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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매화 한두 가지가 보이네

임우(林雨)

【정견망】

옅은 안개 흔적에 풀은 낮게 깔리고,
처음 내리는 비그림자는 우산이 먼저 아네.
시냇물 돌고 계곡 굽어 길이 없을까 시름겹더니,
문득 매화 한두 가지가 보이네.

略略煙痕草許低
初初雨影傘先知
溪回穀轉愁無路
忽有梅花一兩枝

송대 시인 양만리는 재능이 넘쳤으나 세속적인 무리와 어울리기를 원치 않아 결국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의 시는 산수 전원을 노래한 것이 많아 겉으로는 한가롭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함이 깊고 흔히 인생에 대한 깨달음과 정신적 추구를 기탁하고 있다.

이 작품 《만귀우우(晩歸遇雨)–저물어 돌아가다 비를 만나다》 역시 전원 시에 속하지만, 평담한 풍경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드러내어 시인 내면의 광명과 강인함을 느끼게 하니 그가 결코 소극적으로 세상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옅은 안개 흔적에 풀은 낮게 깔리고,
처음 내리는 비 그림자는 우산이 먼저 아네.”

엷은 안개가 가볍게 감돌고 풀빛은 나지막이 내려앉아 마치 안개 흔적 속에 은은히 보이는 듯하다. 가랑비가 처음 내릴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은 우산 면에 가볍게 닿는 빗방울의 변화다. 여기서 ‘안개 흔적(煙痕)’은 꼭 진짜로 밥을 짓는 연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 기운이 자욱하여 안개인 듯 아닌 듯 몽롱한 형상에 더 가깝다. 시인이 들판을 걸으며 본 것은 그저 자연 풍경일 뿐이지만, ‘안개 흔적’으로 천지 사이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짚어냈으며 자신의 처지가 지닌 미묘하고 미미함을 은연중에 비추고 있다.

또한 ‘우산이 먼저 비를 안다’는 것 역시 사물의 형상만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우산이 먼저 비의 기운을 깨닫는 것은 마치 마음속에 근심이 있는 사람이 세상의 변화와 고통을 더 일찍 체득하는 것과 같다. 우산은 길을 가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민생을 긍휼히 여기고 백성을 수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인 자신의 자각(自覺)과 역할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냇물 돌고 계곡 굽어 길이 없을까 시름겹더니,
문득 매화 한두 가지가 보이네.”

굽이진 계곡에 이르러 시냇물이 회돌이치니 이미 나아갈 길이 없는 듯하여 마음속에 시름과 미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때 갑자기 그 사이에 점점이 피어있는 몇 가지 매화를 보게 된다. 풍경은 비록 작으나 의미는 자못 깊다.

여기서 ‘길을 가는 것’은 현실의 귀갓길이자 더 나아가 인생길의 상징이다. 사람이 곤경에 빠져 앞날이 불투명할 때, 저 한두 가지 매화는 마치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희망을 보게 한다.

중화민족이 수천 년을 이어오며 문화의 전승과 도덕의 견수(堅守 굳게 지킴)는 시종 근본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오직 선량함과 정념(正念)을 지켜야만 관건적인 순간에 가짜와 진짜를 분별하여 진정한 정도(正道)를 만날 수 있다. 만약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가고 사욕이 지나치게 무거우면 사람은 명리정(名利情)에 속박되기 쉬우며 그로 인해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감지력을 잃게 된다. 이로 보아 시인이 내면을 견지하고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의미는 바로 사람 마음속의 바름과 선함을 수호하는 데 있다.

매화는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추앙받아 왔으며, 추위를 무시하고 피어나는 그 품격은 고결함과 강인함을 상징한다. 엄한 추위 속에서 매화가 가져다주는 것은 풍경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무와 희망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바른 신앙(正信)을 굳게 지키며 진상을 전하는 사람들은 마치 눈 속에서 오만하게 피어난 송이송이 매화와 같아서, 가장 힘든 환경 속에서 꽃을 피워 그 존재 자체로 중생을 계시하고 깨워 미로 속에서 가라앉지 않게 한다.

대법제자가 진상을 전하고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면 대법을 모함하고 수련인을 박해하는 자들은 사실 스스로의 마음속 광명과 희망을 훼손하여 자멸로 걸어가는 것이니 어찌 가련하지 않은가?

양만리의 이 시 《만귀우우》는 구절마다 경치를 쓰고 있어 산야의 귀갓길을 묘사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층층이 나아가 경치에서 정으로, 정에서 이치로 들어서며 결국 ‘희망’이라는 두 글자에 귀결된다. 이는 사람들에게 말해준다. 설령 곤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마음속에 한 생각 광명이 남아 있다면 앞길에는 결국 ‘매화 한두 가지’가 있을 것임을.

이것이 아마도 시가 가진 가장 감동적인 부분일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8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