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혜혜는 혼절한 채 마치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아가씨! 아가씨! 의원님이 오셨어요! 조금만 더 견뎌보세요!” 정아가 울부짖었다.
“화살이 심장을 비껴갔으니 살릴 수는 있습니다만, 이 처자가 살려는 의지가 전혀 없군요. 이래서는 안 됩니다. 곁에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어서 불러서 깨워보십시오!”
의원이 초조하게 말했다.
정아가 울며 대답했다.
“우리 아가씨는 팔자가 사나워 곁에 친척이라곤 한 명도 없고, 오직 저같이 무능한 몸종 하나뿐이에요.”
의원이 급히 말했다.
“그럼 당신이라도 빨리 불러보시오!”
“아가씨! 아가씨! 아가씨! ……”
정아가 아묵리 아가씨를 불러대도 혜혜에게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한 혜혜의 귀에 낯익고도 자비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외쳤다.
“혜혜(惠兮), 혜혜, 돌아오너라(回兮), 돌아오너라…….”
[역주: 중국어로 혜(惠)와 회(回)의 발음이 같고 성조만 달라서 서로 의미가 통한다.]
혜혜는 그 소리를 따라가 소리가 나는 곳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남색 머리 부처님이 계셨다.
남색 머리카락에 순백의 가사, 인자하고도 낯익은 모습이었다. 그 남색 머리 부처님이 다시 사람의 얼굴에 용의 몸을 한 제왕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는데, 마치 고통받는 딸을 바라보는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았다.
그분이 그녀에게 말했다.
“혜혜, 혜혜, 돌아오너라, 돌아오너라.”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남색 머리 불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혜혜는 슬픔이 밀려와 부처님의 무릎에 엎드려 통곡했다.
그녀가 울고 있을 때, 문득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화살이 반촌만 더 깊었더라면 차라리 화살촉이 뚫고 나왔을 것이고, 그러면 반대로 뽑아낼 수 있어 고통이 덜했을 겁니다. 그런데 화살촉이 깊이 박힌 데다 뚫고 나오지 않았으니, 화살을 뽑는 고통이 화살을 맞을 때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생살이 화살촉에 그대로 뜯겨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설령 뽑아낸다 해도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이 며칠 밤낮을 계속될 텐데…….”
혜혜는 자기 가슴을 만져보았으나 화살이 만져지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보니, 놀랍게도 그 화살이 남색 머리 불타의 가슴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부처님이 화살 자루를 잡더니 그 화살을 가슴에서 뽑아내셨고, 피투성이가 된 살점 한 덩이가 함께 떨어져 나왔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혜혜가 확 눈을 떴다!
“나왔다! 나왔다!” 의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혜혜가 깨어난 것을 보고 그가 덧붙였다.
“아가씨, 고생 많으셨소!”
혜혜는 화살촉에 묻은 피 칠갑이 된 살점을 보고 겁이 나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점차 정신이 맑아진 혜혜는 가슴의 화살 상처를 느껴보려 애썼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온몸의 통증도 사라졌고, 지금은 기운이 없을 뿐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혜혜가 가냘픈 목소리로 물었다.
“의원님께서 진통제를 쓰셨나요?”
의원이 서둘러 대답했다.
“이제 막 쓰려던 참입니다! 아가씨, 조금만 더 참으세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상처가 몇 군데 더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혜혜는 정말로 고통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의원은 혜혜의 상처를 모두 싸매고 잘 요양하라는 당부를 남긴 채 떠났다.
혜혜는 침대에 힘없이 누워 중얼거렸다.
“혜혜야, 돌아오거라. 원래 내 이름에 이런 뜻이 담겨 있었구나.”
정아가 말했다.
“아가씨, 푹 쉬시면서 말씀은 좀 줄이세요!”
혜혜가 다시 힘겹게 말했다.
“혜혜는 돌아와서 어디로 가려는가, 사람이 되기 전의 나는 누구였던가.”
정아는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베갯잇을 적시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정아가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으앙…… 아가씨가 살 마음이 없으시면 저도 혼자 살 수 없어요. 저도 같이 죽을래요! 이런 귀신 같은 곳에 남아서 고생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
혜혜는 정아의 슬픔이 더 커 보였는지,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정아는 아가씨의 손이 매우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고 울음을 그치며 말했다.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은 손발이 차갑다고 들었는데, 아가씨 손은 어째서 이렇게 따뜻한가요?”
혜혜는 다시 꿈속의 정경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정아, 내가 올해 열일곱 살이고 ‘양혜혜(楊惠兮)’라는 이름을 열일곱 해 동안 불렀는데, 오늘에서야 이 이름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어.”
정아는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빛이 스치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나 이제부터 양혜혜라고 안 할래.”
“양혜혜라고 안 하면 뭐라고 부를까요?”
“‘양회(楊回)’라고 불러줘. 돌아올 회(回) 자를 써서 말이야.”
…………
[여기서 중국인에게 익숙한 또 하나의 이름인 ‘양회’가 등장한다. 당대 단성식의 《유양잡조(酉陽雜俎)·노고기상(諾皋記上)》와 명말 방이지의 《통아(通雅)·성명(姓名)》에서 모두 이 이름이 언급된 바 있다. 《집선전(集仙傳)》을 비롯한 각종 민간 신화 전설에서도 ‘양회’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혜희(慧曦), 혜혜(惠兮), 회혜(回兮), 회혜……. 인간 세상에 떨어진 그녀가 뜻밖에도 자신의 진정한 사부님이 그녀를 위해 지어주신 이 이름의 진정한 함의를 깨달은 것이다…….
역주: 중국에서는 서왕모의 인간 세상에서 이름을 양회라 한다.]
“공자님,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궤짝을 뒤지던 장우인이 평온하게 대답했다.
“선물을 찾고 있네.”
아도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맞습니다. 이번에 부인을 문병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요.”
장우인은 한참을 찾은 끝에 패(貝 고대 화폐) 두 개를 찾아냈다. 그는 이 두 개의 패를 아도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네가 이 두 개 패를 가지고 거리에 나가 선물을 하나 사 오게.”
아도는 조개 두 개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생각했다.
‘이 돈으로 뭘 살 수 있겠어? 너무 적은데…….’
아도는 장신구점, 옷가게, 연지점 등을 돌아다녔으나 가장 싼 물건도 조개 열 개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던 찰나, 그의 눈에 빛이 번쩍였다…….
“죽간(竹簡), 죽간 사세요! 한 권에 조개 두 개!”
“주인장! 한 권 주시오!”
“형씨, 어떤 걸 좋아하시나? 여기 괴담도 있고 잡담도 있고 수련(修道) 서적도 있는데…… 어느 걸로 드릴까?”
“헤헤…… 제가 글을 잘 몰라서요. 주인어른 드릴 거니까 아무거나 하나 주십시오. 다 비슷하겠지요.”
“알겠소, 여기 받으시오.”
어느 날, 아직 기력이 없는 양회가 천천히 눈을 떴다. 곁눈질로 보니 침상 머리에 죽간 한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자 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징원도법(澄元道法)”
옆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원시도인(元始道人)”
양회는 ‘원시도인’이라는 글자를 보자 흐릿하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시도인이라면 어릴 적 내 병을 고쳐주셨던 그 도가의 진인(真人)이 아니신가! …… 명자기사의 노인이 내게 물었었지. 장우인은 수련하는데 너는 왜 안 하느냐고. 이제 보니 내가 수련할 기연(機緣)이 닿았나 보구나.’
양회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 《징원도법》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가 “덕과 업이 서로 전화하고, 원인을 변화시켜 결과를 제거하며(化因去果), 이치를 거슬러 바르게 행하고(反理正行), 흑과 백을 서로 바꾼다(黑白互換)”라는 구절을 보았을 때, 문득 명자기사에서 겪었던 그 모든 일, 그 흑백 대국과 거꾸로 가야만 이길 수 있었던 바둑의 이치,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업을 갚는 과정들을 깨닫게 되었다.
“아가씨! 식사하세요!” 정아가 즐겁게 들어왔다.
양회는 죽간을 보면서 정아가 떠먹여 주는 탕을 마셨다. 마시면 마실수록 참 맛이 좋았다. 오늘의 탕은 어찌 이리 맛있는 걸까? 그녀가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녹수백합부용탕(鹿髓百合芙蓉湯)이네? 이걸 어디서 구했니?”
사슴의 골수는 양기를 보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며, 백합은 음을 기르고 진액을 생기게 한다. 부용꽃은 비린내를 없애고 풍미를 더하니, 이 녹수백합부용탕은 그야말로 값비싼 보양식이었다.
“너 설마 아기 사슴을 잡은 건 아니지?”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닭 한 마리도 못 잡는데 어떻게 사슴을 잡겠어요? 에 저기…… 그게 뒤뜰 헛간에서 사슴 골수 말린 것을 좀 주웠거든요…….”
“그래, 다행이구나. 너희도 앞으로는 살생을 하지 마라. 이 목숨을 갚으려면 장난이 아니란다.”
정아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아가씨, 이것도 좀 드셔보세요!”
양회가 보니 남행제호전(南杏醍醐煎) 한 접시가 더 있었다.
이 남행제호전은 더욱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첫 번째 단계로 달콤한 은행(杏仁)을 말려 가루를 낸다. 황설탕을 가져와 역시 가루로 만들고, 찹쌀도 가루로 낸다. 이 세 가지 가루를 곱게 체에 쳐서 섞는다.
두 번째 단계로 거즈를 작은 조각으로 자른 뒤, 방금 만든 가루를 거즈에 담아 실로 묶어 작은 떡 모양으로 누른다. 이 떡은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크지도 작지도 않아야 한다.
세 번째 단계로 산유로(酸乳露)를 사용한다. 산유로란 무엇인가? 양젖을 가져와 걸쭉해질 때까지 약한 불로 끓인다. 다시 이른 아침 살구꽃에 맺힌 이슬을 받아 함께 섞은 뒤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요거트다. 그것도 살구꽃 향이 나는 것이다. 만약 매화 향을 원하면 매화 이슬을 쓰면 된다. 원하는 향의 꽃이슬로 발효시키는 것이다.
이 산유로를 받아 산천수(山泉水)에 희석해 끓인 뒤, 그 위에 떡을 올리고 약한 불로 천천히 찌면 거즈를 열었을 때 떡의 형태가 잡힌다. 그런 다음 거즈를 벗기지 않은 채 그대로 식힌다.
마지막 단계로 제호(醍醐)를 사용한다.
제호는 양 젖으로 수락(酥酪)을 만든 뒤 그 위에 뜨는 아주 고운 기름층을 걷어낸 것이다. 이 제호를 기름 삼아 약한 불로 방금 만든 살구 떡을 천천히 지져내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질 때까지 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접시 바닥에 살구꽃 잎을 깔고 그 위에 이 남행제호전을 올린 뒤 꿀을 약간 뿌려야 비로소 완성된다.
양회는 이 제호전 하나를 집어 맛을 보았다. 입안 가득 향기가 퍼졌고, 양 젖의 진한 풍미와 살구씨의 달콤 쌉싸름함이 어우러진 데다 굽기가 적당하여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했다.
양회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이 어디서 이걸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아가 만든 게 아니야.’
“아가씨, 어릴 때 이걸 제일 좋아하셨잖아요. 그러니 많이 드세요!”
양회가 막 이 제호전의 출처를 물으려는데 장우인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이건 당신이 준 건가요?”
양회가 죽간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장우인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양회는 아무 표정 없이 짧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더는 말을 섞지 않은 채 다시 고개를 숙여 죽간을 읽어 내려갔다.
장우인의 얼굴은 여전히 고인 물처럼 평온하면서도 차가웠다.
그는 다시 느릿느릿 위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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