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양회는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 “징원도법(澄元道法)”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비록 움직임이 없었으나 의식은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녀는 새벽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다시 정오부터 저녁까지 보았으나 대나무 죽간 한 페이지를 다 보지 못했다. 왜일까? 이 죽간의 문장 하나하나의 뒤에는 하나의 세계가 있고, 단어 하나하나의 뒤에는 또 한 층의 하늘이 있으며, 글자 하나하나의 뒤에도 한 조각 번화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씨, 요청하신 바늘과 실을 사 왔어요. 수놓는 집에서 연꽃 그림이 하나 필요하다는데 아가씨께서 수놓으실 수 있나요?” 정아가 이른 아침부터 실과 바늘을 가져왔다.
양회가 말했다.
“휴, 손이 아직 좀 떨리긴 하는데 한번 해보마.”
양회는 먼저 밑그림을 그렸다. 그릴 때는 괜찮았으나 수를 놓으려 하니 이미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두 손이 떨렸다.
양회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수를 놓으려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터라, 사심과 잡념, 집착과 망상, 애증과 원한, 그리고 사상 속의 업력(業力)들이 그녀를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막 누운 양회는 오만가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예전 양부(楊府)에서의 아름다웠던 시절이 떠올랐다가 부모님이 그리워졌고, 숙부의 악독함이 생각났다가 장우인이 떠올랐으며, 지금 초라한 자신의 처지가 다시 생각났다.
양회는 울다가 웃다가 마음이 어지러웠다가 또 사랑에 빠진 듯 멍청하게 웃기도 했다.
양회는 문득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본래 활달하고 거침없는 성격인데, 어찌하여 잠시 감상에 젖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또 숙부를 향한 증오로 이를 가는지, 이건 옳지 않다.’
그녀는 문득 책에 적혀 있던 구절 하나를 떠올렸다.
“만천가지 사상 장애는 본래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니, 엄숙히 맑게 하고 깨끗이 하여 참된 나는 마음이 없다(萬千思障 似本似非 肅清肅淨 眞吾無心)
양회는 돌연 깨달음을 얻고 생각했다.
‘잠시 누워 있어 보았자 이런 잡념에 간섭받아 쉬지도 못하니, 차라리 일어나 수를 다 놓는 게 낫겠다.’
그녀는 다시 수척한 몸을 일으켰다. 바늘을 잡은 손은 여전히 떨렸으나 상관하지 않고 조금씩 수를 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의 장애는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고 다시 떼를 지어 공격해 왔다.
양회가 수를 놓기 시작하자마자 잡념의 간섭으로 손가락이 찔렸고, 이내 위치를 잘못 수놓아 다시 뜯어내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양회는 조금 짜증이 났으나 잠시 평정을 되찾고 생각했다.
“숙청숙정(肅清肅淨)”
먼저 숙청(肅淸 엄숙히 청리)해야 비로소 숙정(肅靜 엄숙한 고요함)할 수 있다. 내가 먼저 이 사상의 장애와 진아(眞我)를 분리해야만 비로소 그것들을 멸하여 깨끗이 할 수 있다.
양회는 한편으로 수를 놓는 동시에 그것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바늘 한 땀을 뜰 때마다 “진오무심(眞吾無心)”이라 말하며 잡념 하나를 없앴다. 잡념이 한 바늘씩 공격해 오면 그녀도 한 바늘씩 그것을 멸해 나갔다.
점차 그녀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손이 점점 안정되어 갔다.
정아가 그녀의 등 뒤로 다가왔다가 깜짝 놀랐다. 아가씨의 등 뒤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아는 얼른 아가씨 앞으로 가서, 아가씨의 안색이 다시 창백해져 억지로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폈다.
그런데 보니 양회의 안색은 붉은 기가 돌고 침법은 안정되었으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수를 놓고 있었다.
그녀는 수를 놓으면 놓을수록 빨라지고 안정되었으며, 떼 지어 몰려오던 사상의 장애들은 조금씩 줄어들더니 마침내 사라졌다.
양회의 마음은 점점 평온해지고 비워졌다. 그리하여 마음과 정신을 전부 자수에 쏟을 수 있었고, 서서히 또 다른 상태로 진입했다.
그녀는 수를 놓으며 점차 자신이 수를 놓는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녀의 사상 속에는 오직 이 연못과 깨끗한 연꽃 한 송이만 남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이 연꽃이라 여겼고, 마침내 진흙을 뚫고 나와 다시 세상을 보고 따스한 햇볕을 쬐는 듯했다.
그러자 더욱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연잎과 꽃잎에 스스로 맥락이 생겨나 진짜와 똑같아진 것이다! 정작 양회 자신은 이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됐다, 드디어 다 놓았구나! 정아, 네가 수놓는 집의 책임자 아주머니께 보여드리고 괜찮은지 여쭈어보아라.”
정아는 아가씨의 자수를 들고 수놓는 집으로 갔다. 책임자 아주머니는 자리에 없어 잠시 기다려야 했다.
정아가 수놓는 방에 앉아 연꽃 그림을 들고 있자, 한 수놓는 아가씨(繡娘)가 다가와 조용히 그림을 보더니 물었다.
“아가씨 이 연꽃의 맥락은 어떻게 수놓은 것인가요?”
정아가 슬쩍 보고 말했다.
“저희 아가씨께서 수놓으신 거라 저는 잘 몰라요.”
머지않아 다른 수놓는 여인들도 몇 명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그중 한 명이 꽃잎을 만지며 물었다.
“꽃잎 위의 맥락을 대체 어떻게 수놓은 거죠?”
정아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다. 그녀가 자세히 보니 연꽃 위에는 무늬와 결 외에도, 그 결들 사이에 은은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맥락이 있었다. 그것은 맥(脈)이었고 살아있는 맥처럼 매우 신기했다.
이때 책임자 아주머니가 돌아왔다. 정아가 자수를 건네자 아주머니는 눈을 번쩍였다.
그것은 둥글고 순박하며 대범하고 풍만한 옥련(玉蓮)이었다. 미풍이 불어오듯 꽃잎은 살짝 수줍어하며 말려 있었고, 줄기는 비바람의 씻김을 겪은 듯 은은한 얼룩이 있었으나 굳세고 힘이 넘치며 여유가 있었다. 매 바늘땀 사이에는 마치 뿌리마다 맥락이 자라난 듯 진짜 같았다. 연꽃 그림 오른쪽 상단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참된 깨끗함은 흰색이 아니라, 물들여도 검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순수한 것은 먼지에 물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진흙에 둘러싸여도 여전히 맑고 깨끗한 것이다.
眞潔非皓 乃涅而不緇
至純非不染 泥裹而依澄也
“당신 아가씨의 자수가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아주머니가 찬사를 보내며 물었다.
“아가씨는 또 무엇을 잘 수놓으시는가?”
정아가 말했다.
“저희 아가씨는 학, 구름, 어부와 나무꾼, 돛단배, 산천, 달리는 말, 큰 파도 등을 잘 놓으십니다…….”
“하나같이 여염집 아낙들이 좋아하는 꽃과 풀이 아니로구나.” 아주머니가 말했다.
“산다화와 대나무도 잘 놓으십니다.” 정아가 덧붙였다.
한 여인이 물었다.
“그럼 원앙은?”
“어…… 아마 그것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책임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웃으며 말했다.
“그분은 이런 알콩달콩한 것들을 수놓길 좋아하지 않을 게다. 성격이 대범하고 활달하신 분일 텐데, 내 말이 맞느냐?”
정아가 쑥스러워하며 답했다.
“네, 아가씨께서 드물게 수놓으시긴 하지만 하실 수는 있어요. 어…… 이 연꽃 그림은 받아주시는 거죠?”
“그래, 받으마. 가서 패를 받아 가거라.”
정아가 기뻐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그대 아가씨의 자수 솜씨는 독특해서 보면 볼수록 맛이 있구나. 앞으로도 아가씨 작품을 자주 가져오너라.”
이리하여 집안에 드디어 수입이 생겼다. 양회는 비록 침상에 누워 있었으나 바늘 한 땀 한 땀 속에서 심성(心性)을 닦으며 층차를 높여갔다.
하루는 양회가 갑자기 위층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다. 곧 아도가 달려 내려와 그녀에게 말했다.
“부인,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알고 보니 아도와 아묵이 실수로 정아가 양회에게 주려고 끓인 보양식을 장우인에게 가져다주었고, 정아가 찾으러 갔을 때는 장우인이 이미 다 먹어버린 뒤였다. 정아는 물러서지 않고 장우인에게 반드시 배상해내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양회는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위층으로 올라갔다. 정아가 장우인을 향해 욕하는 것이 보였다.
“이 쓸모없는 겁쟁이 같으니라고! 우리 아가씨가 당신 집에 시집와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건 그렇다 쳐도, 우리끼리 벌어먹고 사는 걸로 모자라 당신까지 먹여 살려야 해요?!”
“정아!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나워졌느냐? 감히 사람을 욕하다니? 업해흑령(業海黑靈)에게 잡혀갈까 무섭지도 않느냐!” 양회가 정아를 훈계했다.
양회가 위층으로 올라가 장우인을 마주하니,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의외로 그리운 마음이 생겨 오늘 만나니 자기도 모르게 눈꼬리가 휘어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장우인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얼굴을 보자 가련한 마음이 들어 한참을 쳐다보다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도 몸이 다 나았으니, 당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만들어 줄게요.”
(이것이 아마 상처가 아물면 고통을 잊는다는 것이리라. 농담 삼아 말하자면, 왕보천王寶釧이 그녀를 보았다면 나물을 내려놓고 ‘선배님’이라 불렀을 정도였다.)
[역주: 왕보천은 한요(寒窑)에서 여주인공이자 설인귀의 아내를 가리킨다.]
장우인은 덥석 대답했다. “좋소.”
참으로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대단했다.
정아는 고개를 저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중얼거렸다.
“전생의 업보라 어쩔 수가 없네.”
정아는 씩씩거리며 마당 밖으로 나갔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곱추에 절름발이에, 더럽기 짝이 없고! 멍청하고 냉혈하기까지! 아가씨 취향은 정말 독특하시지! 차라리 그때 산적에게 잡혀가는 게 나았을걸! 에휴…….’
“정아 얘야!”
정아가 돌아보니 그 피부 검고 건장한 사내, 즉 산적 우두머리였다.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정아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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