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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심법: 졸본법연(卒本法緣)

-이 글을 제 20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에 바친다-

작자/석방행

【정견망】

NTDTV에서 방송했던 한국 드라마 《/span>주몽김수로등은 텔레비전의 각도에서 고구려, 신라 초대 왕들의 건국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또 《/span>상도는 조선과 중원지역간의 무역거래를 그렸다. 《/span>사기에서부터 《/span>명사청사고등의 사서에는 조선에 관한 내용이 여러 번 나온다. 이들 TV 드라마와 사서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조선지역과 중원지역이 수천 년간 인류문명 발전 중의 긴밀한 관계를 볼 수 있다.

그럼 고구려에 대해 말해보자. “서한 초기 원시(元始) 삼년(서기 3년) 고구려 도읍이 오늘날 요녕성 환인(桓仁, 오녀산성 즉, 졸본성)에서 오늘날 (길림성) 집안시인 국내성으로 천도했다. 동한 건안(建安) 14년(기원 209년)에는 다시 환도성(오늘날 집안시 북서쪽)으로 옮겼으며 기원 427년에 평양성으로 옮길 때까지 집안은 424년간 고구려의 수도였다.[《중국분성지도책(中國分省地圖冊) 길림성》에서 인용]

지도상으로 보면 오녀(五女)산성은 요녕성 환인(桓仁) 만주족 자치현의 환인 저수지 부근인데 환인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발원지로 불린다. 또 휘하(渾河)는 고대에 비류수(沸流水)로 불렸다. ‘졸본’성과 ‘비류’수는 《/span>주몽에서 자주 나오는 지명과 하천명이다. 당시 (동)부여, 옥저 등의 나라가 고구려 부근에 있었다.

한국 역사서 《/span>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창건자) 주몽은 황제(黃帝)의 손자 고양(高陽)씨와 황제의 증손자 고신(高辛)씨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만약 기자(箕子, 상나라 후예)조선과 위만(衛滿, 요동인) 조선까지 계산한다면 혈통상으로 한반도에 살았던 초기 거주민들은 대부분 화하(중국)와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다. 물론 현지에서 생장한 토착주민들과 다른 내원이 있는 사람들은 제외한다.

몇천 년간 화하문명과의 교류 속에서 이곳 사람들은 때때로 중원왕조와 전쟁이 발생하거나 때로는 중원왕조의 속국이 되기도 했다. 무역과 문화 왕래가 빈번했다. 성당(盛唐)시기 중원왕조에서 흥성한 불교문화와 차 문화는 점차 한반도에 전해졌다. 중원왕조 역시 한반도 출신의 인재를 중용했는데 당나라 때 유명한 장군 고선지(高仙芝)가 바로 고구려인이다. 한반도의 언어는 한글이라고 부르는데 한자에서 변한 것이다. 서울의 원래 명칭도 한성(漢城)인데 이를 통해 한반도와 중원문화의 긴밀한 관계를 알 수 있다. 《/span>중국역사정술(中國曆史正述)>의 작자는 한반도의 ‘삼한(三韓)’ 정권 역시 중원지역에서 내원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반도에 대해 말하자면 중화문화의 영향 외에도 또 이 지역 자체에 뿌리 내린 많은 문화들이 있다. 이 역시 신이 의도적으로 육성한 것이다. 사실 신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은 문화 방면뿐만이 아니며 산천과 지형 등을 포함해 모두 그렇다.

본문의 시작에 우리는 한반도의 한 단락 역사의 발원지, 도읍 등 중요한 요소들이 모두 중국 국경 내에 있다고 언급했다. 단지 현재의 중국 국경뿐만 아니라 당나라 시기부터 한반도와 관련되는 이런 중요한 ‘역사 원소’들은 중원왕조의 중앙 정권이나 또는 지역 정권에 의해 통치되었다. 사실 이는 신이 일부러 이 일체를 안배한 것이다. 목적은 한반도 사람들이 중원문화를 많이 배우고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뿌리(根)’가 중원에 있음을 명심하게 한 것이다.

이는 단지 혈연과 문화만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그곳에서 생장한 사람들에게 생명이란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잊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모두 오늘날 이번 생에 생명이 진정으로 회귀할 수 있는 대법을 얻기 위한 바탕을 깔기 위해서다. 지금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구조 역시 다 안배된 것이다. (남북이) 채택한 국가 이념이 다르고 사람들의 생활 상태가 다르며 파룬따파를 대하는 문제 역시 완전히 달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 역시 사람들에게 공산사악주의가 만들어 낸 전제권력의 해로움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너무 자세히 말하지 말자.

본문에서 쓰려는 것은 몇몇 고구려인들이 법을 찾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주몽이 고구려를 막 세운 고구려 시대다. 졸본(지금의 오녀산성)에 한 소녀가 있었는데 우리는 용진(蓉真)이라 하자. 이 소녀는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총명해서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6세 되던 해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산(장백산맥에 속하는 산)에 올라가서 놀았다. 그녀는 온 산이 예쁜 꽃으로 가득한 것을 보았고 또 아름다운 나비를 보았다.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자신도 모르게 나비를 따라갔다. 멀리 가지 않아 지팡이를 짚은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손을 뻗어 예쁜 꽃을 따 주며 사실 더 아름다운 꽃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신을 따라서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이는 “좋아요, 하지만 부모님이 염려하실까 걱정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노파는. “그렇다면 좋다.” 하면서 지팡이를 땅에 던졌다. 지팡이는 순식간에 용진의 모양으로 변하더니 얼른 뛰어 집으로 돌아갔다. 용진은 그 모습을 보고 좀 멍해졌다. 그 때 이곳에 많은 사람들은 신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뚜렷한 신적(神跡)을 보지 못했고 용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동안 정신이 들지 않았다.

노파가 말했다. “내가 지팡이를 네 모습으로 만들어 부모님 옆에 가도록 했으니 이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안심하고 나를 따라오너라.” 용진은 그래서 노파를 따라갔다. 멀리 가지 않아 용진이 보니 이곳의 꽃은 이전에 전혀 본 적이 없는 꽃들이었다. 그 꽃들을 본 용진은 매우 좋아했다.

흥분하여 손을 내밀어 꽃을 따려는데 손이 막 꽃에 닿자마자 꽃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기 피어있는 게 더 예쁘잖아!” 이렇게 말하면서 심지어 웃기 시작했는데 꽃의 가지가 마구 흔들렸다. 용진은 더욱 놀라 노파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꽃을 따서 준다고 하셨는데 이 꽃은 왜 저더러 따지 못하게 하나요?” 노파가 말했다. “우리 집에 들어가서 천천히 이야기하자.” 용진은 몰래 생각해보았다. ‘내가 방금 왔을 때 건물이나 초가집을 하나도 보지 못했는데 어째서 노파가 집에 들어가자고 할까?’ 그녀가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 보니 커다란 초갓집 몇칸이 안개 속에 나타났고 안개가 점점 걷히자 노파는 용진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면 이 초가집은 그저 조금 클 뿐 무슨 특별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완전히 달랐다. 그야말로 선기(仙氣)가 가득했고 그 속의 일체 음식과 생활용품이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또 선동(仙童)들이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용진은 이런 장면을 본적이 없으므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노파는 용진에게 앉으라고 하자 선동은 맑은 물을 한 그릇 갖다 주었다. 용진은 마침 목이 좀 말랐으므로 그릇을 들고 단숨에 다 마셨다. 마신 후 온몸이 시원해지고 눈이 더 밝아진 것 같았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이 그릇을 보니 그릇 속에 많은 것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 속에는 많은 산수와 동식물 등이 있었다. 더욱 놀라 머리를 들어보니 노파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노파는 말했다. “사실 너와 나는 지금 고구려 국왕 및 왕후 등과 천상에서 큰 인연이 있단다. 함께 약속하고 인간 세상에 온 것이며 그들이 집권한 시기에 우리 둘이 여기서 먼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너는 내가 알려주는 말을 때가 되면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여기로 부른 이유란다.”

용진은 이 말을 듣고 머릿속에 단번에 천상에서의 한 경력이 생각이 났고 이때부터 노파가 말한 뜻을 알았다. 그것은 아주 높은 층차의 천상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번은 천상의 많은 법왕(法王)과 대도(大道) 및 다른 각자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하며 그 한 층차의 중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부면적인 생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문제를 토론하고 있었다. 노파와 용진, 주몽, 소서노(召西奴, 주몽의 왕후)와 예씨(禮氏, 주몽의 아내이자 2대왕인 유리의 모친)도 그중에 있었다. 모두들 잠시 상의하고 모두 이런 일은 어쩔 수 없고 옳지 않다고 느꼈다. 이것은 천상의 생명으로 말하면 이런 상황을 만나면 그 한 층차의 천상에 커다란 문제가 나타난 것을 말하며 이것은 그 층차의 생명이 바로잡거나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다 인식했다.

모두들 중생과 그 층차의 하늘(혹은 우주라 부를 수 있다)의 안위를 위해 걱정했고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하늘과 땅에 절을 하며 더 높은 층차의 신이 도와주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성심껏 이렇게 하고 있을 때 하늘 끝에서 비할 데 없이 상서로운 음악소리와 함께 거대한 부처님(혹은 주불이라 부를 수 있다)이 서서히 내려왔다. 그런 종류의 신성함과 위엄은 이 한 층차의 각자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한 층차 중의 각자들이 보고는 이번에는 중생과 이 층 우주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표를 파견하여 이곳의 상황을 거대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거대한 부처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강의 뜻) “연이 닿았다, 연이 닿았어. 누가 나를 따라 내려가 근본적으로 이런 바르지 않음을 해결하려 하는가?”

이때 많은 각자들은 좀 주저했다. 오직 노파와 용진, 주몽 등 십여 명의 각자들만 천담(天膽)을 무릅쓰고 거대한 부처님을 따라 내려갔다. 아울러 이런 종류의 믿음은 조금도 에누리가 없으며 그들도 근본적으로 많이 묻지 않고 많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거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모두 진상이며 중생과 그 층의 우주를 위해 자신은 어떻게 되더라도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거동은 여러 하늘을 찬탄하게 했다!

용진이 자기 스스로 이 한 장면을 보고 매우 감개했고 이어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어르신은 신적을 드러낼 수 있는데 저는 안 되나요? 또 주몽왕 그들도 신적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노파는 웃으며 더욱 즐거워했다. “신의 안배가 모두 같을 수는 없으며 부동한 사람은 지금 부동한 사명과 표현 방식이 있단다.” “나는 나중에 내려오는 과정 중에 부동한 층차의 신을 만났고 또한 그들로부터 거대한 부처님께서 장차 장백산에서 멀지 않은 중국 땅에 태어날 것이며 중생이 진정으로 구도 받을 수 있는 대법을 전할 것이라 들었다. 내 생각에 이 역시 우리가 주몽 그들과 함께 금생에 여기에 올 수 있었던 원인이다!” 노파는 보충했다.

이 말을 듣자 용진이 말했다. “그럼 어르신이 꽃을 따서 제게 주는 방식으로 먼저 저와 인연을 맺은 후 신선의 꽃을 만나게 했는데 그 목적은 제게 신선계의 꽃은 더 아름다운 존재방식과 나타남이 있음을 알게 하고 또 신선의 꽃은 마음대로 딸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입니까?” 노파는 담담하게 말했다. “오성이 그런대로 괜찮군.”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주몽 및 그들에게 말할 수 있나요?” 용진은 생각나는 대로 물었다. “일체는 안배가 있을 것이며 일을 만나면 인연을 따르거라. 너도 이제 돌아가야 한다.” 노파가 말했다. 용진은 초가집을 나와서 천천히 길을 걸었다. 잠시 후 지팡이가 변한 자기 자신이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자기 앞에 오자 지팡이로 변했다. 노파는 또 그것을 잡고 되돌아갔으며 몇 초만에 초가집과 그 신선의 꽃과 노파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용진은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고 잠시 후 부모를 만났는데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말할 수 없었다. 일가족은 또 한참 놀다가 졸본성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용진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물을 보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종래로 남들 앞에서 함부로 드러내진 않았다. 한번은 마침 고구려 왕인 주몽과 왕후가 수레를 타고 함께 길을 나갔는데 비록 미복을 하고 그리 떠들썩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 용진이 가는 길에 만났다. 용진은 수레가 앞으로 두 시진 후 망가질 것을 보았고 얼른 주몽 일행을 가로막고 상황을 설명했다. 처음에 주몽은 믿지 않았으나 나중에 주몽 주변 사람이 그 말이 타당하다고 보아 주몽과 왕후에게 말을 갈아타라고 했고 수레 속에는 대신 물건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용진을 데리고 함께 동행했다. 결과 두 시진 후에 수레가 약간의 장애를 만나자 곧 부서졌다.

이때부터 주몽과 왕후는 용진을 왕궁에 머물게 했다. 당시 고구려에는 점술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신녀(神女, 중원의 국사나 고대 이집트의 대사제에 해당한다)가 있었다. 이 신녀는 반드시 동정을 유지해야 했고 일정한 초능력을 구비해 국가대사를 정확히 예측하는 역할을 했다. 군왕의 언행에 대해서도 반드시 편달하는 작용이 있었다. 이 역시 신이 사람에게 남겨준 신전문화였다. 춘추전국 이전 중원왕조에도 이런 직위가 있었는데 다만 명칭이 다를 뿐이었다. 나중에 많은 왕조에도 있었으며 어떤 경우 비교적 직접적이었고 어떤 경우에는 황제의 “개인 고문”이었을 뿐 정식 직위는 없었다.

용진은 원래 일을 상관하기를 좋아하지 않아 궁에 들어간 후 왕후인 소서노 곁에 머물렀다. 늘 주몽, 소서노, 예씨 등과 가까이 있었으므로 기회를 보아 당시 신녀 앞에서 그녀가 알고 있는 일을 말했다. 주몽 등은 매우 놀랐고 놀란 나머지 고구려 건국의 전반 과정이 비록 매우 어렵고 위험했지만 확실히 신의 기적이 그 속에 있었음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모두 생명의 의의와 책임을 알았을 때 매우 감탄했다. 거대한 부처님과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또 분분히 자신이 법을 얻을 뿐아니라 이 지역의 백성들이 만고에도 만나기 어려운 대법을 만나게 해달라고 발원했다.

이때 고구려 신녀도 자신의 방식으로 고구려 국민들이 장래 만약 중생이 진정으로 구도받을 수 있는 대법을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소중히 여길 것이며 아울러 국민들에게 장래 기타 신의 예언이나 다른 방식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려주기로 했다. (예컨대 석가모니 부처가 말한 3천년 만에 한번 피는 우담바라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 꽃이 피면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와 법을 전한다고 함. 이런 것들은 현재 모두 사실로 입증되었다. 한국 예언서 《/span>격암유록과 우담바라는 모두 한국에서 나타났다.)

나중에 소서노는 두 아들을 데리고(비류와 온조)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중 한 아들이 ‘십제(十濟)’를 세웠고 나중에 ‘백제(百濟)’라 불렀다. 이런 일들은 비록 그 표면적인 원인이 있지만 사실 실질적으로 모두 창세주의 뜻에 따라 중생이 법의 인연을 얻을 수 있고 인간에서 이어가게 한 것이다.

지금 그때의 고구려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전생했고 일부는 한국에서 전생했으며 또 일부는 인도네시아에 태어났다.

노파와 용진은 현재 비교적 큰 섬에 태어났으며 주몽과 소서노 및 예씨는 길림성에서 전생했고 고구려 신녀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모두 이미 법을 얻었다. 당초 주몽이 발원했던 것들은 이미 기본적으로 실현되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법을 얻지 못했고 박해자를 돕는 흉악인이 되었다. 이런 것들은 상세히 말하지 않겠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산에 놀러갔다가 신선을 만나초가집에 들어가니 전생 인연 기억났네왕궁에 들어가서 서약을 이행하니국왕 왕후는 정념이 증가하고일국의 신녀가 진상을 펼치니온 나라 중생들이 다 인연이 있네오늘날 주불께서 대법을 전하시니용맹정진해 서약을 실천하세

山中遊玩遇神仙邀得屋內憶前緣進入王宮履諾言國王王後增正念一國神女真相展舉國眾生皆有緣今朝主佛傳大法勇猛精進兌諾言

후기: 본문을 쓸 때 마침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 대사님의 탄신일이자 제 20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았다. 이에 우리 온가족을 대표해 사부님의 생신을 축하드리고 동시에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경축한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