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국촌로(北国野叟)
【정견망 2021년 1월 13일】
시에 이르기를:
수레는 덜컹대고 말은 구슬피 우는데, 길가는 사람마다 허리엔 활과 화살이라.
부인은 슬피 울고 자식은 통곡하니, 굶주림이 온 땅에 가득해 붉은 옷 물결이네.
엄동설한 달빛 아래 성은 포위되어 겁탈당하고, 역병은 창궐하니 어느 때나 멈추려나?
악한 물결 굽이치고 홍수가 뒤집히니, 둑이 한 번 무너지면 돌아올 이 하나 없구나.
지난 이야기에서 조 원외는 노조(老祖)와 작별하고 화산을 내려와, 돌아갈 수레와 말을 준비하고 표사(镖师)에게 은자를 건네주었다. 그 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떠났고, 원외는 집으로 돌아와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고 죽을 쑤고 쌀을 나누어 주며 예전의 습관을 완전히 고쳤다. 온 마을과 이웃에 입소문이 퍼져 머지않아 그는 ‘대선인(大善人)’이 되었다. 교량을 고치고 길을 닦아 명성이 널리 퍼졌고, 부귀한 자들과 교제하며 인맥을 넓히니 사업도 날로 번창했다.
예순을 앞둔 쉰아홉 살에 그의 아내가 과연 임신을 했다. 이듬해 2월 14일 신시(申时, 오후 3~5시)에 하늘에서 큰 눈이 내리며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성격이 활발하여 조 원외는 매우 기뻐했다. 부인이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묻자, 화산에서 겪은 일이 떠올라 ‘운암(云庵)’이라 지었다. 예순 살 생일이 되어 큰 연회를 열어 손님들을 대접하니, 사람들은 모두 그가 이제야 복을 받았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웬걸, 이 아이는 반골(反骨)기질이 있어 잘 먹고 잘 자며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글 읽고 글씨 쓰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오직 힘겨루기와 다투는 것만을 즐겼다. 원외는 늦게 얻은 아들이라 끔찍이 아껴 그 성미를 거스르지 못하고, 무술을 가르칠 교두(教頭)와 무사들을 많이 초빙할 수밖에 없었다.
가르치지 않았으면 차라리 나았을까, 권법을 가르치면 나가서 사람과 겨루었고, 봉술을 가르치면 나가서 또 봉술로 다투었다. 다섯 살에 활을 쏘고, 여덟 살에 말을 탔으며, 열 살에 백가의 권법을 익혔으니 몽둥이와 칼, 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열일곱, 열여덟이 되자 더욱 용맹하고 힘이 장사여서 산을 뽑고 솥을 들며 손바닥으로 돌을 깨뜨렸다. 나서지 않으면 무사하련만, 일단 나서면 화를 부르기 일쑤였다. 자기가 보기에 못마땅한 일은 아무리 강하게 나서더라도 기어이 바로잡으려 했다.
어느 날, 조운암은 지역 농민이 악한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도와주려다 실수로 사람을 죽여 관아에 잡혀갔다. 조 원외는 이 소식을 듣고 넋을 잃고 말았다. 때는 마침 흉년이라 변방의 환란과 기근이 끊이지 않고 각지에서 전란의 불길이 치솟아 조가의 사업도 예전만 못했다. 하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 땅을 팔고 재산을 처분하여 관가에 뇌물을 바치며 있는 힘껏 손을 썼다.
보통의 무뢰한을 죽였다면 괜찮았겠지만, 심문 중에 죽은 자가 여진족의 세리(税吏)임이 밝혀졌다. 이곳은 금나라 대흥부에 속해 있어 전농이든 지주든 모두 여진족의 ‘맹안모극(猛安谋克)’ 제도로 편제되어 있었다. 가을걷이 때마다 조정에서 특사를 파견하여 세금을 정하니 백성을 괴롭히는 일은 다반사였다. “가난한 자는 부자와 다투지 말고, 부자는 관원과 다투지 마라”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금나라 안에서 여진족은 한 단계 높은 대우를 받으니 이 사건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조운암이 죄를 지었음에도 그 명성은 오히려 드높았다. 사람들은 조가에 소년 영웅이 나왔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백성들의 원망이 깊었기 때문이다. 한족은 오랫동안 압박을 받아왔고, 감옥의 죄수 열 명 중 다섯은 남의 죄를 대신 쓴 자들이었으며,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악당이 되었거나 산적이 된 자들이었다.
완안 여진이 변경을 점령하고 남조와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이래, 북쪽 송나라 경계의 한족 백성들은 모두 군둔(軍屯)으로 편제되었다. 대금이 건국된 후 세종과 희종을 거치며 한화(漢化) 개혁을 거치고 교육을 장려하여 남조와 거의 다를 바 없게 되니, 비로소 수십 년의 태평성대를 누렸다. 이제 와서 활은 창고에 넣고 말은 놓아주며 부귀를 누렸으나, 제왕의 덕이 부족하고 장상들이 화합하지 못하며 여진족 귀족들이 다투어 토지를 겸병하고 백성의 이익을 빼앗았다. 그래서 몽골이 침범하고 산적의 화가 끊이지 않으며 동맹국은 함락되고 거란이 반란을 일으켰다.
예로부터 황하와 회수 지역은 풍년이 들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한 톨도 거두지 못했다. 금군(金軍)은 기마대의 남하를 막기 위해 둑까지 무너뜨려 홍수가 하늘을 찌르고 죽은 자가 만 명이 넘었다. 가뭄과 홍수가 겹쳐 굶어 죽은 시체가 들판에 가득한데 조정은 조세를 독촉하니, 세금은 어디서 내겠는가? 백성들은 이미 바칠 식량도, 낼 세금도 없었으니 마침내 진승과 오광(농민 반란 지도자)과 같은 이들이 다시 나오게 되었다. 농민들이 봉기하여 붉은 옷을 깃발로 삼고 하북과 산동 일대를 휩쓸었다. 대금국은 그들이 정복했던 중원의 왕조들과 마찬가지로 성하다가 쇠하고, 쇠하다가 망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내우외환이 잇따라 닥쳐 백 년 국운이 곧 다할 지경이었다.
조운암은 감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옥졸들은 본래 농사짓던 자들이라 이 소년이 가혹한 세리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칭찬했다. 게다가 조 원외에게서 받은 혜택도 있으니 당연히 잘 돌봐주어 매 끼니 술과 고기가 빠지지 않았다. 조운암은 의기가 넘쳐 술과 고기를 감옥 안의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고, 자신은 종일 술에 취해 쓰러져 자면서 이미 생사를 초월한 듯 보였다. 이곳에서 보름을 지내며 사람들과 섞여 형제처럼 지내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열흘이 지나도 심문도 없고 호출도 없자, 죄수들은 조 원외가 관리를 매수했나 보다 생각했다. 다시 이틀 정도 지나자 옥졸들조차 사라져 버렸다. 죄수들은 이 큰 관아에 어찌 지키는 이 하나 없는지 의아해했다. 바로 그때 감옥 밖에서 소란스러운 함성과 부르짖음,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죄수들이 운암을 깨워 힘을 합쳐 진흙 담을 밀어뜨리고 탈옥하니, 관아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조운암은 집으로 돌아가 땔감 창고에서 도끼를 가져와 수갑과 족쇄를 부수고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부모님을 뵈려 했으나 조부(趙府) 역시 아무도 없었다. 다급히 길을 막고 물어보니 마을의 부자와 상인, 관원들이 반란군 무리에게 뒷산으로 끌려가 공개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말이 끝나자 조운암은 급히 뒷산으로 달려갔다. 20리를 달려 산 아래 풀밭에 이르니 과연 사람들이 북적대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조운암은 흙을 발라 얼굴을 가리고 그 틈에 섞였다. 세다섯 명의 두령이 긴 옷을 입고 팔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얼굴이 각지고 구레나룻이 무성하며 등 뒤에 돼지 잡는 칼 두 자루를 꽂고 있었다. 그는 어디서 죽였는지 여진 모극의 머리를 사람들 앞에 던져 놓았는데 매우 끔찍했다. 또 한 명은 눈썹이 짙고 얼굴이 희며, 삼 할은 선비 같고 칠 할은 음흉해 보이는 자가 허리에 손을 얹고 짐짓 차분하게 말했다.
“여진족이 우리의 처자를 빼앗고 땅을 점령하고, 해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는데도 우리에게 식량을 내라고 하니, 우리가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소?!”
사람들이 말했다.
“받아들일 수 없소!”
그자가 다시 말했다.
“여진족이 우리를 괴롭혔는데, 우리 하구(賀九) 형님이 그들을 베었으니 여러분, 통쾌합니까, 안 통쾌합니까!”
사람들이 대답했다.
“통쾌하오!”
그자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향 사람들아, 지금 곳곳이 굶주리고 있는데, 오직 우리처럼 붉은 띠를 묶고 봉기하여 여진을 죽이고 지주를 처단하며 재물을 나누어야만 살길이 열리는 법이오. 나를 따라 군대에 들어오는 자는 죽을 얻을 것이요, 선봉에 서서 죽이는 자는 고기 국을 얻을 것이며, 머리를 베어 공을 세우는 자는 여자를 얻게 될 것이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다투어 호응했다. 두령들은 농민들을 선동하고 소작인들을 부추겨 현령 일가족을 이곳으로 끌고 와 백성을 괴롭힌 ‘죄상’을 낱낱이 들추었다. 조운암은 예전에 죄를 지었을 때 이 관원을 알았는데, 그저 가끔 뒷돈을 챙길 뿐 극악무도한 자는 아님을 알았다. 앞으로 나가 막으려 했으나, 군중이 먼저 달려들어 이미 현령을 때려 죽였다. 나머지 여인들은 차례로 끌려가 비명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두령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조 원외 일가를 끌고 나왔다. 간상(奸商)이 위선을 떨고 탐관오리와 결탁했으니 그 자리에서 처단하고 재산을 나누자고 했다. 또 이웃 주민들에게 모두 나와 죄상을 고발하라고 하고, 따르지 않는 자는 비호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함께 처형하겠다고 위협했다. 사람들은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얻게 되자 옛 정을 잊은 채 다투어 고발하여 식량을 몇 말이라도 더 챙기려 했다. 조 원외는 예전에 그가 가난한 자들을 돕고 마을에서 가장 덕을 베풀던 조가가, 이제는 사람들에게 떠밀리고 비난받으며 땅바닥에 굴러 이런 최후를 맞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거친 옷에 얼굴을 더럽힌 친아들 운암이 곁에 있는 것을 보고 슬피 탄식하며 말했다.
“아들아, 네가 무사하니 다행이구나. 애비가 전에 너에게 빚진 목숨이 있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다 갚은 것 같구나.”
말을 마치자마자 절명했다.
정말로 이렇다:
천만금 재산을 명예와 바꾸고, 후사를 남겨 안심하려 했건만.
자식이 보배라 여겼거늘, 누가 알았으랴 이것이 업보의 굴레인 줄.
정(情)에 미혹되어 알지 못하고, 잠시 한가함을 훔치려 했구나.
만약 빚을 모두 갚았다면, 신선이 되어 돌아가니 흩어짐은 덧없어라.
조 노부인은 원외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 울며 슬피 탄식했다.
“하늘이시여! 우리 조가는 선을 베풀고 보시하기를 즐겼거늘, 어찌 이리도 참혹한 화를 당한단 말입니까?! 십 리 구향(十里九鄉)의 우리 조가 소작인 중에 그 누가 세(세금)를 감면받지 않았으며, 우리 조가 고용인 중에 그 누가 품삯을 온전히 받지 않았습니까? 이제 또 흉년을 만나 우리 조가는 초하루엔 양식을 나누고 보름엔 죽을 쑤어 베풀었거늘, 양식을 받아 간 자들 중에 여기 계신 향친들도 있지 않소? 제발 양심에 손을 얹고 물어보시오, 어찌하여 거짓 죄상을 꾸며 우리 조가를 해친단 말이오?!”
비병(匪兵) 두령은 그녀의 변명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억지를 부렸다.
“대금국(大金国)도 우리가 반기를 들었는데, 너희 조가인지 이가인지가 무엇이 중요하냐? 하늘에 묻지 마라, 이놈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이놈이 곧 하늘이다. 이놈을 따라 반란을 일으키면 밥을 먹을 수 있는 법, 네게 죄가 있다고 하면 네 죄가 되는 것이니 더 이상 변명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흥흥, 네 늙은 목숨마저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두령의 그 궤변을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모두가 조가를 재산 많은 악독한 지주라고 몰아세우며, 장사할 때 무게를 속이고 품삯을 깎으며 고용인을 학대했다고 비난했다… 말이 갈수록 터무니없어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조 노부인이 부녀자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둥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노부인은 분하고 원통함이 극에 달해, 그토록 차마 들을 수 없는 모욕적인 언사를 듣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라 피를 토하고 절명하고 말았다.
조운암은 혈기왕성한 나이였으나 변장을 하고 오랫동안 참고 또 참아 이미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당장이라도 적들을 하나하나 처단하고 싶었으나 부모가 연달아 급사하자 비분강개하여 땅에 무릎을 꿇고 일어날 줄 몰랐다. 군중과 비적들은 재물과 여인들을 차지하여 나누기에 바빠, 그곳에 이런 젊은 사내가 있는지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악랄한 비적들과 난민들이 모두 떠나간 뒤에야, 조운암은 부모의 시신을 수습하여 그 자리에 묻고 나무를 깎아 비석을 세웠다. 그는 저택으로 돌아와 손에 익은 창, 몽둥이, 칼, 활과 안장을 챙기고 평소 즐겨 입던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횃불을 들어 저택과 별원을 남김없이 불태워 버렸다. 말을 타고 동쪽으로 달려 채찍을 휘두르며 남쪽으로 내려가, 생사를 함께할 형제들을 모아 아예 봉기를 일으켰다. 첫째로 여진의 모극(謀克) 제도에 반항하고, 둘째로 몽골의 철기(鐵騎)에 맞서며, 셋째로 붉은 옷을 입은 비적들을 토벌하였다. 맹장 완안아린(完颜阿邻)과 대전하고, 사낭자(四娘子) 양묘진(楊妙珍)과 단판 승부를 벌였으며, ‘붕권(崩拳)과 촉각(戳腳)’으로 하삭(河朔) 지역을 위엄으로 떨치고 ‘치철창(熾鐵槍)과 방강편(方鋼鞭)’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20년 동안 적수를 만나지 못하여 강호에서 당당히 한 인물로 자리 잡았으나, 누군가의 암계에 빠져 흑봉령(黑凤岭)에서 패배하고 남은 부대는 이전(李全)에게 흡수되었다. 그 후로는 자취를 감추었기에 강호 사람들은 그를 ‘철비유협(鐵臂游侠, 강철 팔의 유협)’이라 불렀으니, 이는 모두 후일의 이야기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4599
