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천애심법: 연조의첩(燕趙毅捷)

작자/ 석방행

【정견망】

하북성(河北省)을 말하면 우리는 이곳이 경성 부근에서 수도를 보좌하는 땅이기에 이곳의 역사 연원이 자연히 아주 심후(深厚)함을 안다. 전설에 따르면 여와낭랑(女媧娘娘)이 이곳에서 사람을 만들고 하늘을 수리했다. 또 오래 전 선조들의 융합을 대대적으로 강화한 탁록(逐鹿)과 판천(阪泉) 전투도 모두 이 성에서 있었다고 한다(판천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일부 논쟁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산서 또는 하남이라고도 한다). 또 대우가 이곳에서 치수를 한 적이 있으며 이곳은 대우가 나눈 구주 중에서 기주冀州에 속한다. 춘추전국 시기에 이곳은 또 연나라라 조나라 땅이었다. 조나라의 염파(廉頗), 인상여(藺相如), 연나라의 태자 단(丹)과 자객 형가(荊軻)는 각기 지혜와 충용(忠勇)의 내포를 풀어냈다.

삼국시대에는 조조가 건설한 동작대(銅雀台)와 백세에 전해진 호방한 시편 ‘관창해(觀滄海)’에 나오는 갈석산(碣石山 요녕성 수중에 있다는 설도 있다)도 이곳에 있다. 청나라 때는 승덕(承德)의 피서산장과 주변 사찰들이 황제가 외출하여 사무를 보는 곳이 되었으며 주위의 절들은 각각의 소수 민족 수령들의 신앙을 연결하는 유대가 되었다. 또 중화민족의 백년 국치(國恥) 시대에 이곳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고 겪은 고난 역시 말로는 다 할 수 없다.

역사의 큰 연극이 최고조에 도달하고 진정으로 주제를 드러낼 때 향하(香河)현에 주봉신(周鳳臣)이란 한 노인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수행이란 게 미신이 아니라는 실제 사례를 남겨놓았다. 노인이 떠난 후에도 시신이 썩거나 부패하지 않았으니 감히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이런 것은 무신론과 과학만 믿는 사람들로서는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1992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88세였다. 이 내용은 인터넷에도 상세히 보도되었다. 바로 이 일이 있기 전후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1992년 5월 장춘시에서 공법을 전했고 92년 말에 제자들을 데리고 92년 동방건강박람회에 참가하셨다. 이때부터 파룬궁과 리훙쯔 대사의 이름이 온 북경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만 절대 우연이 아니다.

알아야 할 것은 수행인의 전신사리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실로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특히나 당대(當代)에 들어와서는 더욱 그랬다.

본문에서는 하북 땅에서 두 사람이 법을 찾은 경험에 대해 쓰고자 한다.(한사람은 의손毅遜, 다른 사람은 첩존捷存이라 한다)

청나라 강희(康熙) 연간에 두 사람은 각자 두 왕공(王公)의 아들이었고 그때 스물을 넘긴 나이였다. 둘은 늘 함께 다니며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

한번은 강희제가 승덕(承德)에서 알현하러 온 소수민족 수령을 접견하기 위해 목란사냥대회(木蘭圍獵活動 울타리를 쳐놓은 범위 내에서 하는 사냥)를 열었다. 그들 역시 참가했다.

목란 사냥터에서 짐승을 쫓는 과정 중에 그들은 말을 타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의손이 한 마리 사냥감을 보고 달려가서 화살을 먹이고 활을 당겨 쏘려고 했다. 하지만 사냥감은 이미 숲속으로 숨어버린 뒤였다. 그가 눈을 들어보니 맞은편 수풀 속에서 무엇이 번쩍이는 것 같아 사냥감이라고 생각하여 화살을 쏘았다. “악”하는 소리가 났다. 그들은 분명 사람이 맞은 것이라 생각되어 말을 타고 달려갔더니 그곳에 매우 늙고 머리카락이 몹시 긴 한 노인이 누워 있었다. 의손이 쏜 화살은 그 사람의 미간에 맞았는데 살펴보니 상처가 그리 심하진 않고 단지 약간의 피만 흘렸을 뿐이었다. 그들은 말에서 내려 정중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노인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괜찮으니 당신들은 걱정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이어서 노인은 “내가 아침부터 부근 동굴에서 이곳에 온 것은 당신들을 기다리기 위해서라네. 이런 방식으로 우리 사이의 연분을 이어간 것이지.”

노인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매우 놀라 약속이나 한 듯이 말했다.

“어떤 연분을 이어간다는 말씀입니까?”

노인이 천천히 말했다.

“나는 200여년 전 출가한 수도인이요. 당신들 둘은 출가하기 전 내 아들과 이웃이었소. 당시 우리 사이가 매우 좋았지. 나중에 나는 도과(道果)를 성취한 사람을 만났고 그를 따라 도를 닦으러 갔었네. 처음에는 자네들을 매우 염려했지만 나중에 사부님께서 장래 내가 수련성취하기 전에 자네들을 다시 만날 거라고 하셨네. 동시에 나 역시 자네들에게 부탁할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셨지. 나중에 내가 수도하는 과정 중에 많은 경지가 그리 좋지 않고 깨끗하지 않게 변한 것을 발견했고 심지어 많은 신들조차 그리 신답지 않게 된 것을 발견했네. 그 후에 내가 들으니 전륜성왕(轉輪聖王)께서 인간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시는데 그분에게 직접 전수받고 구도 받아야만 비로소 생명과 경지가 더욱 순정해 질 수 있다고 들었지. 나는 나중에 수행하면서 끊임없이 그분을 찾아다녔지만 여전히 찾지 못했지.

그러다 며칠 전 나는 내게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자네들을 보고 싶었지. 나는 이때 자네들이 이미 두 번째 윤회를 거쳐 이전 우리의 연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을 알았지. 하지만 나는 그래도 자네들에게 여전히 이 일을 부탁하려 하네. 자네들이 나를 대신해 전륜성왕이 장래 인간세상에 대법을 전하시는 것에 관련된 소식을 찾았으면 하네. 이는 또 자네들 생명의 미래에 대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야.”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정말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느꼈다. 나중에 노인이 말했다. “자네들이 만약 집에 무슨 일이 없다면 이곳에서 2~3일 머물다 가게나. 내가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것이 있으니.” 그들 둘은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노인을 부축하여 부근의 동굴로 돌아갔는데 그곳에는 한줄기 깨끗한 작은 물줄기가 동굴 입구에서 졸졸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손이 계곡물을 받아 노인 이마의 흐르는 핏자국을 상처를 깨끗이 씻어주었다. 노인이 앉은 후 첩존이 물었다.

“어르신은 저희가 원래 당신의 이웃과 아들이라 하셨는데 그럼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오셨습니까?”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왼손을 뻗더니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잠시 후 나이가 같지 않은 남자 세 사람이 왔다.

노인은 “이 세 분은 이곳을 책임지는 신일세. 그들은 청나라 황제가 이곳에서 소수민족 수령을 초대하는 것을 알고 나를 찾아왔소. 이곳에서 당신들을 볼 수 있도록 함이지.”라고 했다.

셋이 앉자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지금 황상께서 이곳에서 소수민족 수령들을 만나시는데 이것은 국가의 앞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장래를 위한 바탕을 다지기 위함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소수민족은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 많은 민족, 많은 부족입니다.”

두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자 중년인(사실은 신이 사람 모습으로 현현함 것임)이 말했다. “지금 우주의 아주 많은 경지 중에서 모두 문제가 나타났는데 자연히 부동한 신의 요소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륜성왕께서 전부 해결하려 하시는데 그럼 자연히 우주의 각 방면의 일에 다 관련되지요. 지금 황상이 하시는 일은 바로 이런 것을 위해 다방면에서 바탕을 다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모양의 신이 말했다. “때가 되면 구도되는 생명 중에는 우리도 있을 것입니다!”

두 사람도 역시 그럴 것이라 상상했다.

노인이 보충 설명했다.

“자네들이 보다시피 만주족의 청나라가 관을 넘어 들어온 후 동북은 용흥지지(龍興之地 왕조가 흥성한 땅)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있고(청나라 초기에 봉금정책을 실시해 동북지방에 아무도 못 들어가게 했다. 나중에 외부인이 대량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동북 지방의 대규모 개발을 촉성했다) 대만 역시 이렇다네. 이런 것들 역시 모두 장래를 준비한 것이지.”

첩존이 말했다.

“그럼 동북과 대만은 무엇 때문에 더 일찍 유효 관할 범위에 들지 않았습니까?”

중년인이 말했다.

“내가 알기로 이 두 지방은 장래 더 큰 배치가 있기 때문이지. 만일 수천 년간 사람들이 대규모 개발을 한다면 자원에 한계가 있어서 장차 전륜성왕께서 대법을 전하실 때 이곳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없으시겠지. 그러면 법을 전하는데 번거로움을 주고 불편함을 가져올 걸세.”

두 사람은 비록 잘 알아듣진 못했지만 조금은 알 듯했다. 어쨌든 무슨 일이든 우연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이후 이틀간 그들은 수행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것은 말하지 않겠다.

그들이 산골짜기에서 주둔지로 돌아간 후 두 왕공의 부친들은 아들이 사흘이나 안돌아오고 찾아도 찾지 못하자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돌아오자 매우 기뻤다. 그들이 어디를 갔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부친이 염려할까 사냥 도중에 어느 노인을 알게 되어 며칠 지내다 왔다고 했다. 나중에 그들은 부친들에게 북경으로 돌아가 좀 쉬고 싶다고 했고 부친들은 동의했다. 그들은 승덕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절에 들러 그 절에서 점을 쳐서 어디서 전륜성왕을 찾을 수 있는가 알아보았다. 계시를 보니 이랬다. “복숭아, 배를 먹어야 비로소 유배지에서 사자를 볼 수 있다(吃了桃、梨才能在發配之地遇見獅子 사자는 수련계에서는 용맹정진한다는 상징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번에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각자 왕부로 돌아와 모친을 뵈었고 모친에게 자기들의 경험을 말해주었으나 산속에서 기인을 만난 일은 말하지 않았다. 집에서 한달 정도 머문 후 그들은 나가서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모친은 비록 아쉬웠지만 이 여행이 그들에게도 좋은 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허락했다.

북경을 떠나기 전 그들은 일부 학문이 깊은 노인들을 찾아가 점 친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았다. 어느 노인의 말은 복숭아와 배는 어디든지 먹을 수 있고 사자는 여기도 많으니 분명 신의 계시는 표면적인 뜻이 아닐 것이다. 내가 알기로 하북(직예성) 몇몇 지방에 복숭아와 배가 많이 생산되고 또 사자는 창주(滄州)가 매우 유명하며 또 자고이래로 유배지라고 하였다.

그들은 노인이 이렇게 좀 일깨워주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그래서 먼저 심주(深州)로 갔는데 여기서 복숭아 나무가 너무 많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어디 가서 전륜성왕에 관한 일을 알아본단 말인가? 그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았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풀이 죽어 있을 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집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이곳은 서당이었고 선생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다.

마침 ‘도(桃)’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말했다.

“이 복숭아는 우리가 먹으면 매우 달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桃’라고 부르며 다르게 부르지 않을까? 전설에 따르면 천상에 서왕모의 반도원이 있는데 그곳의 복숭아는 먹으면 수명이 길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실 또 다른 것도 있지만 노선생은 아이들에게 그리 많이 말해주지 않았다)

너희들 모두 ‘복숭아나무로 만든 검[桃木劍]’이 사악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 왜 그런지 아느냐? 복숭아란 이 물건이 원래 신이 창조한 것이라 사람들에게 좋은 맛을 감상하는 동시에 사람의 많은 욕망, 이익을 대한 추구 등을 내려놓아야만 진정으로 인간의 이 고해를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도목검’은 해음(諧音 역주: 비슷한 발음을 가진 글자로 다른 뜻을 내포하는 것) 문제만이 아니며 사람 마음이 진정으로 바르다면 이것을 가지고 확실히 매우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단다. 그렇지 않고 사람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어떤 검도 너희들을 보호할 수 없단다.”

말을 마치자 아이들은 왁자지껄하며 의논이 분분했다. 이때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 예를 올리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전륜성왕이 장래 하세하신다는 설을 들어보셨습니까?” 노선생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후 그들이 하늘을 보니 맑았는데 작별하고 떠났다. 그들이 막 대문을 나섰을 때 노선생이 쫓아 나오더니 말하기를 신집(辛集-지금의 석가장)에 견식이 아주 많고 넓은 한 할머니가 있는데 인연이 있다면 그녀에게 물어보면 어쩌면 소식을 좀 들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노선생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신집에 도착했는데 여기도 복숭아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 그들은 이곳에 왔을 때 마침 날이 매우 뜨거워 어느 집을 찾아가 물을 좀 마시려고 했다. 우연히 어느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아예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의 탁자에 많은 복숭아가 놓여 있었는데 매우 신선해보였다. 그들이 소리쳤다. “계십니까?” 몇 번이나 소리 질러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너무나 목이 말랐기에 그들은 복숭아를 먹기 시작했다. 얼마 안되어 그들은 탁자 위의 복숭아를 다 먹어버렸고 쟁반에는 그저 껍질과 씨앗만 남았다.

그들이 돈을 꺼내 탁자에 놓고 떠나려 할 때 아직 돈을 꺼내기도 전에 밖에서 서너 명의 처녀들이 희희덕 거리며 들어왔다. 그 중 한명이 탁자 위의 쟁반에 있던 복숭아가 껍질과 씨앗만 남아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이 둥그레지며 그들에게 매우 듣기 거북하게 야단을 쳤다. 그들은 둘 다 원래 말싸움을 잘 못하는 편이라 변명하기도 어려워 어쩔 줄 몰라 얼굴만 붉힌 채 뻣뻣이 서 있었다. 이 몇 명 처녀들은 입심이 대단하여 한사람이 말이 끝나면 다음 사람이 이어서 야단쳤다.

그들은 가만히 듣는 수밖에 없었고 한동안 시간이 흐르자 밖에서 눈빛이 자애로운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이 장면을 보고 처녀들에게 말을 하지 말라고 하고 그 둘을 관찰하더니 말했다. “너희 행색을 보니 시장 건달 같지는 않은데 무엇 때문에 남의 복숭아를 훔쳐 먹었느냐?” 둘의 답도 기다리지 않고 노인 할머니가 말했다. “날이 너무 더워 목이 몹시 마른데 집안에 아무도 없으니 먹어 버린 게로구나?”

그들은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더욱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서 연신 사과하며 사실 목이 너무 말라서 원래 물 한잔 마시고 떠나려고 했는데 탁자 위의 복숭아가 너무 맛있어 보여 다 먹어버렸다고 했다. 할머니는 두 사람의 말이 간절하며 정말 시장의 잡배들 같지 않아 처녀에게 복숭아를 더 가져오라고 했다. 그들은 사양하지 않고 돈을 내어 갚으려고 했다. 할머니는 미소로 거절했다.

할머니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곳은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그들은 전륜성왕을 찾는 일과 심주에서 서당선생을 만난 경과 등을 일일이 다 말해주었다. 할머니는 다 듣고 나서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조상님들이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장래 인간세상에 몹시 드물고 만나기 힘든 대법(大法)이 전해 나올 텐데 전하는 사람이 목자성(木子姓)을 가졌다고 했다. 이 분이 어쩌면 자네들이 찾으려는 전륜성왕인지 모르겠군.” 그들은 이 말에 무척 기뻐하며 분명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할머니와 작별하고 얼른 떠났다. 할머니는 그들을 만류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사실 할머니는 그들 두 사람이 무척 마음에 들어 속으로 몇 손녀 중 둘을 골라서 두 사람에게 시집보내려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급히 서두는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확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명승지를 가보기로 했다. 그들은 조주교(趙州橋) 섭현의 와황궁(媧皇宮), 향당산(響堂山) 석굴, 한단(邯鄲), 업성(鄴城), 형수(衡水) 이런 곳들을 관람하고 또 이것을 통해 그들은 신은 정말 매우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컨대 조주교 옆에 그들은 어느 날 저녁 매우 멀리에서 조주교를 만드는 전반과정을 다 본 것 같았다. 비록 본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그들은 ‘신적(神跡)’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알아야 할 것은 순수하게 사람이 만드는 물건은 풍우 중에 이렇게 오랫동안 우뚝 서있기 불가능하며 또한 비바람 뿐 아니라 각종 지질 재난 등등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후세인들이 경탄할 때 역시 신의 조화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형수호(衡水湖)에서 그들은 이곳 호수를 관리하는 신을 만났고 그로부터 이 호수와 백양탄(白洋澱)이 하북 지역의 환경을 보호하는 주요 원소임을 알았다. 만일 그들에게 변이가 생기면 하북 전반 환경에 거대한 변화가 생길 것이며 지극히 중대한 일에 관련된다. (여기서는 단지 대체적으로 말한 것이며 사실 부동한 성省에 있는 생물권 자체 역시 질서 있는 순환체이다. 마치 사람처럼 만일 관건적인 곳에 병이 생기면 사람 전체에 매우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여기에 또 매우 깊은 원인이 있는데 현재 정황을 비추어보아 자세히 설명할 연이 닿지 않았다.)

나중에 그들은 박두(泊頭)에 왔으며 이곳에 각종의 배가 생산되는데 어느 젊은 사람이 그들에게 말해주기를, ‘배’는 비록 표면적으로 매우 맛이 있지만 세인들에게 표면적인 것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진정 내려놓아야 고난을 벗어날[離 역주: 중국어로 배를 뜻하는 梨와 발음이 같다] 수 있다고 점화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무엇 때문에 배나무에 조각한 것을 오래 보존할 수 있는가? 이것은 절대 나무의 구조가 빽빽한 문제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세인들에게 어떻게 해야 오래갈 수 있는지 점화하는 것이다. 오직 사람속의 욕구에서 벗어나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들은 함께 창주(滄州)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그들은 세간에서 유명한 철사자(鐵獅子)를 보았다. 이 사자는 기원 935년에 만들어 졌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해일의 우환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들은 그곳 많은 노인들을 찾아뵈었는데 노인들은 모두 이곳이 확실히 과거에 유배지였다고 했다. 하지만 전륜성왕이 장래 세상에서 법을 전하는 일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어느 날 그들이 다시 한 번 창주 사자 부근의 길을 지나갈 때 어느 미친 화상[瘋和尚]과 맞닥뜨렸다. 이 스님은 옷이 가지런하지 못했는데 걸어가며 흔들흔들하며 입으로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죄인 얼굴에 글자를 새겨 창주로 유배 보낸다. 죄인 얼굴에 글자를 새겨 창주로 유배보낸다. 마지막 황제는 도성을 북쪽으로 옮겨가서 끝난다. 북으로 가서 끝난다.”

그들은 이 미친 화상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듣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재빨리 그 스님 앞으로 달려가서 물었다.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여쭤 봐도 됩니까?”

미친 화상은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계속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그는 앞으로 따라가서 예를 행하고 물었다.

“당신께선 전륜성왕이 장래 세상에서 법을 전하는 곳이 어딘지 들어보셨습니까?”

미친 화상이 몸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마지막 황제는 도성을 북으로 옮겨가서 끝난다. 도성을 북으로 옮겨가서 끝난다.” 중얼거리고는 성큼 가버렸다.

그들 둘은 쉬는 곳으로 돌아와서 연구해보았다. 청나라도 역시 명나라처럼 마침내 멸망하는 그날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황제는 도성을 북으로 옮긴다. 그럼 어디로 옮길 것인가? 몽골? 불가능하다. 서북? 더욱 불가능 하다. 가장 가능성 있는 곳이 동북이다. 왜냐하면 동북은 청나라 왕조가 흥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 둘이 이것을 종합하여 얻은 소식은 이렇다. 전륜성왕이 장래 법을 전할 때 어쩌면 ‘이(李)’씨 성을 가질 것이며 동북에서 한때 청나라 최후 수도였던 곳에서 법을 전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각개 각층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알자 그들은 매우 기뻤다. 이번 차례 돌아다닌 것이 정말 헛되지 않았다고 느끼며 신나게 경성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이번 길에서 얻은 만난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들 부모도 역시 기뻐했으며 만일 장래 전륜성왕이 직접 전하는 도를 얻을 수 있다면 매우 행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국 시기에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는 장춘에 만주국(滿洲國)을 세웠다. 이 역사적 사건은 표면적으로 보는 것만큼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 일체는 오늘 날 세상에 우주대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 바탕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의손과 첩존은 오늘날 이미 법을 얻었다. 중공이 발동한 박해 중에서 그들 역시 마난을 겪었다. 그중 의손(진짜 이름은 손의孫毅)이 불법으로 노교소에 잡혀 있을 때 인권박해의 소식을 강제노역하며 만든 공산품을 이용해 해외에 전했으며 해외에서 대륙 노교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죄악을 알게끔 했다. 나중에 의손은 출국하여 인도네시아에 도착했으나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추측에 따르면 중공이 해외에서 집어넣은 특무가 수작을 부린 것이다. 또 첩존(진명은 이첩춘李捷春)은 마지막 체포되었을 때 형을 판결 받고 감옥에 투옥된 지 얼마 후 박해로 사망했다.

이 글은 그들에 대한 회고로도 볼 수 있겠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목란 사냥 대회에서 기연을 만나기주를 두루 다니며 온갖 고생 겪다가마침내 성왕(聖王)의 흔적을 방문해금생에 법을 얻어 용감히 나아갔구나.

木蘭圍獵遇奇緣(목란위렵우기연)走遍冀州曆難險(주편기주역난험)最終訪得聖王跡(최종방득성황적)今朝得法勇向前(금조득법용향전)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2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