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덕혜(德惠)
【정견망】
현대인들은 보편적으로 새는 대뇌가 작아서 지능이 아주 떨어진다고 본다. 하지만 명나라 말 어떤 문인은 새가 억울함을 고소한 기이한 일을 기록해 놓았다. 이 문인의 이름은 왕빈왕(王賓王) 자는 ‘태지(太之)’ 호가 ‘구호(句湖)’로 하남 수무현(修武縣) 사람이다. 그는 학식이 해박하고 품행도 뛰어나 명말의 큰 혼란 속에서도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의 글 《이조기(異鳥記 기이한 새에 관한 기록)》에는 새가 고소를 하고, 고통을 하소연하며 은혜를 갚은 기이한 일이 적혀 있다.
때는 숭정15년(1642)이었다. 수무현 지현(知縣) 유광두(劉光斗)는 호가 ‘사보(射甫)’로 산서 하현(夏縣) 사람이다. 부임한 지 겨우 석 달 만에 성현들의 책 읽기를 제창하고 사람들이 생산과 평소 업무에 힘쓰도록 격려하고 치안을 강화하자 수무현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면이 나타났다. 그해 10월 어느 날 유(劉)지현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막 식사를 마치자 정원 밖에서 한 마리 새가 날아오더니 그의 탁자에 앉았다. 이 새는 깃털은 검고 정수리는 희며 발톱과 부리가 붉은 것이 참새와 유사했다. 새는 탁자에서 끊임없이 지저귀었다. 처음에는 새소리가 처량하게 읍소하는 것 같더니 점점 즐거워지더니 마치 춤을 추듯이 뛰어올랐다. 그는 이런 새는 본 적이 없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주위 사람들도 알지 못했고 단지 이런 종류의 새는 성안에서는 아주 보기 드물다고 했다.
지현은 매우 기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새를 팔에 받쳐 들고 밖에 나가 여러 곳을 다니며 조사하게 했다. 한참 조사해 보니 이 새는 산속에 살며 이따금 잘못 날아 성안 나무로 날아온다는 것이었다. 기(祁)씨 성의 사람이 장대로 그것을 잡아 새의 다리를 상하게 했고 새는 땅에 떨어졌다. 조(趙)씨 성을 가진 사람이 다친 새를 집에 안고 돌아와 대나무 조각으로 다친 다리를 고정하고 천으로 감싸주었으며 먹을 것을 주며 아이처럼 세심히 돌보았다. 1년여 후 그 새는 상처가 완전히 다 나았고 자유로이 날수 있었다.
유광두는 더욱 놀라 사람을 시켜 기 씨와 조 씨 두 사람을 관아에 출두하게 했다. 기 씨는 왼쪽에 조 씨는 오른쪽에 두고 새를 중간에 두었다. 새는 기 씨에게 가더니 그를 쪼으려 했는데 마치 원수를 갚으려는 듯 했다. 그리고 나서 새는 조 씨의 무릎에 기대는 것이 마치 정을 떨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각자 새를 잡고 새를 구해준 경과를 말했다. 이에 유광두는 기 씨에게 곤장 5대, 조 씨에게는 약간의 상금을 주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새는 비로소 하늘로 날아갔다.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새도 원수를 기억하고 은혜를 감사할 줄 알며 사람 중에서 선량한 관리를 찾아가 고소할 수 있음을 알았고 또 새도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없을 뿐 사람과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생명의 오묘함은 현대과학이 인식하지 못하며 수많은 현상들을 과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으니 무조건 과학을 맹신할 수 없음도 알 수 있다.
아울러 전통문화 교육을 받은 고대 관원의 사유가 열려 있어 새가 심상치 않게 우는 것을 보고 사람을 시켜 조사하게 했다. 오늘날 무신론과 진화론 및 당문화의 교육을 받은 중공 관원은 생명에 대한 경외가 없고 생각하는 것이란 그저 쫓아내고 때려죽이거나 심지어 맛있는 것으로 먹는다. 고대 관원은 인의(仁義)가 금수에까지 미친다. 반면 오늘날 중공 관원은 거의 다 부패했다. 중공은 결코 중국이 아니며 중화 전통문화와는 완전히 대립된 사악한 세력이다.
자료출처: 명나라 말 왕빈왕의 《이조기(異鳥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3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