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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의 “춘소일각치천금”에 대한 오해와 진정한 의미

섬섬(纖纖)

【정견망】

소동파(蘇東坡)의 시에는 의경(意境 역주: 시나 그림에 담긴 높은 경지)이 있어서, 오직 독자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음미해야만 비로소 그 깊은 뜻과 의경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춘소(春宵)》라는 시가 그렇다.

오늘날에는 “춘소일각치천금(春宵一刻值千金 봄밤 한 순간은 천금과 같나니)”라는 표현을 신혼 밤의 즐거움을 묘사하는데 흔히 사용하지만, 소동파가 진정으로 전하고자 했던 의경은 이것보다 훨씬 심오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뜻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봄밤 한 순간은 천금과 같나니
꽃향기 맑은 가운데 달이 구름에 숨고
누대 위의 노래 피리 소리 잦아드는데
그네 매둔 뒤뜰엔 밤이 깊어가네

春宵一刻值千金
花有清香月有陰
歌管樓台聲細細
秋千院落夜沉沉

시인이 말하는 “춘소일각치천금”이 가리키는 것은 그윽하고 차분한 봄밤이 주는 체험을 가리킨다. 낮에는 속세의 온갖 냄새가 뒤섞이기 마련인데 밥 짓는 연기, 작업장의 잡내 등이 흔히 꽃나무 본연의 은은한 향기를 가려버린다. 꽃향기는 원래 담백하고 은은해 잡내에 쉽게 묻혀버린다.

차(茶) 애호가라면 이를 잘 이해할 것이다. 왜 차를 마실 때 꼭 차를 씻고 찻잔을 데우는가? 바로 잡내를 제거해야만 차 본연의 그윽함과 달콤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용정(龍井) 같은 청차(淸茶)의 경우, 조금이라도 잡내가 섞이면 그 우아한 풍미를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소란이 점차 가라앉으면 사람의 마음도 함께 고요해진다. 이때 꽃의 맑은 향기와 달빛의 명암이 교차하는 모습을 마주하면, 종종 사람을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경지로 이끌어 마치 속세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잠시 초탈(超脫)과 자재(自在)를 얻는 듯한 느낌을 준다.

봄밤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은은한 꽃향기와 부드러운 달빛에 있다.

마지막 두 구절을 보자.

“누대 위의 노래 피리 소리 잦아드는데
그네 매둔 뒤뜰엔 밤이 깊어가네”

이는 단순히 시끌벅적한 밤 풍경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소동파의 깨달음을 피력한 것이다. 누대(樓臺)에서 들리는 가무(歌舞)와 악기 소리는 확실히 떠들썩하지만, 그 안에는 사실 허영과 헛된 소모가 숨어 있다. 많은 이들이 그 속에 빠져 즐거움을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시간을 허비하며 생명을 갉아먹고 있을 뿐이다. 반면, 밤이 깊어지면 마당에 걸린 그네는 고요히 매달려, 마치 봄밤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묵묵히 지켜보는 듯하다.

시인은 그네를 통해 인생을 비유한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며 무거운 짐을 지다, 밤이 되어야 비로소 한켠에서 한가함을 누리며 잠시 쉰다. 그네는 낮에는 사람이 타지만, 밤에는 달빛 아래 홀로 평온히 머무르니, 생명이 분주히 살지라도 잠시나마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춘소》가 펼쳐낸 것은 결코 세속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일종의 경지이자 해탈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자연이 주는 선물과 인생의 평온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춘소일각치천금(春宵一刻值千金)”이 말하고 하는 것은 속세의 즐거움이 아니라 자연과 심령(心靈)이 합쳐질 때의 그 고요한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뜻한다. 유감스러운 것은 명리(名利)와 욕망의 유혹 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집착을 내려놓고 봄밤의 이런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