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석방행
【정견망】
북경성의 건설은 3000여 년의 역사가 있다. 상(商)나라 후기부터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지방 봉국(封國)의 도성이나 북방의 주요 군사도시가 되었고, 요, 금, 원, 명, 청 등 왕조에서는 일찍이 이곳을 도성으로 삼았다. 이곳은 왕기(王氣)가 매우 무겁고 풍수와 자연이 아주 좋다. 명나라 황제의 능묘 13릉 역시 여기에 있다. 청나라 황제의 능묘와도 가깝다. (청동릉, 청서릉은 하북성에 있다)
많은 고고인류학자들은 1918년부터 1970년대까지 북경의 방산구(房山區) 주구점(周口店) 용골산(龍骨山)에서 차례로 북경원인(北京猿人 약 70만~20만 년 전), 산정동인(山頂洞人 1만 8천년 전)과 신동인(新洞人) 유적지(약 10만 년 전)를 발견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기의 고인류가 모두 용골산을 마음에 들어 한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근본적으로 세계에서 우연한 일이란 없다. 당초 신(神)이 부동한 시기에 고인류를 북경에 출현시켜 정착하도록 안배한 것은 바로 북경에 ‘사람의 기[人氣]’를 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점진적으로 문명으로 나아가는 요소를 다져준 것이다. 신이 중화문화를 육성한 것은 창세의 주불(主佛)께서 말법시기에 중생을 구할 대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이곳의 일체 자연은 모두 이 중심을 둘러싸고 돌고 있다.
신은 적어도 세 시기의 고인류를 북경 지역 같은 산에 정착하도록 안배해 후인들이 생명의 멸망과 재생이 모두 한 지방 부근에 있으며 시간이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멸망할 것은 멸망하고 새로운 종족군이 자연히 흥기함을 알게 했다. 시간은 생명을 도태시킬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신은 무엇 때문에 적어도 세 차례 고인류를 북경에 나타나게 했을까? 또한 20세기 초에 들어와서야 사람들에게 발견되게 했을까? 또 이 시간 전후에 하남성 안양에서 발견된 갑골문은 실증과학의 각도에서 상나라 시대임이 입증되었고 사서에서 언급한 상나라 존재의 진실성을 증명했다. 여기에는 더욱 깊은 뜻이 있는 게 아닐까? 신은 일찍이 장래 북경에서 전국 내지 전 세계를 향한 구도의 일이 나타나도록 정한 건 아닐까?
이것은 흡사 한 가지 일의 극본을 미리 정해놓은 것과 같다. 일부 관건적인 일은 비단 주머니속의 묘책으로 숨겨두어 선전하지 않다가 기회가 닿기를 기다려 자연히 수수께끼의 답이 풀리게끔 말이다. 사실 상나라에 관한 발견은 오늘날 사람에게 당시 사람들에게 점복(占卜)이 유행한 진상을 알게 해주었다. 이는 귀신을 숭상하는 나라의 제도가 문명 정도가 낮은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이것은 지금도 많은 사례가 있다. 미국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미국의 문명정도와 생산력은 전제권력이 신앙을 틀어막는 나라들을 훨씬 초월해 있다.
기연(機緣)을 말하게 되어 원, 명, 청 각 왕조는 북경을 수도로 삼았는데 표면적으로 서로 다른 원인이 있지만 신전문화의 각도에서 말하면 최초 제국의 도성인 함양에서 최후 황제의 수도인 북경까지 이런 인연의 끌림은 매우 의미가 있다. 알아야 할 것은 매 한 왕조는 아마 일부 천상의 부동한 경지에서 내려온 생명에 대응한다. 그 생명들이 다진 문화는 자연히 다르지만 도성은 부동한 조대의 문화 정수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북경은 중국 역사상 후기 몇 왕조의 도성으로서 역시 신이 인간에 육성해준 문화를 집중적으로 나타내주며 신전문화의 중심이 동북방향으로 이동하게 했다. (위도로 말하면 북경은 서안과 함양, 개봉, 남경, 항주 등 한때 비교적 큰 중원 왕조나 통일 왕조의 수도였던 곳보다 동북에 있다)
만약 연분(緣份)을 물질 에너지 흐름의 일종 표현형식으로 이해한다면 남송(南宋) 말기 황제가 원나라 군대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청나라 초기 남명(南明) 정권이 여러 차례 천도를 한 것 내지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외세를 등에 업고 장춘에서 ‘만주국’을 세운 것 등 모두는 신이 이런 거동을 통해 신이 어느 조대에게 전해준 문화 물질장을 원래 도성에서 전파해 나가게 한 것이다.
비록 이런 임시적인 도성이 매우 단명했더라도 말이다. 적어도 나중에 여행객들이 이런 유적지에 가서 놀면 현지 사람들은 이곳이 한때 도성이었고 진룡(眞龍)천자가 이곳에서 한동안 머물러서 일부 유적과 유물을 남겨 놓았다. 여행객들이 이런 유적을 볼 때 인연이 있는 사람은 자연히 남겨진 물질 에너지와 연결이 될 것이고 그 형상을 “연이 닿는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상이 점점 신전문화의 어느 방면에 부합하도록 인도하는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그로부터 성자(聖者)가 금조(今朝 지금 세대)에 널리 전하신 진정으로 생명이 회귀할 수 있게 하는 대법을 얻고 정확히 인식하게 하는데 준비 및 바탕을 다지는 작용을 한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말하자면 그는 세 차례나 제위에 올랐고 또 세 차례 퇴위했다. 이것은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마지막 한차례는 일본의 부축 하에 장춘에서 소위 ‘만주국’의 황제가 되었다. 부의가 나중에 군사법정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는 황제로서 심양에 가서 조상에 제사지낼 기회조차 일본 사령관에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인신의 자유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완전히 괴뢰 황제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은 모두 일본인이 대리인을 찾은 한 가지 방법이라고 느낀다. 내가 지난번 글에서 말했다시피 이 역시 우연한 것이 아니다. 부의는 이곳에서 비록 황제로 칭했지만 조금의 실권과 자유도 없었다. 이 무대는 지난 세기 상반기 무렵에 장춘 이 땅에서 이렇게 굴욕적인 연기를 충만히 해낸 것이다. 만일 후반기의 말기에 그 연기를 거꾸로 뒤집는다면 그건 볼만한 것이다.
다시 말해 만일 한 분의 성자(聖者)가 이름도 없고 권력도 없는 상황이자만 말한 이치가 오히려 1억이 넘는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있고 또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따르게 할 수 있다면, 그 부의가 당시 당한 굴욕과 선명하고 뚜렷한 상반되는 대비를 이룰 것이다.
우리가 예를 들어 만일 장춘 이 도시를 사람으로 본다면, 이 사람이 소년 시절에 굴욕과 능욕을 당한 것은 그가 장래에 더 큰일을 할 수 있고 휘황한 일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맹자가 말한 명언과 부합한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이 사람에게 맡기려면 먼저 반드시 마음이 시달리고 몸이 고달프게 한다.”(《맹자. 고자하》) 좋지 않은 현상이 나타나면 부동한 시기에 그만큼 좋은 일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많은 방면에 드러나는 모습은 바로 반대이다. 이런 예는 어디에나 다 있다. 예를 들어 전국시대 후기에 진(秦)나라가 초나라를 쳐서 패배시켰지만 진나라 말기에 초나라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켜 진나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모든 것이 상생상극이기 때문에 근대에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여러 차례 파괴로 북경의 수많은 정화적인 문화를 잃었다. 이 역시 우주 중의 사악한 생명이 일찍부터 잘 안배한 것이다. 이 성자를 포함해 본래 명예도 없고 권력도 없으며 또 이런 것을 원하지도 않았으나 그가 말한 이치가 1억 명을 마음속으로부터 복종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북경 권력자의 신경을 건드렸다. 권력자는 전국적으로 소요, 탄압을 시작해 현재까지 20년이 지나도 아직 멈추지 않았다.
북경에는 천안문 광장이 있는데 당대에 이곳에서 많은 역사적으로 큰 사건들을 연역해냈다 ‘4.5 운동’(1970년대 말에 일어난 군중 항의 사건)은 사인방을 축출하는 민의의 기초가 되었고 그로부터 기공(氣功)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성자가 대법을 널리 전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또 ‘6.4 천안문 사태’(1989년) 때 당국이 총을 발포하여 지울 수 없는 악몽을 만들었고 오늘날 홍콩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벌이고 있는 송환법 반대 대규모행진과 대만의 반중공매체 대행진은 모두 6.4 정신의 연장이다.
신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의와 양심이 일시적으로 탄압을 받더라도 자유와 문명을 숭상하는 보편적 가치는 닳아 없어지지 않고 적합한 기회를 만나면 자연히 발랄하게 발전되어 나오도록 안배했다. ‘6.4’ 천안문 민주화 운동이 당국에게 진압되자 전 국민은 이때부터 ‘돈만 쳐다보기’ 시작했다.
중공의 하수인이 연출한 연극 천안문 광장 ‘분신날조사건’(2001년)은 비록 일시적으로 일부 사람을 미혹시켰지만 바로 이 때문에 파룬궁 수련생들이 직접 만든 매체가 정식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사악한 무리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추악한 일면이 재빨리 세인들 면전에 폭로되게 하였다.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많은 일은 부동한 시기에 신이 부동한 물질요소를 배치하여 “조합”한 것이 부동하기 때문에 인간사회에서 부동한 표현이 나타난 것이며 이렇게 표현된 것이 좋든 나쁘든, 정면적이거나 부면적인 작용을 일으키든 모두 창세의 주불(主佛)께서 법을 전하고 법을 바로 잡기 위한 준비와 바닥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일으킨 작용의 성질이 같지 않을 뿐이다.
천진(天津)은 북경의 위성도시이자 바다로 나가는 통로이기 때문에 보조적인 작용은 자연히 클 수밖에 없다. 하북성 창주(滄州) 이북에 북경과 천진에 가장 가까운 지구인 당산, 대창(大廠), 삼하(三河), 향하(香河 모두 낭방시 관할)가 일으킨 작용 역시 크다. 이런 것은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이상의 지명들을 언급한 것은 본문의 주인공이 위 지역에서 겪은 일을 말하기 위함이다.
본문의 주인공을 이선(李禪)이라 하자.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던 1840년대 북경에서 태어났고 그의 부친은 병사를 거느린 통령(統領 역주: 관직명 무관)이었다.
그의 이름을 듣기가 참 이상한데 그가 막 출생했을 때 집에 어느 고승 한분이 찾아와 말했다. “이 아이는 한때 나와 함께 참선하던 제자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가 전생의 인연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이름을 선(禪)이라 지으세요.”
이선의 부친은 “그러지요.”라고 대답하면서 또 물었다.
“청나라의 국운은 어떻습니까?”
고승의 얼굴이 심각해지더니 말했다.
“병란이 있을 것인데 적지 않은 시간 동안은 견딜 것입니다.”
이선의 부친은 유가 교육을 깊이 받은 사람이라 군주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당시 비통하여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했다. 고승이 위로하면서 “괜찮습니다. 당신은 청나라가 없어지는 날을 보지 못할 테니까요.”라고 했다. 이선의 부친은 비로소 좀 마음이 평정해졌다. (사실 그가 어찌 고승의 뜻을 알았겠는가. 그는 곧 나라를 위해 몸을 희생할 예정이었다.)
나중에 아편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선의 부친이 말했다.
“우리 이 동방의 대국이 어떻게 전쟁에 패할 수 있겠습니까?”
고승은 미소를 지으며 “표면적으로 보면 무역(원래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많이 수입하여 무역 역조가 있어났다. 이 국면을 억제하기 위해 영국은 중국을 향해 아편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칙서 같은 식견을 가진 충신이 있어서 아편을 금하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일으킨 것이지만 사실은 서방의 의식 체계와 중국의 오랜 문화 간의 전쟁입니다.
우리 문화 중 전통적인 것은 대부분 매우 좋은데 시간의 흐름과 인심의 부패를 따라 ‘양두구육’ 같은 자가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많은 나쁜 생명에게 구실을 주게 되었고 그로부터 서방 문명의식의 침입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물론 더 주요한 것은 장래 아마 전 인류 심지어 전 우주에 영향을 주는 대사건이 나타날 텐데 한분의 성자가 인간 세상에 오셔서 생명이 진정으로 구도 받을 수 있게 하는 대법을 전하실 겁니다. 제가 알기로 많은 신은 이 일을 위해 일을 하려고 하며 그들은 그들이 인간 세상에서 나타낸 지혜나 문명 성과를 중화 땅 이곳으로 가져오려 합니다.
서방의 많은 문명성과 역시 신이 전한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것은 기타 비교적 저층 생명이 사람의 사상을 이용해 창조해낸 것입니다. 물론 이 역시 일부 신들의 묵인 하에 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우주도 변이가 발생했기 때문에 신의 사상 역시 불순하고 바르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아울러 사람 여기에서는 한 가지 사상 의식이 주류를 차지한 후에는 다른 사상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과 같은 방법으로 이곳에 그들의 사상 의식을 퍼트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 중에 어떤 사람이 일 때문에 이선의 부친을 찾는 바람에 고승은 작별을 해야 했다. 떠나기 전 고승이 말했다. 2년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이년이 지난 후에 고승이 왔는데 이 때 이선은 모친이 데리고 나왔으며 고승의 무릎위에 잠시 앉았다. 고승이 이번에 이선의 부친에게 전쟁통에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지 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고승이 막 도착했을 때 이선의 부친은 조정에 긴급히 징발되어 전선으로 나가야했다. 이선의 부친이 대문을 나갔을 때 고승이 연달아 세 번 말했다. “몸조심 하시오.” 그 말은 안전에 주의하라는 뜻이었다.
이선의 부친이 전선에 도착한 후 애국심이 투철했던 그는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싸우다가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이선은 부친이 전사한 후 모친의 손에 길러졌다. 마침 그의 외삼촌이 사람이 매우 좋아 늘 찾아와 그들을 도왔으며 그가 어린 시절에 고생을 좀 덜 겪게 해주었다.
국난에 직면하여 북경에는 두 가지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한 가지는 구국호민(救國護民)의 길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극적으로 세상을 등지는 마음이었다. 이선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친은 시집올 때 친정에서 가져온 비녀 등을 팔아서 아들을 서당에 보냈다. 서당 선생님 역시 유가의 영향을 깊이 받은 사람이었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하자 함께 공부하던 십여 명의 아이들도 다 전염이 되어 머리릿속에는 모두 자기가 자라면 어떻게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강하게 할 것인가만 생각했다.
이선이 16살이 되었을 때 고승이 세 번째 그의 집을 찾아와 그를 데리고 출가수행을 시키려고 했다. 이선은 이때 정말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있었으며 큰 날개가 있어도 펼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와 민족의 고난이 그의 마음속에 쌓여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는 늘 어느 날 그가 민족을 데리고 고난의 역적을 벗어날 포부와 의지를 펼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승이 말했다.
“중국 백성의 고난은 아직 가장 고생스러운 때가 되지 않았다. 너는 막 출생했을 때 내가 여기서 한 말을 아직 기억하느냐? 너는 인류도덕을 앞으로 밀고 나아갈 수 있는 큰일과 연분을 맺어야 한다.”
“그 연분을 어떻게 맺습니까?”
이선은 알 수 없었다.
고승이 말했다.
“너는 북경 천진 부근을 돌아다녀 보아라. 멀리 갈 필요도 없고 세속의 민의를 좀 알아보면 된다.”
“그러면 그 대사건과 연을 맺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선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고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장래 부근에 동북에서 나오는 성인에 대해 물어보거라. 그는 사람의 도덕을 올리도록 가르칠 것이고 그로부터 사람이 진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도록 할 수 있다.” 고승의 이 말을 이선은 알아들었다.
고승이 몸을 돌려 떠나려 하자 이선이 말했다.
“그럼 저는 언제나 당신을 만날 수 있습니까?”
고승은 “네가 장래 성인과 연분을 이은 이후 네가 나처럼 가부좌 수행하고 싶을 때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을 마치고는 가버렸다.
이선은 매우 영준하게 생겼고 훌륭한 인재였다. 어느 날 떠나기 전에 거리 시장에 나가 몸에 지니고 갈 것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거리에서 궁전에서 잡일을 하는 관리의 마음에 들어 이유도 모르게 궁내로 강제로 끌려가서 잡다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는 다른 스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스님에게 도덕이 올라가고 회귀의 길을 이끌 수 있는 성인이 어느 쪽에 계시는지 탐구했다. 그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다. 당시 궁궐안에는 풍기가 바르지 않았는데 그는 일찍이 이런 것을 싫어했다. 늘 도망치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없었다. 나중에 북경에 처음 병란(兵亂)이 일어났을 때 비로소 그는 도망쳐 나왔다. 다시 잡혀 들어올까 두려워 바로 천진과 당산 등 지역으로 갔다. 이곳에서 백성들이 전쟁으로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그는 마음이 매우 아팠다.
그는 이런 것을 보는 동안에 서양의 물건들이 점점 많아졌다. 속으로 고승이 말한 서양 동양 문화간의 전쟁을 생각했다. 이번 차례에는 전쟁의 방식으로 동방에서 나타내는데 그 목적은 장래 사람을 구하는 대법의 성인이 선택하기 위해서라고 말이 생각났다.
나중에 천진에 어느 술집에 도착하여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부근 탁자에 묘령의 여인이 옆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바싹 붙으며 말했다. “오빠, 내가 어째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우리 청나라 자손들이 여러 해 동안 대겁난을 겪은 후 복이 있는 것을 봤어요.”
그녀의 오빠가 말했다.
“좀 자세히 말해봐.”
묘령의 여인이 말했다.
“꿈에서 어느 눈빛이 자비로운 노인이 내게 말해주는데, 얘야, 너희들이 많은 것을 잃을 것이지만 장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 너희들은 정말 구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물었어. ‘어르신, 전륜성왕이 세상에 오실 때가 어느 해 어느 달입니까? 무엇 때문에 그때가 되면 우리가 구도됩니까?’ 그러자 노인은 ‘전륜성왕이 세상에 오실 때가 되면 그는 사람의 마음이 철저히 바로잡히게 할 수 있는 대법을 널리 전하실 텐데 사람들이 모두 진정으로 이 대법에 따라 하면 해탈을 얻을 수 있고 이 속세를 초월할 수 있단다.
보아라, 인간에겐 생로병사가 있고 전쟁 기아 등등의 고난이 있지 않니. 너희들이 전정으로 그가 전하는 대법을 따라 할 때 진정으로 이런 것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생명의 대 자재로움과 영원을 획득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는 사라졌어. 나는 당시 마음속에 갑자기 구멍이 하나 열린 것처럼 많은 것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애….”
이선은 옆에서 남매의 마 대화를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나아가 말을 건네며 자기의 경험을 말해주고 특히 고승이 그에게 한말을 다 말해주었다. 그 남매 역시 그 꿈은 분명 신선이 그들을 점화해준 것이라고 느꼈다.
본래 그들도 이선과 함께 전륜성왕을 찾으려고 했다. 또 그 묘령의 여자는 이선이 매우 잘생긴 것을 보고 그를 가까이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선은 고승의 부탁을 생각하고 자기는 장래 출가 수행해야 한다고 느껴 현재는 젊은 여자와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했다. “이번에 우리는 좋은 인연을 맺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일이 있으니 각자 해어져서 전륜성왕을 찾기로 하지요. 또 내가 찾는 범위는 북경 천진 부근이나 당신들은 더 넓은 지방에 가서 찾아보심이 어떤지요.” 그들 남매는 이 말을 듣고 이선에게 함께 가자고 강요할 수 없었다.
그들 남매가 법을 찾으러 다닌 일 등은 내가 산서(山西)에 대해 쓸 때 자세히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선만 말하겠다. 이선이 천진 북쪽 황애관(黃崖關) 장성에 머물 때 어느 덕이 높은 노인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만리장성은 한 마리 용과 같아서 동쪽 산해관에서 시작해 서쪽 가욕관에 이르며(‘요동변장’의 동쪽 끝은 치지 않는다. 그것은 조선 경내에 있으며 명나라 후기에 청나라의 만주족을 막기 위해 세운 것으로 나중에 청나라 군대가 대부분 망가뜨렸다) 머리는 큰 바다를 살피고 꼬리는 황사 모래에 파묻혀 있지. 이것은 하나의 방어 공정만이 아니라 무슨 역사적 상징과 증거이지. 한 왕조가 만일 만리장성을 방어의 성으로 삼지 않고 내성으로 삼는다면 그 용은 얼마 안 가 진정으로 날아오를 것이다.”
이선은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놀랐고 좀 있다 말했다.
“우리 대청의 판도가 바로 이렇지 않습니까? 그럼 무엇 때문에 날아가지 않고 짓밟히는 고생을 겪습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어느 도사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장성 그 자체도 생명이 있어서 춘추전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여러 왕조의 변환을 겪었고 각종 왕조의 많은 정화적 요소를 흡수했단다. (많은 요소는 후인들이 표면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왕조의 건립도 모두 이 왕조의 특유한 요소를 생기게 할 수 있어서 현대의 말로 하면 일종 물질 에너지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장성은 움직이지 않는 물질로서 자연히 이런 요소 물질장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밖에 없다.) 현재 중국이 겁난을 당하는 시기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도사의 말에 따르면, 촛불이 위에서 아래로 거꾸로 매달리고 사람이 소가 끄는 수레를 타지 않고 두 바퀴 달린 쇠로 만든 수레를 타고 다닐 때 그때가 바로 장성의 이 용이 날아오를 때이다.”
이선은 생각했다. 아마 그 사람이 말한 뜻은 장성이란 이 용이 모종의 의미에서 중국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맞아, 그 도사가 나중에 또 말했는데 이 용이 진정 날아오르게 하려면 한 성인이 그것의 눈을 찍어야 된다(點睛)고 했지.”
이선은 ‘성인’이란 말을 듣자마자 즉시 흥미가 일어나서 얼른 물었다.
“그 성인을 이번 생에 제가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습니까?”
현지 사람이 말했다.
“나도 당시 그것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도사의 말은 아마 성인은 군중 사이에 있을 것이며 그는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어. 우리가 만약 정말로 이전에 그와 인연이 있었다면 금생에 우리가 진심으로 찾을 수 있다 해도 금생에는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장래 성인이 대법을 널리 전하는 그날 우리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필경 진심으로 찾아 다녔기 때문이지. 성인도 우리가 진심과 성심이 있는지 볼 것이다!”
나중에 그가 지금의 삼하, 대창, 향하(북삼현) 경내에 도착해보니 많은 점포가 원래 장사가 번창했는데 갑자기 모두 도산해버린 것을 보았다. 두 부부가 매우 달콤하게 살았지만 무슨 일인지 모르게 가정에 모순이 나타나서 심지어 많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신체가 매우 좋았는데 갑자기 병이 걸린다던지 어떤 친구 사이에 본래 사이가 매우 좋았는데 조그마한 일 때문에 반목하게 된다던지 등등 이런 것을 보고 그는 생각하기를, 인간 세상은 정말 무상하구나, 어디에도 영원한 것이 없구나. 이때 그는 또 만리장성을 생각했다. 비록 풍우 중에 그렇게 오래 우뚝 서 있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파괴되는 곳이 나타났다.
매 조대의 말기가 되면 각종 형식의 변란이 나타나는데 설마 현재 외적의 침입도 이런 것일까? 이때 그의 구국 충정의 생각이 아직 매우 무거웠다.
나중에 그는 당산에 도착했고 오늘의 노남(路南) 노북(路北)구 경계의 지방에서 병이 나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생명이 경간에 달렸을 때 어느 노(老)중의사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그를 발견해 그를 집에 데려가서 15세 딸에게 그를 돌보게 했다.
반달 넘게 간호를 하자 그의 신체는 점점 건강을 회복했다. 노중의사는 그에게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물었고 그는 자기의 경험을 다 말해주었다. 말하는 중에 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용기와 결심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노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는 지금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데 아직도 국가와 민족을 구할 생각을 하는가?” 그는 이 말을 듣자 멍해져서 그에게 물었다. “어르신께선 무슨 고견이 있으십니까?”
노중의가 말했다. “국가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심성도덕에 문제가 나타나면 외부의 사기가 침입하지. 만약 사람마음이 바로잡힌다면 그럼 외부의 사기는 자연히 멀리 피할 것일세. 만약 사람마음이 바르면 극가가 흥성할 뿐 아니라 사람 자신이 만일 진정으로 모종의 심법의 요구에 따라 할 수 있다면 진정한 영항(永恒)을 얻을 수 있을 걸세! 때가 되면 자네 역시 이렇게 격동하여 하지 않아도 되네. 그저 부동한 위치에서 해야 할 일만 하면 국가는 자연히 안녕하고 부강하게 될 것일세.”
노중의가 말할 때 이선은 마치 그의 몸 뒤에서 어느 신의 영상이 몇 차례나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오성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 당시 입에서 바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께서 제가 찾으려는 장래 인간 세상에 법을 전하실 성왕(聖王)이 아니신가요?
그때 15세 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알기엔 그냥 우리 아빠예요!”
노인은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금생에 나는 단지 노중의로 사람의 병을 봐줄 뿐이라네…..”
그리고는 딸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할수록 그 노인이 바로 자신이 힘들게 찾아왔던 ‘전륜성왕’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몸을 일으켜 의원의 내실로 달려갔다. 그러나 모든 방을 다 뒤져보았지만 그 노의원과 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가 풀이 죽어 입구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고 있을 때 문득 밖에서 목탁 소리가 멀리서 점점 가까이로 들려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문을 열고 뛰어나가서 그 고승을 보았다. 그것이 바로 그가 그 노승을 세 번째로 본 것이었다.
노스님은 그를 보자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자네 일은 내가 알고 있네. 현재 자네의 속세의 인연은 거의 다 끝났네. 나를 따라 출가하여 수행하지 않겠나?”
그는 좀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 어머님께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노승은 말했다.
“좋다, 빨리 돌아가게나.”
그가 집에 돌아가니 모친은 이미 병이 들어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자신이 몇 년간 돌아다닌 경험을 자세히 말해주었고 마지막에 그는 “어머니도 장래 반드시 전륜성왕이 직접 전하시는 법을 얻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모친은 눈물을 머금고 약속했다.
나중에 그 고승과 제자는 북경 연산(燕山) 자락의 작은 절에서 수행했다. 수행하는 과정에 고승이 말했다. “사실 금생에 자네의 우국충정하는 마음은 좋았는데 수행인으로서 이런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네. 그럼 장래 이 마음을 더욱 많은 중화의 중생이 진상을 알게 하는데 쓰도록 하게나…”
이 시대에 ‘촛불’이 거꾸로 걸리고(전등의 출현) 소가 끌지 않아도 되는 쇠바퀴가 있다. (자동차) 이 시대에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은 중화문화의 의의를 명시하였다. 수많은 역사상의 미혹이 다 타파되었고 션윈 예술단(神韻藝術團)의 세계순회공연은 또 중화문화에 광채를 더했다. (흥미 있는 사람은 파룬궁 창시인 시리즈물과 션윈 공연 사이트를 참조할 것)
이번 생에 이선은 산동에서 출생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1999년 7월 장쩌민과 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한 후 대륙 민중들에게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말하기 위해 그는 대륙 여러 성을 다니다 불행히도 2002년 사악에게 체포되어 박해로 사망했다.
설명: 독자 여러분들의 보다 많은 공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본 시리즈부터는 주인공의 실명을 쓰지 않고 인물과 가까운 가명을 썼다. 사실 나는 어느 수련인이 역사상 겪은 경험을 가지고 그 사람에 관한 글을 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2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