” 도인의 확인을 받은 후 임진은 매우 슬퍼서 크게 울며 즉시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의 장례를 처리하려고 했다.
도인은 “그들은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시신은 이미 야수에게 먹혔으니 어디 가서 시신을 찾겠는가? 게다가 인생은 모두 허무하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게. 나를 따라 흥안령 주위를 운유하면서 수도를 해보는 게 어떻겠나, 이 세상에 한번 온 것이 헛일이 되지 않게 말이야.”
임진은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껴 눈물을 닦았고 점점 평정을 되찾았다. 이렇게 하여 그는 도인에게 절을 올리고 스승으로 삼고 흥안령 범위 내를 돌아다녔다.
임진은 운유과정에 흥안령에 많은 도인들이 있으며 그들은 많은 신통을 갖추고 있으며 내력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그들 두 사도가 흑룡강 하류, 사할린 반도에 도달했을 때 이곳의 생명이 매우 재미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오오츠크 해의 일부 신과 내왕했으며 그들의 생명에 대한 인지와 느낌이 고산 지대의 신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임진 일행이 외흥안령 북단 지맥을 따라 세리코프 만 옆의 캄차카 반도 부근에 도달했을 때 임진 등은 그곳의 어느 부락을 보게 되었다. 해안이라 어로와 수렵의 특징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중원문화가 남겨진 듯했다. 임진의 사도가 함께 다가가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은나라 때 동쪽으로 이동하던 과정 중에 이곳에 남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임진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당시 은상나라에서 남겨진 백성들은 주(周)나라의 신하나 백성이 되기 싫어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이곳에 와서 생을 얻을 기회가 있는지 알았을까요? 이곳은 매우 추운 곳이 아닌가요!” 그 사람이 말했다. “나도 선조들에게 물은 적이 있는데 선조께서 말씀하기를 그들의 조상에게서 전해내려오는 설이 있는데 바로 그들 시대 이전에 그들의 조상은 이미 그들이 가야할 곳을 헤아렸고 (아메리카를 가리킴) 그곳의 정황을 알았으며 우리에게 길을 남겨놓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당시 사람들은 점치는 것, 제사 따위를 믿었는데 (후인들이 말하는 ‘은나라 사람들이 귀신을 숭상’했다는 것) 점을 치니 그들에게 해안선을 따라 점점이(여러 섬들) 걸어가면 길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선조는 바로 이렇게 온 것입니다. 이곳에 도착해서 몇 사람이 병으로 쓰러졌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그저 여기에 남아서 번성하며 생활하기 시작하여 우리가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임진은 수도인에게 물었다. “사부님, 그럼 당신은 당시 헤아렸던 사람들이 어떻게 계시를 받아 이렇게 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이렇게 먼 거리인줄 알고도? 오는 길이 이렇게 멀고 위험한데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도인은 생각하다가 말했다. “방금 내가 스승님, 너의 사조님께 물어보니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이 육지의 가장 동쪽 끝에 도착하면 비로소 이 일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네. 단지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은나라 유민들 중 어떤 이들은 베링 해협을 건너 (미주) 도달했고 어떤 이들은 이 반도(캄차카) 동쪽 알류샨 열도(미주)에 도달했다는 것이지.”
그들은 그곳 사람들과 작별하고 외흥안령 북단 지맥을 따라 걸었다. 이번에는 다양한 지방에서 소량의 은나라 유민과 또 토착민들을 만났다. 또한 상고시기에 관한 많은 일과 그곳의 정황을 알게 되었다.
간단히 줄이자. 그들은 비바람을 맞아가며 힘들게 베링해협 부근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그들은 보통 사람과 다른 많은 부동한 생명이 두 대양(태평양과 북빙양) 사이를 왕래하는 것을 보았다. 수도인은 이런 생명은 모두 해양 속의 신과 기타 생명에 속한다고 했다.
그들은 이곳에 보름 정도 머물렀는데 무슨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 날 그들이 반도 아래에 내려가서 해협의 수면에 접근했을 때 하늘에서 운무가 한바탕 내려오더니 주위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운무 중에서 갑자기 감동적인 막(스크린)이 내려오는데 막에서 그들은 많은 신과 사람이 함께 육지를 탐사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탐사하는데 측량하는 자를 쓰지 않았고 그들 특유의 것을 사용하여 두 산 사이의 거리를 측정해냈다. 산의 이름은 어떤 것은 당시 산신이 지은 것이고 어떤 것은 사람들이 약정하여 습관적으로 부르는 것이었으며 어떤 것은 확실히 신이 붙인 이름이었다. 이런 상세한 것은 너무 명백히 말할 수 없다.
잠시 후 그 은막에 어떤 장면이 나타났다. 아주 고층차의 한 신이 매우 엄숙하게 나타나자 지상의 신과 사람들이 모두 꿇어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 신은 손에 한권의 비단으로 된 책을 들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들자 비단 책이 하늘에서 펼쳐졌는데 몇 글자가 쓰여 있었다. ‘법을 얻어 하늘로 돌아간다(得法回天).’ 잠시 후 이 막은 곧 사라졌다.
또 잠시 후 한 음성이 나타났는데 수도인은 음성을 듣자마자 임진에게 말했다. “이 분이 네 사야(할아버지 스승)시다.” 그들은 함께 꿇어 엎드려 가르침을 받았다. 그 음성이 말했다. “방금 나타난 그 고층의 신은 우리 신선계에서는 법륜성왕(法輪聖王)이라 부른다. 장래 몇천 년 후 법륜성왕이 인간 세상에 와서 법을 전하실 것이다. 내가 듣기에 무릇 법륜성왕이 전하는 대법(大法)을 얻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역사상의 일체는 모두 바탕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너희들이 오늘 하는 일 역시 장래의 문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소중히 하되 특히 장래 법륜성왕이 대법을 널리 전할 때 더욱 소중히 하고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알아야 할 것은 신선계의 수많은 신들도 장차 하계하여 이 대법을 얻을 것이다!” 말을 마치고 음성은 사라졌다.
임진과 사부는 반드시 대법을 지키겠다는 정념을 유지하기로 서로 약속하고 장래 법을 얻을 때 서로 알려주고 손잡아 반드시 대법 중에서 잘 수련하기로 했다.
나중에 임진은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국가에서 비교적 많이 전생했다.
이번 생에 임진은 중국 북방에서 여자로 전생했고 대학을 다닐 때 도인 사부가 전생한 남자와 눈이 맞아 가정을 꾸렸다. 나중에 임진은 법을 얻었고 그녀의 남편은 아직 법을 얻진 못했지만 다년간의 박해 속에서 많이 감당했으며 대법수련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런 것들은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흥안삼령에서 고생스럽게 찾다가수수께끼를 깨달아 어찌된 일인지 알고속세에 전전하며 이전의 인연을 맺어금조에 법을 얻어 더욱 정진하네
興安三嶺苦追尋(흥안삼령고추심)了悟謎團知所云(요오미단지소운)輾轉紅塵結前緣(전전홍진결전연)今朝得法更精進(금조득법경정진)
설명: 《산해경》이 전해지는 과정 중에 인간 세상에 문화의 단층이 생겼기 때문에 상고시기의 일은 후세인들이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역시 신이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의 국한성을 인식하고 진상을 은폐하려고 고심한 것이다. 조금씩 수수께끼를 풀 때가 되면 누군가 나와서 풀 것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진짜와 가짜가 다 있으며 다양한 각도의 시각이 다 있을 것이며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0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