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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계화(桂花) —— 이청조의 『자고천·계화』를 해석하다

청풍

【정견망】

옅은 노란빛에 몸은 부드러우니, 성정은 담박하고 자취는 멀지만 향기만은 남았구나.
굳이 연한 푸른색이나 짙은 붉은색일 필요가 있으랴, 본래 꽃 중의 일류인 것을.
매화는 분명 질투하고 국화는 부끄러워하니, 그림같은 난간에 피어 중추의 으뜸이 되었네.
굴원도 참으로 무심하시지, 어찌하여 그 옛날에 거두지 않았는가.

暗淡轻黄体性柔,情疏迹远只香留。
何须浅碧深红色,自是花中第一流。
梅定妒,菊应羞。画阑开处冠中秋。
骚人可煞无情思,何事当年不见收。

고전 시사(詩詞) 중에서 계화를 노래한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상당히 유명한 축에 속한다. 문체의 섬세함과 생동감은 말할 것도 없다. 나 역시 이 사(词)를 매우 아꼈으나, 지금까지는 그저 글의 화려함에 머물렀을 뿐 더 깊은 의미를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작가는 단순히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의 계화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계화라는 생명체, 즉 여인의 형상을 묘사한 것이라는 점이다. 작가는 그 형상을 실제로 보고 진심으로 감상하며 그녀와 교감을 나눈 뒤에야 이 작품을 썼을 것이다. 이는 일반인들이 단순히 이 공간의 사물을 보고 창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련자로서 우리는 이 공간의 사물이 다른 공간에서는 그곳만의 존재 형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청조는 근기(根基)가 상당히 뛰어났기에,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계화의 진실한 모습인 여인의 형상을 보았을 것이다. 그 여자는 움직이고 말하며 각종 표정이 풍부했고, 자신을 볼 능력이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으며, 이청조가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사실 계화뿐만 아니라 시 속에 언급된 매화와 국화 역시 다른 공간에서는 여인의 형상이다. 하지만 이청조는 유독 계화를 편애했는데, 이는 계화가 ‘색(色)’으로 사람을 홀리지 않고 ‘향(香)’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 본인의 품성과도 매우 어울려, 이른바 ‘서로를 알아보는(惺惺相惜)’ 마음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계화에 대해 가진 인식이 이 공간의 한계를 돌파했기에, “굳이 연한 푸른색이나 짙은 붉은색일 필요가 있으랴, 본래 꽃 중의 일류인 것을”이라는 구절이 천고의 명구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송사(宋詞) 중에는 이와 비슷한 명구가 또 있다. “붉은 살구 가지 끝에 봄기운이 요란하구나(紅杏枝頭春意鬧)”라는 구절인데, 작가 송기(宋祁) 역시 살구화의 진실한 생명체가 다른 공간에서 장난치며 노는(鬧) 정경을 보았기에 이런 천고의 명구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고전 시사는 신전문화의 일부이며, 그 이면에는 자연히 신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다. 또한 인간에게는 신성(神性)이 내재되어 있기에, 시사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