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천애심법: 장백풍운(長白風韻)

작자/석방행

【정견망】

본문에서 서술할 내용은 중국의 길림성, 요녕성 북부와 남부 및 한반도와 인근 섬들에 관련된다.

장백산맥(長白山脈)이 앞서 언급한 지역들에 뻗쳐있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이 산을 중심으로 쓴다. 또 전에 《/span>윤회기실: 영원수락(寧遠守諾)> 문장에서 요서(遼西)부분은 언급을 했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생략한다.

그럼 길림성을 말해보자. 원고(遠古)시기부터 일찍이 이 땅에는 인류가 번성했다. 지금부터 약 5만~1만 년 전에 출현한 ‘수산선인동굴(壽山仙人洞)’, ‘유수인(榆樹人)’, ‘안도인(安圖人)’, ‘청산두인(青山頭人)’은 길림성 고인류문명이 형성된 중요 표지들이다.

이후 발전 중에서 이 지역의 각 민족들은 중원민족과 마찬가지로 창세주(創世主)의 인도하에 점차 문명의 문턱을 성큼 넘어 왔다. 아울러 점차 중원민족과 연계를 맺고 중화문명 역사상 중요한 작용을 발휘했다.

주(周)나라 시기 이곳의 부족들이 중원 왕조에게 조공을 바쳤다. 상(商)나라의 귀족 기자(箕子)는 자기 백성들을 데리고 한반도로 들어가 나라를 세웠다. 또 춘추시기 공자는 일찍이 숙신국(肅慎國)의 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고 진한(秦漢) 시기 및 그 이후 이 지역은 중원왕조와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다.

청나라 강희 12년(1673년), 청나라 조정은 길림성(吉林城)을 만들고 ‘길림오랍(吉林烏拉)’이라 명명했다. 길림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는데 그 후 영고탑(寧古塔 역주: 만주어 닝구타를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청나라 때 행정지명) 장군 주둔지를 지금의 길림시로 옮겼다. 1757년 영고탑장군을 길림장군으로 고치면서 원래 성읍의 명칭이던 ‘길림’이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확대되었다. 나중에 전쟁과 정권교체, 행정구역의 변경에 따라 길림은 지금과 같은 판도로 되었다.

근현대 역사 시기로 들어서면서 이곳이 대규모로 개발되기 시작되었다. 요동반도의 대련항 역시 이전에는 작은 어촌이었다가 최근 일백여년 전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동북의 문명이 신속하게 발전한 것은 19세기 말로 전반 중화문화가 여러 차례 재난에 처했던 시기다. 이전에 이곳은 조정에서 죄수들을 유배보내던 곳이었다. 또 현재 동북인은 원래 거주했던 만주족, 몽골족, 어룬춘족 등 원주민 외에 대부분 하북, 산동, 강소 등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곳에 온 후 자연스레 중원의 문명과 각종 요소들을 지니고 왔다. 또 이들 대부분은 청말(淸末) 및 중화민국 시기에 이주한 사람들 외에는 바로 지난 1950~70년대 기근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세인이 진정하게 구도 받을 수 있는 대법(大法)의 홍전(洪傳)을 위해 계통적으로 길을 닦아준 것이다.

장백산에 관한 최초의 문헌기록은 《산해경 대황북경(大荒北經)》인데 ‘불함산(不咸山)’이라 불렀다. “대황 중에 불함이라는 산이 있는데 숙신씨의 나라이다.” 나중에 《후한서 동이열전》에 ‘단단대령(單單大嶺)’이라 불렀고 《신당서》에서는 ‘태백산(太白山)’이라 불렀다.

여진 사람들이 금(金)나라를 세운 후 장백산을 ‘흥망의 땅(興亡之地 역주: 나라의 흥망이 달린 중요한 지역이란 의미)’으로 보았다. 장백산 천지(天池) 북쪽에는 현무암으로 인공으로 쌓은 여진의 제단 유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즉 여진 사람들이 백두산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1999년 처음으로 여진 제단 옆 약 3미터 떨어진 곳에서 여진문자비(女真文字碑)가 발견되었다. 청나라 통치자들은 애신각라(愛新覺羅)씨의 시조가 바로 장백산 선녀가 잉태한 것으로 선포했다. 1677년 강희제는 사람을 파견해 장백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또 《/span>제고장백산문(祭告長白山文 장백산에 제사를 올리며 고하는 글)>을 지어 “멀리 우러러 열조(列朝)의 용이 흥함은 실로 이 땅에 기초한다”고 칭송했다.

‘장백산’은 몽골어로 신선(神仙)이라는 뜻이다. 동북에 거주했던 여러 소수민족들 가령 숙신, 옥저, 부여, 선비, 고구려, 몽골, 거란 등은 모두 경내에서 가장 큰 이 산을 경앙하고 신격화했다. 천녀(天女)가 잉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는 많은 신화들은 모두 이곳에 의탁해 있다. 때문에 모두 이 산을 선산(仙山)이라 불렀다.

심지어 한국신화 중에도 장백산을 그 조상이 탄생한 곳이라고 하는 곳도 있다. 여기에는 비록 역사서에 대한 많은 곡해와 민족주의 정서가 있겠지만 적어도 한민족은 장백산에 대한 숭앙과 동경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장백산은 사실 동북을 수호하는 신산(神山)으로 중국 본토에 진입하는 병풍이자 여러 강들의 원류라 할 수 있다. 3개의 큰 강이 이곳에서 내원하는데 바로 송화강, 압록강 및 두만강(중국에서는 도문강)이다.

지리학이나 지질학의 각도에서 보자면 장백산은 역사적으로 화산활동이 상당히 격렬했던 지역이다. 초기에 폭발한 것은 지금부터 약 200~300만 년 전 제4기로 장백산에 천지를 주요 통로로 하는 화산추(volcanic cone)을 형성했다. 장백산은 또 1597년 1668년 및 1702년 3차례에 걸쳐 폭발했다. 전형적인 화산 지형인 현무암대지, 경사진 현무암 고원, 화산추 내지 계곡 등을 형성했다. 화산암 중에 늘 목탄이 끼어있는 것이 보이고 어떤 곳에는 화산암에 묻힌 굵은 붉은 소나무도 보인다. 이런 증거들은 장백산이 폭발하기 전후 휴지기에 삼림이 매우 빽빽했음을 보여준다. 장백산이 분화 후 많은 탄화물질을 함유한 화산재가 비옥한 토양을 형성했고 그 지역의 동식물 번영에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무엇 때문에 인터넷에 있는 이런 자료들을 인용하는가? 독자 여러분이 본문을 다 읽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장백산과 연결된 한반도는 문화적인 각도에서 말하자면 중화문명 중심의 ‘위성도시(衛星城)’다. 바다 건너 떨어져 있는 일본 역시 이런 상황이다. 아울러 이 두 지역은 중화문화를 받은 영향이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크다. 일본의 일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상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는다.

아래에서 우리는 귤수(橘秀)라는 여인이 법을 찾으러 다닌 이야기를 말해보자.

청나라 강희 시기 귤수는 오늘날 대련 해변에서 출생했다. 당시 그녀의 모친이 출산하기 하루 전 꿈에 한 신인이 나타나 “이 여자아이를 줄 텐데 이 아이는 장차 매우 위대하고 신성한 사명을 짊어질 것이다. 이번에는 내려와서 단련하고 일종의 기연(機緣)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친이 꿈에서 깨어난 후 아이 아빠에게 이 일을 말했다. 부친은 매우 놀랍고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자신은 가난한 어부에 불과하고 이곳은 매우 궁벽하고 낙후된 곳인데 어찌 이런 아이가 태어난단 말인가? 당시 그는 그다지 믿지 못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 그들은 확실히 딸인 것을 발견하고 매우 기뻐했다. 비록 당시에는 모두들 아들을 원했고 커서 어른들의 조업활동을 거들어줄 수 있길 원했지만 딸도 괜찮았다. 두 부부가 아이를 몹시 사랑하고 잘 돌보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귤수가 자라서 5살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어느 맑은 날 부친이 바다로 출어하러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귤수가 울고불고 하면서 일을 못 나가게 말렸다. 하지만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부친은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렀다. 얼마 안 되어 전에 없던 심한 바람이 불어왔고 큰 비가 쏟아졌다. 모친은 말했다. “귤수가 울어서 당신이 나가지 않아서 참 다행이에요. 나갔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어요.”

또 한번은 귤수가 16세 되던 해에 태풍이 사흘 밤낮을 불면서 멈출 기세가 없었다. 귤수는 아버지에게 그물을 갖고 바다에 나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당시 그녀의 집은 이미 수십 명을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졌다. 이 고용인들이 바람을 무릅쓰고 귤수네 집으로 왔을 때 태풍은 이미 약해졌다. 하지만 이때 몇 명의 고용인들은 이날 아직 출항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귤수는 이번에 바다에 나가면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면서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부친은 어쩔 수 없어 딸을 데리고 함께 출항했다. 그들이 그물을 풀었을 때 태풍은 4,5급 정도로 변했으며 갈수록 더 약해졌다. 배를 몰고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풍랑이 멈추고 바다가 조용해졌다. 그들의 배가 만에서 십리 정도 나갔을 때 멀리에 길이가 1미터 정도의 노란색 물고기가 해면 위에 떠있는 것을 보았는데 죽은 것 같았다. 그들은 이 물고기를 건져 올리니 그것은 죽은 지 얼마 안 되었고 또 다른 고기도 잡아 만선이 되어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노란색 물고기의 배를 갈라보니 그 속에는 두 개의 진주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노란색 물고기 분비물에서 만들어진 진주가 아니라 물고기가 잘못하여 진주를 삼킨 것으로 체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귤수는 매우 기뻐하며 이 진주를 몸에 지녔다. 귤수가 18세 되던 해에 옷을 사러 외출하여 나갔다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이 남에게 해를 당해 죽은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매우 슬펐다. 이웃에게 누가 한 일인지 물었더니 이웃은 다른 어민이 그녀의 가족이 바다에 나가 돈을 많이 번 것을 보고 질투심에서 이런 짓을 벌였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그 어민에 대해 매우 원한을 가졌으며 심지어 복수할 생각을 했다.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배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아파서 땅에 뒹굴 지경이 되었다. 그녀가 이 보복할 생각이 없어졌을 때 아프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하기를 비록 그 어민이 우리 부모를 해쳤지만 내가 여기서 보복한다면 그 집 가족들이 또 내게 보복할 것이 아닌가. 그러면 끝이 없다. 내가 보복할 생각을 버리고 일체를 하늘에 맡겨 징벌케 한다면 자연히 그들을 징벌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아주 멀리 떠났다. 요동반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지금의 대련에서 장하(莊河)를 거쳐 단동(丹東)에 이르렀고, 단동에서 압록강 하구를 바라보며 자신의 종전 경험을 생각했다. 한 막 한 막 장면이 어제처럼 떠올라 감회가 매우 깊었다. 그녀가 떠나 앞으로 가려고 할 때 무의식적으로 진주가 든 주머니를 만져보았는데 진주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이번에 그녀는 적지 않게 놀랐다. 얼른 되돌아가며 찾아봤지만 열흘이나 찾아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대련 부근으로 돌아왔는데 그녀는 자기 부모를 죽인 그 어민이 바다에 나갔을 때 어쩐 일인지 배가 뒤집혀 배에 탄 사람들이 전부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보응을 받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요동 반도 연안을 따라 북상했다. 이번에는 장백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어느 민가를 찾아 거주했다. 그곳 사람이 여기는 청나라 조정의 조맥(祖脈)이라 금지구역이니 당신이 들어오기가 매우 어려웠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많은 병사들이 지키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들과 인사를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했다(주: 당시 신이 일부러 사병들이 그녀를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나중에 그녀가 오늘의 천지 부근에 갔을 당시 이 산은 마침 분화중이었다. 그녀는 멀리서 화산이 분화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보고 있는데 그녀는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매우 처참하게 우는 소리여서 소리를 따라 달려가 보니 5살 전후의 일남 일녀가 화산이 뿜어내는 암석에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그들은 끌어안고 위험한 장소를 벗어났다.

아이를 내려놓았을 때 그녀는 이 두 아이의 머리에 어쩐 일인지 모두 진주가 한 알씩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그녀를 매우 고민하게 했다. 나중에 그들의 부모는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둘 다 부모는 없고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불쌍하고 자기도 가는 길에 동반자가 없어 쓸쓸하니 이 두 아이를 데리고 함께 떠돌아다니기로 했다. 이때는 그녀도 장차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장백산은 매우 큰 지역이다. 그녀들은 여기서 보름이나 전전했지만 산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한번은 그녀들 일행이 임시로 세운 헛간에 있을 때 갑자기 온몸에 털복숭이인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그녀들은 이런 사람은 본적이 없었기에 매우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 털복숭이는 헤헤하는 소리를 내더니 품속에서 인삼 두개를 꺼내 놓고는 사라졌다.

두 아이가 호기심에서 각자 하나씩 들고 자세히 보았는데 여자아이가 말했다. 어째 어린애처럼 생겼지 않아? 남자아이도 그렇게 말했다. 잠시 후 한척 반 정도 되는 어린아이 두 명이 나타나더니 희희낙락 하면서 그들과 놀기 시작했다. 귤수는 이 상황을 보고 정말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

나중에 그녀들 일행은 다시 한 번 먼 곳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분화구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귤수는 무의식적으로 네 아이를 데리고 숨었다. 피하는 과정에 두 아이는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이때 무심코 먼 화산 분화구를 바라보니 그곳에 점점 어느 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신은 손에 법기를 들고 있는데 사유전감으로 말했다. “반드시 이 네 아이를 데리고 한반도 남쪽의 제주도로 가서 이 인연을 완성하거라. 끝낸 후 이 부근으로 돌아오면 다음의 일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신의 말을 듣자 더 조급하게 아이들을 찾아보았다. 아래를 보니 두 어린아이는 바로 두 아이의 머리 위에 서 있었다. 그녀는 급히 이 조그만 아이들에게 함부로 뛰어다니지 말라고 했다.

그중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함부로 뛰지 않아요. 우리는 털 많은 사람(그 야인을 가리킴)이 여기로 보내줬어요. 그것은 당신의 체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인데 우리는 천년 묵은 인삼이 변한 거예요. 우리를 먹으면 신체 허약자는 수명이 늘어나고 덕이 큰 사람은 만일 수행하면 정진 속도가 빨라질 거예요. 당신은 우리가 하루 종일 따라다니기만 하면 당신은 내내 온갖 사악의 침범을 받지 않고 신이 당신에게 준 일을 완성할 수 있어요.”

이 한바탕의 말을 듣자 귤수는 크게 각성했다. 그녀도 모친이 세상에 계실 때 태어나기 전에 말해준 그 기이한 꿈이 생각났다.

그녀는 머리에 진주가 있는 두 아이를 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너희 둘은 황해의 그 노란 물고기와 어떤 관련이 있니?” 두 아이는 그녀의 이런 물음에 웃더니 그중 하나가 말했다. “사실 우리는 천계의 신선입니다. 나중에 진주로 변화했는데 그 물고기는 한때 천계에서 호법이었지요. 나중에 무의식중에 한 가지 잘못을 저질러 하계(下界)로 쫓겨났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큰 연분이 있습니다. 그 물고기의 겁난이 끝나 몸(魚身)을 버려야 할 때 우리는 바닷속으로 그것이 좋아하는 먹이로 변해 그것의 체내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진주로 변했습니다. 그 녀석은 또 다른 물고기에 물려 죽었습니다.

이때 당신이 나타났고 이렇게 우리의 연분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중에 단동에 도착했을 때 다른 신들이 일부 나쁜 것들을 청리하는 것을 도와야 했기에 잠시 당신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당신이 장백산에 간 것을 알고 우리는 어린이로 변하여 다시 당신을 찾아간 것입니다.

귤수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놀랐다. ‘세상에 무슨 이같이 희한한 일이 다 있나!’ 한참 생각하다가 네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무척 애를 많이 써서 나와 인연을 맺었는데 대체 무엇 때문이니? 현재 나는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인데?”

“당신이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신선이 말해주지 않았어요? 반도 남쪽 끝에 가서 한 가지 일을 완성해야 한다고요! 어떤 일인지는 조만간 알 텐데 지금 우리에게 물을 필요가 있나요?” 조그마한 인삼 아이가 말했다.

귤수는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들 일행은 한반도 중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여기에서 그녀들은 많은 조선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가무를 잘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선량하고 근면하며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부동한 내용의 슬픔과 이합집산의 일이 끊이지 않을 수 없다. 그들과 사귀면서 귤수는 생각했다. 사람이 일생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생명의 출로는 어디에 있을까?

한번은 한성(漢城)에서 두 명의 조선 수행인을 만났다. 이 두 사람은 수행한 공부가 이미 매우 높았다. 하지만 아직 생사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귤수에게 그 말을 하며 매우 고뇌했다.

귤수는 그들을 위로하면서 한편으로 생각했다. ‘신이 나더러 제주도에 가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설마 생사를 완성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가?’

한반도를 걸어가는 과정에 귤수는 조선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점점 이해가 있게 되었고 그들의 말도 배웠다. 게다가 네 아이의 도움으로 매우 순조롭게 갔으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제주도 맞은편에 도착했는데 공교롭게 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은 삼일 밤낮을 그치지 않았다. 낮이던 밤이던 두 인삼아이는 적극적으로 귤수에 바싹 붙어 힘을 보태주었다. 두 진주아이들은 이 상황을 보고 나가서 하늘에 가서 해결할 방법을 찾으러 다녔다.

나중에 대라금선(大羅金仙)의 도움하에 그들 일행은 제주도에 닿았다. 거기에서 귤수는 바다 중에서 한 해신을 보았는데 해신은 명패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망망한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귤수는 명패를 들고 네 아이들과 함께 살펴보니 이런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만약 대법을 얻는다면 하늘이 내린 복이다. 노력하여 닦고 지킴은 창생의 소원이다(若得大法,天賜之福 努力修持,蒼生之願).

이것을 보고 귤수는 자신의 이번 일생은 신의 안배로 법을 찾고 법을 전할 각자와 연을 맺는 것임을 알았다. 제주도에서 이 단락의 인연을 완성한 후 그녀 일행은 또 한반도로 돌아와 동해(당시에는 길림해라 불렀다)의 한쪽을 따라 장백산으로 돌아왔다.

화산 입구에 오자 그녀들은 화산이 이미 폭발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연기가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어서 다가갈 수 없었다. 사흘이 지나 그녀들은 또 그 신을 보았는데 신이 말했다. “너희들은 장백산을 넘어가서 길림 읍성에서 멀지 않은 곳(장춘을 가리킴)으로 가거라. 그곳에서 한 단락 연분이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다.”

이때 귤수는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일어났다. ‘조선민족은 왜 이렇게 춤과 노래를 잘할까?’ 그 신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모두들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공중에서 미묘한 음악이 전해져왔는데 한 아름다운 여신이 손에 악기를 들고 서서히 내려오더니 그녀들 앞에 멈추었다. 모두들 멍하니 있는데 여신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악기를 품고 곡을 하나 연주했다. 그러자 천상에서 정말 많은 꽃이 내려왔고 무슨 새인지 모르지만 이곳의 안개를 전혀 개의치지 않는 듯이 나뭇가지에 머물렀다. 잠시 후 여신과 새들은 사라졌고 귤수 일행은 더욱 멍해졌다.

그들이 이렇게 있는 동안에 하늘에서 그 여신의 음성이 전해져 나왔다. “장백산은 아름답고 다채로운 동북의 선산(仙山)이다. 이곳에선 자연히 자손들에게 각종 아름다운 것을 부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일체는 모두 장래 대법이 홍전할 때를 위해 일부러 안배한 것임을 반드시 기억하거라. 가라, 거기(장춘)에서 성스러운 인연을 맺어라.” 이 음성은 하늘에서 오랫동안 울려퍼졌다.

그래서 그들은 백두산을 넘어 장춘에 도착했다. 장춘에서 그녀들은 어느 여관에 한 괴상한 사람이 늘 찾아와 술을 마신다고 들었다. 이 괴상한 사람은 하는 일이 이치에 맞지 않는데 예를 들면 한 겨울에 가벼운 옷을 입고 더운 여름날 솜옷을 입는 등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너무 이상하다고 했다.

그녀들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진주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박수를 쳤다. “바로 그예요. 그가 우리가 찾으려는 사람이에요.”

6,7일이 지나 그녀들이 길을 가다가 그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그를 보니 정말 기괴했다. 본래 여름인데 그는 겨울옷을 입었고 그래도 춥다고 했다.

인삼 아이들은 이걸 보고 모두 달려가 그 사람 품에 몸을 맡겼고 그 사람은 더워서 곧 겨울옷을 벗었다. 옷을 벗으며 말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어찌 이리 더울까!”

귤수는 이것을 보고 달려가서 예의를 갖추고 물었다. “사람들이 다 당신을 괴상하다고 하는데 왜 이런 모습을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원래 자신도 정상인이며 겨울에는 겨울옷 여름에는 여름옷을 입었다고 했다. 나중에 꿈에 한 사람이 “너는 내일부터 이상한 거동이 나타날 텐데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다. 때가 되면 어느 여인이 아이들 네 명을 데리고 너를 찾아올 텐데 그녀들이 너를 찾을 때 그들에게 알려주거라. ‘장춘, 장존(長春,長存)이면 된다.’ 다른 것은 말할 필요 없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내가 물어봤죠. “그럼 이런 기이한 행동은 언제 정상으로 회복됩니까?” 그 사람은 “네가 그녀들을 볼 때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런 상황이 이미 5, 6년이 되었다.

귤수는 이 말을 듣고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인삼아이는 팔짝팔짝 뛰며 돌아와 말했다. “우리가 오던 길을 생각해보세요. 제주도에서 본 계시를 만약 ‘장춘(長春)’ 두 글자를 합하면 무슨 뜻이에요?” 그들이 일깨워주자 그녀는 생각해보았다. ‘대법 장춘, 대법 장존. 아마 세상 사람이 해탈할 수 있는 그런 대법이 장춘이란 이름과 관련이 있나보다.’

이번 인연을 끝낸 후 그녀들 일행은 오늘의 요녕성 북부를 거쳐서 또 요동반도 남단으로 돌아갔다. 여순구(旅順口) 황해와 발해 분계선에서 그녀는 두 용왕을 보았다(황해 용왕과 발해 용왕) 비록 그들은 각기 다른 해역을 담당하고 있지만 서로 잘 협력하여 이쪽 해역을 관리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한 선녀가 나타나 귤수에게 알려주었다. “장래 한 무리 수련인을 이끄는데 도와야 한다, 마난 중에 잘해야 한다.” 그녀는 장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법을 찾는 길에 신불의 보호로자비로 안배한 기연을 돌아보니오늘날 법을 얻어 약속을 실천하고사명을 완성하여 속히 돌아가세

尋法路上神佛護慈悲安排奇緣顧今朝得法兌約定完成使命回天速

후기: 나와 매우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며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귤수는 십년 전 내게 장차 난이 있을 것을 알았다. 본래 전전하다 내게 주의하라고 한 마디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게 알려주기도 전에 나는 마난을 만났다. 몇 년 후 나는 본래 기회가 있어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 가려고 했는데 그곳 환경이 비교적 험하여 만남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 안 되어 노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 기회를 빌려 노인에게 그리움과 회고를 표시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1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