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녹오산 이후, 요진 일행은 장우산(長右山), 부옥산(浮玉山), 부구산(仆勾山), 함음산(咸陰山), 제자하(諸呲河), 작하(勺河), 영구호(令丘湖), 모방포(毛方泡)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초상비(草上飛 독사의 일종), 여치(閭稚 흉포한 들꿩), 맹지(猛鷙), 화종조(火樅鳥), 복어(鰒魚), 반비충(反鼻蟲), 환라(患螺), 자서(齜鼠), 교응(繳鷹) 등 수많은 마수(魔獸)와 악금(惡禽)들을 소탕했다.
마왕 적우(赤尤)는 마침내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수년 동안 정성을 들여 자신의 마자마손(魔子魔孫)들을 길러냈고, 또 수년을 들여 그들을 남섬부주 곳곳에 몰래 뿌려두었다. 그런데 이제 요진 일행에 의해 대부분 소멸되었으니, 수년간의 심혈이 이렇게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마왕 적우가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어느 날, 통천교주가 쉬고 있는데 그의 어린 도제(小徒)가 보고했다.
“문밖에 한 홍의선군(紅衣仙君)이 뵙기를 청합니다.”
통천교주가 눈을 뜨고 한 번 웃으며 말했다.
“그가 올 줄 알았다. 들라 하라!”
홍의선군이 동굴로 들어와 통천에게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교주님, 오랜만이오. 그간 평안하셨소?”
통천이 웃으며 도제들에게 분부했다.
“너희는 물러가고 동굴 문을 닫아라!“
도제들이 대답했다. “예!”
동굴 문이 닫히자 안에는 홍의선군과 통천교주 두 사람만 남았다.
통천이 말했다.
“사람들이 다 나갔으니, 그 모습은 내가 좀 서먹하구려. 어서 본모습으로 돌아오시게!”
그러자 홍의선군이 몸을 한 번 흔들더니 머리 위로 두 개의 뿔이 솟아나고, 입고 있던 붉은 옷은 불꽃으로 변했다. 발목에는 해골 발찌를 찼고 목에는 궁기(窮奇)의 두개골 목걸이를 걸었으며, 얼굴은 일그러지고 흉측했다. 그가 바로 마왕 적우였다.
통천이 적우에게 앉아서 차를 마시라고 권하자 적우가 말했다.
“나는 이 누런 찻물을 마실 기분이 아니오! 남주(南洲)의 내 마자마손(魔子魔孫)들이 요진 그년에게 씨가 마르게 생겼단 말이오! 본래 그 계집애가 대단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나 싶어 방심했더니, 평봉산에서 모방포까지 쳐들어와 이미 남주 지계(地界)의 3분의 2를 장악해 버렸소!”
통천이 말했다.
“그 아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당신이 남주에 풀어놓은 짐승들이 본래 신통치 않았던 것이오. 수년 동안 남주를 제대로 어찌하지도 못했으니, 죽은 건 죽은 대로 두시오. 만약 그때 홍추(紅貙)를 다 풀어놓았더라면 남섬부주는 진작 당신 마족(魔族)의 땅이 되었을 것 아닌가.”
적우가 말했다.
“홍추가 몇 마리나 된다고 그러시오? 마족 전체를 통틀어도 몇 마리 없단 말이오! 에휴!”
통천이 말했다.
“내게 한 가지 계책이 있네.”
적우가 말했다.
“당신이라면 방법이 있을 줄 알았소! 빨리 말해 보시오!”
통천이 말했다.
“듣자니 요진은 본래 곤륜산 사람이오. 남주에 남은 당신의 마자마손 3분의 1을 모두 곤륜산으로 몰아넣으시오! 그들로 하여금 곤륜산을 어지럽히게 하여 요진의 본거지를 털고, 당신 마자마손들의 원수를 갚으란 말이오. 그러면 내가 천제께 청하여 내 제자들을 곤륜산으로 출전시키겠소. 그때가 되면 당신의 마자마손들을 단 한 마리도 빠짐없이 무사히 데려다주리다.”
적우는 먼저 크게 웃으며 “좋소!”라고 했다. 이어 통천과 눈을 맞추더니 흉악함 속에 교활함을 드러내며 물었다.
“그런데 당신이 나를 이토록 도와주시니,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통천 역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우리 사이에 이 정도 일로 무엇을 따지겠소? 그저 내게 홍추 몇 마리만 더 주면 되오.”
적우가 말했다.
“허허, 노형이 방금 내놓은 계책이 워낙 치밀하고 절묘하여 마치 오랫동안 궁리해 온 것 같구려. 진정 홍추 몇 마리 때문이오?”
통천은 고개를 숙여 웃더니 다시 분개한 듯 말했다.
“숨기지 않겠소! 나는 천제의 불공평함에 화가 났다네!”
통천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분한 얼굴로 계속했다.
“내 제자들도 평범한 무리가 아닌데, 어찌하여 사형의 어린 제자만 보내 남주를 평정하게 한단 말인가!……”
적우는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뜨고 통천이 분노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과연, 말로는 천제의 명에 따라 곤륜산에 가서 난을 평정하겠다고 하지만 원래 마음속 불평 때문이었군. 자기 제자들도 전공을 세우게 하려는 심산이야. 방금 내 마자마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데려오겠다는 말은 믿을 게 못 되겠어. 나도 그를 제어할 방도가 있어야겠어.’
적우는 즉시 같이 분노하는 척하며 말했다.
“흥! 천제가 너무 불공평하구려! 이 공로를 다 원시천존에게 몰아주고 노형은 안중에도 두지 않으니! 내가 저 곤륜산을 도륙하고 나아가 옥경산까지 짓밟아, 반드시 노형의 이 분을 풀어드리리다!”
통천교주는 이 말을 듣고 손을 저으며 크게 웃었다.
“그럴 것까지는 없소, 그럴 것까지는…….”
적우는 눈알을 굴리며 다시 말했다.
“노형이 오늘 나를 위해 계책을 내어 근심을 덜어주니 동생이 참으로 기쁘오! 어서 부하들을 시켜 이 자운산의 좋은 술을 가져오게 하시오. 노형과 시원하게 한잔하고 싶소이다!”
말을 마친 적우는 다시 홍의선군의 모습으로 변했다. 통천이 손뼉을 치자 동굴 문이 열리고 선동(仙童) 몇 명이 들어왔다.
“교주님, 무엇을 분부하시겠습니까?”
통천이 말했다.
“앞뜰에 연회를 차리고, 지하실에 있는 ‘불취불휴(不醉不休)’를 가져오너라. 선군과 함께 마시겠다.”
선동이 대답하는 사이, 통천의 주의가 소홀한 틈을 타 적우는 손바닥에서 동굴 밖으로 모기 한 마리를 튕겨 보냈다. 이 모기는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으며, 그 환화술(幻化術)은 선인(仙人)의 눈조차 가릴 수 있었다.
연회 자리에서 적우는 기분이 좋다며 연신 술을 들이켰다. 이 ‘불취불휴’는 선가의 명주라 일반 마가 마시면 반드시 본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마왕은 도행(道行)이 꽤 깊어 한두 항아리는 괜찮았으나, 너무 많이 마시면 역시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었다.
적우가 이미 대여섯 항아리를 비우자 통천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아우님, 술을 너무 탐하지 마시오. 내 처소에서 본모습이 드러나 남들이 보기라도 하면 내가 당신과 왕래하는 줄 알 텐데 좋을 리가 있겠는가?”
“괜찮아요, 괜찮아. 칠팔십 항아리를 더 마셔도 끄떡없소. 노형, 그런 말씀 마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니 꼭 동생을 쫓아내려는 것 같소이다!”
통천이 말했다.
“허허! 무슨 그런 말씀을? 아니오, 아니오…….”
적우가 고집스럽게 술을 더 마시고 있을 때 한 어린 도제가 들어와 보고했다.
“사부님! 사백 원시천존께서 동자 하나를 보내 선조(仙棗)를 보내오셨습니다. 옥경산의 벽흔조(碧痕棗) 나무에 열매가 맺혔으니 맛보라 하십니다.”
통천이 말했다.
“좋다. 그에게 우리 영황(靈黃) 살구를 좀 주어 보내거라.”
어린 도제가 대답했다.
“예!”
어린 도제가 나간 뒤 적우가 말했다.
“시간이 늦었고 할 일이 태산이라 동생은 이만 가보겠소!“
통천이 말했다.
“좋소, 가보시오. 일은 계획대로 진행합시다.”
적우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갑니다!”
적우가 떠난 뒤 통천은 기분이 좋아 잠시 쉬려는데, 갑자기 한 어린 도제가 달려와 보고했다.
“사부님! 큰일 났습니다! 그 홍의선군은 적우 마왕이 변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술에 너무 취했는지 산 아래에서 그만 본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통천은 깜짝 놀라 급히 물었다. “누가 보았느냐?”
어린 도제가 대답했다.
“우리 산 아래에 있던 동자 몇 명과 방금 대추(棗)를 가져왔던 그 동자가 보았습니다.”
통천이 다시 물었다.
“그 대추를 가져온 동자는 어디 있느냐?“
도제가 대답했다.
“마왕에게 잡혀갔습니다! 사부님, 이 사실을 어서 사백님께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통천교주는 숨을 가다듬고 엄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너희도 절대로 이 일을 밖으로 발설하지 마라! 알겠느냐!”
얼마 후, 찻상 위에 종이 한 장이 나타났다.
“형님 걱정하지 마시오. 그 동자는 내가 데리고 있으니 극진히 대접하리다. 그때가 되면 형님께서 내 마자마손들을 부디 무사히 지켜주시길 바라오.”
통천은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 아이는 사형의 사람이니 적우가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협박해 약속을 지키게 하려는 것이군. 사형도 참! 하필 이때 대추를 보내시다니!’
사실 대추를 가져온 동자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은 적우의 모기가 변한 것으로, 오직 통천을 협박하기 위함이었다. 선가(仙家)와 마족(魔族)은 본래 양립할 수 없는 사이라 통천이 적우와 왕래한 것은 선계(仙界)의 큰 금기였다. 만약 통천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적우는 이것으로 협박할 작정이었다.
한편, 요진 쪽은 아직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으며 누군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날 요진은 현사(玄蛇) 한 마리를 뒤쫓고 있었다. 이 뱀은 온몸이 칠흑 같았는데 사람을 잡아먹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동굴로 끌고 가 희롱한 뒤 잡아먹는 악독한 놈이었다.
요진이 전력을 다해 한창 쫓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사가 자취를 감췄다.
요진은 생각했다.
‘이곳 숲이 무성하니 분명 어느 굴속으로 기어 들어갔을 것이다.’
요진이 고개를 숙여 찾던 중 어느 풀숲이 번쩍거리며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금빛 깃털 두 개였다. 요진은 깃털을 들어 살피고는 황조(凰鳥, 봉황 중 암컷) 꼬리 깃털임을 확신했다. 이상한 것은 근처에 오동나무도 없고 예천(醴泉)도 없는데 어찌 황조의 깃털이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요진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이 풀숲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풀색과 확연히 달랐으며 너무나 새파란 것이 꼭 환술(幻術)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요진이 오른손을 뻗어 환술을 제거하는 거환술(祛幻術)로 훑자, 기이한 초록빛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다!
요진은 이곳이 현사의 소굴이라 짐작했다. 요진이 굴속으로 잠입하자 차갑고 음산한 기운과 함께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요진은 왼손을 들어 횃불 하나를 켰다.
동굴 안에서 현사는 보이지 않았고 평범한 산굴과 다를 바 없었으나, 바닥에 금빛 깃털이 몇 개 더 떨어져 있었다. 요진은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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