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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마음이 있다

운심(雲心)

【정견망】

우리는 사람에게 심장이 있음을 모두 알고 있으며, 대부분의 동물과 어류 등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식물도 가지고 있을까, 물질도 가지고 있을까? 적어도 우리는 보지 못한다.

사실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마음은 심장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관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말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선심(善心), 두려운 마음(怕心) 등등이 있으며, 물론 악념(惡念), 사념(邪念) 등 부면(負面)적인 것도 있다. 우리가 만물은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의 만사만물이 모두 사유(思惟)를 가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동물 역시 영성(靈性)이 있다. 동물은 누가 자신에게 잘해주는지, 누가 자신에게 잘해주지 않는지를 알며, 심지어 원수를 기억하고 은혜를 기억하기도 한다. 원수가 있으면 갚고 은혜가 있어도 갚는다. 며칠 전 어떤 영상을 보았는데, 큰 차 한 대가 뒤집히면서 위에 있던 화물이 겨우 두세 살 되어 땅에 앉아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어린아이를 향해 내달렸다. 이때 개 한 마리가 어린아이를 물어 안전한 곳으로 달려갔고, 뒤이어 화물이 도달했다. 생각해보라, 이 개는 자기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하러 간 것이다. 누가 그것들에게 선념(善念)의 마음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현대 과학은 식물에 사유와 인지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잘 기어오르는 식물은 적절한 시기에 촉수를 뻗어 벽을 잡는다. 이것은 신기한 축에도 못 끼며, 수세미는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위치에서 열매를 맺고, 심지어 창틀 등 평평한 곳에 정확하게 내려놓을 수도 있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그것들에게는 후속 보완 조치도 있다. 만약 어떤 곳이 열매를 맺으려 하는데 적합하지 않을 때에는 꽃만 피우고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있다(사람들은 이를 황화[荒花], 즉 가화[假花]라 부르는데, 꽃만 피우고 열매는 맺지 않는 꽃이다). 물론 이미 열매를 맺었다 할지라도 영양을 조절하는 방식을 통해 수세미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참으로 용의주도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질의 사유는 우리 인류를 초월하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느끼기가 매우 어렵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경문 《전법륜》 〈제7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의 천목이 법안통(法眼通) 층차로 열렸을 때 당신은 돌ㆍ벽, 어떤 것이든지 모두 당신과 말을 하며 인사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물질에 대한 느낌이 꼭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타향에서 몇 년을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일종의 친근감이 있다. 특히 수많은 사람이 깨끗한 도시에서 다소 지저분한 시골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러하다. 아무리 더럽고 지저분해도 그다지 더럽다고 싫어하지 않으며, 심지어 아주 빠르게 동화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고향이 아니라면, 이러한 환경을 보고 아마 한 순간도 머물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감당 능력이 아니다. 또한 물질이 당신을 인지하는가와 우리를 선하게 대하는가에 관한 까닭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심(私心)과 잡념(雜念)을 버리면, 어쩌면 물질의 영성적인 일면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뒤엎고, ‘만물은 영이 있다(萬物有靈)’는 이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때 우리의 심성(心性)은 높으며, 일반인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