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陶遠)
【정견망】
어제는 꽃이 피어 나무마다 붉더니,
오늘 아침 꽃 지니 가지가 온통 비었구나.
번성함은 진실로 봄이 빼어남에 의지했건만,
하룻밤 바람에 허망하게 변했구.
세상 밖의 시간은 원래 스스로 얻는 것인데,
인간 세상의 생멸을 그 누가 다하리오.
백 년의 크고 작은 영욕과 고락이,
눈앞을 스침이 마치 한바탕 꿈속 같구나.
昨日花開滿樹紅
今朝花落萬枝空
滋榮實藉三春秀
變化虛隨一夜風
物外光陰元自得
人間生滅有誰窮
百年大小榮枯事
過眼渾如一夢中
이 시는 원대(元代)의 유명한 도인(道人) 구처기(丘處機 장춘진인)의 시 《낙화(落花)》다. 인간 세상의 순식간에 사라지는 아름다움이 시인의 눈에는 마치 꿈과 같다. 꿈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모든 것이 공(空)함을 알게 된다. 나무의 붉은 꽃이 하룻밤 사이에 시들어 사라지니 보는 이를 감개무량하게 한다. 봄의 신령한 힘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하룻밤 바람에 꺾여버리니 마치 한순간의 일인 듯하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그 법칙이 있으니 누가 그것을 끝낼 수 있겠는가? 인생 백년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모두 한바탕 꿈속인 듯하다.
시인은 만물의 성장과 쇠락이 하나의 자연적인 법칙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임을 보았다. 우리가 집착하는 그런 것들은 한 차례 꿈일 뿐이다.
어떤 것들은 당신이 다투든 다투지 않든,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결국 당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어떤 것들은 다투어 얻더라도 곧 잃어버리게 되니, 다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많은 사람이 아마 이런 느낌을 가질 것이다. 자신이 고생하며 다투어 얻은 것이 정작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닌 듯하며, 인생은 그저 한바탕 꿈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면 우리 수련인은 마땅히 더욱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말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 물론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모두 그렇게 절대적이라면, 또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것도 일부 불안정한 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탕핑(躺平,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기)’이 아니라, 이익 앞에서 다투지 않되 업무나 생활에서는 사실 더욱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인도 사실 이런 법칙을 보았기에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아주 작은 기득권을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무신론(無神論)의 미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법을 모함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람들은 더욱 나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인생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대법 사부님께서는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글에서 이미 세인에게답을 주셨다.
세상일은 떨어지는 꽃과 같으니,
영욕과 고락은 마음이 절로 안다
만약 내려놓을 수 있다면,
비로소 꿈속에서 깨어나리라.
世事如落花
榮枯心自明
若能放得下
方能夢中醒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8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