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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실록: 악행으로 응보 받은 남송의 조방재

글/ 덕혜(德惠)

【정견망】

남송 고종 소흥(紹興) 연간(1131-1162년) 중기 여간현(餘幹縣 지금의 강서 상요시 여간현)에 종실(宗室) 자제 조방재(趙邦材)라는 사람이 있었다. 종실이란 바로 황제의 친척이니 바로 황상의 일가친족이다.

조방재가 대형 토목공사를 일으켜 저택을 짓고 정자와 누각을 짓기로 했다. 그는 높은 신분과 권력을 믿고 법령을 무시하고 나무가 주인이 있어도 그가 마음에 들기만 하면 함부로 벌목했다. 심지어 사찰이나 사당의 나무, 분묘 옆의 수목도 피할 수 없었다.

호화주택을 지은 후 그의 집은 오히려 편안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자 인심이 흉흉해져 안심하고 거주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막 낙성했을 때 그곳 현위 황자강(黃子強)이 축하하러 와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자리에 내온 술에서 냄새가 지독해 마실 수 없었다. 조방재는 이것은 다른 공간의 생명이 자신을 놀리는 것임을 알고 화가 나서 온갖 귀신 도깨비를 크게 욕했다. 다음날 주방 하녀가 어제 찐 떡을 꺼내어 아침으로 먹으려고 광주리를 열어보니 그 속이 이미 오물로 변해 있었고 또 다른 음식을 보았더니 모두 각종 오물로 변해 있었다. 조방재는 곧 병이 나서 자리에 누웠다.

조방재가 전에 남녀 하인들을 처벌할 때 늘 그들의 머리카락을 나무기둥에 묶어 고정하고는 다시 몽둥이로 때리곤 했다. 만약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분뇨를 그들의 머리에 부었다. 이번에 조방재는 폐열(肺熱 폐에 열이 나는 증상)이었고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는 식구들에게 얼른 화장실에 가서 분뇨를 퍼서 그에게 먹여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몹시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한약 중에 ‘금즙(金汁)’이 있는데 주로 유행성 열병에 걸린 것을 치료하는 것이다. 한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설 때 11, 12 살 건강한 아동의 변을 우물에 잘 섞어 붉은 흙을 더하고 세게 반죽하여 한 번씩 헹구어 잡물을 제거한다. 이어서 가는 모시로 여과시켜 마지막에 남은 물을 독에 붓는다. 접시로 독을 덮고 다시 소금과 황토로 봉하여 흙 속에 묻어서 20~30년을 둔다. 오래될수록 맑고 좋으며 매우 귀한 약재가 된다. 아마 조방재는 창졸간에 금즙을 찾을 수 없고 또 너무나 아파서 견딜 수 없으므로 식구들에게 분뇨즙을 직접 먹여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차마 그가 분뇨를 먹는 것을 볼 수 없어 설탕을 넣은 지장(地漿)으로 바꾸어 주었다. 여기서 지장이란 새로 길어온 우물물과 지하의 깨끗한 황토를 섞은 후 가라앉힌 물이다. 흙 비린내가 나며 역시 열을 내리고 해독하는 한약이다. 그가 마신 후 느낌이 좋지 않아 구태여 분뇨를 먹어야겠다고 했다. 한참 분뇨를 먹다 눈을 감더니 죽어버렸다. 나중에 현위 황자강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함부로 악행을 하지 않도록 이 일을 널리 퍼트리고자 했다.

조방재가 타인의 목재를 강탈하고 절이나 사당도 그냥 두지 않았으니, 그가 제멋대로 했을 뿐 아니라 신명에 대해 조금도 경외심이 없었다. 또 늘 하인을 학대하고 모욕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신분이 높아도 인과응보의 법칙에는 결코 예외가 없다. 그래서 죽기 전에 중병에 걸렸을 뿐 아니라 분뇨를 반드시 먹어야 했고 죽는 것 역시 고통스럽고 또 치욕스러웠다.

자료출처 : 《이견지(夷堅志)》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5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