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천애심법: 안문석조(雁門夕照, 안문관 저녁노을)

작자/ 석방행

【정견망】

산서성(山西省)에서 법을 찾으러 다닌 경험은 두 편으로 나눠 쓴다.

제1편은 북위(北魏) 때의 주인공 영인(永仁)이 대동(大同)에서 태원(太原)을 거쳐 운성(運城)에 이른 경험이다.

제2편은 이전 몇 편에서 언급했던 묘령의 여인과 그녀의 오빠가 청나라 말 진성(晉城), 장치(太古), 태고(太古), 기현(祁縣), 평요(平遙)에서 법을 찾은 경험이다.

이 두 편은 부동한 시기에 법을 찾는 노선으로 하나의 ‘人’자를 구성하는데 내가 산서에서 법을 찾는 경험을 쓰려 할 때 산서 각 부분의 상태를 책임진 신이 내게 보여준 현상에 부합한다.

당시 신이 보여준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대동에서 태원을 거쳐 운성까지 오는 이 노선은 황토와 하류(河流)로 구성되었다. 다시 말해 이 노선 상에서 토지와 하류가 침윤(侵潤)된 내포를 말하려 한다.(사람이 법을 얻기 위해 다져준 문화와 자연환경의 기초) 이 노선상의 명승고적으로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대동의 운강석굴(雲岡石窟), 혼원(渾源)의 항산(恒山), 현공사(懸空寺), 오대현의 오대산(五臺山), 태원의 진사(晉祠), 분양(汾陽)의 행화촌(杏花村), 임분(臨汾)과 길현(吉縣)의 황하 호구폭포(壺口瀑布), 운성(運城)의 순제릉(舜帝陵 순임금 묘), 관제묘(關帝廟), 사마광묘(司馬光墓), 영제(永濟)의 관작루(鸛雀樓 중건한 것) 등이 있다.

한편 진성, 장치, 태고, 기현, 평요 노선은 황토가 드러나는 곳이 아니라 거수마룡(車水馬龍 역주: 수레와 말이 강물이나 용처럼 많고 거창하다는 뜻)인데 다시 말해 사회경제와 인문환경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태고, 기현 부근은 당시 ‘중국의 월가’로 불렸고 평요의 석판가도(石板街道)가 깊이 눌린 자국으로부터 당시 이 지역의 경제가 번영한 정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제1편이다.

나는 산서에 한번 갔는데 간 곳이 매우 많았다. 대동의 운강석굴, 항산(현공사를 포함)을 가보았고 대현(代縣)의 안문관(雁門關)을 유람할 때 우리 일행은 모두 자연스럽게 파룬궁 창시인의 시를 떠올렸다.

안문관을 거닐며

안문관(雁門關)에 들어서니가슴 은근히 설레누나천 년 옛길은 그대론데관중(關中)에는 옛 모습 없구나연소(延昭)는 말 달려가고풍운(風雲) 흘러간 지 일천 년눈을 들어 관아래 바라보니대법은 중원에 있구나

《홍음》 〈안문관을 거닐며〉

당시 안문관 이곳에 함축된 역사가 매우 두터운 것을 보았는데 특히 관광지에서 나와서 양가장(楊家將)의 조각을 보았을 때는 더욱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들은 바로는 이 조각들은 모두 최근 몇 년 전에 만든 것이라 무슨 내포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나는 이들 조각에서 그 단락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본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겪은 것 같았기 때문에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물론 본문에서 쓰려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함께 안문관에 갔던 영인(永仁)이란 수련인에 관한 것이다.

그는 안문관에 나온 것을 아주 재미있어 했다. 본래 우리는 위에서 잠시 머물고 있었는데 그는 나중에 관성(關城)위로 올라왔다. 내 옆에 와서는 물었다.

“나는 당시 어느 쪽 무리였어요? 양가장과 대립했던 요나라의 그 무리였어요? 당시에도 좀 언행이 이치에 맞지 않고 불성실했어요?”(그는 본래 말에 유머가 있었다. 그래서 ‘不著調’란 이런 표현을 쓴 것이다)

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불성실 한 것 그렇고 요나라 사람인 것도 맞아요. 하지만 … 나중에는 양가장을 따라갔어요.”

본문에서는 북위 시기 영인이 법을 찾으러 다닌 일을 말해보기로 하자.

북위 시기에는 황실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운강에 석굴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황후(皇后)와 한 비(妃) 사이에 약간의 모순이 있었다. 그녀들은 황제의 총애 때문이 아니라 누가 국사(國師 황제의 신임을 받는)와 더 가까우냐 하는 것으로 다투었다. 그녀들은 우열을 가리기 위해 늘 국사 앞에서 누가 진심으로 국사의 말을 믿는지 비교하곤 했다. 자세히 쓰자면 현대의 궁정암투극보다 더하다. 또 특징이 있는데 그녀들이 움직인 것은 심기(心機 지모)가 아니라 선행과 실력을 비교했다. 사실 두 사람은 덕행이 모두 매우 좋았고 또 모두 선량했다. 다만 국사를 믿는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서로 불복했다.

나중에 이 비가 당시 무장이었던 영인을 찾았다. 그에게 한 차례 성대한 배불대전(拜佛大典 성대한 불교 제전)을 주재하게 했다. 대전에서 황후는 영인에게 최고 높은 곳에 있는 농구공 크기의 빛나는 둥근 구를 내려와 국사에게 바치게 했다. 영인이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이 구를 손에 넣었는데 이 공이 저절로 날아가더니 땅에서 멀지 않은 지면에 떨어졌다. 이때 지면위에 깊이를 알 수 없고 직경이 농구공보다 큰 구덩이가 있었는데 그 구는 하필 이곳에 떨어져 들어가더니 사라지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아무리 파고 찾아도 찾지 못했다. (이는 국사가 펼친 법술(法術)로 그 목적은 영인더러 밖에 나가 법을 찾게 하기 위함이었다)

황후는 이 일을 구실로 다른 권신(權臣)에게 영인을 처리하게 했다. 동시에 또 이를 구실로 비를 공격했다. 그런데 권신에게 딸이 둘 있었는데 둘 다 나이가 16살 쯤 되었다. 두 처녀는 처음에는 모두 영인을 위해 불평했으나 나중에는 부친의 압력하에 부득불 영인의 죄는 매우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인도 처음에는 속으로 매우 불평했고 자기는 무의식중에 이 분쟁에 말려들어간 것으로 그럴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나중에 국사가 사람을 시켜 그에게 조용히 출가수행을 권했다. 이렇게 하면 이번 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인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응낙했다.

나중에 권신이 감옥에서 그를 석방시켰을 때 영인은 한때 출가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니 자기가 그렇게 하면 임금을 기만하는 것이라 집에 돌아가 처자와 작별을 하고 이유를 말한 후 출가수행의 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속으로 내킨 것도 아니고 게다가 무장 출신이라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나중에 한 승려를 만나 그에게 자신이 고난 받은 경력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스님이 웃으면서 “당신이 기왕에 방석에 앉아 있지 못하겠다면 그럼 남쪽으로 쭉 가보는 게 좋겠군요. 좋은 운이 있기 바랍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남으로 쭉 가서 뭘 한단 말인가? 그렇다, 나더러 출가하라고 한 것은 수행하라는 것인데 내가 무엇을 갖고 수행을 하는가, 바로 내가 무슨 방법으로 내 수행을 지도하는가? 이것이 관건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 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무엇을 가지고 수행의 지도로 삼아야 합니까?”

스님은 “내가 자네더러 남쪽으로 가라고 한 것이 바로 자네더러 수행의 지도를 찾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금생이 아니라 장래 최후시기의 수행의 지도일세.”라고 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영인이 이렇게 생각하며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 스님은 이미 멀리 가버렸다.

도성을 나온 그는 우선 운강석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경건하게 석굴을 파는 것을 보았다. 그는 또 여기서 부처님을 믿어 생긴 스많은 신기한 일화에 대해 들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이곳에 왔을 때 불상(弗像)을 파던 한 석공이 실수로 조각에서 떨어져 내려온 석두(石頭)에 다쳐 얼마 후 죽어버렸다. 그의 죽음은 주변에서 석굴을 파던 사람들에게 약간의 파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우리는 신불(神佛)에 대한 경앙심으로 석굴을 파고 있고 평안, 건강, 장수를 기대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영인도 예외가 아니어서 역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흘이 지난 후 이곳에 가랑비가 내렸다. 가랑비 속에서 한 조각된 불상의 전신에서 빛살이 비쳐 나왔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모두 달려가서 보았다. 잠시 후 사고가 난 곳에서 사망한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난 것 같았다. (사람은 이미 떠나갔고 진짜 본인은 아니다)

또 부처님 조각상이 살아나더니 팔을 들어 한손가락으로 이 사람을 가리키자 이 사람의 머리가 십여 배로 커졌다. 부처님이 신통을 드러내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이 불상을 조각할 때 머릿속의 진실한 생각을 알게 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일찍이 다른 사람과 수많은 모순이 있었고 그가 불상을 조각한 목적은 부처님이 자신을 도와 그 사람을 죽이려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어느 대부호 집 딸에 대해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렇게 좋지 않은 염두를 가지고 불상을 조각하는 것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사고가 난 것이다. 오직 정념을 가진 자만이 신불의 보호와 구도를 받을 수 있다.

영인은 이런 정황을 본 후 부처님 대해 아주 깊은 존경심이 생겼다. 그는 ‘바른 마음’(正心)의 중요성을 분명히 알았다.

나중에 그는 앞뒤로 항산과 오대산을 갔고 두 지방에서 몇몇 사원을 찾았고 또 일부 승려들을 방문했다. 당시 승려들은 당나라 때 승려들과는 차이가 많았다. 이때 승려들이 사용한 경서는 거의 다 서역(西域)에서 전해 온 것으로 거의 모두 전술(轉述 인용하거나 전해진 것)된 것이라 ‘미혹’이 더 심했다. 다시 말해 불법에 대한 표현을 이해하기가 더 힘들었다. 또 그 자신은 군 출신이라 어찌 조용히 잘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이런 것들은 모두 자신이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대현의 안문관에서 날씨 때문에 그는 한 달 정도 머물렀다. 이곳에서 그는 전에 그가 군대에서 함께 했던 수하 장수를 만났다. 그들은 서로 잘 알았기 때문에 또 며칠을 함께 머물렀다.

어느 날 안문에 비가 내렸다. 저녁 무렵이 되어 태양이 드러났고 석양이 매우 아름다웠다. 한담을 나눌 때 그 장수가 말했다.

“저는 군대를 떠난 이후부터 어느 날 음산(陰山) 그쪽에서 한 무리 이민족을 만났는데 이 사람들은 제사 등의 예식을 지낼 때에 많은 ‘신통(神通)’이 있었고 심지어 비바람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한 연장자에게 물어보니 그의 말은 그들 일족의 조상이 신령의 아들이며 그래서 조상에서부터 일부 법술이 전해내려 왔다고 합니다. 사(邪)를 제거하고 마를 항복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노인이 최후에 제게 말하길 ‘한 가지 일은 명백하지 않다고 했는데 조상님이 말씀하길 장래 이곳에서 매우 큰 신이 한분 내려오시는데 그때가 되면 그들이 비로소 진정하게 구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의 소위 신통과 법술을 모두 던져버려야만 한다.’고 한 것이죠.”

그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 ”매우 큰 신“이 내려오신다면 ‘머리 셋에 팔이 여섯 개’(일반인과 매우 다른 모습) 생기셨을까?

안문관에서 있던 나중 며칠간 그는 늘 저녁이면 아름다운 석양 아래 펼쳐지는 구불구불한 장성과 산맥을 보며 생각했다. 자고로 정벌전쟁은 가정과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것인데 가정과 국가를 보위함은 무엇 때문인가? 설마 “가정” “국가”는 모두 장래 그 신이 오는데 기초를 다지기 위한 것이란 말인가?

그는 태원 현옹산(懸翁山) 아래의 진사(晉祠 진나라 사당)에서 아름다운 원림과 비각을 바라보면서 그는 마치 진실로 서주(西周) 초기의 당숙우(唐叔虞 진나라 개국시조)가 이곳에 (제후로) 봉해진 정황을 본 것 같았다. 당숙우가 아주 겸손하게 조심스럽게 국사를 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 옆에 있던 한사람이 당숙우에게 말했다. ‘이번에 당신이 이곳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숙우는 그 말을 듣고 얼른 땅에 무릎을 꿇고 주나라 도성을 향해 절을 하며 천자에게 불경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며 머리를 찧었다. 말한 후에 다시 무릎을 꿇고 하늘에 대고 말했다 “저는 주나라 천자에 의해 이곳에 봉해졌습니다. 저는 반드시 하늘의 성대한 은혜를 잘 기억하고 이곳을 잘 다스리겠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음성이 나타났다.

“이곳은 내가 장래 법을 전할 때 갈 것이다.”

당숙우는 당장 땅에 엎드리며 끊임없이 말했다.

“저는 반드시 이곳을 잘 다스리겠습니다.” 그 옆에 있던 사람도 이미 자기의 말에 대해 끊임없이 하늘과 천자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영인은 이 한 막을 보고는 놀라서 얼이 빠진 것처럼 서 있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그가 느린 걸음으로 사당을 나왔을 때 두 아이가 그를 쫓아왔다. 그 앞에 멈추더니 아래 위를 한참 동안이나 헤아려 보았다.

조금 큰 아이가 말했다.

“당신은 관리도 아니고 백성도 아닌데 수행인인가요?”

작은 아이가 말했다.

“일반적으로 수행인은 모두 능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당신도 할 수 있나요?”

두 아이가 이렇게 묻자 그 마음속에 한 가닥 용기가 솟아올랐다. 그래서 두 아이 앞에 좀 자랑하고 싶어했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조금 큰 아이가 말했다.

“그럼 절 따라오세요. 당신을 우리 고수와 한번 비겨보게요.”

그는 사실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따라 마을로 도착했다. 아이들은 많은 어른들을 찾아갔는데 그들 모두 무술을 할 줄 알았고 무술시합이 시작되었다.

영인의 몸이 확실히 좋았기에 몇몇 고수를 이겼다. 나중에 학발동안(鶴髮童顔)의 한 노인이 나왔다. 노인은 말했다. “당신이 내 발을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게 한다면 내가 진 것으로 치겠소.” 결국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썼지만 그를 조금도 움직이게 하지 못했고 그래서 패배를 인정했다. 노인은 그를 데리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무술연마에서 덕(德)을 닦는 중요성을 말해주었다. 그 역시 자기가 걸어온 경력을 한번 이야기 해주었다.

노인은 끙 하고 신음하더니 말했다.

“사실 무술 연마할 때 나는 반드시 더 고심한 공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네. 무술 연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명이 진정으로 해탈하는 것이 근본이라네. 나 역시 찾고 있으니 자네가 찾을 수 있길 기원하겠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그 어떤 때라도 자만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에게 이미 있는 것을 대단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자네가 새로운 사물을 인식하는 것을 제한하게 된다네.”

그는 노인에게 작별하고 태원 분지에서 분하(汾河)를 따라 남쪽으로 걸었다. 분양(汾陽)에서 그는 행화촌을 보았는데 이곳 술집이 아주 유명했다. 그도 술을 맛보고 또 많이 마셔 취했다. 꿈에서 자기가 한때 천상의 어린이였고 하루 종일 연꽃 위에 앉아 노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 한분의 천신(天神)이 아래로 내려갈 때 이곳을 지나가다 그를 보았다.

그는 자기 머리보다 훨씬 더 큰 연꽃을 이 천신께 바쳤다.

천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는 장래 반드시 창세주가 전하는 대법을 얻을 것이다. 때가 되면 너무 놀지 장난이 심하거나 놀기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깨어난 후 그는 꿈속에서 본 신이 한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마음속에 일종 책임이 더해졌다. 그는 이때부터 자기를 늘 일깨우기 시작하여 반드시 장난치지 말고 놀지 않기로 했다.

면산(綿山)에서 그는 개자추(介子推)와 중이(重耳 진문공) 간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중이가 개자추를 중용하려 할 때 개자추가 큰불에 타죽을지언정 나오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개자추의 사람됨이 왜 그리도 충의로웠는가?(중이가 밖에서 떠돌아다니며 아주 곤궁하던 시절 그는 자기 살을 잘라 중이에게 먹인 적이 있다) 사실 이는 일반적인 생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개자추 역시 중이가 그런 방식으로 자기를 나오게 하여 계속 보좌하게 할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속세에서 관리가 될 기연이 이미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화재의 힘을 빌려 속세와의 인연을 끝낸 것이다.

개자추를 생각하다가 자신도 생각했다. 아마 하늘에서 황후와 비 사이에 모순을 배치한 것은 그로 하여금 생사를 해탈할 대법을 찾아 나서게 하려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분하를 따라서 황하와 물길이 만나는 지방(하진河津)에 도착했다. 그는 황하의 장대하고 아름다운 기세를 깨닫고 이곳에 호구 폭포(壺口瀑布)가 있는데 더 웅장하고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화하의 자손이 황하 유역에서 번창하고 살아가는 이 자체가 장래 중생에서 인간 세상에서 창세주가 널리 전하는 대법을 얻을 수 있도록 바탕을 깔아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흰옷을 입은 노인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나타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황하 이 구역의 하신(河神)입니다. 내가 알기에 황하는 천상에서 황금색의 신룡(神龍)입니다. 신룡이 세상에 내려온 것은 중토 백성들이 문명을 여는 선하(先河)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장래 황하와 여러 차례 인연을 맺을 것이고 적어도 한 단락 시간에 늘 황하를 지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법을 얻을 때 돌아와서 ‘옛 친구’를 잊지 않고 찾아보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후 노인은 곧 사라졌다.

영인은 매우 놀라 백의 노인이 나중에 한말이 무슨 뜻이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나중에는 아예 알고 싶다는 생각조차 포기했다.

운성의 해주(解州)에서 관제묘(關帝廟 관우 사당)에 참배했다. 이때에도 그는 또 관공(關公)의 충의 정신을 읽고 이해했다.

이 부근에는 요, 순, 우의 유적과 전설이 아주 많았다. 이런 유적과 전설을 생각하다가 그는 생각했다.

‘나는 줄곧 생명이 해탈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고 또 신인(神人)과 진정하게 연을 맺기를 희망했다. 금조(今朝)에 비록 내가 신인을 만나진 못했지만 도중에 보고 들은 것 역시 내가 진정으로 신인을 이해했고 또 창세주가 오셔서 전하실 법의 일부 특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형식을 중시하지 않고 선념(善念)과 진심(眞心)으로 수행하며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로부터 창세주께서 법을 전하시기 전까지 모든 것은 다 창세주께서 대법을 전하는 바탕을 깔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행에서는 반드시 겸손해야 하며 언제라도 자만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궁궐에서 사람이 와서 그를 찾았다. 그러면서 황후와 황비 및 국사까지 모두 이 부근에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서둘러 궁궐에서 온 사람을 따라 황후 등이 머무는 임시거처로 달려갔다. 만나서 예를 갖춘 후에 황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는 길에 고생이 아주 많았다. 너에게 휴식을 좀 준 다음에 부르는 게 마땅하겠지만 이 동생(황비를 지칭)이 기다리지 못하고 너를 꼭 불러오라고 했다.”

영인이 말했다.

“궁궐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황비가 말했다.

“별다른 일은 없고 네가 출가해서 법을 찾으러 다닌 일 때문이지. 그간의 사정은 우리가 다 알고 있네.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네가 창세주와의 법연(法緣)을 단단히 맺었는가 하는 것이라네.”

그는 당시 황후와 황비가 국사(國師) 때문에 모순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는 이번에 어떻게 화해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때 국사가 옆에서 말했다.

“당초 그녀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신불(神佛)에 대한 신봉(信奉)인지 몰랐기 때문에 이런 모순이 있었던 것이지. 이 역시 내가 자네더러 출가해서 법을 찾게 한 처음 생각일세. 운강석굴과 나중의 해후는 그녀들이 심념(心念)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네. 나중에는 그녀들이 나 때문에 모순이 생긴 게 아닐세. 게다가 나는 신이 아니지 않는가?”

황후가 말했다.

“황비가 네가 오는 길에 창세주와 연분을 단단히 맺었는지 물었는데 너는 아직 대답이 없구나!”

영인이 이에 말했다.

“마땅히 튼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주의 음성을 저 역시 들었고 황하의 진상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인간 세상에 왔는지도 포함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황비가 말했다.

“그럼 장래 우리가 반드시 협력해서 창세주께서 우리에게 개창해주실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잘 걸어갑시다.” 말을 마치자 모두들 웃었다.

이번 생에 파룬궁 창시인 이홍지(李洪志 리훙쯔) 선생님은 태원(太原)에 직접 오셔서 법을 전하셨다.

당시의 황후와 황비는 북방에서 전생했으며 함께 일하고 있고 영인 역시 일찍 법을 얻었다.

금생에 황후는 아주 대범하고 문제를 보는 시야가 아주 넓다. 황비는 사람이 매우 재주가 있다. 영인은 아주 정의롭지만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스런 성격이 뼛속에 아직 남아있다. 이는 그의 부족한 점이다. 그는 또 직업적인 필요에 의해 늘 황하 양쪽 여러 곳을 왕래한다. 매번 황하를 건널 때마다 마음속에 영문 모를 감동을 받곤 한다. 그와 인연이 있는 ‘옛 친구들’을 그는 자연히 잊을 수 없다. 그가 어디를 가든 자기가 법을 얻은 희열을 같이 나눈다.

나중에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정말로 의기투합함을 느꼈다. 비록 환경이 판이하고 가정조건도 달랐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그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북위 장군이 법을 찾으러 와서운강석굴에서 진짜와 가짜를 보았네.문과 노을에서 술류의 근원을 알고분하와 황토 따라 기이한 인연 모였구나.

금조에 법을 얻어 용맹정진하니집착을 내려놓고 바른 믿음 심었네.상부상조해서 공동 노력하여원만하여 소원 이루고 청음을 남기네.

북위장군래심법(北魏將軍來尋法)운강석굴견진가(雲岡石窟見真假)석조안문명술원(夕照雁門明術源)(주1)분하황통기연가(汾河黃土奇緣駕)(주2)

금조득법용맹진(今朝得法勇猛進)방하집착수정신(放下執著樹正信)상부상의동노력(相扶相依同努力)원만요원류청음(圓滿了願留清音)(주3)

주:

1) 여기서는 가랑비 속에서 안문관에서 이민족이 운용하던 술수의 내원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의미.

2) 이 구절의 의미는 분하와 황토고원을 따라 주인공이 만난 각종 기연들이 모인 것(駕臨)을 말한다. 여기서 가림(駕臨)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내 생각에 연분 자체도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요소들이 한 가지 일을 촉성할 때 ‘연분’은 정말로 큰 인물처럼 큰 가마를 타고 온다.

3) 이 구절의 의미는 미래에 한 가지 바르고 좋은 기록을 남겨놓는다는 것이다.

설명: 북조 시기에 궁정 모순으로 인해 법을 찾은 일이 아주 많았지만 본문에서는 다만 예를 들어 설명할 뿐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