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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소중히

연기(緣起)

【정견망】

남송의 주희(朱熹 주자)는 일찍이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시에서 사람의 미미함과 사물의 미약함을 한탄했다. 사람이 거대한 함선을 움직이기란 아주 어렵다. 하지만 물은 오히려 쉽게 배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우선 시 전체를 감상해 보자.

지난밤 강가에 봄물이 불어나니
거대한 전함이 터럭처럼 가뿐히 뜨네
지금껏 힘들여 옮기려 애썼지만
오늘은 강 가운데 저절로 떠가네

昨夜江邊春水生
蒙沖巨艦一毛輕
向來枉費推移力
此日中流自在行

“지난밤 강가에 봄물이 불어나니
거대한 전함이 터럭처럼 가뿐히 뜨네”

하룻밤 사이에 강물이 불자 거대한 배가 가볍게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아주 거대해 보이는 배라도 물살의 거대한 기세 하에서는 마치 터럭처럼 가볍다.

“지금껏 힘들여 옮기려 애썼지만
오늘은 강 가운데 저절로 떠가네”

배를 만든 후 물에 진수하자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람과 밧줄, 목판 등 보조 도구들이 많이 있어야 하고 많은 노력을 들여야 물에 밀어 띄울 수 있다. 하지만 물은 어떻게 그것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는가?

시인이 이 장면을 보고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확실히 거대한 물의 기세 아래에서 많은 것들이 다 아주 사소하게 보인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전해지기 전에는 세상에 내려왔다 다시 돌아가고자 했던 그 어떤 신이든 모두 불가능했다. 우리가 본 많은 신선들이 하늘로 올라간 것은 흔히 다 삼계 안에 있을 뿐이다. 삼계를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파룬따파가 전해지고 정법(正法)의 홍세(洪勢)에 의지해야만 천상의 우리 집, 진정한 천당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일단 정법이 끝나면 생명이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란 대단히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하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역사의 기나긴 세월 속에서, 생명은 천만년을 거듭 윤회전전(輪廻輾轉)하며 기다렸고, 세인의 생명진체(生命眞體)(각 민족을 포함한) 대부분은 차츰 창세주와 각종 혈연(親緣)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이는 창세주가 그의 세인들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세인은 모두 법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일단 정법이 끝나고 이 기연을 잃는다면 곧 모든 것을 잃게 되고 그것도 영원히 잃게 된다.

우리는 큰 물이 큰 배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사실, 대법이 사람을 구도함은 가장 빠른 것으로 세인은 대법 앞에서 너무나도 작고 미미하다.

오늘의 연분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이런 기연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